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한 향기를 지닌
분과 일주일 남짓
함께 시간을 보내고 보니 아직 그 내음이 몸에서 씻어지지 않네요.^^
로베르또 아우셀님이 한국을 떠나던
날, 공항에서 배웅을 하면서 인터뷰를 한 내용을 적을까 합니다.
인터뷰는 공항에서 녹음을 한 후
오모텔에서 다시 들으며 혁님이 통역, 라파레님이 속기로 옮기고, 오모씨가 편집정리했습니다.
(인터뷰에 참여한 분들은 혁님(통역),
삐약님(가방모찌), 라파레님(기타모찌), 빨간토시님(운전기사), 오모씨(찍사 및 편집)입니다.)
당시 비행기 출발시각 5분 전까지
아우셀은 한국의 애호가들을 위해 자신의 진솔한 음악이야기를 진지하게 녹음하게
해주셨습니다.
지면을 빌어 마에스뜨로의 애정어린
인터뷰에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Q (혁) : 존경하는 마에스뜨로!
지금의 마에스뜨로의 음악세계는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당신의 역사를 간단히 소개해
주시면 후학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A (마에스뜨로
로베르또 아우셀 -
이하 '마에스뜨로') : 에...
저는
7살 때 기타를 시작했고 그냥 동네에 있는 선생님한테 배웠어요. 당시 20살이었죠.
선생님이..
그땐 그냥 클래식기타라기보단 아르헨티나
음악을 기타로 치는 걸 좋아했고 기타 치면서 노래도 부르고 그랬어요^^ 그런데
선생님이 클래식레파토리로는 어려운 걸 줬어요. 7살인 제게 카프리치오아라베,
바하 첼로조곡... 그당시에 치기가 너무 어려웠죠.^^;
8살
때쯤 첼로조곡 치다가 너무 성질나서
주먹으로 기타 옆판을 쳐서 부숴버렸습니다. ㅡㅡ;
그
무렵, 선생님은 군대 간다며
날 버리고 가 버리셨어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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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뜨라다 고메스와의 만남
저희 집에서 여섯 블록 쯤 떨어진
곳에 기타를 만드는 공방이 있었답니다. 바하 첼로조곡 때문에 부서진 제 기타를
매고 그
공방에 찾아갔는데 그 공방의 주인은 '에스뜨라다 고메스'라는
기타 제작가였습니다.
추 후 알게되었지만 그는 아르헨티나에서
최고 유명한 제작가랍니다.
처음 에스뜨라다
고메스를 만난 그 날 에스뜨라다는 제게 기타를 쳐보라고 했습니다.
함께 간 엄마와 에스뜨라다
앞에서 기타를 잡고 첫 음을 띵~~ 쳤는데, 에스뜨라다가 어머니께 "이
소년이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아십니까?"라고 하시면서 선생님도 소개해주시고 악기도 만들어
주겠다고 하셨답니다.^^;
그는 폭넓은 인맥으로 제게
그가 아는 모든 선생님들을 소개해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저는 체계적인 렛슨의
길로 접어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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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루이사 아니도(Maria Luisa Anido, 1907-1996)와의 만남
시간이 지나 10세쯤 되었을 때
저는 '마리아 루이사 아니도'를 소개받게 됩니다.
다른 선생님들은 제가 기타를 치고
옆에서 펜을 들고 렛슨을 해주셨지만, 마리아 루이사와는 서로 마주보고
기타를 각자 들고 서로 연주를 하면서 배웠습니다. 그 때문인지 저는 그녀의 톤과 음색에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당시 마리아는 모든
음을 아포얀도로
연주했습니다. (마리아는 료벳의 제자이며, 타레가의
영향을 받았다.)
마리아에게 렛슨을 받을 때 저는
세고비아의 판을 듣고 똑같이 연주하는 연습을 많이 하곤 했습니다.
비하인드 스토리이지만 마리아의
성격은 좀 괴팍했습니다. ^^ㅋ 어느 날 레슨을 받으러 2시간 동안
갔는데 문을 열더니 "오늘은 레슨
못하겠어! 난 러시아로 갈 꺼야! 집에 가!"하고 소리쳤습니다.
