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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itarMania

(*.172.98.220) 조회 수 15580 댓글 9


http://www.donga.com/fbin/woman_donga?d=9709&f=wd9709aa020.html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에 대한 기억은 30여년전에 들었던
1972년 그의 나이 24세때 녹음한 멘델스존과 브르흐 바이올닌  협주곡이었다.

당시 우리나라와 같이 열악한 음악환경에서 김영욱,정경화 등과 같이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가 배출되었음을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했었다. 젊은 나이에 세계의 유수한 오케스트라와 협연등 왕성한 활동을 하였고
요요마와 엠마뉴엘 엑스 등과 트리오를 조직하여 활동한 음반이많이 소개되었지만 국내 활동이 뜸해서인지
기억에서 별로 없다가 최근 딸애가 그분의 제자가 되어
그분의 연주를 다시 듣고 싶어 졌습니다. 실연주를 중요시하고 녹음은 짜집기 등의 공정이 들어가 자연스럽지
못하다고하여 녹음하는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인지 많은 녹음은 발견할수 없었습니다.
멘델스존과 브르흐 바이올린 협주곡 시디는 아주 오래전에 절판되어 구할수가 없더군요.

아마도 전에 들었던곡은 시디가 아니라 요즘은 거의 손이 가지 않는
LP장속에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검색하여 보니 다행이 블러그에 올라온것들이 있어서 전곡을 다시 들어 볼수가 있었습니다.

다시 들어보니 정말 감동이 넘치는 명연 이었습니다.

http://blog.naver.com/sopratutto/150029785804

http://blog.naver.com/mdavis68/40049535987




김영욱 교수의 어렸을때 일화를 적어놓은 글이 있어서 퍼왔습니다.





한국을 빛낸다

바이올린 하나로 세계를 감동시키는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

지금도 내 꿈은 좋은 음악을 만들어 내는 일입니다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54세) 선생님은 6살 때 바이올린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단 한순간도 바이올린이 손에서 떠난 적이 없다. ‘천재 소년’에서 일찌감치‘어린 거장’이란 말을 들었던 김영욱 선생님. 그러나 선생님은 지금도 좋은 음악을 만들어 내기 위해 연습에 또 연습을 한다. 김영욱 선생님의 치열한 음악 이야기.


세계를 내 집처럼 드나들어도 진짜 내 집은 서울 운니동

“크리스마스를 서울에서 보낸 것은 어렸을 때 서울을 떠난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에요. 정말 따뜻한 크리스마스였어요.”
크리스마스가 되면 항상 연주를 하느라 미국이나 독일, 프랑스 등 외국 어느 도시인가에 머물던 선생님이 지난 크리스마스를 서울 운니동 집에서 머문 이유는 바로 12월 31일날 예술의 전당에서 있었던 재야 음악회 때문이었어요.
음악회를 마친 후 다시 미국으로 간 선생님. 그러나 선생님의 마음은 서울 운니동 집에 그대로 머물러 있답니다. 이 운니동 집은 옛날 흥선 대원군이 쓰던 운현궁의 별채였어요.
선생님이 이 집을 좋아하는 것은 바로 이 집에서 태어나고, 이 집에서 맨 처음 바이올린을 만지고, 이 집에서 어머니의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이죠. 이 집이야말로 바로 선생님의 고향이거든요.
선생님이 사는 곳은 미국 뉴욕과 프랑스 파리. 그래서 뉴욕에도 집이 있고, 파리에도 집이 있답니다. 뉴욕과 파리의 이 집들에는 선생님의 살림살이가 있고, 선생님의 공부방이 있고, 선생님의 옷들이 있기는 하지만 정작 선생님은 이 집을 선생님의 집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냥 호텔보다 편하게 머물 수 있는 곳쯤으로 여기죠. 하긴 매일 연주 여행을 다니느라 이 집에 머물 시간도 그리 많지 않지만요.
선생님이 진짜 자기 집으로 여기는 곳은 바로 서울 운니동에 있는 한옥집이에요. 그러나 선생님이 이 집에서 산 것은 13년밖에 되지 않아요. 중학교 1학년이던 열세 살 때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줄곧 그곳에서 생활했기 때문이죠. 그러나 선생님은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집은 바로 운니동 집이라고 말씀하세요.
운니동 집은 소파도 없어 방석을 깔고 앉는 집이거든요.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있으려면 다리가 저리고 불편하기만 한데도 선생님은 이 집이 편하다니다. 이 집에서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만나고, 처음 바이올린을 만질 때 설레임을 갖기도 하고, 개구쟁이로 집안 구석구석을 뛰놀던 어린아이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죠.
세계 무대에서 활동하는 우리 나라 음악가들은 대부분 한국에서 공연을 할 때 호텔에서 묵곤 해요. 공연을 앞두고 연습하고 스케줄 조절하기가 집보다는 호텔이 아무래도 편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김영욱 선생님만은 예외예요. 서울에 오면 곧바로 운니동 집으로 달려가거든요.

