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GuitarMania

2004.01.27 11:15

가장 오래된 추억

(*.186.255.43) 조회 수 4695 댓글 6
지난 몇달간 계속된 스트레스, 과로, 과음에 감기/몸살이 겹치자 드디어 몸이 망가져 한동안 사경(?)을 헤매다가 이제야 조금씩 회생하고 있는 중입니다. 새해에는 메니아 칭구분들 모두 건강하시기 빌며 늦었지만 새해인사 드립니다.

저도 한동안 아파 누우니 오래전 어렸을 적에 돌아가셔서 기억도 가물가물한 어머니 생각이 나더군요. 그 중에서도 제가 기억할 수있는 가장 어렸을 때의 가장 오래된 기억을 이야기 해보렵니다.

혹 그 동네 사는분이 계실지 모르지만 제기동 홍파초등학교 남쪽에 접하여 한옥들이 모여있는 동네가 있습니다. 그 중에도 처마에 이마가 부딪칠 정도로 납작한 가장 오래된 집이 두채 있는데 그 두집이 제기동 100번지 1호와 2호랍니다. (지금도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마는.) 바로 그 100번지 1호에 얽힌 추억입니다.

제가 아마 한 3살쯤(?) 됐을때 당시 열심히 집짓는 일을하여 재산을 조금 모았던 고지식한 아버지가 사기에 걸려 모든것을 날리셨습니다. 그래서 리어카에 가재도구를 싣고 아현동에서 제기동까지 이삿짐을 끌고와 그동안 쌓아온 신용으로 건자재를 빚내어 지은집이 100-1호입니다. 당시 이집은 아주 '단단하게' 잘지은 집으로 정평을 얻었고 심지어 어떤이는 바로 옆에 똑같이 따라지었는데 그 Replica가 100-2호랍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배추밭 한가운데 오로지 우리집 한채 뿐이었습니다. 이사오던 가을, 우리는 바로 집앞의 밭에있는 배추를 심어져 있는채로 사서 직접 캐어 김장을 담구기로 하였습니다. 온 식구들이 밭에서 배추를 캐는날 저녘노을이 질 무렵 어머니는 저를 업고 저녘을 차리기위해 집으로 들어섰습니다. 붉은 노을을 배경으로한 그 집모습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그런데 부엌에 들어서시던 어머니는 소스라치게 놀라셨습니다. 등에 업혀있던 저는 어머니의 몸이 놀라서 경직되는 것을 그대로 느낄수 있었습니다. 부엌에는 시커먼 그림자처럼 검은 옷을 입은 도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놀라기는 그 순진한(?) 도둑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놀라서 말을 잃고 떨고만 있던 어머니에게 그는 어깨에 메고있던 전대같은 주머니를 열어보이며 역시 벌벌 떨리는 목소리로 "이것 밖에 안 훔쳤어유..."하고 간신히 말했을 뿐이었으니까요. 그런데 그 주머니 안에 들어있는 것이라고는 겨우 한 됫박 정도의 쌀이 담겨있을 뿐이었습니다.

아마도 굶주림에 시달리는 가족을 보다 못해 도둑질까지 나서게 된 뼈아픈 사연이 있었겠지요. 당시엔 그런일이 흔했으니까요. 그런 어려운 시절을 다 겪으신 어머니는 그냥 가라고 간신히 손짓만 했을 뿐입니다. 도둑은 고맙다는 인사를 한것 같았고 바로 부엌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갑자기 집 대문을 나서려는 도둑을 불러 세웠습니다. 기왕 온것 밥이나 한끼 먹고 가라고... 주저하며 그가 머뭇거리는 사이 식구들이 모두 들어왔습니다. 어머니가 찬밥이나마 상을 차려 내오셨고 마루위에 올라와 먹으라는 권유를 끝내 사양한 그는 신을 신은 채로 마루 끝에 걸터앉아 밥 한그릇을 눈 깜빡할 사이에 비웠습니다.

그리고 집을 나서는 그에게 인정 많은 어머니가 쌀 한봉지를 더 담아주자 그는 눈물을 흘리며 떠나갔습니다. 당시 젊은 청년이었던 그도 지금은 할아버지가 되어있겠지요. 가끔은 그동안 그가 어떻게 살았을지 궁금해질 때도 있습니다.

기억이 불확실한 부분은 형, 누님의 증언을 참고했지만 제가 대부분을 생생히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어머니의 추억이랍니다.

몸이 불편하다고 오늘은 제가 괜히 센티해진 것 같군요. 메니아 칭구 여러분, 부디 건강하세요.

