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시타 연주회감상: 귀신같이 연주하다 이제는 구신이 되어버린 야마시타...

by 홍은영 posted Jan 27,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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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저녁  예술의 전당에서 진행된

그의 연주 프로그램은,

그가 현재 어떤 연주력을 갈고 닦았는지가 아니라,

그가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무대였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그의 연주를 처음 만난건, 풋풋한 대학시절. 아마도 1984년도로 기억한다

아마도 그때가 내가 음악홀에서 본 첫 클래식 기타 연주가 아니었을까....

엄청난 테크닉을 뿜어내며 피아노를 비롯하여

관현악곡을 기타를 위한 곡으로 편곡하고 연주해내는 그의 능력은

그의 예술적 경지의 극한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그로부터 20년 후, 2005년 가을,

나는 다시 한번 그의 한국에서의 공연을 보기위해 예술의 전당을 찾았다....

사실 이 때는 그의 연주를 감상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20여 년 전 그의 연주와 함께 박제가 되어버린

나의 20대의 기억을 찾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그의 연주를 통해 20년이라는 세월 속에 갇혀버린

나의 의식이 그의 연주를 뚫고 튀어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긴 세월 속에,  

내가 더 이상 소녀가 될 수 없듯 그도 더 이상 청년이 될 수 없기에

내가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도록 놓아두지는 않았다...

 

시간의 결이 얼마큼 무심히 흘렀는지를

그는 달라진 연주 스타일과 태도 그리고 느낌으로 전달하고 있었다.

2005년의 연주에선 20여 년 전의 연주에서와는 달리

음이 끝나는 공허한 공간에 들리지 않는 소리를 여백으로 남기는 주법을 구사했는데

아마도 이때부터 그의 음악 스타일은 변화를 겪기 시작하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든다...

< 이 때 연주에 대한 느낌을 감상으로 적어 기타매니아 사이트에

정적(무음)의 시간을 소리의 공간으로....(야마시타 기타연주회)’ 라는 제목으로 올렸던 기억이 난다>

  

어제 저녁 예술의 전당에서의 연주....

그는 이제 더 이상 고도의 테크닉을 구사하거나

현란한 주법으로 청중 아니 관객을 혼미하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이제 청중을 평온과 명상의 시간으로 인도하는 듯 했다...

음악에 대한 이해와 관점이 2005년에서 보여주듯 바뀌어 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이제는 완성단계에 이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자신의 자녀에게도 그와 유사한 음악적 분위기를 전수하고 있음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관객을 압도하는 고도의 테크닉이 아니라 자신을 깊은 사유와 명상의 세계로 이끄는

어떤 자연의 소리로 기타음악을 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그의 연주를 듣다보면 기타라는 악기의 존재가 사라지는 듯하다...

그냥 어떤 혼의 소리정도로 표현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일본인으로서의 자연적 특수성이 음악을 통해서도 현현히 드러나고 있음이 느껴졌다.

 

이런 추상적 이미지 외에

그의 이번 연주를 통해 내게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것은

중주에 대한 새로운 이해였다.

그는 자신의 10대 어린 딸과 함께 그라나도스곡(intermezzo from Opera ‘Goyescas’)

비발디 협주곡(Concerto in Sol Maggiore, RV 532)을 이중주로 연주했다.

 

그들의 연주는 지금까지 중주에 대한 나의 이해를 획기적으로 전환시켰다.

기존의 나의 연습방식은 늘 파트너 또는 단원들과 호흡을 맞추면서

어떻게 하면 마디마디를 정확히 맞출 것인가가 관건이었다.

그리고 늘 거기서 더 멀리가지는 못한 탓에

나는 중주로 관객을 감동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늘 해왔다.

감성이 나뉘고 분절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연습과정이 그들에게도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그 지평을 넘어서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그들은 각자가 맡은 하나의 부분적 파트가 마치 온전한 솔로 파트인양

독주처럼 느껴지는 듯하더니 이내 하나의 완성된 곡으로 수렴하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 음을 맞추려고도 분위기를 공유하려고도 노력하지 않는 듯 보였다.

오히려 각자의 곡을 연주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과정에서 그들은 하나의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정말 신비한 체험이었다.

 

부분에 전체를 담으면서 부분을 부분처럼 연주하지 않는 그들의 감성과

각자의 독립적 해석이 전체를 이루는 모습은  혼을 담은 듯했다.

거기에 담겨진 기타현의 영롱한 울림은

가히 그가 이제는 귀신처럼 연주하는 기타리스트가 아니라

구신이 되어버린 사람처럼 느껴졌다.

 

음악에 대한 이해와 감상은 각자가 생성하는 감성의 영역이기에

 나와 다른 감상을 하신 분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재미있을 것 같아

나의 작은 감상을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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