음악가들이 많이 드나들고 피아노 소리가 끊이지 않던 집

김영욱 선생님의 어린 시절, 운니동 집은 예술가들이 많이 모이는 집이었어요. 이승만 대통령의 주치의를 지냈던 아버지(고 김승현 박사)는 음악에 별로 관심이 없으신 분이었어요. 오히려 음악 교육을 시키는 어머니(고 이현경 여사)를 핀잔하시는 쪽이었죠.
“연습하기 싫어 도망다니는 저를 앉혀 놓고 연습시키는 어머니에게 아버지는 제발 영욱이 바이올린 그만두게 하라고 하시곤 했어요. 왜 애를 괴롭히냐면서 말예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집안에는 음악가들이 들락거렸어요. 임원식 선생님이나 원경수 선생님 같은 분들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 분들이래요.
“지금도 이해가 잘 되지 않는 일인데, 어머님이 어떻게 그분들하고 인연을 맺어 집에까지 오셨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
어머니는 피아노를 연주할 줄 알고, 음악을 좋아하셨던 분이었어요. 6남매 중 막내인 김영욱 선생님이 태어났을 때는 이미 위의 영주(피아니스트), 덕주(피아니스트) 두 누나 가 피아노를 배우고 있었어요. 그러니 김영욱 선생님은 태어나면서부터 피아노 소리를 듣고 자란 거죠.
김영욱 선생님도 형제들처럼 네 살이 되면서부터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뱃속에서부터 피아노 소리를 듣고 자란 탓이었을까요? 꼬마 김영욱의 음감은 탁월했어요. 한 번 들은 음은 절대 잊지 않았죠.
그러나 개구쟁이 김영욱은 피아노 선생님이 오는 시간이 되면 이 방 저 방 도망다니기 바빴어요. 피아노 치는 게 싫었던 거죠. 동네 친구들하고 구슬치기도 하고 싶고, 딱지치기도 하고 싶은데, 어머니는 도무지 그런 시간을 내주지 않았어요. 그래서 어머니는 막내아들 때문에 유난히 신경을 쓰셨어요. 재능은 있어 보이는데 도무지 열심을 내지 않으니까 말이죠.

몸집 작은 바이올린을 좋아한 소년, 그러나 연습하기는 싫어요
6살 무렵이 되었을 때, 꾀돌이 김영욱은 선언했어요.
“난 피아노보다 바이올린을 배우겠어요.”
바이올린이라고? 다들 깜짝 놀랐죠. 피아노를 치던 아이가 갑자기 바이올린을 배우겠다니 말이에요.
“피아노는 너무 크고, 누나들이 너무 잘 하잖아요. 그러니 아무리 내가 열심히 해도 누나들을 따라가지 못할 것 같아요. ”
꾀돌이 영욱의 생각에는 바이올린이라는 악기가 왠지 쉬워 보였어요. 피아노처럼 몸집이 거대하지도 않고, 앙증맞은 것이 신비로운 소리까지 내는 것을 느낀 순간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싶다는 마음이 굳혀졌답니다.
정말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하자 꼬마 김영욱의 실력은 놀랍도록 발전해 나갔어요. 피아노를 칠 때는 온몸을 비비 꼬던 아이가 바이올린을 연습할 때는 제법 눈에 힘을 주고 재미있게 연습을 하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하나를 가르쳐 주면 그 다음엔 둘을 생각했죠.
8살 때 이화・경향 콩쿠르 1등, 9살 때 BS 교향악단과 협연을 하자 운니동에 음악 신동이 났다는 소문이 났어요. 바이올린을 어깨에 턱 올리고 앙증맞게 연주를 하는 어린 꼬마, 더욱이 그 꼬마의 연주는 도무지 어린아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탁월했어요.
피아노보다 바이올린을 좋아했지만 그렇다고 꼬마 영욱이 바이올린 연습하길 좋아하고 레슨 시간을 좋아했을까요? 천만에요. 하루에 서너 시간씩 바이올린을 연습해야 했는데 그야말로 온몸이 꼬일 지경이었죠. 어떻게 하면 레슨을 안 받을까, 어떻게 하면 엄마 눈을 피해 집 밖으로 나가 친구들하고 놀까, 어떻게 하면 학교에서 늦게 올까, 어떻게 하면 들키지 않고 만화책을 끝까지 다 볼 수 있을까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던 어린이였답니다.
그러나 어디 김영욱 선생님만 그랬을까요? 예닐곱 살 어린아이가 스스로 음악을 공부하고 이해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죠. 그래서 어렸을 때는 부모님, 특히 어머니의 영향이 필요한 거예요. 운동하는 사람들처럼 어린 시절에는 일정한 훈련이 필요하니까요.


