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보경연주회 후기......불의손님

by posted Jul 24,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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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연주회 후기가 올라오고 있네요.

조금 늦은듯 하지만 저는 지난 7/14일 광주에서 있었던 연주회 후기를 써보려고 합니다.

저는 보경양의 예전 선생님(광주 김태수 선생)께 대학시절 기타를 1년간 배웠고 이런 인연으로 보경양을 조금 더 가깝게 (이를테면 동문 사제로) 느낄 수도 있고 여기 쓰는 모든 글은 제 편견이 섞여 있을 수 있음을 미리 말씀드려요.

지역에서 보기 드문 (최근에는 좀 많아졌습니다만) 클래식 기타 연주회다보니 지역 동호인들 기타 동아리 선배님들 선생님들 많이 오셨더군요. 몇 십년만에 뵙게 된 선배님도 있었어요. 아무래도 보경양이 이 지역과 인연이 많다보니 팬들도 더 많겠죠. 이번 연주회가 있었던 광주 유스퀘어 금호 아트홀은 금호아트홀 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지만 조금 소소한 수준의 연주홀로 300석 정도 아담한 규모입니다. 금요일 늦은 밤중 연주회인데도 객석은 꽤 많이 채워졌어요.

서울 연주회는 미뇽-테데스코-모렐로 이어지는 드라이한 곡 3곡 연달아 연주하고 인터미션 후에 다시 더 건조한 벤자민 브리튼으로 시작하더군요. 광주 연주회는 서울 연주회와 프로그램이 조금 달라서 마뇽 다음에 망고레의 열정적 마주르카, 테데스코 다음에 알베니즈 전설, 후반부에는 모렐 다음에 망고레 숲꿈 그 다음에 타딕의 마케도니아곡들… 이런 식으로 드라이한 곡 다음에 달달한 곡을 하나씩 섞어놓아서 집중력 별로 놓치지 않고 대부분의 연주를 즐겁게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서울 연주회 레파토리도 이렇게 편한 곡들을 섞어놓았으면 더 많은 분들이 만족하셨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연주했던 곡들 중 Mignone 연습곡, Tedesco의 Escarraman 조곡은 처음 들어보았고 Morel의 Sonatina 를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본 것도 처음이었습니다. 저는 공연 프로그램 중 Mangore 의 숲꿈과 열정적인 마주르카 두 곡이 있는 것 만으로 주변 분들에게 추천할만한 연주회가 될거다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연주회의 모든 곡들이 어이가 없을만큼 훌륭한 연주였어요. 이쪽 사투리로 “얼척없다”라는 말이 입밖으로 튀어나올만큼 괜찮았습니다. 사실 이 연주를 보고나서 보경양의 벤자민 브리튼 조곡을 직접 듣고 싶어서 서울 연주회도 가볼까 잠시 고민했었습니다.

