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음의 논리

by 지나가다 posted Mar 24,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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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씨 왈 : “똑같은 화음도....보는각도가 다르구요.... 클래식에서는 em를 G코드의 대리로 보지않습니다. 쓰여도 대리기능으로 해석하지않습니다
그러나 재즈에서는 아주 일상적으로 많이 쓰이고 있지요...
님이 욕하는건 ....우리나라의 화성학책을 집필한 고인및 학자들을 욕하는걸로 들립니다.


화성학을 공부할 때 절대적으로 명심해야 할 사항이 있다. 바로 절대로 외우지 말라는 거다. 외우지 말라니? 그럼 ‘으뜸화음=도미솔’이라는 사실도 외우지 말라는 건가? 물론 그런 얘긴 아니다. 단지 ‘기계적’으로 외우지 말라는 거다. 고딩 시절의 내가 공부를 잘 못했던 이유도 그거다. 원의 방정식 같은 걸 그냥 외우지 않았나. 왜 그런 공식이 유도 되었는지는 생각 하지 않았다(라기 보다는 하기 싫었다). 그냥 외웠다. 다행인 건, 그나마 이 버릇을 음악에까지 행하지는 않았다는 것.

생각씨의 말을 보자. “클래식에서는 em를 G코드의 대리로 보지않습니다. 쓰여도 대리기능으로 해석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말하자면 이거다. “재즈에서는 대리로 봐요.”
정말일까? 생각씨의 착각일 뿐이다. 재즈 화성학 책에 뭐라 적혀 있나 보자.

“lllm-토닉의 기능”
“토닉의 대리로는 lll, 또는 Vl화음이 사용된다.”

이렇게 적혀있는 책 제목은?
하나는 <경음악 편곡법>이고, 또 하나는 <실용음악이론>이다.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토닉-IM7,IIIm7,VIm7
서브도미넌트-IVM7,IIm7
도미넌트-V7,VIII7(b5)”

클래식 화성학의 내용이랑 똑 같다(물론, 전통 클래식에서는 토닉의 7화음은 잘 안 쓴다. '전통적으로는' 으뜸음과 장7도음 사이는 '불협'이니까. 그러나 현대에서 CM7(도미솔시) 화음을 불협화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것은 시대의 감각 차이 때문인데, 이 점이 클래식과 재즈를 가르는 본질적 이질성은 아니다. 물론 생각씨는 부인하겠지만.)

본론으로 들어가자.
Em를 G의 대리로 보느냐 마느냐....이건 전혀 본질적인 얘기가 아니다. 내가 이런 글을 쓰는 것이 기초 화성학 강의나 하자고 쓰는 것도 아니다(그건 나보다 더 많이 하시는 분들의 몫이다). 단지 다음과 같은 얘기를 하고 싶어서다.

“외우지 말고 기능을 파악하라”

기능을 파악하지 않으면, 화성학은 한낱 숫자 놀음밖에는 되지 않는다.
다장조에서 Em를 G의 대리로 보는 건 클래식이든 재즈든, ‘정도’가 아니다. 물론 숫자놀음으로는 얼마든지 대리로 볼 가능성은 존재한다. 다음을 보자.

G=솔시레
Em=미솔시

공통음이 보이는가? 바로 ‘솔시’가 두 코드 모두에 들어 있다. 그러나 3화음(트라이어드)에서 두 개의 음이 공통음이니 대리 화음이라고 규정하는 건 단순한 생각이다.
G코드를 다장조에서는 뭐라고 부르는가? ‘도미넌트’다. 생각씨 같은 부류의 분들은 그냥 이렇게 외우고 만다. ‘도.미.넌.트’. 그럼 학교 시험지에는 대충 맞을 수 있다. 그러나 깊이를 원하는 분들이라면, ‘도미넌트란 무엇인가?’라고 물을 것이다. 그리고 고심한다....그리하여 그것의 의미를 알아낸다. ‘도미넌트’란 V화음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닌 ‘기능’으로.
군대를 보자. 내가 예전에 모시던(?) 장교는 ‘김대위님’이었다. 이 분을 뭐라 불렀던가? ‘정보장교님’이라고 불렀던 기억이 난다. 그렇다면, ‘정보장교’는 ‘김대위’의 또 다른 이름일 뿐인가? ‘정보장교’는 김대위의 ‘기능’을 의미하는 것임은 누구나 다 안다.