꾀 많고 엉뚱하기만 한 소년

비행기를 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워, 나 미국 갈래요

초등학교 6학년 때 당시 미국 커티스 음악학교 교장 선생님으로 있던 루돌프 제르킨 씨가 한국에 왔어요. 김영욱 선생님의 어머니는 이 분을 운니동 집으로 초청했어요. 어머니는 아들 영욱의 바이올린 솜씨를 제르킨 선생님에게 선보였어요. 제르킨 선생은 어린 김영욱의 연주를 듣고는 그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어요.
“미국에 가서 제대로 공부했으면 좋겠군요.”
어머니는 약간 당황하셨어요. 아들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치긴 했지만 굳이 음악가로 키우겠다는 생각을 하신 것은 아니었거든요. 그러나 외국 유학을 보낸다면 어쩌면 평생 음악가의 길을 걸어야 할 텐데 어머니는 그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 고민하셨어요.
그러나 어린 영욱은 미국에 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 가슴이 들뜨곤 했답니다. 호기심 많고 모험심이 강했던 영욱은 생전 처음 비행기를 타고, 외국에 간다는 게 너무너무 신이 났거든요 그리고 무엇보다 미국에 가면 어머니로부터 벗어나기 때문에 자유로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이런 ‘철 없는’ 아들을 바라보며 어머니는 고민했어요. 물론 제 또래들에 비해 야무지고 제 앞가림을 잘 하긴 했지만 이제 겨우 초등학교를 졸업한 나이에 혼자 미국에 가서 생활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컸어요..
미국이라는 나라가 지금처럼 비행기를 타고 쉽게 갈 수 있기는 커녕 전화통화도 제대로 할 수 없을 때였으니 어머니는 그야말로 밤잠을 자지 않고 고민하셨어요. 제르킨 선생님에게 미국 유학을 권유받은 지 1년이 지난 후에야 어머니는 결정을 내리셨어요. 그리고 아들 영욱을 앉혀 놓고 말씀하셨어요.
“네 누나와 같이 보낼 생각이다. 그러나 영욱아, 네가 싫다면 안 가도 좋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자기가 음악가가 되길 바라는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어요. 영욱은 당연히 떠나고 싶었죠. 당시만 해도 바이올린만 연주하면서 사는 사람이없었기 때문에 바이올리니스트가 된다는 것이 어떤 건지 잘 알 수 없었지만, 영욱은 새로운 세계로 떠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 가슴이 벅찼답니다.
어머니는 어린 아들을 떠나보내면서 세계적인 음악가가 되라는 말씀 같은 건 하지 않으셨어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음악, 그 음악에 항상 최선을 다하라고만 하셨죠.
음악을 좋아하셨던 어머니. 그러나 음악을 하셨던 분은 아니었기 때문에 어머니는 음악가의 삶을 정확히는 모르셨어요. 그래서 훗날 음악하는 김영욱 선생님이 세계 각국을 다니며 연주가로 생활하는 것을 딱하개 여기셨어요. 그래서 항상 ‘내 탓이다.’라고 말씀하시곤 했답니다.

