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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2.17 16:14
서양문명의 모태는 흑인이었다(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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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문명의 모태는 흑인이었다』
[서평] 마틴 버낼의 <블랙 아테나>를 읽고
- 오마이뉴스 정아은(chachahime) 기자
오페라를 즐겨듣는 이라면 모차르트의 '마술피리'와 베르디의 '아이다'를 비슷한 이미지의 작품으로 기억하게 되는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유럽문명이 낳은 최고의 예술가라고 일컬어지는 모차르트의 아름다운 오페라 '마술피리'가 왜 이집트 시대를 배경으로 한 '아이다' 와 비슷한 이미지로 남게 되는 것일까?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많은 신들의 이름이 로마와 이집트에서는 각각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는 사실을 얼핏 역사 시간에 듣고 외웠던 적이 있다. 이들은 다른 이름으로 불리지만 사실은 동일 신이라는 것. 이것도 그 당시에는 그냥 외우고 넘겼지만 약간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다. 왜 유럽문화의 모태라 일컬어지는 그리스 신화의 신들이 그리스와는 전혀 '동떨어진' 것 같은 이집트 신들과 동일인이라는 것일까?
▲ 블랙 아테나 1권."날조된 고대 그리스, 1785-1985"
<블랙 아테나>를 읽으면 석연찮게 남았던 이러한 장면들에 일제히 환한 등이 켜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모차르트의 오페라에 나오는 자라스트로는 이집트의 지도자를 상징하는 인물이며, 그리스 신화속의 신들은 이집트의 신들이 건너와 변형된 것. 즉, 서양문명의 모태라 불리는 그리스 문명은 사실 이집트에서 유래한 한 분파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프리메이슨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 의해 기록으로 남겨졌고, 시간이 흐르면서 유럽문명의 우수성을 주장하기 위해 주류 사학자들에 의해 의도적으로 우스갯소리로 비하되어 왔다. 그 후 우리의 역사시간은 '서양 문명의 출발은 그리스였다'라는 명제를 기본으로 하여 펼쳐진다.
우리가 갖고 있는 이 확고한 고정관념. 서양 문명의 모태가 그리스 문화였다는 개념은 언제부터 생긴 것일까. 놀랍게도 그것은 불과 2세기 전인 19세기, 그것도 일부 사학자들의 정치적 목적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서양에서 19세기는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대한 제국주의 정책이 활발하던 때였고, 그런 제국주의 침입을 정당화하는 것으로서 인종주의가 팽배하던 때였다. 그리고 서양은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을 거치면서 정치적으로는 보수와 진보로 나뉘게 되는데, 독일과 영국의 지배 계층은 중도적인 길을 모색하게 되었고, 그 대안을 고대 그리스에서 찾았다고 버낼은 보고 있다. 이제 고대 그리스 문명 또는 헬레니즘은 서양 문명의 모태가 되었다. 그런데 그 그리스 문명이 인종적으로 열등한 이집트인과 셈족에 속하는 페니키아인에 의해 형성되었다는 것을 서양학자들은 용이할 수 없었고, 그것을 기록하고 있는 고대 그리스인의 기록을 믿을 수 없는 허황된 신화로 만들어 버렸다는 것이다. <옮긴이 해설: '블랙 아테나'라는 책>
이렇게 잉태된 '그리스 문화 날조'는 시간이 흐르면서 그때그때마다 특정 정치세력의 필요에 의해 더욱 그 형상을 공고히 해갔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서양 고대사의 뿌리인 고전학은 나폴레옹이 몰락하면서 보수 체제가 부활한 1815년과 1830년 사이의 시기에 만들어졌으며, 학문적으로 유럽 중심적인 이데올로기를 띤 고전학은 이렇게 유럽 사회에 정치 사회적으로도 깊이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스 문명의 절대화, 신격화. 그 시작은 식민지에 대한 폄하를 목적으로 한 독일인들에 의해, 발전과 집대성은 프랑스 혁명으로 인한 진보의 기운을 어떻게든 막아보려 했던 보수 세력에 의해 철저하게 이루어졌던 것이다. 그리고 이 '날조된 그리스 문명'은 역사학에 있어 하나의 커다란 기본 전제가 되어 세계 방방곡곡의 어린이들에게 가르쳐지고 있는 것이다. 역사란 강자에 의해 씌어지는 것이라는 진리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예시가 아닌가.