Comment '6'
  • iBach 2004.01.27 12:59 (*.100.158.92)
    블루제이님, 나아서 다행이네요 저도 한 1주일 고생했는데...허해진 몸 잘 챙겨드세요.
  • 정천식 2004.01.27 13:56 (*.243.135.89)
    요즈음엔 동냥하러 다니는 거지가 없어졌지요? 먹을 게 귀하던 시절, 거지 몫까지 밥을 지었을 우리네 어머니들... 한 편의 감동적인 드라마네요.
  • 2004.01.27 14:45 (*.105.92.241)
    어려운이웃도 또 다른나자신이라는거 뼈속깊이 느끼셨던 우리네어머니들....
  • 아이모레스 2004.01.27 20:53 (*.158.255.188)
    슬픔을 아는 사람은 남의 슬픔도 아는 법... 아이를 한 둘쯤 잃어 본 경험이 있었던 우리네 부모님들은 그래서(?) 남의 슬픔을 나눠 가질 줄 알았을지도....
  • 저녁하늘 2004.01.28 01:20 (*.243.227.78)
    블루제이님... 밥 많이 먹고 잠 많이 자고... 건강하셔요~ 꼭. 반/드/시 힘내라, 힘~!!
  • bluejay 2004.01.29 08:51 (*.186.255.43)
    감사합니다. 덕분에 많이 나은거 같네요.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7038 불산이란 무엇일까요? 생활안전 2012.10.08 6439
7037 김용옥 강의 콩쥐 2012.11.10 6439
7036 기타매니아에선 좋은 말만.... 17 STELLO 2009.11.20 6434
7035 1세기에 작곡된 음악 2 file 꽁생원 2016.05.23 6425
7034 A Little Girl Gives Coins To A Street Musician And Gets The Best Surprise In Return 꽁생원 2016.02.16 6425
7033 GMO와 유대인 gmO 2015.02.28 6423
7032 진화 인명 사전 3 콩쥐 2009.11.09 6423
7031 금강산 가는 길 file 정천식 2004.01.21 6423
7030 야마시타의 손톱 7 file 찾던이 2003.06.22 6421
7029 鉄拳 振り子(철권시계추) 2 꽁생원 2012.03.23 6418
7028 흔한 독일녀의 노래 실력 4 꽁생원 2013.11.14 6416
7027 한국판 JFK 4 정여립 2011.09.15 6415
7026 담배 진짜 피우기 싫다... 15 file 2004.10.14 6412
7025 한식 세계화 1 한식 2015.03.18 6406
7024 만행... 1 wldjf 2004.08.20 6401
7023 눈 온다~ 1 file 오모씨 2004.01.18 6401
7022 히또 고또 2 아즈 2012.06.26 6400
7021 ?...님께 물어보고 싶은게 있어요. 161 콩쥐 2009.05.09 6395
7020 바루에코와 그의 칭구들 기타갖고 노는 비디오 9 누룽지 2006.07.11 6393
7019 매냐님들, 퀴즈 하나 풀어보시죠. 25 file BACH2138 2011.12.07 6385
7018 칼 858기 폭파 자작설 54 꽁생원 2009.05.20 6384
7017 절대 잊혀지지 않는 광어와 도다리 구분법 9 금모래 2008.09.21 6384
7016 집앞 바닷가 1 file 콩쥐 2012.02.05 6379
7015 바닷가에서의 연주 바닷가 2015.09.09 6375
7014 해운대 할무이 국밥 뽀짱 2001.11.29 6371
7013 임진강의 논 12 file 콩쥐 2010.09.05 6368
7012 6.오사카...마지막밤은 맥주로... file 콩쥐 2008.12.27 6368
7011 비도 오고.. 1 2008.05.28 6368
7010 남녀는 다르다. 4 콩쥐 2009.11.17 6364
7009 해운대 구청 앞 "밀면전문점" 1 오모씨 2001.08.16 6362
7008 잃어버린 한마리의 양 25 bluejay 2004.04.17 6358
7007 비밀번호, 아가씨와 나만 아는 거여~ 3 그놈참 2003.10.23 6358
7006 오늘 첨 알았네요...글자체변경 7 file 콩쥐 2010.09.30 6354
7005 공립대학교가 우리나라에도 있었으면... 6 콩쥐 2012.10.16 6353
7004 독일의 주거 제도 3 file 꽁생원 2016.04.24 6349
7003 라면..... yo 2001.02.20 6344
7002 유교사. 1 file 선생님 2014.06.09 6339
7001 핸드폰 전화번호저장 2 file 콩쥐 2011.10.27 6339
7000 김치, 된장과 암의 상관관계 1 한식 2015.03.18 6338
6999 tico tico duo. 6 콩쥐 2009.11.03 6338
6998 바둑이 검둥이 청삽사리중에 1 영서부 2003.09.06 6338
6997 한국여성미모 세계순위 1 정여립 2011.03.03 6335
6996 Jake Shimabukuro-First Love 13 김기인 2009.08.09 6335
6995 저도 그런 경험.. 3 ggum 2003.03.24 6335
6994 "La Strada" 완성중인 자필 악보 3 file 2005.04.04 6334
6993 추석날에 뜬 보름달 2 file 콩쥐 2012.10.01 6334
6992 사회속의 개인 file 콩쥐 2013.07.23 6333
6991 소중히 새기고 싶은 백범 김구선생의 어록 마스티븐 2013.09.29 6332
6990 나를 구성하고 있는 것들 8 차차 2005.07.21 6332
6989 정동영, 홍가혜 그리고 김감독 파파이스 2015.04.12 6330
Board Pagination ‹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 151 Next ›
/ 151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Powered by Xpress Engine / Designed by hikaru100

abcXYZ, 세종대왕,1234

abcXYZ, 세종대왕,1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