이반 갈라미언 선생님이 가장 뛰어난 제자라고 칭찬한 동양의 천재

미국으로 건너간 김영욱 선생님은 필라델피아 커티스 음악학교에서 그 유명한 이반 갈라미언 선생님에게 가르침을 받기 시작했어요. 이반 갈라미언 선생님은 마치 아버지처럼 자상했어요.
아침 8시쯤 아직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김영욱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연습하고 있나?”하고 묻곤 하셨답니다. 그러면 장난꾸러기인 김영욱 선생님은 “네!”하고 대답했는데, 갈라미언 선생님은 어떻게 아셨는지 “거짓말하지 말고 얼른 일어나 연습하도록 해.”라고 말씀하시곤 했어요.
처음 미국에 간 김영욱 선생님은 너무나 행복했어요. 너무나 다양한 음악세계가 열려 있는 것을 그 때 비로소 알았으니까요. 1961년 당시 우리 나라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어요. 선생님은 주말이면 음악회장으로 달려갔어요. 다양한 실내악단과 오케스트라, 독주회, 앙상블 등 어쩌면 그리도 다양한 음악회와 연주가 있는지 선생님은 비로소 귀가 뚫리는 것 같았어요.
그 때 김영욱 선생님과 함께 이반 갈라미언 선생에게 가르침을 받았던 사람들은 그야말로 쟁쟁한 사람들이었어요. 한국의 정경화 선생님을 비롯해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인 이자크 펄만, 핀커스 주커만도 있었거든요.
“너무나 잘 하는 사람이 많아 저는 감히 그들과 견줄 생각도 하지 않았어요.”
참 겸손한 말씀이죠? 그러나 김영욱 선생님은 당시 갈라미언 선생님의 제자 중 탁월한제자였어요. 그 즈음 갈라미언 선생님이 미국의 유명한 주간지 <타임>지와 인터뷰를 했어요. 그 때 타임지 기자는 갈라미언 선생님에게 이렇게 물었어요.
“실력이 뛰어난 제자가 많은데 그래도 그 중 한 명만 꼽으라면 누구를 꼽으실 겁니까?”
참 곤란한 질문이죠? 갈라미언 선생님도 <타임>지 기자의 이 짓궂은 질문에 난처해했어요. 한참을 생각한 끝에 갈라미언 선생님은 이렇게 대답했어요.
“참으로 놀라운 제자가 많아요. 그리고 그들은 각기 개성은 다르지만 적어도 서너 명은 역사에 이름을 남길 만한 연주자가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그리고 그렇듯 훌륭한 제자 중 누구 하나를 가장 뛰어나다고 말하는 것은 스승으로서는 참으로 하기 힘든 말입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내 개인적인 취향으로 이야기한다면 가장 주목할 만한 바이올리니스트는 김영욱이 아닌가 합니다.”
물론 음악은 스포츠처럼 경기가 아니기 때문에 누가 가장 뛰어나다고 말할 수는 없는 거죠. 그래서 갈라미언 선생님은 모두 ‘개인적인 취향’으로 이야기한다는 말을 덧붙인 거예요.
그러나 당시 갈라미언 선생님의 이 말은 굉장히 충격적인 말이었어요. 왜냐 하면 핀커스 주커만이나 이자크 펄만은 유태계 사람들이고, 이미 세계적인 음악가로 활동하고 있는 음악가들 중에는 유태인이 상당히 많이 있었기 때문에 이 두 사람은 그들의 절대적인 지원을 받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서양음악을 접한 지 이제 얼마 되지 않은 동양의 작은 나라 한국에서 온 소년이 가장 뛰어나다고 말했으니 정말 뛰어나지 않았다면 그렇게 말할 수 없었겠죠?

