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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itarMania

(*.30.201.151) 조회 수 10923 댓글 8


엇그제 신문에 난 기사를 보았습니다...

“악기의 소리가 완성되는 데는 목형이 30%, 도료가 70%를 차지합니다. 목형을 만드는 것은 오히려 스트라디바리 때보다 우수하지만 소리가 형편없는 것은 바로 도료 때문입니다.”

이 말씀이 악기의 소리에 대한 생각을 다시 생각케 하네여.....




2004년 9월 국내 한 TV방송에서 폴란드를 무대로 제작한 ‘명품 악기의 세계’란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었다. 포츠난에 있는 국립악기박물관 장면에서 등장한 악기는 1606년 제작된 현존 세계 최고(最古)의 바이올린 ‘그로블리츠(Groblicz)’. 폴란드 궁정 악기 제작자였던 그로블리츠 1세(1540~1609)가 만든 작품으로, 박물관 측은 “국보”라며 “현(絃), 소리 등 모든 상태가 아주 좋다”는 평과 함께 즉석에서 이 명품으로 시연을 해 보인다. 엘가의 ‘사랑의 인사’, 헨델의 ‘바이올린 소나타 3번’, 크라이슬러의 ‘사랑의 슬픔’이 연주되자 방송 진행자는 “포근하면서도 애절한 선율”이라며 “그로블리츠 바이올린이 참았던 숨을 토해 내듯 신비의 소리를 마음껏 뿜어냈다”고 극찬했다.

바로 이 시간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선 이 방송을 지켜보던 한 노신사가 “그러면 그렇지!”라는 탄성과 함께 무릎을 치며 연신 파안대소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어진 화면에서 바이올린 제작 전문가(파블리코프스키)가 “그로블리츠의 방식대로 만들어도 재현이 불가능하다”고 하자 이번엔 실소를 흘린다. 그도 그럴 것이 프로그램의 주인공인 그로블리츠를 2년 전 거의 ‘고물’ 수준에서 오늘의 명품으로 ‘재생’시킨 것이 바로 자신이어서였다.

이 노신사의 이름은 앙드레아 방(한국명 方永昌·73). 스트라디바리·과르넬리·아마티·갈리아노 같은 서양 고전 현악명기(絃樂名器)의 세계적 복원전문가로, 명기를 다루거나 소유한 사람 치고 그를 모르면 간첩(?) 소리를 들을 정도다. 그래서 그의 호칭 앞에는 늘 ‘마에스트로(Maestro·이탈리아어로 명장이란 존칭)’가 붙는다.

방씨는 현재 논현동에 ‘크레모나 인 서울(Cremona in Seoul)’이란 이름의 음리(音理)과학연구소를 운영하며 연구와 작업을 하고 있다. 크레모나는 17~18세기 아마티·스트라디바리·과르넬리 등 전설의 현악기 제작 3대 가문이 활약한 바이올리니스트들의 성지(聖地). 이곳에서는 지금도 프란체스코 비솔로티, 지오바타 모라시 등 세계적인 바이올린 제작의 거장을 비롯한 200여 명의 장인이 활동하고 있는데 이들 모두 방씨를 ‘마에스트로’로 깍듯이 대접한다.

