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인이 만든 작은 사진기에 미국 코닥사의 흑백 필름을 넣어 어깨에 둘러메고
50년대 중반부터 조국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내가 카메라 라는 도구를 눈에 들이댔을때
망막을 통해 들어온 피사체는 다름아닌 상처입은 동족의 슬픈 얼굴이었다.
거리의 모퉁이에서 호옥..숨 한번 쉬고 국숫발을 빨아올리는 어떤 여자아이.
단지 살아남기위해 이중삼중 뼈 휘는 노동을 해야하는 여인,
조국의 변영을 말 하는 선거벽보밑에서 막 잠이든가난뱅이
집도 없고 돈도 없고 당장 먹을것도 없어 골목 어귀에 쪼그리고 앉아
그대로 죽고 싶을 따름인 가장.
하루종일 일 나간 부모를 기다리다 해질녘 기어코 슬픔을 못 이겨 울음을터트리는 아이.
자선을 바라는 눈 먼 걸인... 조악한 식사.. 굵은 주름이 이마를 덮은 지친 노동자..
이들의 슬픈 모습이 카메라 앵글을 통해 나의 머리에 읽혀지고
또 가슴을 두드리는 멍으로 전해져 왔다.
사진작가 최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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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진짜 반가운 사진.
중간에 나무 기타치는 걸뱅이 (저도 김가거든요).
제가 다른 사이트에서 제 인증샷으로 썼던 사진입니다.
제가 글 올릴 떄 항상 덛붙였던 증명사진(?)과 같은 것. -
1950년대, 60년대 초에 주변에서 흔히 보던 광경들입니다.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는...
당시 부산에는 전국에서 모인 피난민들이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상당수 그대로 남아있었는데, 저런 모습들을 예사로 볼 수 있었지요. 특별한 장면이 아니라 저게 그때의 한국입니다. -
어느 날 아침에 데모가 일어났습니다. 데모가 아니라 폭동이었지요. 훗날 그건 4.19 혁명으로 알려졌습니다. 사람들이 총 맞아 죽고, 그 시체를 메고 행진하는데도, 철부지 어린애들은 그 뒤를 따라다녔지요.
얼마 안 가서 아침에 일어나보니 거리마다 총을 멘 군인들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언론인인 아버님 말씀이 군사 쿠테타가 일어났다고 하더군요. 무슨 말이지 이해할 수 없었지요. 그건 훗날 5.16 혁명으로 불려졌습니다.
세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것이 혼돈에서 질서로 바뀌기 시작햇지요. 반대로 보면 자유/방치로부터 제한/규칙으로의 이동이었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별로 느끼지 못하고 군부정권을 지지했지요. 질서를 잡고, 잘 살게 해준다니...
눈으로 지켜본 이 부분은 훗날 심각한 철학적/사상적 갈등을 느끼게 해주는 화두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풀 수 없는... 철학적/사상적으로는, 자유와 평등은 상호 모순관계에 있습니다. -
오랜만에 비닐우산 사진을 봅니다. 고무신도 그렇고...
어릴적 생각들이 잠시 스쳐지나가네요~ -
제가 초등학생때만해도
저런일은 허다했죠......
이젠 아주 먼시절이야기처럼 됐는데.....
저정도 수십년을 처참햇으면 우리의 역사, 전통 사상이
얼마나 많이 흩어졌을지는 상상이 됩니다....
다 잃어버렸다고봐도 될 정도로.....
이젠 다 잃어버린 우리의 9000년 전통과 역사를
다시 찾으려고 노력해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
애기궁뎅이 보이는 바지는
우리때만해도 많이들 입었어요....
기저귀천도 부족하고 빨기도 힘들었나 봐요. -
국민학생때 이웃집언니네 애기들 업어주다가
궁뎅이 살이 만져지면 어릴때에도 많이 웃었다는....
얼마나 가난하면 여기를 뚫었을까 생각하며....ㅎㅎㅎㅎ -
어제의 우리군요.
그 시절에는 기획과 통제가 맞았고 그것이 우리의 오늘을 만들었다고 긍정적으로 보죠.
선진국이 있고 정답이 있어 따라가면 됐던 시절에는 그것이 필요했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그들을 따라잡다보니 우리보다 앞서가는 사람이 없어 모델로 삼을 정답이
없어졌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우리가 논쟁하고 따지며 정답을 찾아가야 하고 이제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우리 스스로가 찾고 만들어가야 합니다.
감시와 통제하에서는 그 무언가가 결코 만들어질 수 없습니다. 창조와 효율은 그리고 바람직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국민 스스로가 체득하고 조정하면서 가려지고 수용되는 것이지 누군가가 이것은
되고 저것은 안 된다고 해서는 가려질 수 없는 것입니다.
음식이 익을 때는 물이 끓습니다. 시끌벅적하게 끓는 게 싫다고 늘 찬물로 놔둬서는 음식이 익지
않습니다. 어제의 눈물을 잊지 않고 내일의 행복으로 이어가려면 지금 떠들고 논의해야 합니다.
찬물 속에 담가둔 쌀은 조용하고 평화롭지만 백날 가도 밥이 되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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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가는 사람이 없어 모델로 삼을 정답이 없어졌습니다...."
이런 멋진글은 최근에 처음 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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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가는 사람이 없어 모델로 삼을 정답이 없어졌습니다...."
위에 글 쓰신분과 다음에 동의하시는 분에게 묻고 싶네요.
정말로 우리나라가 그렇게 되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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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많이 보았던 낯설지 않은 장면들입니다.
사진 잘 보았습니다. -
금모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경제나 과학같은 것이 아니라 정신이요 문화입니다.
우리가 과거에, 당장 먹고 살기조차 힘들어,
문화? 따위는 인식하지도 못하는 걸뱅이 수준을 이젠 한참이나 벗어났다는, 벗어나야 한다는 그런 의미...
이제는 우리보다 앞서가는 사람이 없다는 생각을 당연히 해야 합니다.
다른 나라의 부, 과학... 겨우 그런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인식을 이제는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2 메가바이트의 용량보다는 훨씬 더 커진 우리 민족의 큰 용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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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과거에 비하면 그렇고 또 유형, 무형으로 그런 부분이 제법 있지 않습니까.
쏠레아 님 말씀 말마따나 정신의 문제도 그렇고 또 첨단산업 쪽에서도 그런 부분들이 있죠.
예컨대 '인터넷 기술과 문화' 같은 것 말입니다.
과학 기술이 정신,문화를 이끌고 정신,문화가 또 새로운 과학 기술을 이끌어 냅니다.
그런데 어떤 '감시자'가 통제의 수단으로 이를 보고 금을 긋는다면 새로운 창조와 선진적 진보는
어렵다는 뜻에서 해본 말이었습니다.
물론 다른 부문에서는 동의하기 어려운 분야도 많이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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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가는 사람이 아예 없다고는 말할순 없지만, 적어도
우리 앞에 있는 사람이 우릴 의식할 단계는 충분히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서로 경계하며 같이 달려가는 수준은 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옛날처럼 아예 얹혀갈려고 하면
이름값 혹은, 덩치값못하는 수준이 되고 말지요 -
최소한 민족연대로 보면
우리를 앞서가는 나라는 지구상에 인도를 제하고는 없어요.
(참고로 인도는 민족연대가 8만년입니다.....오쇼 라즈니쉬주장.)
올해 이스라엘의 예수기준 2009년이 대한민국에서는 한기 92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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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은 죄악이다는 생각이 듭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허물을 돌려 이해하는 밑바탕엔
이런 처절한 가난을 벗어나게 치열하게 노력한
그의 진심이 보여서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