V화음=김 대위
도미넌트=정보장교

도미넌트란 무엇인가? 다장조의 경우, V화음, 즉 ‘솔시레’화음이다. 토닉은 무엇인가? ‘도미솔’이다. 이건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 ‘기능’을 표시하는 명칭들(토닉, 도미넌트...)들은 오직 화음에서만 통용되는 얘기일까? 그렇지 않다. 1도화음, 2도화음, 3도화음...... 7도화음 등에  각각의 ‘기능을 부여하는 명칭’이 있듯이, ‘도,레,미....시’까지의 모든 음에 계이름 말고도 기능을 부여하는 명칭이 존재한다. 중요한 것 몇 가지만 살펴보자.

도=토닉
파=서브도미넌트
솔=도미넌트
시=리딩 톤

자, 이제 Em(솔시레)가 G의 대리, 그러니까 도미넌트로 기능하기에 클래식이든 재즈이든, 쬐까 거시기한 이유를 논해보자.
‘시’음을 ‘리딩 톤’이라고 부른다고 위에서 얘기했다. 그러니까, ‘이끔 음’이라는 뜻이다. 대체 어디로 이끈다는 걸까? 당연히 '도‘음이다. 다음을 연주해보자.

도레미파솔라시.

‘시’까지 연주하고 끝낸 기분이 어떨까? 답답하다. 마치 싸다 만 채 화장실을 나오는 기분이랄까. 이 답답함은 ‘도’를 연주해야 비로소 해결된다. 이처럼 ‘시’는 이끔음의 기능을 한다.
일단 이끔음 논의는 잠시 뒤로 제쳐두고, 이번엔 ‘솔’음에 대해 논해보자.
‘도’음을 연주하면 진짜 ‘도’음만 나오는가? 아니라는 건 누구나 안다. ‘소리굽쇠’는 배음이 배제된, 그러니까 기음만 나오겠지만, 일반적인 악기의 음은 그렇지 않다. 피아노든 기타든 저음의 ‘도’를 쳐보고 귀를 기울이면 우리는 기초음인 ‘도’가 연쇄적으로 다음과 같은 음들을 이끌어 낸다는 걸 알 수 있다.
최초 타격한‘도’-->한 옥타브 위위 ‘도’-->‘솔’-->‘도’-->‘미’-->솔-->..........

최초의 타격음을 ‘기음(1-배음)’이라고 하고 그것으로부터 파생되는 음들(제2,3,4배음...)은 ‘자연배음’이라는 건 누구나 다 안다. 제 2-배음인 ‘도’와 제 3-배음인 ‘솔’, 그리고 제 4-배음인 ‘도’를  주목해보자. 어떤 관계가 발생하는가? 각각 5도와 4도 음정의 관계다. 이 4도(또는 5도)음정을 우리는 ‘완전4도(또는 완전 5도)’라 부른다. ‘솔-도’의 자연적 밀착관계가 ‘완전’음정을 규정하는 거다. 그래서일까? 최초의 대위법은 완전 4도 음정으로 이루어졌다고.
어쨌든, 대충 이런 이유로 (다장조의)V화음인 G코드(솔시레)는 <시 : 이끔음>과 <솔-->도>의 이유로 인해 으뜸화음인 C코드(도미솔)로 향하는 성질을 지니게 된다. 이것이 ‘도미넌트 코드’의 기능인 거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을 제기할 필요가 있다. 다음의 화음 진행을 보라.

1. C(도미솔)-->F(파라도)-->G(솔시레)-->C코드
2. C(도미솔)-->F(파라도)-->G7(솔시레파)-->C코드

자, 둘 중에 어느 경우가 더 눈에 띄는가? 당연히 2번의 경우다. 즉, G대신 G7코드를 사용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거다. G7코드는 G코드(솔시레)에 단7도 음인 ‘파’를 추가한 것이다. '전통'클래식의 경우, 다른 코드들은 7화음을 '대체로' 쓰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5도 화음엔 7화음을 사용하는 이유가 뭘까? 바로 ‘도미넌트’의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즉, 으뜸화음으로의 귀속을 강화하기 위함인 거다. G7화음을 살펴보자. <솔시레파>다. 이를 ‘화음의 자리바꿈’하여 재배치 해보자. 가장 좋은 울림을 가져다주는 울림을, 기타의 경우 다음과 같은 운지로 잡을 것이다.

2번선-시
3번선-솔
4번선-파
6번선-솔
(‘레’음은 ‘5음 생략 가능의 원칙’에 따라 생략.)

4번선과 2번선의 음에 주목하라. ‘파’와 ‘시’다(악보가 눈에 그려지는가?). C코드(도미솔)로 전환되는 순간, 이 음들은 각각 어디로 귀결되는가? 바로 ‘미’와 ‘도’다.

시--------->도
파--------->미

위의 선율의 방향은 대위법에서 가장 절묘하게 들리는 ‘반진행’의 법칙을 따른다. 그럼 여기서 의문을 가져보자. 왜 <파,시>는 꼭 <미,도>로 해결되어야만 할까? 답은 다음과 같다.