하지만 그의 이 같은 성공도 처음부터 보장돼 있던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그렇게 기구할 수가 없었다. 1935년 일본 나고야에서 와세다대 출신 한국인 아버지와 피아니스트였던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방씨는 네 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익힐 정도로 음악적 재능을 타고났다. 다섯 살이 되면서 도쿄 우에노로 옮겨 바이올린 공부를 계속하던 중 초등학교 3년 때 일본의 패전으로 아버지를 따라 귀국하면서 어머니와 생이별을 해야 했다. 서울에 본처가 있던 아버지는 아들을 의사이던 친구에게 맡겼다. 방씨는 경기중 2학년 때 한국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양부모와도 헤어져야 했다. 하지만 그는 한시도 바이올린을 놓아본 적이 없었다. 어머니 품으로 가기 위해 무작정 부산으로 떠날 때도 달랑 바이올린뿐이었고, 도일(渡日)에 실패한 뒤 대구의 피란민 수용소에서 생활할 때도 그랬다.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던가. 그를 전쟁의 수렁에서 건져준 건 역시 바이올린이었다. 때마침 인근에 있던 공군정훈감실에서 실시한 군예술대원 공모에 최연소로 합격, 유엔군 위문공연 활동을 하게 됐다. 그에게 행운의 씨앗이 뿌려지기 시작한 것은 51년 가을 맥아더사령부 고문단이 참관한 가운데 미8군 장교구락부에서 한 공연이 계기. 고문단의 실력자가 ‘바이올리니스트 쇼리’의 실력에 감탄해 그를 일본의 맥아더사령부로 초청했던 것이다. 도쿄사령부에서 두 차례 공연했는데 당시 군목(軍牧)이 “재능이 아깝다”며 파리행을 주선, 이듬해 초 열일곱의 나이로 프랑스 유학길에 오르게 됐다. 외방선교회 소속으로 신학을 공부하며 종교단체에서 연주하던 그에게 두 달 만에 또 다른 길이 열리고 있었다. 그를 눈여겨보던 줄리앙르란 여성 신자가 신학보다는 바이올리니스트의 길을 갈 것을 권하며 후원자로 나섰던 것이다. 당시 45세이던 그녀는 리옹 인근에 수천 평의 포도원과 대여섯 개의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던 부자이자 사교계 명사로 그에게 숙식 제공은 물론 유명한 선생들의 개인레슨까지 주선해 주었다. 그가 가르침을 받은 스승만 파리에서 활동하던 물리켕, 퐁퓨를 비롯해 프랑크푸르트의 니콜로 야노프스키, 밀라노의 시베리오와 프란체스코 베르니, 암스테르담의 헤리거 등 10여 명이나 되었다.

이중 특히 독일계인 물리켕은 자신이 애지중지하던 명기 스트라디바리(1702년산)를 물려줄 정도로 그의 재능을 사랑했다. 이 과정을 통해 그의 기량은 일취월장했고, 이를 지켜보던 마담 줄리앙르는 “명연주자가 되려면 명기를 다뤄봐야 한다”며 “명기라도 작품마다 소리가 다르니 다양하게 느끼고 경험하라”는 격려와 함께 각종 명기 바이올린을 마련해 주었다. 스트라디바리(1702년) 한 대, 과르넬리(1705, 1711년) 두 대, 아마티(1659년) 한 대, 루게리(1732년) 한 대 등 값으로 따져도 어마어마하지만(2005년 뉴욕 경매에서 스트라디바리 한 대가 203만2000달러에 낙찰됐다) 연주자라면 누구나 군침을 흘릴 만한 것들이었다. 그는 유럽 각국을 휘젓고 다니며 수업을 강행하는 중에도 틈틈이 개인 리사이틀은 물론 55년 ‘비발디 현악 4중주단’을 구성, 종교·사교 단체를 대상으로 장애인 등 불우이웃돕기 자선공연을 펼쳤다. 정신 없이 뛰어다니는 사이 어느덧 10년이 흘러 26세가 되던 61년 그에게는 또 한 번 인생의 변곡점이 찾아왔다.

“초겨울이었습니다. 리옹에서 스트라디바리로 자선공연을 하는데 그 유명한 슈바이처 박사가 참석했어요. 공연이 끝난 뒤 그 양반이 ‘솜씨는 훌륭한데 소리가 노쇠해 글렀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아무리 훌륭한 연주라도 죽으면 끝나지만 명기의 소리를 보전하는 것은 인류를 위해 영원한 문화유산을 남기는 일이라며 해보지 않겠느냐는 거예요. 명기를 많이 다뤄본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이라며….”

