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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itarMania

한국어
지나가다2011.03.16 14:14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은 자신이 직접 진리를 말하지 않고도 상대방의 무지를 폭로함으로써 그가 스스로 독단에서 빠져나와 보편적 진리의 길에 들어서도록 이끄는 것, 결국 ‘너 자신의 무지를 알라!’고 외치는 것이었다....무엇보다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은 오늘날 우리의 음악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시사하는 점이 많다. 우리는 다름과 같은 대화를 상상해볼 수 있다.

소크라테스 (이하 ‘소’로 표기) : 악이란 무엇인가?
최 아무개(이하 ‘최’로 표기) : 음악교과서에서 음악의 3요소가 리듬, 선율, 화성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러니 리듬, 선율, 화성을 모두 갖추고 있는 것이 음악이겠지요.
소 : 한국의 전통음악에는 화성이 없는데 그렇다면 그것은 음악이 아니란 말인가?
최 : 그야 한국음악이 좀 미개해서 그렇죠.
소 : 화성이 없으면 미개한 음악이라는 말이군. 서유럽을 제외한 모든 문화권의 전통음악에는 화성이 없으니 그것들은 전부 미개한 음악, 아니, 자네 말대로라면 음악이 아닌 것이겠군. 그런데 서유럽에서조차 화성의 역사는 길게 잡아 300~400년밖에 되지 않나? 그렇다면 이전의 음악은 화성이 없으니 음악이 아니겠군.
최 : 아니, 그건 아니고요, 그레고리안 성가는 아름다운 선율을 갖추고 있으니 음악이지요.
소 : 그렇다면 선율이 없으면 음악이 아니란 말인가?
최 : 그렇지요.
소 : 한국의 사물놀이는 음악이 아니라는 말이군.
최 ; 사물놀이는 리듬이 있으니 음악입니다. 말을 좀 정정해야겠습니다. 음악의 3요소 가운데 어느 하나를 갖추고 있으면 음악입니다.
소 : 자네 존 케이지라는 괴짜 친구의<4분 33초>라는 작품을 알고 있는가? ‘구체음악’이라는 것도 알고 있는가? 자연적인 음향을 녹음해서 음 재료로 삼는 것 말일세. 그런 데서는 리듬도 화성도 선율도 찾을 수 없는데....
최 : 그런 건 현대음악이라 예외적인 것이죠.
소 : 현대음악은 음악이 아니란 건가?
최 : 현대음악도 음악은 음악이죠.
소 : 음악은 음악인데 음악이 아니라는 게군. 현대음악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현대음악’이라는 제목이 붙은 책들을 보면 비틀즈의 음악은 언급조차 안 하더군. 비틀즈의 음악은 현대음악이 아닌 건가?
최 : 그건 대중음악이잖습니까?
소 : 대중음악은 음악이 아니란 건가?
최 : 대중음악도 음악은 음악인데 말이지요......근데 지금 제가 무슨 얘길 하고 있는 거죠?

....요컨대 현재 한국의 음악 상황이 보여주는 비민주적 면모는 음악이라는 보편가치에 대한 추구가 없는 상태에서 여러 개별 음악에 대한 이기적 추구만 있다는 데서 비롯된다. 더욱이 그러한 개별음악을 추구하는 사람들 사이에 소통하기 힘든 심리적 장벽이 있으며, 그들 각각은 예술음악(특히 서구 고전음악)에 대한 망상적 자의식이나 뿌리 깊은 콤플렉스를 갖고 있다. 한 마디로 대한민국은 음악에 관한 한 대화불능의 상태에 빠져 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 볼 필요가 있다. 과연 ‘모차르트 음악과 비틀즈 음악 사이의 이질성’이 ‘모차르트 음악과 쇤베르크 음악 사이의 이질성’보다 큰 것일까?“
-최유준 저, <예술음악과 대중음악, 그 허구적 이분법을 넘어서>에서 발췌.

“문제는 ‘음’이 아니라 ‘악’입니다. ‘악’은 ‘음’을 대하는 인간의 사용방식입니다. ‘음’을 어떻게 쓸 것인가, 이 문제를 푸는 열쇠는 ‘악’입니다.
슈베르트의 <군대행진곡>을 아시지요? 비슷한 음악으로 주페의 <경기병 서곡>이라는 곡도 있습니다. 둘 다 ‘음’을 군인의 활기차고 호전적인 정서를 북돋는 기능으로 ‘사용’한 것입니다.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라는 곡도 있습니다. ‘음’을 춤을 돕는 기능으로 사용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장가는 무엇일까요? 지금까지의 흐름대로 설명한다면 ‘음’을 도구로 해서 아기를 재우는데 ‘사용’한 것을 자장가라 할 수 있습니다.”
-류형선 저 <자미잠이>에서.