충격받은 저는 너무 속상해서 2달
동안
기타를 안 쳤답니다.ㅡㅡ;
마리아 루이사 아니도 Maria Luisa Anido
http://www.guitarrasweb.com/marialuisaanido/curri.htm
1907년 부에노스 아이레스 근교 모론에서 출생한 아르헨티나의 여류 기타리스트, 유년 시절부터
아버지에게 기타아를 배우고 7살 때에 1년동안 도밍고 프라트에겍 사사했다.
그밖에 로블레도에게 4개월간 배운 것을 비롯하여 레로우프와
료벳에게도 사사한 바 있다.
18년 11살 때에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명기 토레스로 첫 리사이틀을 갖고 절찬을 받은 바 있으며 아니도의
천재는 프라트가 말한 "어제는 나의 제자였으나, 오늘은 나의 동료이고, 내일 나는 그녀의 찬미자가 될 것이다." 라는 격찬으로 잘
설명된다고 하겠다.
29년 료벳의 제 4회 남아메리카 리사이틀에서 2중주를 연주하여 상을 받은 일을 비롯하여, 세계 각국을 여행하며
수많은 명연을 한
거장의 한 사람이다.
|
(그녀의
스승 료벳과 함께한 마리아. 세고비아와
함께 늙어가며...^^ )
|
|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에스뜨라다를 만났습니다. 절 보고 왜 렛슨을 안받고 있냐고 물어보기에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다고 답하자 "그여자 미쳤어
^ㅡ.ㅡ^!"하시고는 또 다른 선생님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그가 바로 "마르띠네스 사라떼"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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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띠네스 사라떼(Martinez Zarate)와의 만남!
사라떼를 소개 받고 가서 기타를
쳐보라기에 쳤더니 음악원으로 나와 렛슨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당시 그는 부에노스아이레스 근교의
음악원에서 렛슨을 하고 계셨습니다. 사라떼는 아르헨티나에서 명성이
높은 훌륭한 선생님이십니다. 그의 제자로는 저와 함께 파리콩쿨에
출전하여 페르난데스와 공동 2등을 했던 히롤옛이 있습니다.
Miguel Girollet, Graciela Pomponio Jorge Martinez Zárate, Horacio Ceballos.
(*
사라떼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슈베르트의 '밤과 꿈'을 최초로 기타 듀엣으로 쳤던 사람이라고 혁님이 주석을 달아주셨음)
*
히롤옛 - girollet
1947 - 1996 - 75년 파리콩쿨2위수상자 - 깔레바로에게도 사사 / 96년 폐암으로 스페인에서 사망.
금연!
)
-
http://guitarristas.com/girollet
|
사라떼에게는 전 선생님이셨던 마리아와
다르게 전부 '알 아이레'로 배웠습니다. (*
완전 초보님들을 위한 용어설명 : - 아포얀도: 현을
쳤을 때 다음줄에 손가락이 닿게 눌러 치는 것, 힘있고
깊은소리를 낸다. 스케일과 주 멜로디등에 주로 쓴다.
대표적으로 세고비아의 똥~소리. - 알 아이레 : 현을
다양한 각도로 뜯어 소리를 내는 방법. 아르페지오로
주로 쓴다. 아표얀도에 비해 얕고 가는 소리가 나는
것이 일반적이나 현대에 와서 단점이 보완된 알 아이레
주법은 아포얀도 못지 않게 음질이 깊으며 고르기에
현대 연주자들은 필수적으로 이 주법을 갈고 닦는다.
대표적으로 럿셀의 연주.)
사라떼에게 배우던
즈음 저는 '존 윌리엄스'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건 제게 있어서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그리고 머지않아 브림이라는 연주자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의 음악성에 대해서 상당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때 저는 결심했습니다.
"윌리엄스의 테크닉과 브림의 음악성! 그것을 해낼
수 있는 연주자가 되겠다!"
계속 노력해왔고 지금도 노력하고
있고
마지막 날이 될 때까지 노력할것 같습니다.
(줄리안
브림과 존윌리암스의 듀오음반에 실린 그들의 손 -
아우셀의 우상은 이들이었다-우측사진 출처 삐약)
|
----
별들의 전쟁 파리 국영 라디오 방송국 주최 국제 기타 콩쿠르
1975년 21살이 되었을 때 저는 기타계
최고의 등용문이었던 '파리 콩쿨'에 도전하였습니다.