마음이 쏠렸다. 고민스러웠다. 인체를 알려면 해부를 해봐야 하듯이 박사의 권유대로라면 악기들을 부숴야 할 텐데 이미 자신의 일부가 돼버린 저들이 아닌가. 두 달을 끙끙거리다 결국 눈을 질끈 감고 스트라디바리 한 대를 밟았다. 이어 과르넬리와 아마티, 루게리가 눈물 속에 가루로 변했다(독일이 국보로 치는 1647년산 스타이너, 50억원짜리 1705년산 과르넬리는 운좋게 살아남았다). 도료(塗料)에 비밀이 있을 것이라는 슈바이처 박사의 충고에 따라 도료가루를 모아 노르웨이의 고고학자 노만 교수에게 자문을 했다. 노만은 도료가 천연물질이라며 르네상스시대 각종 천연도료의 유통 루트를 가르쳐 주었다. 즉시 탐색에 나섰다. 기니·세네갈 등 아프리카 동부와 인도·태국 등을 샅샅이 뒤져 16~17세기에 이들 지역에서 유럽으로 수출한 도료의 원료 30여 가지를 찾아냈다. 용도 실험을 거쳐 이중 10여 가지만 악기에 사용됐다는 점을 밝혀냈다. 곤충의 배설물, 열대식물의 수액, 로열젤리, 잣나무·커피 열매 등이 그것이었다. 문제는 배합 비율. 방씨는 악기를 부숴 얻은 가루와 비교하며 끊임없이 실험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300여 대의 바이올린을 만들었다 부수기를 10년. 마침내 비법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는 12가지의 원료를 사용해 목형(木型)의 상태에 맞추는 26가지의 배합을 완성한 것이다.

“악기의 소리가 완성되는 데는 목형이 30%, 도료가 70%를 차지합니다. 목형을 만드는 것은 오히려 스트라디바리 때보다 우수하지만 소리가 형편없는 것은 바로 도료 때문입니다.”

방씨는 70년대 중반부터 자신만의 노하우를 가지고 낡은 고전 명기의 복원은 물론 이탈리아·독일·오스트리아·프랑스·폴란드·체코 등의 악기 명장들과 손잡고 명품들을 재현해 내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베를린·빈·뉴욕 필하모니 연주자들은 물론 특히 ‘제2의 파가니니’란 칭송을 받는 살바토레 아카르도한테서 “최고의 바이올린”이란 극찬을 받았을 정도다.

그가 지금까지 재현한 ‘명품’은 400여 대. 대당 10만 달러를 호가하지만 죄다 가톨릭 자선단체에 불우아동 돕기 기금용으로 맡겼을 뿐 한 대도 사리(私利)를 목적으로 팔아본 적이 없다. 자신의 혼이 담긴 예술품을 돈과 바꿀 수 없다는 신념에서였다.

방씨는 한때 자신을 버린(?) 조국을 원망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조국이 있었기에 자신에게 명성을 얻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생각이 든 뒤론 조국을 사랑하게 됐다. 한창 바쁘던 70년대 중반 간간이 고국을 찾아 자선연주회를 연 것도, 그를 통해 78년 지금의 부인과 결혼해 서울에 정착한 것도 모두 그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자신만의 비법을 조국의 후배에게 고스란히 물려줄 생각이다.



마에스트로’의 웃음

17일 서울 논현동 작업실에서 포즈를 취한 안드레아 방. 그는 1935년 일본 나고야에서 태어나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고아’가 됐다. 네 살 때부터 익힌 바이올린 덕분에 우여곡절 끝에 프랑스로 가 연주자로 활약하다 스물여섯에 고전 명기 연구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10년 만에 비법을 터득해 80년대 초부터 ‘마에스트로(名匠)’ 반열에 오른다. 92년 러시아 국영 TV에서 그에 대한 다큐를 방영한 것을 비롯, 100여 개국에 소개됐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즉위에 맞춰 1년 걸려 만든 ‘부활’이란 이름의 바이올린이 교황청에 소장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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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8'
  • 토토 2008.02.22 22:51 (*.205.40.72)
    저도 이 기사를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제가 전문가도 아니라 뭐라 논평할 수는 없지만.. 제작계의 다수설로는,,, 바니쉬는 스트라드의 음색의 비밀은 아니다라는 것 같습니다. 물론 스트라드만의 yellow의 깊이 즉, 미적측면에서는 아직 재현을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만, 스트라드의 바니쉬가 다 닳다시피 한 악기도 좋은 소리가 나는 경우가 많으며, 스트라드 악기들 중에서도 좋은 소리가 아닌 것도 많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스트라드, 과르넬리등의 명기들은 후대의 수리가들의 손을 거쳤으며, 넥이나 사운드포스트, 베이스바등은 대부분 교체되었으며, 심지어 스트라드 바니쉬의 대부분은 후대의 프렌치 바니쉬로 뒤덮인 것이다라는 설도 꽤 유력합니다.