음악가가 되겠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연주가의 길로 들어서

갈라미언 선생님의 생각은 맞았어요. 쟁쟁한 사람이 많이 있었지만, 김영욱 선생님은 미국에 간 지 1년 만인 1962년 필라델피아 주최 청소년 음악 콩쿠르에서 1위를 하고, 1964년에는 세계적인 지휘자 유진 올만디가 이끄는 필라델피아 교향악단과 협연을 했답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65년에는 메리위도 포스트 콩쿠르에서 1위를 했어요.
그리고 레너드 번스타인이 지휘하는 뉴욕 필하모닉과 링컨 센터에서 협연하고, 오자와 세이지가 지휘하는 시카고 교향악단과 협연, 카네기 홀에서 리사이틀 등등 세계 무대에 우뚝 서게 됐어요.
세계적인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은 당시 김영욱 선생님을 보고 이렇게 말했어요.
“나는 천재란 말을 잘 쓰지 않는다. 그러나 김영욱이야말로 진짜 천재다.”
김영욱 선생님은 자신도 모르게 불과 열여섯, 열일곱 살에 미국 각지를 돌고 세계 각국을 돌며 연주를 하고 있었어요. 어디에서 연주를 하든 이튿날 신문은 찬사로 가득 찼어요. 천재 소년에서 젊은 거장이라는 말까지 이어졌죠.
“서울에 있을 때뿐만 아니라 음악을 공부하러 미국에 와서도 내가 연주가가 되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어요. 너무나 뛰어난 사람이 많은데 그 속에서 내가 잘 할 자신도 없었고, 연주만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그 때는 잘 몰랐거든요. 서울에 있을 때는 어머니가 시켜서 했고, 미국에 와서는 갈라미언 선생님이 부추겨서 했어요. 그런데 천재라뇨. 천재는 모차르트나 베토벤 같은 사람들에게나 쓰는 말이죠. 음악을 하는 사람에게 천재라고 하는 것은 남들보다 조금 더 재능이 뛰어난 정도로 생각하면 돼요.”
참 겸손한 말씀이죠? 선생님은 음악을 하는 사람은 겸손할 수밖에 없다고 말씀하세요. 음악이란 것이 너무나 위대하기 때문이죠.
스무 살도 되기 전에 세계 무대에 우뚝 서서 마치 브레이크 없는 차처럼 쌩쌩 달리기만 한 선생님. 그야말로 거칠 것 없이 달렸죠. 꽉 짜여진 연주 스케줄, 연주가 끝나면 다시 짐을 꾸려 다른 곳으로 연주 여행을 떠났고, 연주가 끝나면 객석에서는 환호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은 이렇게 무조건 달리기만 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하는 회의가 들었어요. 좋은 음악을 천천히 공부하고 즐기기는 커녕 짜여진 스캐줄에 의해 정신없이 움직이는 것이 너무 힘들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선생님 자신이 만들어 내는 음악이 너무나 보잘것없다는 생각이 든 것이었어요.
그러나 이런 것은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고, 연주는 계속 해야 하고. 사람들은 선생님이 고민하고 있는지조차 몰랐죠. 그럴 수밖에요. 고민하면서도 선생님은 연주를 위해 계속 연습하고 공부했기 때문이죠.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은 말보로 페스티벌에 참석하게 됐어요. 말보로 페스티벌은 음악가들이 모여 8주 동안 서로 연주하는 모습도 보고, 함께 연주도 하는 음악가의 축제죠. 선생님은 1969년에 참석했고, 1975년부터 1981년까지 매번 참석하셨어요.
이 곳에서 선생님은 첼로의 대가 파블로 카잘스를 만나요. 그리고 첼리스트 요요마와 피이니스트 임마누엘 엑스, 피터 제르킨 등 정말 뛰어난 음악가들을 만났죠.
“그 곳에서는 잠을 잘 수 없었어요. 나이가 70, 80된 분들도 문제를 갖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었어요. 그 때 비로소 알았죠. 음악이란 것은 정말 끝이 없는 것이구나. 지금도 그래요. 매번 연주했던 곡들도 항상 새롭고, 음표 하나하나마다 다 뜻이 있는데 작곡가는 대체 어떤 의도로 이 음표를 사용했을까 생각하게 되죠. 정말 음악을 하려면 몸을 바쳐야 되는 거 같아요.”
선생님이 천재 소년에 머물지 않고, 그리고 젊은 대가에 머물지 않고 정말 좋은 음악을 만들어 내는 바이올리니스트라는 찬사를 받는 이유가 뭔지 알겠죠? 바로 끊임없이 자기 계발을 하고 공부하는 것이에요.