<파-시>의 음정을 계산해보자. 증4도가 나온다. 조금 전에 했던 애기를 기억해보자. <도-파>는 완전4도라고 했다. 그러니까 ‘도’와 ‘파’음이 동시에 울릴 때 서로 아주 잘 어울린다는 얘기다. 그래서 ‘완전’이라는 말을 쓴다. 이 완전 4도의 찰떡궁합 음향을 아주 잘 우려먹는 분야가 있다. 록음악이다. 딮 퍼플의 <스모크 온 더 워터>나 <번>의 전주가 바로 이 완전 4도로 이루어진 거다(정말 ‘한 소리’로 들리지 않나?).
http://www.youtube.com/watch?v=XXO0Z06f8BY&feature=related

완전 4도 관계란 무엇인가? <도~파>의 음 높이를 따져보자. 중간에 ‘미-파’ 반음 사이가 하나 존재한다. 이렇게 반음이 한 개 존재해야 완전 4도 관계가 된다.
반면에  <파~시>의 음정관계를 보라. ‘파,솔,라,시’ 각 음들 사이는 모두 온음정으로 되어있다. 다시 말해서, 완전 4도 음정보다 음간 넓이가 ‘넓다’. 그래서 우리는 이를 증(Aug)4도 관계라 부른다. 이 증4도 관계를 뭐라 부르나? 바로 ‘불협화 음정’이라 부른다. 얼마나 이 불협화음을 사람들이 싫어했던지, 중세에서는 이 음정을 ‘음악의 악마(Musica in Diabolus)'라 불렀다고 한다.
불협은 협화음정으로 해결되는 게 관례다. 왜 관례가 되었냐면, 그래야 우리의 귀가 편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파, 시>는 각각 <미, 도>로 반음씩 떨어지거나 올라감으로 인해 비교적 안정된 6도 음정으로 해결된다(물론 단6도의 ‘불완전 협화음정’이기는 하다). 도미넌트7th코드가 으뜸화음으로 가려는 성향은 이래서 생긴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눈가리고 아웅 하지마라. 화음의 자리바꿈을 자의적으로 행함으로 인해 논의를 억지로 갖다 맞춘 것 아니냐”고. 그래서 다른 각도에서 보도록 하겠다. 다음과 같은 화음의 자리바꿈을 했다고 하자. 기타의 경우,

1번선-파
2번선-시
3번선-솔
4번선-레
6번선-솔

을 연주하게 되겠다. 1번선의 ‘파’와 2번선의 ‘시’를 보라. 물론 이들은 으뜸화음으로 해결됨으로 인해 각각 ‘미’와 ‘도’ 떨어지거나 올라갈 거다. 이 경우 음정 계산을 해보자.

시~파 : 감5도
도~미 : 장 3도

감 5도란 무엇인가? 증4도의 딴이름 한소리다. 즉, <감5도=증4도>. 역시 ‘음악의 악마’다. 이 악마는 장3도로 해결됨으로서 해소된다. 물론 장3도는 불완전한 협화음정이긴 하지만 그래도 불협화 음정은 아니다.

이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생각씨 왈 : “클래식에서는 em를 G코드의 대리로 보지않습니다. 쓰여도 대리기능으로 해석하지않습니다”

이거....답변하기 참 난감하다. 왜냐하면 질문 자체가 개념 파악이 안 된 상태의 불완전한 것이기 때문이다. 나름 해석해서 답변하겠다.
클래식이든 재즈이든...Em(미솔시)코드 자체는 ‘도미넌트’의 기능을 완전하게 할 수는 없다. ‘미~시’의 음정을 계산해보라. 완전 5도다. 이미 완전한 음정을 왜 해결해야 하는가? 따라서 이 경우 토닉인 C코드로 가야만 하는 필연성이 없다. ‘대리’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데 왜 꼭 음이 두 개가 공통된다는 이유(솔과 시)만으로 억지로 Em를 써야만 하는가?
“무슨 소리냐! Em가 G의 대리로 쓰인 경우가 있는데!”라고 말할 분이 계실 거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얘기할 수 있다.

G코드(솔시레)에 ‘미’음을 추가해보자. 이 경우 코드 이름은 G6(솔시레미)가 된다.
‘솔시레미’를 ‘자리바꿈’해보라. 그럼 <미시솔레>가 된다. 이 ‘미솔시레’를 뭐라고 부르는가? 바로 Em7코드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공식(?)이 성립하게 된다.