당시 1차, 즉 예선은 카세트테이프
심사였습니다. 녹음해 보내고 예선 결과가 답변으로 와야 하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답변이 오지 않았습니다.
히롤옜은
결승진출의 연락을 받았는데 저는 받지 못하여 낙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2주 가
지나서야 예선이 통과되었다는
전보가 왔습니다.
기뻤으나
새로운 고민이 생겼습니다. 당시 저희 집은 부유한 편이 아니었기에
아르헨티나에서 파리까지 비행기를
타고 가야하는데, 표 값이 없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고민하던 절 보던 마을 사람들이
돈을 한 푼씩 모아 비행기표를 사 주었습니다.ㅠㅠ 그래서 저는 기타리스트들의
꿈의 무대 파리 라디오 방송홀이 있는 파리 땅을 밟을 수
있게 되었답니다.^^;
2차, 즉
결승은 두 단계로 나누어 진행되었는데
심사위원들( 13명의 파리 고등음악원 등의 여러 쟝르의 음악가들, 한
명만 기타리스트 )과 '비공개로 치뤄지는 콩쿨'이
한 번, 프랑스 국영 라디오 방송 홀에서
이뤄지는 '공개 콩쿨'이 한 번이었습니다.
결승 진출자는 저와(아우셀),
히롤옛, 페르난데스, 발터사르 베니테스였습니다.
공개 콩쿨인 방송홀에는 1,500명의
관객이 몰려 콩쿨의 위용을 실감했습니다.
첫
번째 페르난데스가, 두 번째 베니떼스가, 세
번째 아우셀이, 네 번째 히롤옛이 연주를 했습니다.
연주가 끝나자 전 해 1등 연주자가 연주를 한 후
심사 발표를 했습니다.
먼저, 2등을 발표하는데 페르난데즈,
히롤옛이
공동 2등이었습니다. 3등은 발터자르였고, 저는 1등 아니면 4등이라 가슴 졸이고
있었는데, 1등을 수상하여 너무나 감격했습니다.
*
현대 기타 연주테크닉의 아버지 아벨 깔레바로.(옆은
히롤옛) (아우쎌과 히롤옛의
첫 스승은 사라떼 선생님이고, 훼르난데스와 베니떼스는 깔레바로님께 처음부터 사사 하셨죠.
베니떼스
사진 보러가기 클릭 )
|
콩쿨을 마치고 수상자들과
함께 커피를 마시며
대화하던 중 상금에 대한 얘기가 나왔는데 당시 상금은 오늘날 돈으로 따지면 50만
원
정도의 값어치와 줄 한 벌 정도였습니다.
즉 비행기 값 같은 건 안 나오는 것이었죠^^;
그러나 그 콩쿨의 권위는 가히 세계
최고였기에 그날 저녁이 제 생애에서 가장 멋진 날이었습니다. 오늘날까지도....ㅠ.ㅠ
그 콩쿨을 우승하면서 저는 앞으로는 절대로 콩쿨에 나가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더 이상의 명예로운 콩쿨이 없기
때문에....
-----
이어지는 콩쿨 석권 !
그러나
머지않아 새로운 콩쿨 제안을
받게 됩니다. 사라떼 선생님께서는 제게 '카라카스
콩쿨'에 나가지 않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저는 파리콩쿨 때 다짐한 대로 나가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께서는 이걸
보라면서
종이를 한 장 꺼내 보여주셨는데 카레카스 콩쿨의 심사위원 명단이
적힌 것이었습니다. '존윌리암스', '줄리안브림', '안또니오
라우로', '레오 브라우어', '알리리오 디아스'가 심사위원으로 적혀져 있었습니다! 두말없이 콩쿨에 나갔습니다..ㅠ.ㅠ
(그의 우상이었던 브림, 윌리엄스와 당대 최고의 대가들이 한자리에 모였으니..결심을 깰만 했죠?^^)
그리고 우승했습니다.
카레카스 콩쿨은 우승 상금이 4000달러(75년도에)였습니다. 지금도 큰돈이지만 당시의 그 상금은
아르헨티나에서 집을 살 수 있는 돈이었는데, 무었을 할가하다가 자동차를 한 대 샀답니다.^^
왜냐면 어릴 부터 렛슨 받으러가려고
두 시간씩 차를 갈아타고 걸어다녔기 때문에요,,,^^;
(그
후 오늘날의 그의 공연용 프로파일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로베르또 아우셀은 9개의 국제적인 콩쿨에 나가서 8개의 콩쿨에서 1위를 수상하였다.')