정명훈, 한동일, 강동석, 조영창 등 음악 친구들이 열어 준 생일 축하 파티

1997년 가을, 예술의 전당 음악당에서는 ‘7인의 음악회’란 콘서트가 열렸어요. 김영욱 선생님을 비롯해 바이올리니스트 강동석, 첼리스트 조영창・양성원, 피아니스트 정명훈・한동일, 비올리스트 최은식 등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일곱 명의 남자 음악가들이 펼친 그야말로 환상적인 무대였죠. 모두 세계 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연주가들이기 때문에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연주를 한다는 것만으로도 뉴스거리였어요.
물론 연주는 대단했죠. 그러나 더 감동적인 것은 연주가 끝난 후 앙코르 무대였어요. 앙코르곡으로 아리랑이 연주되는 듯하더니 갑자기 생일 축하곡이 나오는 거예요. 그리고는 정명훈 선생님이 김영욱 선생님을 무대 앞으로 등장시켰어요. 바로 그 날은 김영욱 선생님의 50회 생일날이었던 거예요.
생일 축하곡이 나오는 가운데 김영욱 선생님이 두 손을 가슴에 얹고 감동을 받는 모습.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객석의 환호. 김영욱 선생님은 그 날 앙콜곡으로 유행가를 연주해 더 많은 박수를 받았답니다.
“그 때 참 행복했어요. 연주 여행을 다니다 보면 생일 같은 건 잊고 지내게 마련인데…, 고향인 서울에서 음악 친구들이 만들어 준 생일 파티는 그야말로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음악을 하는 일은 참 외로운 일이라는 김영욱 선생님. 1998년부터 세계적인 실내악단 보자르 트리오에 합류해 더 열심히 연주를 하고 있는 선생님은 뉴욕이나 파리보다 서울 연주를 더 기다리고, 진주나 울산, 광주, 대전, 춘천, 광양 등 한국의 작은 도시들에서 연주하는 것을 더 큰 기쁨으로 생각하세요. 좋은 음악을 듣고 싶어도 듣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기회를 주고 싶기 때문이죠.


박스 1

아, 궁금해~김영욱 선생님에게 물어 봤어요

Q : 바이올린을 하려면 몇 살 때부터 시작하면 좋을까요?
A : 난 7살 때 시작했는데, 5살 때부터 시작하는 게 좋아요. 늦어도 7살에는 시작해야 돼요.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것은 단순한 손놀림뿐만 아니라 몸 전체를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바이올린이 몸에 익어야 하거든요.
Q : 실내악이란 무엇인가요?
A : 실내악은 보통 두 명에서 여섯 명의 연주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두 명으로 이루어진 것은 이중주, 세 명으로 이루어진 것은 삼중주, 네 명으로 이루어진 사중주, 다섯명으로 이루어진 것은 6중주라고 말을 해요. 많은 경우에는 20명까지도 실내악단을 이룬답니다.
음악가들은 실내악을 좋아해요. 이유는 다른 악기를 다루는 음악가들과 함께 즐겁게 연주를 할 수 있기 때문이죠. 제가 1999년부터 활동하고 있는 보자르 트리오도 실내악단이에요. 연주를 하면서 저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피아니스트 프레슬러 씨에게 많은 것을배운답니다.
Q : 선생님도 무대에 올라가면 떨리나요?
A : 그럼요. 무대에 올라가면 항상 떨리죠. 연주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위해 연주하지 않아요. 객석에 앉아 있는 청중을 위해 연주하죠. 따라서 어떻게 하면 청중을 위해 최선을 다해 연주할 것인가 생각하고 항상 최선을 다한답니다.
Q : 선생님 음반은 쉽게 구할 수 없던데 그 동안 왜 음반을 많이 안 내셨어요?
A : 전 개인적으로 녹음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연주가 끝나면 잊고 싶은데, 녹음을 해놓으면 평생 남아 있잖아요. 그리고 음반은 녹음해서 짜집기를 거친 완벽한 것을 만들어 내니까 자연스러운 맛이 없거든요.



김영욱 선생님의 음반이 궁금해요

김영욱 선생님은 첼리스트 요요마와 피아니스트 임마누엘 엑스와 함께 <드보르작 피아노 트리오>를 비롯 <모차르트 피아노 4중주>,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모차르트 피아노 4중주> 등의 음반을 냈어요.

한국의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정경화
한국을 대표하는 두 바이올리니스 김영욱・정경화 선생님의 연주를 접할 수 있는 음반. 멘델스손 바이올린 협주곡과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들어 있어요.

