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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itarMania

한국어
지나가다2011.03.15 18:51
그리고, 클래식은 '원래부터' 고상하고 숭고했을까? 아래의 글을 보라.

" “조용한 객석에서 심혈을 기울여 고전적인 명곡을 듣는 청중들, 그러한 연주회의 이미지가 생겨난 것이 결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가까운 과거의 연주회 모습을 살펴보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코벤트 가든(런던의 가극장)에서 청중의 잡담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하이든이 질려버렸다는 얘기는 유명한데, 이와 비슷한 일화는 넘쳐날 정도로 많아서 아마 18세기 연주회에서는 오히려 청중이 점잖게 듣지 않는 것이 당연했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1784년에 라이하르트가 주제한 연주회에서는 청중에게 가사를 인쇄한 목록을 배포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성악곡을 들을 때 ‘손님들이 하도 시끄러워서 가사 대부분을 들을 수가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말소리뿐만이 아니다. 청중은 연주 중에 다양한 ‘부업’을 하고 있었다. 카를 프리드리히 젤터는 1774년의 베를린 콘서트를 회상하면서 ‘무수한 파이프에서 피어오르는 담배연기가 자욱한 가운데 지휘를 하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에르푸르트에서의 연주회 기록에 의하면 맥주와 담배가 용인 되었을 뿐만 아니라 ‘딱히 음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기분 전환을 위해 카드놀이를 하고 있었고 부인들은 차츰 그쪽으로 쏠렸다.’ 프랑크푸르트의 콘서트협회가 1806년에 정한 규칙에 ‘개를 데려오는 것은 금지’라고 쓰여 있는 것도 흥미롭다. 이런 문구를 일부러 적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은 그런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존재했다는 증거다.”
-와타나베 히로시 저, <청중의 탄생>에서 발췌.

다른 음악학자의 글을 보라.

“교향악 연주회에서 청중들의 침묵과 외견상의 수동성은 좀 더 주목해 볼 만하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런 현상은 최근에 일어났다. 내가 묘사한 바 있는 19세기 라넬라그의 원형 건물의 풍경은 결코 그 시대의 예외적 풍경이 아니다. 당시의 귀족 청중들은 음악가들과 연주를 자신들의 활동 배경으로 취급할 때 편안함을 느꼈으며, 그 연주가 좋을 때는 집중해서 들었고 그렇지 않을 때에는 이야기하고 먹고 마시며 심지어는 사랑을 나누기도 했다. 그렇게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중략......1776년 7월 파리를 방문한 모차르트는 아버지에게 보낸 유명한 편지에서 자신의 교향곡을 연주하는 동안 청중들의 박수가 터져 나왔을 때의 기쁨을 전했다. 그리고 훨씬 더 의미심장한 일이겠지만, 시끄러운 파리 사람들의 모임을 비웃으며 바이올린 파트만 배정하여 피아니시모로 연주하게 한 마지막 악장이 시작되기 직전 청중들이 ‘쉿!’하고 말했을 때의 기쁨에 대해서도 전한다. 역사가 헨리 제임스 존슨 역시 1820년대 후반 베토벤의 교향곡에 대해 파리의 청중들이 뒤늦게 알았을 때, 구경꾼들은 특별히 인상적인 부분에서 박수를 보냈고 각 악장 끝 부분에서는 우레 같은 박수를 보내며 종종 다시 연주하기를 요청했다고 전한다. 다른 때 같으면 그들은 행복에 찬 안도의 한숨 소리를 내거나 마음에 든다는 듯 중얼거리며 소란을 피웠을 텐데 말이다.”
-크리스토퍼 스몰 저, <뮤지킹>에서 발췌.

연주복장에 대해서 말해보자. 현재의 고귀하고 품위있는 복장은 클래식의 전유물이었던가?
천만에. 연주자들의 복장은 '하인'들의 복장이었단다.