역대 파리 국제 기타 콩쿨
1등 수상자 |
년도 |
회수 |
역대수상자들 |
59년 |
1회 |
공석 |
60년 |
2회 |
Mijndert Jape |
61년 |
3회 |
Konrad Ragossing |
62년 |
4회 |
Alberto Ponice |
63년 |
5회 |
Oscar Ghiglia |
64년 |
6회 |
Barbara Polasek |
65년 |
7회 |
Turibio santos |
66년 |
8회 |
공석 2위 Betho Davezac |
67년 |
9회 |
Sergio Abreu |
68년 |
10회 |
Alfonso Moreno |
69년 |
11회 |
Norihiko Watanabe |
70년 |
12회 |
Vladimir Mikulka |
71년 |
13회 |
Jorge Oraison |
72년 |
14회 |
Monika Rost |
73년 |
15회 |
Arnaud Dumond |
74년 |
16회 |
Kari Aikas |
75년 |
17회 |
Roberto Aussell |
76년 |
18회 |
Alvaro Pierri |
77년 |
19회 |
Kazuhito Yamashita |
78년 |
20회 |
Goran Schollser |
79년 |
21회 |
Michel Sadanowsky |
80년 |
22회 |
Mariam Renno |
81년 |
23회 |
Shinichi Fukuda |
82년 |
24회 |
Pavel Steidl |
83년 |
25회 |
William Kanengiser |
84년 |
26회 |
Marcello Kayath |
85년 |
27회 |
Tania Chagnot |
86년 |
28회 |
Mohammad Khalid Arman |
87년 |
29회 |
Pablio Marquez |
88년 |
30회 |
Mathias Dammann |
Q (라파레): 마에스뜨로는 매일
어떻게 연습을 하십니까? 기타를 공부하는 친구들은 이점이 무척 궁금하거든요^^;;
A (마에스뜨로) : 저는 매일 기타를
잡고 1시간간은 '준비운동'을 합니다.^^ 스케일, 아르페지오, 곡이나 연습 곡의
짧은 페시지 등을 8개 파트를 나눠서 손을 풉니다. 이것저것 조합해서 제가 만든 플랜으로
연습을 하죠.^^
그 연습이 끝남과 동시에 연습곡을
치면서 끝냅니다. 이를테면 벌새라든지,바리오스의
연주회용 연습곡이라든지, 빌라로보스연습곡 등을 연주하면서 1시간간의 준비운동을
마치죠^^
그 다음에 곡을 연습하기 시작한답니다.^^
학생들 중 테크닉 향상을 위해 하루종일
아르페지오와 스케일 연습에 몰두하는것을 보는데 하루에 세네 시간 이상 스케일 아르페지오
연습은 '절대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제가 언제나 학생들에게 하는 얘기지만,
테크닉 연습은 머리에서 메세지를
전달해주고 손가락이 전달할 땐 바람직하지만 손가락만으로 하는 연습은 할 필요가
없습니다.
연습에는 언제나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손이 나에게 헌신을 해야지 그냥
손 움직이는 대로 연습하는 건 무의미 합니다.
이를테면 리가도를 할 경우
지금 내 머리에서 리가도를 해야겠다고 명령을 내린 다음 손이 수행해야지, 손이 리가도를 한
다음에 머리에서
리가도를 하는구나..하면 안된다는 것이죠^^
(* 시시콜콜 : 느낌을
담을 수 없는 기계적 테크닉이
아니라 음악적 요구에 의해 완벽한 통제 가능한 테크닉으로의 개발이 중요하다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Q (빨간토시) : 사람들 앞에서 연주만
하면 무지 떨리는데요^^;; 마에스뜨로께서는 그 많은 관중
앞에서도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음악을 들려주십니다. 무대공포증이라는 거대한 벽을 선생님은
어떤 방법으로 넘으셨습니까?
A (마에스뜨로) :
아주 어렵습니다.