    '나쁜 바니쉬가 악기를 망칠 수는 있어도 좋은 바니쉬가 악기의 음색을 좋게하는 일은 없다... ' 가 현재의 통설인 것 같습니다.

    스트라드악기의 비밀은,,, 그만의 철저한 장인정신과 음량과 음색을 절묘하게 조합한 기본설계의 충실성.. 그 좋은 악기가 세월의 숙성을 거쳐, 300년 후에.. 최상의 아름다움을 뽐낸다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게 중론(?)이 아닐까 싶네요.

    지금 잘 만들어진 악기가 있다면, 그 악기는 200년 후에 스트라드가 되어있을 것이다라고들 자신하죠.

    과르넬리 캐논 같은 악기는 두께가 6mm에 달할 정도로 비상식적이지만 지금은 소리가 잘납니다.(물론 파가니니가 연주하던 시절도 꽤 세월이 지난 시점이었죠.) 세월의 숙성 덕이죠.

    제가 듣기로는 안드레아 방님은... 악기를 만들지 않고,, 크레모나의 제작가들에게서 화이트상태의 악기를 사오는 것으로 압니다. 거기에 바니쉬칠만 하시죠. ..... 조셉 나지바리라는 텍사스 A&M 대학 화학과 교수님도 그런 작업을 통해 자기 주장을 펼칩니다. 나무를 바다에 띄워보내다보니 소금과 미네랄 덕에 나무가 좋아졌다.. 는 주장에서부터,, 최근에는 붕사바니쉬를 시도하시고, 사파이어가루를 바니쉬에 섞기도 하고.. 역시 제작은 않고 악기를 사와서(공동작업가에게 위탁도하고) 바니쉬만 칠하시죠.

    굳이.. 악기를 밟아서 가루를 만들 이유도.. 없어 보이고..(판은 하이드글루를 떼내고.. 바니쉬는 조심스럽게 긁어내면 되는데) 제가 가진 기존의 상식으론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좀 있지만.. 모던악기에 대한 무관심을 깨울 수 있다면.. 나쁘진 않아 보이네요. 적어도 자기확신은 있으신 분들이니.....

    악기제작과 과학적실험을 동시에 하시는 분들이 - 분리해서 기존방식대로 나무만 깎거나, 아니면 사온 악기에 바니쉬칠이나 물리적조정만 하는 것 같은 각각의 영역에서만 탐구하는 것보다 - 좋은 악기를 만들 확률이 높을 것 같다는게 제 생각이긴한데.... 뭐 저도 아직은 확신은 없습니다.
  • 악기제작... 2008.02.22 23:07 (*.60.159.154)
    전에 알고지내던 바이올린 제작가가 한명 있었습니다. 가끔 바이올린 제작가들 몇명이 모여있는걸 본적 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이란...어찌나 다른 제작가를 씹어 대던지...안드레아 방님도 그들에게 씹히던 1人이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웃자고 한 얘기구요....^^....하지만 물론 실화입니다.
    제가 알고 지내던 그 제작가의 말에 의하면 현재 우리나라엔 바이올린을 처음부터 끝까지 만드는 사람은 없다고 합니다. 제작 단가라던가 여러 이유로인해 어느정도 만들어진 상태의 바디와 넥을 중국에서 들여온 뒤 후반 마무리 작업을 해서 자신들의 라벨을 붙인다는군요. 그래도 괜찮냐는 제 질문에 그 제작가 왈....어차피 같은 수준의 목재라면 설계도에 의한 작업이야 누가해도 똑같기 때문에 마무리작업과 칠작업만 한다는군요. 특히 바니쉬라는게 제작가들마다의 비밀병기라서 누구에게도 공개하지 않는다는군요. 어찌 되었건 결과물만 잘 나온다면 되는거겠죠.
  • 토토 2008.02.22 23:50 (*.205.40.72)
    혹시나 오해하셨을까싶어 말씀드리지만, 나지바리같은 바니쉬의 효용성의 주장에 대해 제작계의 다수가 부정적이라는건 국내제작가들이 동료를 씹은 것을 전해들은게 아니고, 해외포럼등과 해외기사, 나지바리에 대한 해외평가, 제작학교다니는 분들에게 간접적으로 들은 얘기라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나지바리의 경우 스스로 바니쉬의 비밀에 대한 자신의 주장이 고립되어있다고 고백하더군요. 최근엔 다른 방법을 시도하고 있고요.