"
“....명문가에 고용되어 유니폼을 입던 옛 시절의 음악가들의 경우, 그들의 유니폼은 천한 신분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유니폼이란 하인들이 입는 제복이었기 때문이다(음악가들 대다수가 이미 하인 신분이었다는 점은 이미 살펴보았다). 18세기 중반 유럽 전체에서 유명세를 떨치던 명문 귀족 가문 에스테르하지家의 음악감독 요셉 하이든도 하인의 제복을 입었으며, 요리사보다 높은 자리의 식탁(물론 이 역시 하인들의 자리이다)에 앉았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 게 고작이었다.
......오늘 밤 연주자들이 입는 유니폼은 그 본질과 의미에서 이중적이다. 연주회장 바깥에서 이런 종류의 야회복은 예전보다 훨씬 드물게 보인다. 그리하여 이런 의상은 오늘날 격조 있는 직무를 수행하는 높은 지위의 남성이 자신의 신분을 강조하기 위해 입곤 한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의상은 TV시리즈 <위층, 아래층(1970년대의 영국 드라마. 1904년에서 1930년대까지를 배경으로 어느 귀족 집안의 이야기를 다룸)>에 나오는 허드슨과 같은 고참 집사들의 작업복이기도 한 것이다. 따라서 야회복은 음악가들은 사회적으로 위층과 아래층 사이에 위치시킨다. 야회복을 입음으로써 연주자들은 한 편으로 청중들과 사회적으로 동등한 신분임을(이 때의 청중은 귀족 계급이 아닌 중산 부르주아 계급이다) 선언하며, 다른 한 편으로는 더 높은 계층을 위해 봉사하는 자의 신분을 유지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크리스토퍼 스몰 저 <Musicking : The meanings of performing and ristening>에서 발췌.

다른 학자의 글을 보라.

" “사회가 이 기인들(조숙한 천재들)의 재능을 키워 나갈 수 있도록 항상 뒷받침해 준 것은 아니었다. 뛰어난 재능을 지녔음에도, 독주자는 귀족 앞에서 하인취급을 받아가며 그의 눈에 들도록 애를 썼다. ‘피아노의 황제’ 프란츠 리스트도 바이마르 궁에서 그곳의 규정에 따라 궁정하인이 입는 리브레를 입어야했다. 바이마르 시민들이 이 조치에 대해 반발하긴 했지만 말이다.”
-발터 잘멘 저 <음악가의 탄생>에서 발췌.

다시 와타나베의 이야기를 들어보라.

" “우리들은 오늘날 음악에 대해 말할 때 보통 ‘클래식’과 ‘팝’이라는 이분법을 사용한다. 이것과 똑같은 분류는 독일어에도 존재한다. ‘E-Musik'와 'U-Musik' 가 그것이다. 'E'는 ‘ernst(진지한)’의, ‘U'는 'Unterhaltung(오락)'의 첫 글자인데, 말하자면 ’진지한 음악‘과 ’오락 음악‘이라는 이분법이다. 이것과 완전히 겹치지는 않지만 결국은 비슷한 이분법이 또 있다. ‘민속음악’, ‘경음악’, '키치(Kitsch)'라는 개념이 사용될 때는 항상 그 대립항으로 ‘예술음악’을 상정한 이분법적 틀이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결국 이러한 구분은 ‘진지’한 음악이나 ‘예술음악’은 ‘고급’음악이고, ‘오락음악’이나 ‘민속음악’은 ‘저속’한 음악이라는 가치상의 상하관계를 수반한 것이다....중략...이러한 발상은 오래된 것이 아니라 19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다....‘독창성’, ‘천재’처럼 예술에 따라붙는 상투어가 된 개념이 오늘날의 의미로 확립되는 것은 모두 이 시대다.”
-와타나베 히로시 저, <청중의 탄생>에서 발췌.



결론 :

세상에 널려있는 '고정관념'과 '편견'을 가지고 마치 자기 '생각'인 양 말하면 안 된다.
(예전에 그런 분이 계셨더랬다. 아뒤가 '에라이모르'라고...기억 나시는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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