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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가는 사이트에 올려진 글인데 좋아서 퍼왔습니다
아내의 옛집
내가
아가씨네 문전에서 이렇게 오래 무례하게 집안을 들여다 본다고 나무래 마오
실은 말이오, 아가씨
아가씨가 지금 살고있는 이 집에서 내 아내가 태어났고 또 자라났다오
40년 전 일이오
아가씨 그 때 내 아내는 꼭 아가씨 만한 나이의 처녀였소
나는 그녀를 아내 삼으려
황해도 두메에서 기차로 꼬박 이틀 걸려 이곳 먼 전라도까지 왔었소
너른 만경벌에 갈가마귀 떼 울부짖고
후원 감나무에 감이 벌겋게 익는 늦 가을 어느 날이었소
지금 아가씨가 서 있는
바로 그 앞 마당에 꾸며 놓은 초례청으로 나아가서 연지찍고 곤지찍고
머리에 쪽두리 얹은 열 일곱 아직 어린 나이의 아내와
사모관대 차림의 나는 백년 해로를 하늘에 맹세 했었소
아가씨,
뒤에 조그마한 한칸 방, 그 방이 우리의 신방이었다오
아가씨,
그렇게 이상한 눈초리로 나를 내다보지 마오
아가씨, 실은 말이오
이와 같은 까닭이 있어 호호 백발의 한 갖 과객인 내가 실례인 줄
뻔히 알면서도 이렇게 아까부터 아가씨네 집 문전에서...
실은 말이오
발길을 못 돌리고 서성거리고 있는 거라오
아내의 옛집 -장만영 1914~1975
Comment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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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들여다보는 멋진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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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을 읽노라면 부러운 느낌이 드는군요.
제가 신혼살림을 차렸던 셋집은 주택가였는데...
이미 오래전에 아파트 단지가 되어버려 찾을 길이 없네요.
제가 태어난 집도 마찬가지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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