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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에서 청각으로, 낭송을 권함

- 고미숙 님 인터뷰 / 인터뷰 정리 김기돈 녹취 김현

 

 

몸의 리듬을 자연의 리듬과 맞추는 읽기

 

지금은 어느 시대보다 엄청난 정보가 쏟아져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넘쳐나지만, 사람들은 잘 읽지 않아요. 한마디로 역설이죠. 우리나라 어른 가운데 한 해 동안 책 한 권도 읽지 않는 사람이 30퍼센트가 넘고, 독서량도 해마다 떨어지고 있어요. 거의 문명적 치매죠.

 

‘책을 읽어야 한다’는 계몽 차원의 설명들은 너무 많아요. 뒤떨어지지 않으려면, 정보를 따라잡으려면, 아니면 통찰력을 키우려면 읽어야 한다고 하죠. 그런데 그렇게 안 되는 거예요. 책을 읽기에는 너무나 다른 속도 속에 있고, 감각을 자극하는 것들이 넘쳐나니까요. 정보 자체도 그렇게 구성되어 있어요. 인터넷에서 글이라는 건 휙휙 지나가버려요. 글을 쓸 때 얼마나 다듬고 마음을 쓸까 싶어요. 예전에는 원고지에 점 하나 찍는 것까지도 신경 썼잖아요.

 

요즘은 쓰는 사람도 굉장히 일방적이고, 읽는 사람은 그걸 더 거칠게 읽어요. ‘너무 좋아요’ 아니면 ‘너무 싫어요’에요. 이런 방식으로 많은 정보에 노출될수록 감정 조절이 안 되는 신체가 되는 거죠. 책을 안 읽는 것에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에요. 사람이 자기 삶을 건강하게 잘 돌볼 수 있다면 책을 꼭 많이 읽느냐는 문제가 되지 않아요. 원주민들이 책을 많이 읽어서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니니까요. 문제는 내 삶을 잘 이끌어갈 수 있는 신체를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죠. 그게 공부의 핵심인 겁니다. 문자를 해독하고 지식을 쌓는 것은 그걸 위한 방편이었거든요.

 

요즘 사람들은 책은 안 읽는데 너무 많은 정보에 노출돼 있어요. 몸의 관점에서 보면 책과 정보는 전혀 달라요. 동양에서는 책을 읽으면서 기혈 순환을 통해 감정을 조절했어요. 이게 핵심이거든요. 그럴 때 윤리 주체가 되는 거예요. 근데 비판적 정보를 접하면 그냥 거기서 윤리가 나온다고 착각하고 있어요. 계몽 이성의 파탄 상황인 거죠. 게다가 반응은 너무너무 즉흥적이고 감정에 치우쳐 있어요. 감정 소용돌이가 일어나는 거죠. 진보 인터넷신문 기사에 댓글 달린 걸 보면 진짜 놀라요. 그것은 비판이라고도 할 수 없고, 거의 욕지거리에요. 이런 걸 사회비판이고 진보라고 할 수 있나요? 모욕감을 주는 걸로 어떻게 상대를 설득해요? 이른바 보수 기득권 세력이 그런 일을 할 때 뭐라고 반박할 수 있을까요. 사회를 위해 혹은 약자를 보호하는, 이런 온갖 계몽적 가치를 가진 분들인데, 어째서 나오는 건 분노밖에 없는 걸까요.

 

몸으로 보면 ‘정수精髓와 기분氣分과 심신心身, 정기신精氣神’의 조화가 깨진 신체인 거예요. 이쪽이든 저쪽에 있든 분노조절이 안 되는 신체를 갖고 있어요. 분노조절이 안 되면 폭력중독이 되거든요. 이런 신체를 갖고 있는데 다른 게 나올 수가 없어요. 정보는 스마트폰으로도 접할 수 있고, 책으로도 볼 수 있어요. 좋은 정보라든가, 세상을 위해 어떻게 하겠다는 계몽적인 내용이 있다 없다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 흐름이 왜곡되어 있는 것이 문제인 거예요.

 

책을 읽으면 ‘허열’을 가라앉히는 속성이 있는 것이거든요. 그게 통찰력이에요. 통찰력은 부질없는 감정을 가라앉혀 냉철하게 객관적으로 있는 그대로 보는 거예요. 열에 들떠 있으면 어떤 말을 해도 오해를 하게 돼 있어요. 그래서 독서를 해야 한다는 것, 이게 동양 고전의 핵심이거든요. 독서는 내 몸의 리듬을 자연의 리듬과 맞추는 거예요. 자연의 리듬과 맞추지 않고 몸의 리듬을 조절하는 방법은 없어요. 이건 무슨 세상의 흐름을 따라가고 살아남고 하는 문제가 아니에요. 내 존재를 지키기 위해 책을 읽는 거죠. 그런데 이렇게 온갖 정보에 노출이 됐는데 책으로 가겠어요? 책을 읽는 것도 계몽 차원에서 억지로 하면 그 자체가 또 억압이 되는 거죠.

 

 

고미숙 (1)_1

 

 

 

소리와 몸을 결합하고 청각을 살리는 읽기, 낭송

 

가장 쉽게 동양 고전, 또 인류 최고 지성에 접속할 수 있는 길은 무얼까요. 그게 ‘낭송’이라는 겁니다. 소리와 몸이 결합하는 것이 중요하죠. 이를 통해 자신을 치유할 수 있어요. 다들 하루가 너무 산만하니까 리듬을 잡는 기준이 필요해요.