“류형선의 글의 경우, ‘음악’이라는 말의 ‘악’을 ‘사용하다’라는 뜻으로 새기고 있다. 이 경우 음악이란 ‘음을 이용하여 어떤 목적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되며, ‘음악=실용음악’이라는 등식이 성립하게 된다. 자장가만이 실용음악이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음악이 실용음악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생각에 선뜻 동의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아무래도 실용음악의 범주에 들지 않는 비실용적 음악, 이른바 ‘순수음악’이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예컨대 클래식음악의 교향곡은 대체 무얼 위해 ‘사용한’ 음악이란 말인가. 교향곡이란 소나타 형식이라는 순수 형식으로 구성된 음악, 그 어떤 목적에도 종속되지 않는 음악, 음악 자체만을 위한 ‘절대음악’이라고 배우지 않았던가. 하지만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내용과 실제의 사실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교향곡에 대한 다음의 글을 보라.

<앞의 두 악장은 으레 행사의 첫 부분에서 연주되었고, 남은 한두 악장은 끝 부분에 연주되었다. 그것은 청취를 위한 목적만큼이나 실용적인 목적-도착하고, 머물고, 떠나기 위한-이 있었다. 또한 그러한 음 연속체는 ‘예술’을 가장하지도 않았고 청중에게 한눈팔지 말라고 요구하는 일도 없었다. 그것은 처음에는 카사치오네, 세레나데, 디베르티멘토 같은 다양한 명칭으로 불렸는데, 이 명칭들은 모두 오락을 목적으로 함을 암시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서주나 전주곡의 뜻을 오래도록 지녀온 명칭, 즉 교향곡이라는 명칭이 생겼다.
유럽에서 1750~1800년 사이의 50년 동안 만든 교향곡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그 수가 족히 2만 곡은 넘는 것으로 추정되어왔다. 특별한 행사를 위해 교항곡 한 편을 위촉하는 것은 새 코트나 가발을 주문하는 것처럼 관습적인 일이었다. 특별한 행사에 낡은 교항곡을 연주하지 않는 것은 정장이나 새 옷을 입지 않는 것과 다름없었다. 작품을 위촉받은 음악가들은 자신들을 현대적 의미의 예술가라기보다는 시장에 내다 팔 물건을 생산하는 숙련된 장인이라고 생각했다(크리스토퍼 스몰 ‘뮤지킹’)>

-최유준 저, <예술음악과 대중음악, 그 허구적 이분법을 넘어서>에서 발췌.


결론 :

과거에도 그랬듯이, 현대사회에서 역시 클래식음악은 그 무엇보다 ‘실용적’으로 사용된다. 김연아가 피겨스케이팅을 할 때 사용하는 음악은 힙합도 아니고 헤비메탈도 아니다. 백화점이나 공원에서 틀어주는 음악은 마돈나나 마이클 잭슨의 음악이 아니다.
위의 댓글에서 '생각'씨는 이렇게 말씀한다.

"쇼스타코비치역시....교향곡도 만들었지만....영화음악도 작곡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그가 만든 영화음악이 연주되고 남겨져있습니까? 그가 남겨진곡은....절대음악의 양식 또는 절대음악적인 의도로 만들어진 교향곡 같은것만 남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말도 추가 한다.

"좁은 기사내용가지고 착각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정정을 하자면, '기사'가 아니고 '저서'다. 아마도 '생각'씨가 지적하고자 하는 바는 아마도 '일반화의 오류'에 관한 것일텐데, 웃기는 건 정작 '생각'씨야 말로 쇼스타코비치 한 사람만으로 자신의 의견을 정당화 한다는 것이다.
근데, 정말 다른 사람도 그럴까?

빌라로보스의 <센티멘탈 멜로디>는 오드리헵번 주연의 영화 <그린맨션>의 영화음악으로 쓰였지만 엄청나게 연주되고 있다. 뮤지컬<웨스트사이드 스토리>의 번스타인의 곡도 마찬가지다.(의심나면 유튜브에서 찾아보길 바란다). 또 피아졸라는 어떻고?