이 책은 그리스 문화가 후세에 의해 어떻게 쓰이는지, 그 변천과정을 시대별로 나누어 조목조목 보여주고 있다. 기원전 이집트가 막강한 국력을 바탕으로 화려한 문명을 이룩했던 시절 그리스와 맺었던 관계, 이후 이집트 문명이 그리스·로마 문화라는 지류를 낳게 되는 과정, 그리고 그러한 역사가 후세인들의 정치적 상황에 의해 왜곡되는 과정을 방대한 자료와 학술적 근거를 인용하며 낱낱이 밝히고 있다.
유럽의 제국주의자들은 자신들의 문명이 아프리카 대륙에서 나왔다는 것을 절대로 용납할 수 없었다. 당시의 지리적, 언어적, 역사적 상황으로 보았을 때 이집트인은 검은 피부를 가진 아프리카인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자신들이 노예로 부리는 식민지인들이 자신들이 자랑하는 찬란한 문명의 본체였다는 사실은 상상에서조차 불가능한 일이었으리라. 그리하여 유럽의 제국주의자, 그리고 그들에 동조하는 일단의 사학자들은 거의 운명적으로 그리스 문화의 날조 작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각종 사료에 남아 있는 뚜렷한 증거들은 두고두고 '우스갯소리'로 비하되었다.
영국 런던 출신의 마틴 버낼은 이러한 유럽인들의 문화적 오만을 좌시할 수 없었다. 우연한 기회에 이집트인이 흑인이었을 것이라는 암시를 발견한 이 열렬한 사학자는 자신의 본래 전공이었던 중국학에서 100% 방향전환을 하여 유럽과 아프리카 대륙의 커다란 비밀을 파헤치는 작업에 뛰어들게 된다.
...이집트에 생각이 미친 후에는 "왜 전에는 이집트에 대해 생각하지 못했을까?"라는 문제에 더욱 심각하게 빠져들었다. 너무나 명백했다! 그리스가 생기던 수천 년 동안 이집트는 동부 지중해에서 가장 거대한 문명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스 작가들은 자신이 이집트의 종교 및 여타 문화에 빚졌음을 길게 기록했다. 이집트학 학자이신 외할아버지 밑에서 어릴 적부터 고대 이집트에 대단한 흥미를 가졌음에도 그러한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더더욱 당혹스러웠다. 그리스와 이집트를 연계시키는 것을 방해하는 매우 뿌리 깊은 문화적 억압이 존재하는 것이 분명했다...
작가는 이 작업을 위해 히브리어, 셈어 등 수많은 언어를 공부했고 그리스와 이집트에 관련된 수많은 학술서를 공부했으며 수많은 사람들과 토론을 주고받았다. 그가 펼쳐가는 이 방대한 서술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그리스 문명과 이집트 문명만이 아니라, 유대인과 소수민족들이 그리스 문화의 신격화와 더불어 어떻?폄하되고 박해받았는지도 적나라하게 지켜보게 된다. 그리스 문명 날조 작업이 반유대주의로 귀결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놀랍고도 가슴 한켠이 서늘해지는 슬픈 일이다. 인류의 역사는 결국 억압의 변천사에 불과한 것이란 말인가.
독자가 재밌게 목격하게 되는 것은 시대별 그리스 문화 날조사만이 아니다. 이 방대한 저서에 등장하는 수많은 역사적 위인들, 흔히 서양의 '위인'이라 일컬어지는 유명인물들이 '인종주의'라는 프리즘을 들이대었을 때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는지를 지켜보는 재미도 일품이다.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을 집필했던 1850년대에도 마르크스는 고대 모델을 충분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스 신화가 그리스의 사회적 관계가 아니라 이집트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가능성을 받아들이는 것은 물론 그의 도식을 망쳐놓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리스가 이집트와 범주적으로 구분되며 이집트보다 우월하다고 누구나 뼛속 깊이 느끼던 시대에 살고 있었다. 따라서 고대 모델의 파괴는 이 문제에 관해 헤겔이 누릴 수 없던 자유를 마르크스 세대에 부여했다. 마르크스는 그리스에 끼친 이집트의 영향을 철저히 부정할 수 있었다...
