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우 올리버 듀오 서울 공연 후기 2004년 4월 14일 금호리사이틀홀

by 으니 posted Apr 15,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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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듀오의 아름다움" - 이성우 올리버 듀오 서울 공연 후기 2004년 4월 14일 금호리사이틀홀


기타와 가장 잘 어울리는 악기가 무엇이냐고 한다면, 나는 주저없이 또 한 대의 기타라고 할 것이다.

이성우 올리버 듀오는 1991년에 결성되어 매해 한국뿐 아니라 일본, 유럽 등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쳐온 관록의 팀이며, 또한 새로운 현대 레파토리 발굴에 늘 관심을 기울이는 젊은 듀오이기도 하다. 늘 한번 음악으로 만나뵙기를 원했는데 기회가 닿지 않다가 바로 어제 처음으로 감사하게도 공연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기타 듀오는 정말로 매력적이다. 음량 차가 늘 문제되는 바이올린이나 첼로를 제쳐두고라도, 플룻이라든가 만돌린도 곧잘 기타와 잘 어울리는 악기로 거론되지만, 기타와 가장 잘 어울리는 악기는 바로 기타 그 자신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물론 트리오나 퀄넷도 나름의 매력이 있고 장점이 있다. 그러나 나는 듀오를 가장 좋아하는데 바로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다.

오래전 소르의 인커리지먼트 악보를 보았을 때, 나는 정말로 놀랐다. 그 이전에는 내가 기타곡의 악보를 자세히 들여다 본 적이 없었다. 그냥 제일 잘치는 사람이 퍼스트기타, 그 다음이 세컨드기타인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악보를 찬찬히 보다가 깨달았다. 한 대의 기타가 멜로디를 줄곧 연주하고, 다른 한 대가 반주를 하는 것이 아니라, 번갈아 멜로디를 연주하며 번갈아 반주를 하는 것이었다. 그런 것이다. 두 대의 기타가 이야기하듯, 두 대의 기타가 서로 함께 끌어가듯, 한대가 앞서 달려나갈 때는 다른 한대가 반주를 하고, 또 다시 한 대가 기운을 내면 또 한대는 그것에 발 맞추고.. 마치.. 우리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늘 그렇듯이.

또 한가지 큰 매력은 조화이다. 트리오나 퀄텟에서는 멤버같에 기량 차가 나는 부분이라든가 자신없어 하는 부분이 있다면 그대로 묻혀버리게 된다. 말그대로 소리 속에 묻혀서 "티도 안나게" 되어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우리는 늘 트리오나 퀠텟을 좋게 이야기할 때 "네 분 다 고른 기량을 갖추셨다"고 하는 것 같다. 그러나 기타 듀오는 그렇지 않다. 듀오에선 한 사람이 어떤 패세지를 힘들어 하면, 다른 한 사람이 그것을 부드럽게 감싸안을 수 있다. 또 한 사람의 조금 부족한 면이 있다면 다른 한 사람의 기량으로 그것이 보완되어져버린다. 매우 본질적인 차이이며, 이것이 바로 듀오일 때 훨씬 아름다워 보이는 이유인 것 같다. 가족은 넷, 다섯 일 수 있고 서로 물론 사랑하지만, 그래도 늘 "연인"은 서로간이라는 것이 이런 이유가 아닐지 모르겠다.


어제의 공연은 정말 좋았다.

이성우 올리버 기타 듀오는 내가 생각하는 저런 기타 듀오의 매력을 하나도 빠짐없이 갖춘 가장 듀오다운 듀오이다. 최고로 빨리 치는 듀오, 최고의 난곡들만 소화해내는 듀오.. 이런 것이 아니라 가장 "듀오다운 듀오"이다. 그래서 더욱 사랑스럽고 행복한 공연이었다. 물론 이 말이 테크닉이 부족했다는 오해로 들리지 않기를 바란다. 오늘 공연의 테크닉은 곡의 아름다움을 전달하기에 충분한 기량이었다.

기타리스트 올리버는 아주 안정적이고 힘있는 스케일을 지니고 있었고, 이성우선생님은 강약의 대비가 분명한 표현력으로 듣는 이를 이끌어 주었다. 아주 작은 음부터 아주 큰 음에 이르기까지 그 단계를 잘게 쪼개어 표현할 수 있는 흔치 않은 연주였다고 생각이 든다. 또한 이성우 선생님의 비브라토는 매우 고상한 느낌을 주었다. 아티큘레이션이 섬세하다는 것은 바로 이런 느낌 아닐까 싶었다.

코스테의 그랑 듀오는 전통적인 곡의 매력을 잃지 않은 좋은 연주였다. 자신을 드러내보이는 연주라기보다는 각각 악장들이 지닌 아름다움을 충분히 보여준 연주였다고 생각했다.

살롱음악회 같은 분위기로 자연스러운 곡설명과 간간히 농담이 함께해서 그런지, 현대곡들도 그리 낯설지 않았는데, 폴메르Vollmer의 곡은 독특한 리듬과 멜로디를 지니고 있는데, 상당히 구조적으로 안정된 곡이라고 느꼈다. 어쩌면 미니멀리즘적인 표현방식 때문에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는데, 그래도 아주 난해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표제와도 시각적으로 잘 어울렸다.

인터미션 후에는 다소 순서를 바꾸었는데, 카사블랑카 연주가 첫번째였다. 이것은 꽉 누르고 있는 격정, 알 수 없는 불안감, 먼데부터 찾아오는 그리움, 다가서지 못하는 저어함과 같은 복잡미묘한 감정들이 얽힌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멋지게 표현해주고 있는 곡이다. 다소 심심한 구성인 감은 있었지만 그래도 특수주법과 함께 느낌이 좋았다. Wallisch의 재즈곡도 간단한듯 하면서도 전통적인 재즈의 부드러운 위로하는 듯한 미덕을 갖춘 곡이고, 치기엔 괴롭다고 하셨는데 듣기엔 편안했다.

도메니코니의 서커스 뮤직이야, 이루 말할 것도 없이 회화적이고 재미있는 작품이다. 목금, 께냐, 발라라이카 등 많은 민속악기들의 소리를 기타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 재미있었다. 간간히 유명 클래식 선율이 짧게 패러디되어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는데, 제일 재미있었던 것은 Spanish riders on the greek horses 였다. 단 몇 개의 음만으로 "희랍인 조르바"의 주제선율을 느낄 수 있었다. 주제는 다르지만 점점 빨라지는 진행도 그렇고.. 또한 The Yogi who disappears through the keyhole 에서는 이성우 선생님의 마무리 동작.. 정말로.. 들어갈듯 말듯 하다가 쏙~* 사라져버린 듯 했다.

민요주제에 의한 3악장 (김명표)를 앵콜곡으로 음악은 마무리 되었지만, 연주회는 일층 로비에서 계속 이어졌다. 올리버님과 이성우 선생님도 함께 내려와서 담소를 나누셨는데, 두 분간에 함께 한 오랜 시간을 엿볼 수 있는 것 같아서 좋았다. 정말로 좋은 듀오라는 생각이 또 한번 들었다.

그리고 2001년에 베를린에서 찍어낸 듀오의 음반이 있었는데, Frutti di Mare 라는 타이틀이다. 멋진 제목.. 레파토리 모두들 바다와 직간접으로 관계가 있는 것들인데, 처녀레코딩인 란돌프의 The Sea 라는 곡은 특히 흥미롭다.

아름다운 밤을 선사해주신 두 분 기타리스트와 좋은 기획에 늘 힘써주시는 아르시누스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두 분의 독일과 포르투갈의 공연도 이렇게 아름답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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