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강물님의 글을 읽고

by 느끼 posted Mar 13,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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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알고 즐겨듣는 음악이 그리 많지는 않은 편인데
베토벤의 교향곡들, 그중에서 9번 합창은
정말 아껴서, 술도 한잔하고 적당히 기분좋을 때만 듣습니다.

조금 지루한 1,3악장과 2악장의 그 번뜩이는 스케르쪼의 영감을 지나면
인류 최대의 문화유산이라고 하는 4악장을 만나게 됩니다.
저는 이 순간이 되면 입으로 숨쉬는 것을 멈추고 코로만 숨을 쉬는 저를 발견합니다.
마구 가슴이 벅차 올라 온 몸의 기능이 정지한 것 같고
눈물도 아닌 그 묘한 슬픈기쁨이 마구 비강을 타고 올라오는 것을 억지로 참아냅니다.
게르만족이 인류에 끼친 그 많은 해악에도 불구하고
베토벤이라는 위대한 음악가와
이 환희의 교향곡을 읽어내는 가장 적절한 발음법을 알고 있다는 이유로
차마 그들이 인류에 기여한 것을 부정할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그 위대함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학습과 기교라는 지난한 터널을 지나와야 하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베토벤도 피아니스트로써 탄탄한 실전에서의 화성 발현에 대해서 충분히 훈련이 되었을 것이니까요.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도 기교는 그저 기교일 뿐입니다.
4악장이 시작할 때 바리톤은
자, 이제 이런 재미없는 것들은 그만두고 좀 더 재미있는 음들을 찾아보자... 고 시작한답니다.
저는 이것이 예수의 '다 이루었다'에 필적할 만한 위대한 깨달음의 문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쉰이 넘은 이 위대한 작곡가는
흐르는 강물님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 필요없다'라고...

10여년전 베토벤을 극화한 영화에서 제가 기억하기로는
당시 양육권을 두고 친모와 다투고 있던 그의 조카는
삼촌이 '미미파솔 솔파미레 도도레미 미레레' 식으로
어떤 단순한 멜로디를 자주 노래한다고 합디다만
베토벤이 당신의 음악인생의 피날레를 장식하고자 선택한 멜로디는
가장 게르만적이면서도 가장 쉽고 단순한 이 멜로디입니다.
쉴러는 자신의 시가 여기 입혀진 것만으로도 영광으로 여겨야 한다는 생각입니다만
아무튼, 독일의 어느 선술집에서도 취한 가객이 쉽게
찾아낼 수 있는 멜로디입니다.
베토벤은 거기에 자신의 기묘한 삶과
정치적인 희망과 인류애를 담아냅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눈물과 기교의 조합이라는
병행배치는 전공자로써 느끼는 현실적인 고민이라고 생각합니다.
위대한 음악은 적어도 후자의 기술적인 문제들이 이미 퇴색한 어떤 음악들이 아닐까요.
슈베르트의 가곡들을 들으면서
저는 어떤 기교도 화성적인 개연성도 생각지 못하며
그저 그 소박함과 절절함에 빠져들기만 할 뿐입니다.

흐르는강물님의 생각과 글쓰기에 깊은 존경을 표하며 주절거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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