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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리스트 ‘안형수’-


TV는 물론이고 라디오도 귀했던 시절. 태백산맥 아래 소양호를 끼고 있는 푸른 산촌, 강원도 양구에 한 소년이 살았더랬습니다. 목소리가 유난히 고와 초등학교 성악반에서 활동하던 소년을 두고 친구들은 모두 그가 성악가가 될 거라고 믿었지요. 그러나 그의 꿈을 이루기에는 가정형편이 너무도 어려웠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소년은 중학교 진학 대신 이발소를 택했지요. 이발소에서 숙식을 하며 새벽이면 비를 들고 이발소 안팎을 청소하고 수건을 빨았습니다. 동네 촌로들의 머리를 감겨주며 열심히 이발일도 배웠습니다. 하지만 교복을 입고 이발소 앞을 지나 등교하는 까까머리 중학생들만 보면 자신의 신세가 한없이 처량하게 여겨졌답니다.


어느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소년은 단박에 자신의 처량한 신세를 보듬어주듯 심금을 울리는 클래식 기타 소리에 반해 버렸습니다. 그날로 앞집 형으로부터 기타를 빌려왔습니다. 낡은 포크 기타에 줄을 바꿔 연습하던 시절. 마을 서점에서 일본어로 된 낡은 기타교본을 구해 밤낮으로 열심히 기타를 쳤지요. 이발소 주인 아저씨도, 동네 사람들도 다들 잘한다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그의 연주에 귀를 기울여 주었습니다. 주위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다는 보람에 한없이 뿌듯해진 소년은 더욱 열심히 기타를 쳤지요. 푼푼이 모은 월급으로 새 기타도 장만하고 서울로 휴가 가는 군인들에게 악보를 부탁하기도 했죠.


어느 일요일 늦은 밤, 라디오에서 1시간 동안 흘러나오던 클래식 기타음악. 애잔함과 우수가 밴 기타의 선율에 소년은 숨이 멎을 것만 같았습니다. ‘언젠가 기타를 배우러 스페인에만 갈 수 있다면…’. 소년의 마음은 기타의 본고장 스페인에 대한 동경으로 불타올랐습니다. ‘이대로 이발소에서 평생 남들의 머리만 깎아주며 지낼 수는 없어.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내게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지도 몰라. 하지만 그때 내가 준비가 안되어 있다면 어떻게 될까’.


소년은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 이발소에서 잔심부름을 하고 일이 끝난 뒤에는 밤늦게까지 공부를 하느라 지치고 피곤했을 때에도 소년은 기타만 치면 마음이 가라앉고 편안해졌습니다.


열여덟살이 되던 해, 소년은 본격적으로 공부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는 이발소 생활을 그만두고 서울로 상경했습니다. 그러나 눈 감으면 코 베어간다는 서울은 시골소년에게 그리 따뜻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신발공장에서 신발을 만들고 신문도 팔아가며 생활했지만 공부는 고사하고 몸만 축나버렸습니다. 다시 고향 양구로 돌아갔습니다. “얼마나 쑥스러웠는지 몰라요. 아무 것도 이룬 것 없이 초라하게 돌아온 게 마음에 걸렸는데 부모님도, 동네 사람들도 따뜻하게 저를 받아줬어요”.


서울살이 1년만에 소년은 훌쩍 커버렸습니다. 청년이 되어 군대도 갔다왔지요. 다시 검정고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물론 기타연주자의 꿈을 키우면서 말이지요. “기타연주를 하더라도 밥을 굶지 않으려면 기술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기타를 만드는 공방을 찾아가 일하게 해달라고 부탁했어요”. 일을 빨리 배우는 데다 꼼꼼한 성격이라 청년의 기타 제작기술은 금세 사람들에게 알려졌습니다. 꾸준히 기타 연습을 하던 청년은 1987년 한국기타협회 콩쿠르에서 대상을 안았습니다.


“그냥 나가본 거예요. 경쟁한다는 생각보다는 제 실력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 궁금했어요”


그때부터 ‘안형수’라는 청년의 이름이 차츰 알려졌습니다. 고입·대입 검정고시에 차례로 합격한 형수씨는 당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기타학과가 있던 피어선대학에 진학했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연주 연습을 하고 학교를 다니며 기타 제작도 계속했습니다. 실력을 인정받은 그는 세고비아 기타 연구실에 근무하며 기타 제작과 검사를 담당하기도 했습니다. 학교 다니랴, 일하랴 바빴지만 어느 때보다 즐거웠습니다. 스페인 유학에 필요한 자금도 충분히 모았고요.


92년 형수씨는 기타 하나 달랑 메고 클래식 기타의 성지, 스페인의 마드리드로 떠났습니다. 마드리드 왕립 음악원에서 기타를 배우던 시절, 평일에는 열심히 기타를 배웠고 주말이면 마드리드 레티로 공원에서 거리 연주를 했습니다. 한국인의 감성으로 연주한 애절한 기타의 선율은 스페인 사람들에게 색다르게 다가갔습니다. ‘거리의 악사’로 유명해진 그는 스페인에서 인기 기타리스트가 됐습니다. 음반도 냈지요. 삶의 여유와 음악의 풍요로움을 아는 사람들과 함께 한 3년,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95년 귀국한 뒤 그는 유학을 다녀온 기타리스트들이 흔히 그렇듯 학생들을 지도하며 연주생활을 계속했습니다. 그즈음 정통 기타 연주곡도 좋았지만 멜로디가 아름다운 우리의 동요와 가요를 기타로 연주하는 데 재미를 들였습니다. 3년 전부터 형수씨는 레슨은 그만두고 레스토랑에서 기타연주를 하고 있습니다. 정통 클래식 기타음악도 좋지만 클래식 기타를 어렵게 생각하는 일반인들이 친근하게 느낄 수 있는 것으로 선곡해 올 초에는 음반도 냈습니다.


“스페인에서 공부하면서 제 음악의 폭이 많이 다양해졌어요. 각국에서 온 기타리스트들과 함께 하며 나 자신에 대해, 내가 하고 싶은 음악에 대해 알게 됐지요. 저는 오래 기타를 치고 싶어요. 클래식도 좋고 라틴음악도 좋고 제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하면서 많은 이들에게 클래식 기타의 아름다움을 알려주고 싶어요”


라디오의 기타선율에 마음을 빼앗긴 지 25년. 낡은 기타와 클래식 기타음악의 본고장, 스페인에 대한 막연한 동경은 소년 안형수를 기타리스트 안형수로 만들어버렸습니다. 불혹의 나이에 다가선 장년이 되었지만 해사한 그의 얼굴에는 어린 시절 이발소 라디오에서 들은 기타선율에 반한 소년의 순수함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윤민용기자 artemix@kyunghyang.com/




Comment '4'
  • # 2001.07.09 10:58 (*.96.222.1 )
    다시 들어도 감동적인 이야기.어제 어케 선생님 10여년전 사진 봤는데..ㅎㅎlara
  • # 2001.07.09 10:58 (*.104.124.239)
    형수형 화이팅~ 오랬동안 그 모습 그대로 이길...
  • # 2001.07.09 10:58 (*.202.16.64 )
    너무 감동적이에요...ㅠ.ㅠ
  • # 2001.07.09 10:58 (*.188.1.210 )
    아. 멋져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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