왕도가 없고, 그저 집에서 철저하게
준비하는 것이 방법이죠^^. 집에서 준비를 잘하면 스트레스가
많이 줄어들어 무대에서의 긴장과 실수가 줄어듭니다. 그리고 그렇지 않을 경우 스트레스도
많아지고 그것은 실수로 연결됩니다.
집에서 준비를 할 때 많이 반복해서
연습을 하는 것이 잘하는 게 아닙니다. '내가 무엇을 하는지' 잘 이해해야
합니다.
(한국
호텔에 묵을 때 마에스뜨로가 마련한 연습 공간 - 설명
보기 )
어떤
사람도 긴장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집에 있는 부엌에서 연습하는 것과 무대에서 연주하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긴장감이 있는 것도 바람직합니다.
그리고 모든 무대든 상당히 특별합니다.
똑같은 무대는 있을 수가 없죠. 비록 청중이 적든 많든 '단 한 번 뿐인
무대'인 것이죠.
그런
걸 준비하기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하는지 잘 알아야하고,
잘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테크닉적으로 확신이 없으면
곤란합니다.
무엇인가 결정이 되었으면 이행해
옮겨야 합니다. 그에 대한 의문점이 있거나 불확실한 게
있다면 꼭 그 부분에서 실수가 나옵니다.
(* 시시콜콜 : 내가 이 곡을, 이
부분을 이렇게 연주하는 이유에 대한 스스로의 확신이 있어야 한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마스터클라스에서 마에스뜨로는
표현이 소극적인 학생들에게 소극적으로 완벽하게 연주하려는
것보다 설사 확신(해석상)이 없어도 결단을 내리고 과감하게
연주를 하는 것이 비록 실수가 있다 하더라도 관중들에게는 더 크게 어필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Q (오모씨) :
이를테면 기타를 어떤 기타리스트는
화성악기다 하여 피아노적인 어법으로 연주를 하고, 어떤 이는 현악기다 하여 바이올린이나
첼로 처럼 유려하게 선율을 표현하기도 합니다.또 어떤이는 기타는 기타적으로
노래해야해 하면서 너무나 기타적인 표현을 하곤 합니다. 한편으로는 작곡자와 시대에 따라
한 연주자라도 다른 표현을 하곤 하던데 마에스뜨로께서는 어떤 음악적 확신을
가지고 연주하십까? 어떻게 곡을 분석하시고 노래를 만드십니까?
A (마에스뜨로) : 곡을 연주할 때 어떤 곡이든 먼저
그 시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하
곡을 피아졸라틱하게 연주할 순
없죠^^ 소르도 마찬가지이고요. 그 시대를 파악할 줄 알고 그것을
아는 것이 그것을 해결하는데 큰 도움이 될수 있습니다.
그것이 첫번째 입니다!
이러한 지식들은 선생님을 통해서
배울 수도 있고, 음반으로 배울 수도 있고, 책으로 배울 수도 있으며, 다양한 방법으로
공부할 수 있습니다. 엄청나게 범위가
방대하며,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부분에 있어서는 기타나
다른 악기나 모든악기가 동일하다 생각합니다. 다른 악기들도 정확히 똑같습니다.
시대 파악이 우선입니다. 방법은 같습니다.
악기는 표현을 하기 위한 도구일
뿐입니다.
기타리스트가 기타로 연주를 하는데
듣는 사람이 기타를 듣지 않고 음악을 듣는다면 그것이야 말로
최고의 연주입니다.
제가 오늘날 가장 하고
싶은 건 제가 기타를 열심히 연주 하면
사람들이 음악을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음악을 들으면서 그 시대를
느낄수 있었다고 하면 제가 받을수 있는 찬사는 다 받은
것입니다.
'스칼라티를 느꼈다!' '소르를 느꼈다!' '시대를 느꼈다!..' 라는
말은 제 자신이
가장 듣고 싶은 평입니다.
Q (삐약이) : 마에스뜨로도 음악을
한다고 했을 때 어머니 아버지가 조낸 반대하셨나요 ?
A (마에스뜨로) : 다들 동의하시고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 (그리고
삐약이를 바라보며 조낸 웃으셨음ㅋㅋ)
Q
(삐약이) : 부럽삼. 마에스뜨로께 헌정된 Astor Piazzolla (1921-1992)의 Five Pieces for Guitar는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나요? 삐아쏠라같은 대작곡가는 작곡료가 조낸 비쌀 텐데요!