    그리고 제가 알기로는 국내에 모던악기 수요가 없기 때문에 저가악기시장만 존재하다보니, 대량생산만 하거나, 외국에서 공부하고 들어오신 분들도 제대로 수작업으로 만든 악기를 저가로 파는건 수지가 안맞기 때문에 대부분 수리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압니다. 대량생산 분들이나(심로악기도 제가 알기로는 중국공장에서 백통을 받아다 칠만하는 것으로 압니다.) 공방에서 중국산 백통을 두께조정과 바니쉬 조정을 통해 싼 값으로 내놓기도 합니다. 그런건 스트라드를 재현했다는 주장과 무관한 얘기니 신경쓸 것은 없고요. 비교대상이 아니죠.

    크레모나에서 3년마다 한번씩 열리는 트리엔날레 콩쿨이 있는데.. 이 곳이 가장 권위있고, 세계적으로 뛰어난 제작가들이 몰려드는 곳이죠. 악기설계도가 동일하면 별 차이가 없다라는 주장은 이 콩쿨등을 보면 동의할 수 없을거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스트라드의 비밀이라는 것에 관해서는 여러 설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해외의 다수설이 '나쁜 바니쉬가 악기를 망칠 수는 있어도 좋은 바니쉬가 악기를 좋게할 순 없다.'라는 것은 저 기사의 분과 무관하게 나와있는 얘기를 소개해드린겁니다.

    부디, 국내제작가들이 열나게 씹어댄 뒷소리 정도로 치부하진 않으셨음 하네요.
    그렇다고 제가 저분 검증을 시도하는 것은 아니고, 다른 시각도 있다는걸 조금 언급드리고 싶었을 뿐이랍니다.

    참고로 전 바이올린을 좋아하는 사람일 뿐 제작가도 아니고요.
  • 토토 2008.02.23 00:59 (*.205.40.72)
    내 방식으로 좋은 악기를 만들어냈다와 이 방식이 스트라드를 재현해낸 유일한 방식이다라는 주장은 전혀 다른 것이죠. 결과물만 잘 나온다면 좋다는것이 논점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좋은 모던악기를 만드셔서 모던악기에 대한 관심을 새로 불러일으켜주신다면 그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긴 하죠. 쓰다보니 반대설만 가져다놓은 것 같은데... 안드레아 방님은 나름대로 확신을 가지신 분으로 생각됩니다. 요즘은 밤에 글 쓰면.. 글이 왜 이렇게 딱딱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_-;;

    좀 과하다싶은 부분이 있다싶어(원래 글 가져오신 취지나 아래 논쟁들의 연속성을 감안할 때 오해를 유발할 수도 있고) 댓글을 지우려고 했었는데 비번이.. ;; 이해 부탁드립니다.
  • Jason 2008.02.23 04:33 (*.30.82.18)
    코코님의글 100% 이해하고 있습니다. ^^
    님의글 충분히 이해를 할수있는 글입니다.
    이렇게 아는 지식을 나눌때 이런 사이트가 유용하게 쓰일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많이 배우고 갑니다. ^^
  • 한섭 2008.02.23 06:56 (*.131.1.98)
    안 그래도 바이올린 사이트서 이 글 읽고선 다른견해도 있다 하기에 궁금했었는데요
    많이 배우고 갑니다^^
  • 콩쥐 2008.02.23 08:50 (*.227.72.37)
    토토님 항상 글 잘 읽고 있어요..
    다양한 주장은 다양한 생각을 가능하게 하기에 꼭 필요한거 같아요.
  • 관련기사 2008.02.23 13:13 (*.155.159.137)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ec&sid1=103&sid2=245&oid=023&aid=0001943660&iid=

    관련기사라서 링크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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