그리운 당신
슈베르트의 ‘세레나데’, 포레의 ‘꿈을 꾼 후에’, 홍난파의 ‘옛동산에 올라’등 사랑을 주제로 한 따뜻한 바이올린 소품집. 탤런트 유인촌 아저씨와 오연수 누나의 시낭송도 곁들여져 있어 클래식을 처음 접하는 사람도 쉽게 들을 수 있어요.

드보르작 피아노 트리오
최고의 연주가인 임마누엘 엑스, 요요마와 함께 연주한 드보르작 피아노 트리오 작품집. 이 연주는 드보르작 트리오 중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진 캡션>

1. 50년 전보다 훨씬 커졌을 뿐 마당에 그대로 있는 소나무. 사진 아래는 어린 시절, 나무 아래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모습이다.
2. 김영욱 선생님은 음악이 너무 위대해서 음악 앞에 서면 겸손해 진다고 말한다.
3. 어린 시절 꼬마 김영욱은 누나(피아니스트 김덕주) 만큼 피아노를 잘 할 자신이 없어서 바이올린으로 바꿨다.
4. 8세 때 이화-경향 콩쿠르에서 1위를 했다.
5. 정경화, 장영주 등을 가르친 세계적인 교수 이반 갈라미언 선생님과 함께. 야무지고 똑똑한 모습이다.
6. 1964년 유진 올만디가 지휘하는 필라델피아 교향악단과 협연하는 모습. 미국 신문들은 일제히 한국의 천재 소년 등장을 크게 소개했다.
7. 어린 시절 피아노보다 쉬워 보여 바이올린을 선택했지만, 바이올린이 내는 그 신비한 소리와 음악에 금세 빠져들었다.
8. 8-1 8-2 바이올린을 연주할 때 김영욱 선생님의 다양한 표정.
9. 세계적 명성을 갖고 있는 보자르 트리오 연주 모습. 피아니스트 메나헴 프레슬러 할아버지와 첼리스트 안토니오 메네시스 아저씨와 함께 음악을 하는 것은 언제나 즐겁고 큰 공부가 된다.
10. 천재소년, 어린 거장이란 말을 들었던 시절에도 선생님은 항상 ‘정말 내가 잘 하는걸까?’ 생각하면서 더 열심히 공부하는 자세를 잃지 않았다.
11. 선생님의 바이올린 스트라디바리우스. 이 귀한 악기를 선생님은 언젠가 다른 사람에게 물려줘야 하기 때문에 더욱 소중하게 다룬다고 말한다.
12. “잘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고, 음악을 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 바이올린을 그만 두고 싶었던 적도 있었어요. 그러나 그 때마다 오히려 더 열심히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됐죠.”
            
Comment '9'
  • 콩쥐 2008.04.10 07:21 (*.80.23.90)
    그챠나도 김영욱님의 연주를 들어보고 싶었는데 감사합니다....
    정말 지난날들이 특별하군요...

    뛰어난 연주자뒤엔 항상
    부모님이 계셨다는건 정말 따스한 이야기네요....

    부모님이 얼마나 큰 그림인지.....
  • Kyung Yoo 2008.04.10 08:34 (*.233.107.244)
    제가 고등학교떼 (76년?) 여름인데 정경화 김영욱씨가 우연히 함께 한국에 와서 연주회를 한적이 있었어요. 두분연주회에 다 참석을 했는데 정경화씨 연주회에 김영욱씨가 오셨더라구요. 얼마나 존경스러워 보였던지요. 혼자오셔 청중석에서 앉아 계셨읍니다. 연주회 끝나고 저는 같이온친구와 가방을 끼고 이대강당 건물을 걸어 나오고 있는데 갑자기 누가 우리를 부르는것 같아 뒤돌아 보니 김영욱씨가 제친구보고 가방에서 프로그램이 떨어졌다고 손수 주어서 건네주셨던 기역이 납니다. 그때 저는 싸인을부탁하고 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해 본의치 않게 시간을 팬들에게 내주신적이 있는데 정말 저한테는 잊지 못할 기역중에 하나 입니다.
  • 달팽이 2008.04.10 08:38 (*.37.242.6)
    고등학교 1학년때 멘델스존과 브루흐 협주곡이 들어있는 그 분의 LP를 샀더랬지요.
    그 땐 김영욱이란 분이 누군지도 몰랐고, 그저 라디오에서 들어본 브루흐 협주곡이 마음에 들어서
    동네 레코드 가게에서 제목만 보고 샀었는데, 집에 와서 들어보니 멘델스존곡에 더 끌림...
    시험보는 날 아침에 "멘델스존 2악장 듣고 가야 시험 잘본다"고 헤드폰끼고 여유부리다가
    "으이구~ 그 시간에 공부를 한 글자라도 더 해야지!!!! 얼렁 학교 못가?!!!"
    하고 엄마한테 구박 맞았던 기억이.... ^^

