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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itarMania

최동수2012.05.08 18:03

오래 전에 올렸던 글을 퍼왔습니다
바쁘지 않으신 분은 한번 읽어보세요

 

이글은 언젠가 신문에 기고하였던 내용 그대로 입니다.

종교적인 의미를 두고 올린 글이 아니니, 양해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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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살린 에스트렐리타

아주 오랜만에 KAL기 폭파범인 김현희의 인터뷰기사가 미디어에 등장하였다.
김현희라면 나도 각별한 관련이 있다.
아니 나의 아내가 놀라서 쓰러질뻔한 사건이 있었다.
본사에서 나의 귀국일자를 1987년 11월 29일 KAL858기편이라고 우리 집에 일차로 알려준 까닭이다.
바로 그 비행기가 미얀마 상공에서 폭파되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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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사방에 둘러쳐진 지평선을 배경 삼아 내 차는 아까부터 북녘을 향해 달리고 있다.
왼편에는 광야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수로를 따라 무성히 자란 갈대숲이 있고 오른편에는 대추야자
나무들이 듬성듬성 펼쳐져 있는 끝없는 벌판이다.
차는 바람에 파도처럼 일렁이는 갈대숲을 스치듯이, 뒤로는 붉은 흙먼지를 휘날리며 지평선 저 멀리 작은
섬처럼 보이는 언덕을 향해 달려간다.
얼마를 또 달려서 수로를 벗어나 산등성이 길로 들어섰다.


“내가 늘 어려운 일도 마다 않고 순순히 처리하였더니 이 마당에 또 어려운 일을 골라서 맡기시는 겁니까?”
티그리스강을 끼고 니느웨 성터가 내려다보이는 동편 언덕에 서서 이렇게 마음속으로 불평을 하고 있을 때
성경 요나서의 말씀이 떠올랐다.
‘이르시되 너의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요나서 2 : 4)’
나는 지친 마음으로 문제의 현장으로 가는 도중에 니느웨 성터에 들러 하소연을 한 것이다.


천신만고 끝에 드디어 어렵고도 복잡한 공사를 준공시키기에 이르렀다.
전쟁와중에서의 위험, 발주처인 이라크 철도청의 자국민 우선주의, 독일 감독회사의 편견, 250km에 걸쳐
산재한 현장 통솔상의 어려움, 사막에서의 작업조건, 자금난 등등, 완전히 기진맥진한 끝에 거둔 성과였다.
이제는 그리운 가족에게 돌아갈 수 있으리라 마음 설레던 87년 9월 어느 날이었다.
그 현장은 준공되었으니 아랫사람에게 인계하고 공사는 끝났지만 장기간 완결을 보지 못하고 있는
문제 현장으로 가라는 뜻밖의 전문이 온 것이다.
어떻게 하든지 문제를 해결하고 최종결산을 지어 하자보증금을 찾아 갖고 귀국하라는 본사의 지시였다.


몇년간 정들었던 철도공사의 본부캠프가 있는 베이지를 떠나 문제의 현장에 도착하였다.

소도시 사마라와 활루자에 나누어져있는 2개의 아파트공사현장은 작은 도시를 방불케하는 대규모이지만, 

이제는 모두 합해서 직원 2명과 근로자 10여명씩밖에 남지 않았다.

숙소는 활루자 캠프에 정하였으나 하루걸러 사마라를 왔다갔다하는 황량한생활이 시작된것이다.

사막 한가운데 아직 입주하지 않아 텅 비인 아파트 건물들만 서있는 현장에 찾아온 가을은 쓸쓸함이 더하여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었다.
게다가 독수리만큼이나 크고 사납게 생긴 까마귀떼들이 몰려다니는 풍광이 은근히 겁을 주기도 한다.

76년에 해외근무를 처음 시작하여 2년, 그 다음에는 3년 반, 이번이 세번째로 어언 5년이 되어간다.

 


오는 도중에 따왔던 모과가 말라서 거므스레해질 무렵 전혀 해결의 기미조차 찾을 길 없었던 문제들이
의외의 방법으로 풀리기 시작하여 11월 중순에는 완결을 짓게 되었다. 
한시 바삐 집으로 날아가고 싶었다.
지점에 연락하여 가장 빠른 날짜인 11월 29일자로 귀국편 항공기를 예약 시켰다.
대형공사를 책임지고 있는 간부급은 귀국 승인을 받는 일이 그리 쉽지는 않다.
다시 생각해보니 11월 말 보다는 한주일 뒤인 12월 초쯤이면 확실할 듯하였다.
한편 아내와 약속했던 성경통독, 얼마 남지 않은 읽기를 마저 끝내고 싶은 마음에 스스로를 타이르며
일주일을 늦춰서 귀국날짜를 변경하여 신청한 것이다.


견디기 힘든 외로움이 가슴 속을 파고들었다.
갑자기 한 시간이 하루처럼 길게 느껴지고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텅빈 사무실에서 하루종일 성경을 읽다가 밤이면 숙소에서 기타를 안고 작은 별을 바라보았다.
최근에 익힌 에스트렐리타를 치고 또 치면서 외로움을 달랬다.
이번에 집에 가면 이 곡을 멋있게 들려줘야지 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내가 탈뻔 했던 그 비행기가 미얀마 상공에서 김현희에 의해 폭파 될 줄이야!
하나님의 뜻을 어찌 헤아릴 수 있으랴.
하나님이 보잘것없는 나를 살려주신건 확실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나를 잡아준건 기타와 에스트렐리타인 것도 빼어놀 수 없다.


지금 나는 7현 기타를 만들고 있다.
Manuel Ponce의 Estrellita는 Isaias Savio의 편곡도 좋지만 처음 손댄 Jose Luis gonzales가
내게는 더 정겨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6번현을 D로 조율하는 일이 좀 귀찮다.
그래서 아예 D로 조율된 7번현이 하나 더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특히 에스트렐리타를 연주하기
쉬운 악기를 만들게 된 것이다.

평생 잊을 수 없는 작은 별(Estrellita)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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