A (마에스뜨로) : 기타리스트라면
누구나 대작곡가에게 기타곡을 의뢰하고 싶어합니다. 저
또한 내심 그러했죠^^
삐아쏠라를
만나 저녁식사를 함께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제 레파토리를 있는 대로 그에게 연주해주었습니다. 많은
시간이 지나 마지막으로 '왈튼(William Walton)의 바가텔(Five
Bagatelles for Guitar)'을 연주하던 중이었습니다.
3악장인
'알라쿠바나(Alla cubana)'를 연주하자마자 갑자기
삐아쏠라는 흥분하더니 마구 화를 내면서 소리쳤습니다.
"대체 그 곡 누구 곡이야!!" 제가
소심하게 "왈튼요~ ㅡㅡ;;"하자 "그
곡! 내 곡이야! 누가 내 스타일로 곡을 썼어? 그래도
되는거야?" 하시면서 매우 화를 내셨습니다.
그리고는
저보고 돌아가라고 하셨습니다. ㅡㅡ;;;
그
일이 있고 얼마 후 삐아쏠라께서 다시 저를 부르셨습니다. 그때 그에게 받은 악보가 바로 '싱코 삐에사스( Five Pieces for Guitar)'였습니다.
현대
기타계에 길이 남을 명곡은 그렇게 탄생한 것입니다.
차
후, 제가 몇몇 운지(옥타브조정 정도)만 기타의 특성에
맞게 손 봤을 뿐입니다.
(그래서
떠도는 악보에 옥타브가 다르게 적힌 것들이 있다.
그 후 삐아쏠라는 기타를 위한 수편의 작품을 썼으며,
악기편성에 기타를 넣은 곡들을 많이 작곡했다..)
Q (혁) : 비행기 시간이 가까와졌습니다.
마에스뜨로. 마지막으로 한국의 느낌이 어땠는지 말씀해주시죠^^ 그리고 한국에 다시 오신다면 어떤
레파토리를 연주하고싶으신가요?
A (마에스뜨로) : 어제 호텔에서 부인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아르헨티나에서나 느낄 수 있었던 훈훈한 사람들과의 이런
교감을 낮선 땅인 이곳 한국에서도진하게 느끼게 되었다고요.^^
(* 시시콜콜 : 공연 뒷풀이 때 사석에서
마에스뜨로는 이렇게 감탄사를 뱉으셨습니다. "지금이 1960년대도 아니고
21세기에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아무런 조건도 없이 이익도 없는 이런 일에
매달려 서로를 헌신 할 수 있는지...놀랍네요!"
- 자신의 공연을 위해 여러 기타인들이 애정어린 도움을 주시는 것을 느끼며 하신 말씀.^^)
이번
공연은 제게 너무나 의미가 있는 공연입니다. 3월에
팔이 부러져 어깨와 팔을 다친 후 다시 기타를 잡을
수 있을까 스트레스가 심했습니다. 너무나 고맙게도,
제가 다시 기타를 연주 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고,
때문에 이런 이유에도 한국 공연은 제게 너무나 의미가
깊은 공연이었습니다.
다시 한국에 온다면 여러시대의
곡들을 연주해보고싶어요~ ^^ (마치 먹고싶은게 뭐냐는 질문에 답을하시듯...) 음..
아주 현대곡, 남미음악도 다시연주하고
싶고, 언제 또 올지 모르지만 언제 또
바로크음악도 해보고 싶고, 그리고 바하를 치고 싶네요^^
그리고 이제는 조금더 바하를 치기에
음악적으로 성장한 것 같아요. 내가 그렇다고 해서 많이 성장했다고
인정할 수는 없지만 조금은 더 성장한 것 같아요.^^; 바하를 연주하려면 무지
많은 일과
생각을 많이 해야하고.. 음...암튼..다음번에는 바하도 한번 연주해보고
싶습니다.^^
일주일의 짧은기간이었지만 나에게
많은 것을 배풀어준 친구들에게 감사합니다.
한국에서의 열정어린 관중의 박수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마스터클라스
후 기타인들과 함께한 마에스뜨로- 맨 우측남자 너무 앞쪽이라 머리 크게 나옴)
이상
인터뷰 끝.
⊙
Tip _________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