    정말정말 오랜만에 꺼내서 들어보고 있어요.
    보관상태도 그저 그래서 음질이 좋진 못하지만
    27년전에 묻어놓은 타임캡슐의 뚜껑을 열어보는 듯한 기분입니다. ^^
  • ldh2187 2008.04.10 08:44 (*.95.196.230)
    고정석님......딸애가 청출어람이 됐으면 하네여.......
  • 콩쥐 2008.04.10 09:09 (*.80.23.90)
    고정석님 따님 고은애양은
    서정성이 뛰어나기에 스트라디말고 과르네리를
    대여받아 연주했으면 좋겟어요.....
    김영욱님은 스트라디바리우스라는데 이를 어쩌죠?
    고정석님 귀여운 딸 과르네리 하나 사주세요 ~...(염장성 발언.)
  • 토토 2008.04.11 01:46 (*.54.38.105)
    김영욱씨.. 밤베르거 심포니인가.. 브루흐.. 연주.. 저도 기억이 나네요..
    지금 김영욱씨가 갖고 있는(최근 변동사항은 모름 ;;) 스트라드 세솔은.. 스트라드 중에서도 다섯손가락 안에 꼽히는 명기라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책에서 본 내용이었는데... 동양아이들은 미국에서 교육을 받아도(아예 네이티브가 아닌한) 서양음악을 연주하는게 아니라 자기식으로 동양음악으로 연주한다고.. 서양의 그 특색을 이해를 잘 못한다고.. 설명하는 교수얘기를 봤는데.. 예외가. 있었는데 그가 김영욱이라고 하더군요..
  • Kyung Yoo 2008.04.11 04:59 (*.233.107.244)
    김영욱씨 내한공연중에서 또하나 잊을수없던일은 아마제가 김영욱씨를 정경화씨 연주회에서 마주친 같은해일지도 모릅니다.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콘챌토 2악장에서 연주회 떼는 몰랐는데 TV 에서 연주녹음을 보여주었는데 눈물이 흘러내리는 모습이 너무나도 뚜렸이 보이더군요. 그때 해석을 담당하셨던분에 말씀이 이건 그냥 눈물이 아니라 귀한 진주같은 보석이라 설명한 기억이 나는군요. 정말 음악을 넘어선 하나에 인간으로서에 참모습을음악으로 표현해주신 순간이라 생각됩니다. 아마 KBS 방송국에서 아직도 이실황을 간직하리라 생각됩니다.
  • Kyung Yoo 2008.04.12 11:54 (*.233.107.244)
    생각하면 할수록 김영욱씨에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콘챌토 한국 실황연주는(76년?)
    저에 마음속에서 떠날줄 모르는것 같네요.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해설을 하신분은 음악평론가 한상우씨 였읍니다.

    혹시 이 리플 읽으시는 분중에 한상우씨나, KBS나, 김영욱씨와 연락되시는 분이 있으면 이실황 연주를 찾아볼수 있는 기회를 마련 해보았으면합니다.

    정말로 어느 연주보다 더 감명 깊었던 연주라 생각 됩니다.

    그당시 남산 에있는 국립극장에서 연주를 했읍니다.
  • 한섭 2008.04.23 07:40 (*.130.242.180)
    위에 링크 걸어놓으신 브루흐 협주곡 2악장 듣고 있는데...너무 좋으네요...
    감동적인 연주에요...너무 좋다...
    전 이분 잘 몰랐는데...이렇게 연주 들으니 정말 관심이 가는군요...
    은애님이 김영욱님 제자가 되다니 기쁘시겠어요...고정석님^^
    서정성이 뛰어난 은애님이 더욱 훌륭한 연주자가 되길^^
    (제가 요즘 바이올린 익히고 있다보니 더 관심이 가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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