설령 영화음악이기 때문에 연주되지 않는다는 견해가 사실이라고 인정한다 해도, ‘절대음악’이 아닌 ‘영화음악’이기 때문에 연주되지 않는다는 말은 음악사에 대한 무지에서 오는 전형적인 오해일 뿐이라고 밖에 말할 도리가 없다. 어디 20세기 음악 중 클래식 연주홀에서 잘 연주되지 않는 게 오직 ‘영화음악’뿐인가? 안 된 얘기지만, 1차세계대전 이후의 음악은, 그게 ‘절대음악’이든 ‘영화(실용)음악’이든 별로 연주가 안 된다. 이유야 뻔하다. 음악이 '대체로' 진보적이라 난해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당신이라면 조성을 해체한 쇤베르크의 ‘달에 홀린 삐에로’를 끝까지 들을 자신이 있겠는가? 그리고 이런 음악 위주의 콘서트라면 흥행에 성공하겠는가?
http://www.youtube.com/watch?v=veUJxETj7-c

(호불호야 그렇다고 치고, 이런 ‘말 하는 듯한’노래를 부르는 성악가들은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물론,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나 쇼스타코비치나 에드워드 엘가처럼 보수적인 스타일의 음악도 없지는 않았다만, 20세기의 화두는 단연코 '모더니즘 적 낮설음'이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콧방귀를 한 번 뀌어야 한다. 그렇게 절대적이고 순수하다면 예술의 발전을 위해 쇤베르크건 메시앙이건 스톡하우젠이건 자주 연주회를 열어야 하는데 절대로 그러지 않는다. 왜냐고?
흥행에 실패하니까. 고로, 돈이 안되니까.
참 순수하다....

만약 '절대음악'이 아닌'영화음악'이어서 연주되지 않는 것이 사실일 뿐더러 관행이라고 치자. 그렇다면 그게 과연 '영화음악'이 덜떨어져서 그런 건가? 그보다는 '생각'씨 처럼 19세기 낭만주의의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클래식계의 권력자들 때문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가? 낭만주의의 관점이 뭐냐고? 바로 예술은 그 자체만을 위해 존재해야지 다른 것을 위한 부수적인 존재로 전락하면 안 된다는 유미주의적 관점(Art for art, 목적없는 합목적성, 순수에 대한 강박)을 말한다.

(그러는 동안, 메탈리카가 1억만장의 앨범판매고를 기록할 때, 베를린필은 500만장을 팔았단다...)

소위 '절대음악'은 '영화'에 부수적으로 '사용'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순수'하다는 생각은 참 순진하다고 밖에 말할 도리가 없다. 뤼미에르 형제가 영화를 '발명'한 게 언제였더라? 1895년이란다. 물론, 지금과 같은 극영화는 아니고 아주 짧은 다큐멘터리(라고 부르기에도 뭣한)에 불과한 필름이다. 영화에 음악이 '사용'된 건 20세기의 일이다.
만일, 영화촬영기법이 1850년에 이루어졌더라면 어땠을까? 그래서 19세기 말엽이면 이미 '백경(모비딕)'이나 '폭풍의 언덕'같은 작품이 영화로 촬영되었다고 친다면? 당연히 드뷔시의 <바다>같은 교향곡이 영화 음악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은 충분해 보이지 않는가?
영화 이전의 시각 예술은 뭐가 있었을까? 당연 으뜸은 오페라다. 나는 오페라가 음악이 전혀 나오지 않는 경우(마치 이창동 감독의 영화<시>처럼)를 본 적은 없다. 무슨 말이냐고? 현시대에 맞게 음악이 영화에 '사용'되었듯이, 영화가 없던 과거에는 음악이 오페라를 위해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영화음악'이라는 이유로 평가절하해야 하는 논리적 근거는?
적어도 기능화성에 정통한 엔니오 모리꼬네나 존 윌리암스(영화 음악가)가 영화음악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음악사나 기능화성에 대해 무지할 것이 뻔한 '절대음악' 지자들에게 외면을 받아야한다면 정말 코미디 같은 일이 아닌가? 차라리 '메시'에게 "축구는 그렇게 하는 게 아니다"라고 말하는 게 낫지 않을까?

클래식 순혈주의는 왜 욕을 먹을까? 바로 그것에 내재되어 있는 '정신적 위계(서열)의식' 때문이다. 바로 '내'가 다수의 '남'들과 다를 뿐 아니라 우월하기까지 하다는 점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클래식 이외의 음악장르는 배척하는 것이다(여기서 우리는 저열한 권력의지를 본다). 클래식계의 권력자라면 이런 분위기의 지속으로 얻는 권위와 금전적 이득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권력자가 아닌 그냥 순혈주의자 애호가라면? 그가 얻는 건 정신적 자위행위에의 수단이다.
그러고보니, 혹자에겐 클래식음악이야 말로 대단히 '실용적'이다. 정신적 자위행위의 수단으로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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