전세계 노동자들의 궐기를 부르짖었던 칼 마르크스. 가난한 노동자의 애환을 통찰할 수 있었던 그였지만 그 안에 자리해있던 자신의 인종주의는 들여다볼 수 없었다. 인간이란 그런 것이다. 내 안에 있는 수많은 요소들 중 일부만이 내 자아의 조명을 받는 것. 그렇게 수많은 위대한 자아들이 인종주의에 대해서는 끝까지 눈을 감았고, 그것이 오늘날 서양문명의 우월함을 공고히 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내 안에서 영원히 잠잘 뻔했던 의식 하나가 눈을 번쩍 떴다. 이후 이 눈은 다시는 감기지 않고 내 안에서 영원히 반짝이게 되리라. 고정관념을 깨는 책은 언제나 내 안의 무언가가 깨어나 요동치며 꿈틀거리게 한다. 이 내용을 모두 신뢰한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저자가 뚫고 들어가려 했던 그 간극을 주시하게 된 것, 그 간극 너머에 넘실거릴 수많은 진실들을 상상해 보았던 것은 고정관념에 도전하는 '발칙한 책'을 읽음으로서만 얻을 수 있는 값진 경험이었다.
그러나 이 책은 너무 어렵다. 일반 대중을 상대로 쓴 책이라고 보기엔 내용이 너무 난해하고 사학자나 언어학자를 독자로 가정하고 씌어졌을 것 같다. 그리스 문명과 이집트 문명에 관해 이미 많은 배경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을 전제로 쓰였기 때문에 내용이 웬만해서는 잘 잡히지 않는다. 셈어니 히브리어니 하는 전문적인 지식들로 출발하는 이 난해한 책을 읽다 보면 포기할까 말까 몇 번을 망설이게 된다. 그러나 책의 반정도 분량을 차지하는 기나긴 주석들과 역자의 해설을 들척이면서 끈기를 가지고 읽어나가면 아주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도전해 볼 만하다. 돌파과정이 어렵기는 해도, 읽고 나면 전문 사학자가 갖는 지식을 가지게 된 것 같은 지적 우월감을 맛볼 수 있게 된다. 웬만한 역사서 10권을 읽은 것과 같은 효과를 주는 이 방대한 책은 읽는 이의 가슴에 수많은 의문들을 두고두고 메아리치게 할 것이다.
Comment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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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상당히 구미가 당기는 책이네요~ 함 읽어봐야겠습니다....
역사는 현재의 강자에 의해 늘 약간씩 날조되는 것이 관례인것 같네요~
지금이야 서양 문명이 세계를 주도하지만.... 차후 1000년 후는 과연 어떨지...
그때에 현재의 역사가 과연 바로 전달이 될지...
ㅎㅎ~ 머리아프지만... 재미겠네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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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실 친한 동료의 논문 테마가 될뻔한 멋진 책을 여기서 또 보게 되어 반갑고도 부끄럽습니다.
제본해놓고 어영부영하는 와중에 번역나오는 씨리즈 열여섯번째쯤 될겁니다 -
유럽인들의 인종적 편견과 오만함은 뿌리가 깊습니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콜럼부스의 "신대륙 발견"은 이러한 편견과 오만함의 극치입니다.
자신들이 몰랐을 뿐이지 옛부터 사람들이 살고 있었는데 무슨 발견을 했다는 것인지...
미주 대륙에서 옛부터 살고 있던 사람들은 사람도 아니라는 것인지...
아니면 세계의 역사를 곧 자기의 역사로 착각(그래야만 '발견'이라는 것이 성립되니까요)하고 있는 건 아닌지... -
제목하고 내용하고 약간 다른 느낌이라...한마디 거들자면, ^^
이집트 인종은 아프리카 대표 인종인 흑인과는 전혀 다릅니당...
지구 인종은 처음에 5개의 인종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황, 흑, 적, 백, 갈색 인종으로..
기원이 대략 2,000만~2,500만년쯤 되었죠.