 

아침에 일어나 새벽기도를 한다든지, 108배를 한다든지, 아침 15분 요가를 한다든지, 이런 게 다 중심축을 잡기 위한 거죠. 이렇게 하루를 살아야 내가 휘청거리지 않아요. 아무 때나 일어나고 아무거나 먹는다고 남이 뭐라 할 건 없지만, 그렇게 하고 정신의 균형을 잡긴 어렵죠. 시간이 없는 사람은 아침에 동양 고전을 15분이든 한 시간이든 낭송으로 시작해도 좋아요. 몸이 달라져요. 시간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날마다 하루 한 시간 도서관에 가서 몇 사람이 함께 낭송을 해보세요. 백 일이 안 돼 몸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요.

 

우선 기혈순환이 돼요.‘정기신精氣神’이 다 순환하는 게 소리거든요. 연극배우들이 발성 연습하는 거 생각하시면 돼요. 호흡이 깊어지잖아요. 모든 수행에는 호흡이 깊어지는 게 관건이에요. 모든 무술도 그래요. 고수가 된다는 건 호흡이 깊어지는 거예요. 낭송은 몸을 건강하게 관리하는 ‘양생養生’에도 좋고, 지성을 높이는 데도 좋아요. 공동체에서 남녀노소 누구나 시간과 목소리만 있으면 어디서나 시작할 수 있어요. 함께 낭송한 뒤 읽은 것으로 토론할 수도 있지만, 토론은 잘못 하면 서로 감정이 상할 수 있어요. 말에 대한 오해도 있을 수 있고, 지적인 자의식이 작동하거든요. 함께 낭송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어요. 우리가 책을 만나는 신체가 되기 위한 입구로 낭송을 활용하면 되는 겁니다.

 

현대는 눈의 세계잖아요. 빛을 찬양하는 것을 넘어, 빛이 공해가 된 시대예요. 곳곳에 영상 화면이 너무 넘칠 정도로 많아요. 지하철, 버스, 승강기, 심지어 택시에도 있어요. 도로에도 광고 영상이 번쩍이죠. 이러니까 시각이 기진맥진이에요. 모든 기운이 눈으로 몰리니까, 기운을 계속 아래에서 끌어 올리게 돼요. 그래서 치킨, 원두커피, 패스트푸드, 라면, 피자 같이‘불의 기운火’을 갖고 있는, 기운을 끌어올리는 음식을 먹는 거죠. 이렇게 하면 눈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는 대신 불이 올라와서 청각을 마비시키거든요. 그게 난청, 이명이 많아지는 이유이기도 해요. 불이 올라오면 귀에 물이 마르거든요. 그러면 균형 감각도 깨지는 거죠.

 

이렇게 흘러가면 사람의 오감, 특히 청각이 말할 수 없이 소외되죠. 그러면 일단 남의 얘기를 침착하게 듣고 배려하는 것이 불가능해요. 균형감각을 잃어버리니까 분노조절도 안 되는 거죠. 왜냐하면 귀가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거든요. 소통과 배려, 이런 것도 다 신체적 자산이 있어야 하는 거잖아요. 이런 것 다 생략하고 ‘소통과 배려’라는 말을 쉽게 하니까 너무 공허한 거예요. 몸이 말을 안 듣는데 어떻게 소통을 하나요? 그게 무슨 홍보로 될 문제입니까. 아무리 좋은 걸 많이 먹고 좋은 정보를 많이 접해도 소용이 없어요. 그래서 정말 청각이 중요해요. 내가 똑바로 정확하고 투명하게 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확하게 듣는 귀, 이것이 관건이죠.

 

낭송문화가 어떻게 이렇게 급속히 사라졌을까요. 어느 순간에 소리가 없어진 거 같아요. 이건 좀 문화사적으로 봐도 심각한 거예요. 하나의 감각을 잃어버리는 거니까요. 우리나라가 아이티 강국이 되면서 시각 문화로 바뀌고, 지하철에서도 떠드는 소리조차 안 들리거든요. 예전엔 기차가 세상 구경하는 저잣거리 같았잖아요. 요즘은 진짜 무음이에요. 근데 이게 좋은 문화일까 싶어요. 청각이 살아있는 소리문화, 시각에서 청각으로 문명을 바꾸는 운동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

 

고미숙 님은 고전평론가. 지난 십여 년 ‘수유+너머’에서 활동했고, 2011년 뒤로 인문의역학연구소‘감이당’에서 ‘공부와 밥과 우정’을 동시에 해결하고 있다. 몸, 삶, 글의 일치를 위해 ‘아는 만큼 쓰고, 쓰는 만큼 사는’ 길을 열어가고자 한다.

 

 

/........................

좋은글이라  생각되어  퍼왔어요.

Comment '1'
  • 고견 2015.02.13 00:32 (*.187.111.102)
    맞는 말씀입니다만
    하나더 덧붙이자면 민족적 혈통성에도 문제는 있어보입니다.
    다른 민족에 비해서 감정적이고 화도 잘낸다는게 정설이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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