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승 문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 스웨덴 웁살라대학 객원연구원)


복지국가 핀란드의 교육제도가 주는 교훈

 인구 530만여 명에 불과한 북유럽의 작은 나라 핀란드가 지구촌 곳곳에서 교육개혁의 방향과 전략을 컨설팅하고 있다. 핀란드의 교육전문가들이 미국 등 여러 나라를 돌면서 핀란드 교육의 성과와 경험을 전파하고 있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동안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를 외치면서 경제적 효율성과 학업성취도의 향상만을 목표로 교육개혁을 밀어 붙여온 미국과 영국 등 세계의 많은 나라들에게 핀란드 교육은 중대한 도전이자 벤치마킹의 대상이 되고 있다. 교육의 가치와 목적이 무엇인지, 학교와 교사들은 어떤 자세로 교육에 임해야 하는지, 정부는 어떤 철학으로 교육정책을 세워야 하는지, 이 모든 질문에 대한 제대로 된 답변을 핀란드 교육의 경험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인간다운 사회라고 인정받는 북유럽 복지국가 체제를 꾸준히 발전시켜 오면서, 2000년부터 시작된 PISA 연구의 결과, 연속 3회에 걸쳐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적 성취를 보이고 있는 핀란드, 정보통신 기술 개발을 비롯하여 지식 정보 사회로의 변화를 앞장서서 선도하면서 세계적인 수준의 경제력은 물론 각종 국제적인 지표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보여주고 있는 핀란드의 국력과 핀란드인의 저력 앞에서 세계는 놀라움과 부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핀란드는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등과 함께 스웨덴 모델 또는 스칸디나비아 모델이라 불리는 북유럽 복지모델을 가진 나라다. 핀란드식 교육 모델은 북유럽 복지국가라는 사회제도적인 토양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복지병 운운하면서 북유럽 복지 모델의 가치를 폄하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핀란드와 스웨덴 등 북유럽의 복지국가 모델은 미국, 영국, 캐나다 등의 언론들도 부러워하는 국가 시스템이다.

 북유럽 복지국가는 저소득층이나 소외 계층들만을 위한 시혜적인 복지 또는 선별적인 복지가 아니라,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모든 국민들에게 똑같은 복지 혜택을 제공하는 보편적 복지를 기본 원칙으로 하고 있다. 북유럽 복지국가를 지탱하는 정신의 핵심은 '연대'이다. 인간은 공동체 안에서 서로 돕고 의지할 때 더욱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누구나 갑작스런 사고나 재해 앞에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공동체 안에서 서로가 연대하고 배려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신 아래 핀란드에는 최소한의 생계보장ㆍ아동과 모성 보호ㆍ건강 보호ㆍ무상 교육ㆍ실업 보호ㆍ노후 보장 등 사회복지의 그물망이 잘 완비되어 있다. 산전산후 휴가ㆍ육아 휴직ㆍ병가와 연가 등은 물론 18세 이하 아동의 무상 외래진료ㆍ의료비 상한제ㆍ실업 수당ㆍ노령 연금 등은 모든 국민들을 질병과 사고 및 재해로부터 보호해 준다. 무엇보다도 복지국가 핀란드에서는 직종에 따른 임금 격차가 크지 않고, 누진세제로 소득의 격차가 완화되며, 아동수당ㆍ주택수당 등 각종 수당을 통해 소득을 보전해주기 때문에 학력이나 학벌을 위한 경쟁이 치열하지 않다.

 물론, 위와 같은 모든 국민을 위한 보편적 복지에 필요한 예산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거두는 세금으로 충당된다. 2007년 핀란드 국민 1인당 세금 부담률은 43%(스웨덴 51.1%, 독일 34.7%, 캐나다 33.5%, 2006년 한국 26.8%, OECD 평균 36.2)로 상대적으로 부담이 크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은 완전 무상교육 등 최고 수준의 복지혜택을 누린다는 데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다.

 이미 잘 알려진 것처럼, 핀란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시행한 만 15세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학업성취도 국제비교연구(PISA)에서 2000년, 2003년에 이어 2006년에도 세계 최고 수준의 성취도를 보여줌으로써 세계 최고의 교육 체제를 가진 나라로 평가받고 있다. 그 결과 1년에도 1만여 명이 넘는 교육전문가들이 핀란드 교육 순례에 나서고, 많은 나라들이 핀란드 교육 정책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핀란드 교육 성공의 가장 핵심적인 요인은, 전 세계적인 신자유주의 경쟁 교육의 파고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모든 국민의 교육을 무상으로 책임진다는 복지적 관점과 차별 없는 교육이라는 평등주의 원칙을 확고히 지키면서, 학교의 물리적 교육여건을 개선하고 교육과정의 자율성과 유연성을 확대하며, 교사들의 전문성과 자율성을 신장하는 정책을 꾸준히 추진하여 독특한 핀란드형 학교교육 모형을 완성시켜 왔다는 것이다.

 그 결과 핀란드는 세계를 향해 시장과 경쟁의 논리가 아닌 교육의 논리에 충실할 때 개개인의 학업성취도는 물론 국가 차원의 교육성취도도 높아진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다. 복지와 평등을 바탕으로 한 이러한 핀란드형 교육 모형은, 학교 선택권을 내세워 차별을 제도화하고 학교와 교사들을 경쟁시키려 했던 신자유주의 교육 정책의 신봉자들에게 커다란 도전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가 핀란드 교육의 경험에서 주목하고 배워야 할 것은 무엇보다도, ‘모든 학생들에게 차별 없이 질 높은 교육을 제공하겠다’고 하는 공교육에 대한 확고한 철학이다. 핀란드 교육을 성공으로 이끈 것은 이런 확고한 철학과 원칙이었다. 핀란드 학생들의 학습은 교실 안에서 끝난다고 할 만큼 학교와 교사들이 교육의 모든 것을 책임진다. 숙제도 별로 없고, 학습시간도 짧다. 학교공부가 끝나면 학교 내의 방과 후 클럽이나 지역사회의 다양한 스포츠클럽, 문화센터 등에서 다양한 취미생활을 즐기고 특기를 기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업성취도는 세계에서 가장 높다.