연주회 프로그램의 곡들 하나하나에 대한 감상은 개인적인 취향이 다를 수 있고 제가 표현할 재주도 없지만 드라이한 곡들을 일부러라도 찾아들으려하는 저 같은 사람에게도 쉽지 않은 레파토리가 많았던 것은 사실이네요. 이런 드라이한 곡들은 전혀 연결되지 않을 것 같은 어울리지 않는 음표들을 엮어서 리듬과 규칙을 만들고 의미와 흐름을 만들어서 우리에게 음악을 이해시키는 과정이 중요한데...연주자의 역량에 따라서 의미없는 음표의 나열이 될 수도 있고 새로운 배열의 음악이 될 수도 있어요. 현대의 미술이 끊임없이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미술이라는 범주를 이미 초월해가고 있는 것처럼 음악도 그러한 것 같아요. 관객들이 이해하는 범주를 넘어서는 난해한 곡들의 연주는 친절과는 거리가 먼듯하지만 실은 관객들에게 수많은 가능성을 제시하는 과정이라고 봐요. 서울 연주회에서는 어떠했는지 모르지만 광주 연주회에서는 모든 곡들에 대해서 연주자가 직접 짤막하게 해설을 해주고 시작했어요. 보경양 자신의 음악적인 세계에서는 테데스코의 Escarraman 이나 망고레의 열정적인 마주르카나 이해의 범위에서 큰 차이를 못느끼고 있어서 관객들을 조금 힘들게 했을 수는 있지만 제가 느꼈던 보경양의 연주는 정말 …이런 말은 좀 이상하지만…상당히 친절했어요. 언젠가 마신 딜랴의 연주를 듣고 난해한 곡들을 정말 불친절하게 연주한다고 제가 표현했던 적이 있는 것 같아요. 그 때와 다른 입장이라 할 수 있지만 (제가 듣는 범위가 달라졌을 수도) 그 때의 무뚝뚝하고 이해하거나 말거나 싶은 것 같았던 마신의 연주와 달리 보경양의 연주는 관객들이 함께 따라와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연주자는 끊임없이 새로운 곡과 새로운 음악에 도전해가며 발전하고 이런 것들이 멈추는 순간이 음악적 진보의 마지막이지만 또 완성된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 완성이 어떤 음악까지 도달할 수 있는지는 그 사람의 역량이나 노력에 달려있겠지만요. 이전에 내한했을 때도 그랬지만 보경양의 연주는 범주가 정말 넓고 또 깊어졌어요. 이번 연주회는 보경양 자신의 현재 모습을 보여주는 자리였습니다. 관객들에게 실제로 자신이 지금 이 순간 즐기고 있는 음악을 들려준 것 같았어요. 관객들에게 쉽게 들려줄 수 있는 음악보다는 (어릴 적부터 연주했던 그녀의 레파토리를 살펴보면 꽤 다양해서 맘 먹는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말랑말랑한 음악을 만족스럽게 들려주는 것도 가능했겠지만) 보경양의 현재의 최선의 음악을 무대에서 들려드린 것이라고 생각해요. 어쨌든 제가 이전에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대단한 연주자라는 것은 이번에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테크닉으로는 이미 완성형이겠지만 음악을 완성하는 순간까지 얼마나 더 다양한 세상을 보여줄지 기대가 됩니다.

말랑말랑한 곡...이라고 하기는 좀 그럴지도 모르지만 광주연주회에서만 연주했던 알베이즈 전설이나 망고레의 열정적 마주르카... 이런 말랑한 곡들도 정말 좋더군요(망고레 마주르카는 제 짧은 손가락 탓하며 연습을 미뤄두고 있었는데 저보다 손가락 작은 보경양 연주를 보니 뭐 할말이 없더라는...). 광주 연주회에서는 김수정 기타리스트와 2중주로 롯시니 세빌랴이발사 서곡(arr. by 줄리아니)도 연주했는데 앙상블에서 역량은 말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한국기타협회장님과 함께 연주했던 국악풍의 이중주는 피아노 작품 편곡의 한계도 있지만 원곡의 단순한 구조와 화성 때문에 보경양의 다른 곡들 - 아르누보를 초월한 현대적인- 분위기와 대비해서 상당히 생소하거나 어쩌면 너무 원초적인 음악으로 들렸을 수도 있어요. 저도 살짝 그런 것을 느꼈으니까. 그렇지만 이 곡만 따로 떼어놓고 보면 상당히 괜찮은 편곡과 시도였다고 생각되요. 두 곡의 이중주 모두 한국에서 미국으로 악보만 던져주고 따로 연습해와서 연주회 전에 맞춰볼 기회가 거의 없었을텐데 그런 연주가 가능했다는 것이 조금 어이없기도 하고...

앵콜곡으로 연주했던 알함브라나 본 연주회 곡이었던 숲꿈이나 (경탄할만한 트레몰로는 논외로 하고) 다른 연주자들보다 노래가 더 잘 들려요. 무궁동의 트레몰로 연주에 익숙한 귀에 처음에는 너무 많은, 그리고 너무 노골적인 프레이징이 아닐까 했지만 지난번 연주 이후 두번째 들으니 확실히 알 것 같아요. 프로그램 마지막이었던 Tadic의 마케도니안 곡들은 7/8박자, 11/8박자... 전혀 익숙하지 않은 리듬과 생소한 음계가 있는 곡임에도 세련되고 자연스럽게 연주합니다. 이전에 유튭이나 음원으로 들었던 그 누구의 연주보다도 더 세련되게요. 같이 연주회 관람했던 선배 한 분은 저 곡은 조금 더 투박하게 연주하는게 더 맛있었겠다라고 했지만 저는 보경양의 연주를 듣고서야 이 곡들을 다시 평가하게 되었으니 정말 괜찮은 연주였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지금도 귀에 마케도니아 소녀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는 그 곡이 다시 들리는 듯해요.

제게는 너무 만족스러운 연주회 관람이어서 다음 보경양의 연주가 언제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떤 새로운 음악 세상을 들려줄지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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