이집트 문명이 크게 피게 된 것은 대략 레무리아 대륙이 파괴된 BC 50,000년경 부터인데,
아틀란티스 중반 무렵이죠. 지구를 놓고 다투는 여러 차원의 외계문명들이 충돌하는
환경에서, 지구행성의 중요 장치를 기자(피라미드 위치)로 옮기게 되었고,
그러면서 이집트가 한동안 지구의 중심 무대가 되었지요...
음..한도 끝도 없는 역사 얘기가 되어야 하니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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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모든 문명의 원조는 시날평지의 수메르문명이였다는 사실이 규명되고 있는 중이랍니다.
시날 평지의 처음왕조는 성경의 창세기에 나오는 니므롯(nimrod)이 세웠다고 하죠. 대홍수이후에
생긴 처음의 왕조의 왕인 니므롯은 함의 아들로 흑인이고, 그렇다면 위이 책이주장하는 바와 비슷할 것 같네요.
니므롯의 죽음 이후에 많은 신들이 등장하는 데(물론 사람들의 창작으로), 니므롯의 급작스러운 죽음에
애통하는 추종자들이 그의 한가지 측면에 신화적인 성격을 더하여 수많은 신들이 창조 되고, 이것이 전파되어
소위 판테온이라는 만신전이 생기는 것입니다.
니므롯의 아내 세미라미스(semiramis)는 여왕이 되어 이러한 작업을 독려하고 자신도 여신으로 추앙받게 됩니다. 즉 미의 여신 비너스의 원형이죠. 비너스가 흑인으로 묘사된 인형이 아직도출토된답니다.
아직도 중동지방에는 니므롯과 그 아내 세미라미스를 추앙하고 있는데, 이집트 카이로에 가니까
호텔이름이 세미라미스라고 아직도 있더군요.
딴지는 사절입니다.
궁금하신분들을 위해 "알렉산더 히슬롭"의 저서 "두개의 바빌론(the two baabylons)"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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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오파트라가 진한 흑인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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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식님이 오랫만에 오셨네요~^^
말씀하신대로 신대륙 발견은 발견이 아니라 강탈로 봐야하지 않을지.
원주민을 대량학살한 피사로의 만행만 봐도...
비슷한 얘기인데...
예수 그리스도도의 모습도 우리가 알고 있는 긴머리 백인(마치 롹커 같은...-_-;;)_은 아니라고 하네요.
당시의 유태인들은 아프리카계 흑인 만큼은 아니더라도 제법 까무잡잡한 중동인의 모습이었다고 하니....게다가 남자들이 머리를 기르는 것을 수치로 여겼다나 어쨌다나... -
예수님도 원래는 흑인이셨을 거에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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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없던 시대의 인물을 중세화가들이 묘사한다는 것, 그리고 그 그림을 통해 우리가 오랬동안 사실의 인물이라고 막연히 인식해온 것들중에는 허구가 상당히 많습니다.
한 예로 성모 마리아의 모습은 왜 전형적인 유대인의 특징인 검은 머리가 아니까요?
아주 서구적인(유럽적인) 미인의 모습은 어디에서 가져온 것일까요?
로만 교회가 세속적인 권력을 상실하는 과정에서 종교적인 주권을 유지하며, 세속적인 권력도 유지할려는
타협책의 일부로 다른 종교의 유입을 허락하는 과정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본질의 모습이 다르게 ㅍ현된 것입니다. 오죽하면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는 교황을 "적그리스도"라고 규정지었겠습니까?
종교적인 논쟁을 피하기 위해 여기까지만...... -
예수가 원래 흑인이든 백인이든 동양인이든 별 의미는 없을 것 같고요, 받아들이는 측에서 예수상이든 마리아상이든 다 자기들이 공감할 수 있게 그리는거 당연하죠. 우리나라에서도 이들을 토속화된 모습으로 그리는 것에 가치를 둘 지언정 언제 중동인의 모습으로 그렸나요? (사실 유대인 생김새가 중동쪽보다는 그래도 남유럽계 백인에 가깝죠.) 신대륙 발견도 그걸 제3자가 오만이나 그 어떤 것으로 규정하기 이전에 당연히 자기들 역사의 입장에서 발견이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러다 세계적으로 서구의 학풍이 중심이 되었으니 (식민의 결과든 어떻든) 자연히 그러한 입장이 지배적 입장이 되었을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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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흥미진진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