 핀란드는 조세를 재원으로 모든 국민에게 만6세부터 대학원까지 무상으로 최고 수준의 교육서비스를 제공한다. 핀란드에서 교육은 국민들이 자비 부담으로 구매해야 할 상품이 아니라 모든 국민에게 부여된 권리이다. 교육은 모든 국민을 핀란드의 민주 시민으로 만드는 과정이며, 국가경제를 발전시킬 유능한 노동력을 양성하는 길이자 공동체 사회를 건실하게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중요한 일이라는 관점이 바탕을 이루고 있다.

 또 하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교훈은 핀란드에서 ‘모든 교육은 통합교육의 원칙’을 따른다는 점이다. 핀란드는 학습 속도가 느린 학생은 물론이고, 특수교육이 요구되는 장애를 가진 학생까지도 같은 학습 집단 안에 통합시킨 상태에서 교육을 해야 한다는 확고한 철학과 원칙을 견지하고 있다. 학습이 부진한 학생을 위해서 특수 교육적 관점에서 일시적으로 특별학습의 기회를 주거나 보충지도를 해주는 일은 있지만, 학습 속도에 따라 수준별로 학생을 나누는 것은 금지하고 있다. 차별적인 학습, 교육과정에서의 소외와 배제는 용납되지 않는 것이다. 통합적인 학습 환경 속에서 모든 학생들이 각자의 학습 요구와 학습 계획에 따라 개별화된 맞춤형 학습을 할 수 있게 지원하고 배려하는 것이다.

 핀란드 교육 성공의 또 다른 요소는 유능하고 열성적인 교사다. 핀란드에서 교사는 월급 수준이 매우 높지는 않지만 가장 인기 있는 직업 중의 하나다. 정부는 모든 교육정책을 입안함에 있어 교사들의 자존감과 교육적 권위를 세워주기 위해 노력한다. 교사들의 양식과 전문성은 사회적 신뢰를 받고 있고, 교육자로서의 자존감과 전문적 자율성이 존중되고 있다. 즉, 학교와 교사가 폭넓은 자율성을 가지며 창의적인 교육을 할 수 있도록 교육당국이 지원하고 재량권을 부여한다. 타율적인 장학 감사를 폐지하는 대신 자율과 자치를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여 학교와 교사의 책임성과 창의성을 담보한다. 교사들이 더 좋은 교육을 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신명나게 가르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주는 것이야말로 교육 성공의 절대 조건이다.

 우리나라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교육이 시장논리에 내맡겨져 있다. 모든 국민에게 차별없이 좋은 교육을 제공해야 할 정부가 자율화 운운하면서 등록금이 600만원을 넘는 귀족학교 설립을 허용하면서 차별 교육을 제도화하고 사교육을 부추기고 있다. 지금이라도 우리는 이 처럼 탐욕과 이기심, 무한경쟁을 조장하는 시장과 경쟁 만능의 교육정책을 폐기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교육이 산다. 철저하게 교육의 논리, 소통과 협력의 논리를 바탕으로 우리나라 교육을 다시 세워야 한다. 교육의 기회는 만인에게 평등해야 한다. 교육은 상품이 아니다. 그래서 무상교육이 정답이다. 정부는 충분한 예산을 마련할 의무를 지고 있다. 더불어, 교사들의 자존감을 키워주는 교육행정과 지원이 필요하다. 그래야 교사들의 창의성과 사명감이 더 크게 발현된다. 탐욕, 물질만능과 승자독식의 사회구조 하에서는 교육이 정상화되기 어렵다. 교육이 혁신되려면, 사회의 큰 틀이 바뀌어야 한다. 시장만능주의 사회의 양극화 성장체제 하에서는 교육도 욕망 실현과 성공의 수단으로 전락한다. 양극화와 차별의 해소는 교육 정상화와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는 것이다.

 교육은 더 이상 교사들만의 문제, 학생과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며, 우리 사회의 각 부문이 나서서 함께 고민하고 풀어가야 한다. 개개인의 발달은 물론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 어떤 교육이 필요한지, 공교육을 정상화하고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에 대한 커다란 합의가 필요하다. 교사, 학부모뿐만 아니라, 정부, 교육감, 정치인, 경제인, 언론인, 시민사회단체 등 우리 사회 각 부문이 함께 국가적인 교육 비전과 목표, 각자가 감당해야 할 역할 등에 대해 논의하고 합의를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사회적 공감대를 얻지 못하는 개인적 소신이나 파당적 이해, 특정 집단의 로비나 정치적 입장에 의해 학교 교육이 휘둘리고 개인과 사회의 미래가 좌우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교육이 지켜야 할 철학과 원칙을 바로 세우고, 모든 국민과 교육자들이 공감하고 합의할 수 있는 교육의 비전과 정책 목표를 세우며, 합의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과감하게 인력과 재원을 투입하는 일이 핀란드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하루라도 빨리, 난마처럼 얽힌 교육 문제를 풀기 위해서 우리 사회 각 부문이 참여하는 본격적인 대화 마당이 펼쳐지고 미래를 위한 통 큰 합의를 도출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