G6=Em7

이 기계적인 공식에 의하면, Em코드도 G의 대리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결론은 나온다.
따라서, C-F-G6-C의 코드 진행 대신 C-F-Em7-C의 진행을 선택했다고 해서 그게 딱히 틀린 것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도미넌트’의 기능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Em7코드가 정말로 C코드로 이끌고자 하는 ‘도미넌트’로 느껴지는가? Em역시 마찬가지다. 이미 언급했지만, 이 코드 자체가 ‘자기완결적’이다. 즉, 증4도 같은 불협의 요소가 없다는 얘기다.
이런 이유로, 클래식이든 재즈화성학이든, 공시적으로는 lll화음인 Em는 토닉의 대리로 취급하는 거다.

G코드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다장조에서,
C=으뜸화음(토닉)
G=딸림화음(도미넌트)
F=버금딸림화음(서브-도미넌트)라고 하는 건 누구나 다 아는 바다.

이를 좀 더 재미있게 표현해보자.
‘다장조’라는 (폭력)조직이 있다. 이 경우,
C는 보스(큰 형님),
G는 넘버 2,
F는 넘버 3 정도 되겠다...
나머지 화음들은?
똘마니지 뭐.

한석규 주연의 ‘넘버3’란 영화가 있었다. 이 영화에서 한석규는 큰 형님을 위기에서 구한 대가로 넘버2에 등극한다. 이제 한석규는 F에서 G로 승격된 거다. 그런데 결국 한석규는 어떻게 하더라? 큰형님을 배반한다...이에 대해 다시 표현해보자.

한석규(G)가 있다. 얘는 무조건 큰형님(C)에게 복종해야 하는 처지다. 그런데 한석규(G)가 배반할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이 ‘다장조’조직을 배반하고 뛰쳐나간 다음에 ‘사장조’라는 조직을 만들어서 자기가 보스가 되는 거다. 그리고 '다장조‘조직의 큰형님을 복속시켜 넘버3의 자리에 앉힌다(생각 같아서는 똘마니 취급하고 싶지만 예우 상). 넘버 2의 자리엔....‘D’라는 새로운 얼굴을 앉히는 거다. 이를 도식화해보자.

<사장조>조직의 계보도
넘버 1 : G코드(솔시레)  :  으뜸화음
넘버 2 : D코드(레파#라) : 딸림화음
넘버 3 : C코드(도미솔) : 버금-딸림화음

자, ‘다장조’조직이 붕괴되기 전으로 돌아가 보자. 당신이 ‘큰형님’이다. 그런데 넘버2인 G가 배신을 때리려는 게 보인다. 어떻게 해야 할까? 방법은 넘버 2 한석규(G)에게 족쇄를 채우는 거다. 그 족쇄는 뭘까? 바로 ‘파’음이다. 이제 넘버 2인 G는 G7(솔시레‘파’)가 된다. 이렇게 되면 결코 ‘사장조’조직은 결성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사장조’조직에서는 ‘파’는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곳에서는 ‘파#’이라는 연장을 필요로 한다...
이로써 족쇄 채워진 한석규(G7)은 싫으나 좋으나 큰형님(C)에게 이끌릴 수밖에 없다.
이것이 도미넌트에 단7도음을 새삼스럽게 부여하는 이유다.

그래서 ‘기능’을 파악하는 것이, 그리고 그 논리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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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음의 논리를 파악한다는 것이 왜 중요한지 다른 예를 들어 따져보자.
일단 아래의 곡을 들어보자. 45초 이후를 들어보라(논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꼭 들어야 한다). 그 유명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1984년 작,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의 테마 곡이다. 작곡가는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하나-비>나 한국영화<웰컴 투 동막골>의 영화음악을 맡은 바 있는 그 유명한 ‘히사이시 조’다.
http://www.youtube.com/watch?v=ngy6d8K-T0Y&feature=related

자, 히사이시 조가 <나우시카>의 영화음악을 작곡할 당시로 돌아가서 그의 심정이 되어보자. 히사이시는 고민한다. 어떻게 해야 비현실적인 <나우시카>의 비쥬얼에 맞는 음악이 나올까? 장조로 할까, 아니면 단조로 할까? 장조로 하려다가 문득 밝은 분위기가 나올 것 같아 머뭇거려진다. 그래서 단조를 선택한다.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왜냐하면 단조로 할 경우, 우울한 진행이 영화와 잘 맞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단조로 해도 다음과 같은 고민이 생긴다. 선율의 재료를 ‘자연 단음계(라시도레미파솔라)’로 할 것인가, 아니면 화성 단음계로 할 것인가(라시도레미파솔#라), 아니면 가락 단음계(라시도레미파#솔#라)‘로 할 것인가. 고민 끝에 이 3가지 모두 걸맞지 않다고 판단한다. 나우시카는 슬픈 영화가 아니므로.

물론, 꼭 영화가 슬퍼야만 단조음악을 쓸 수 있는 것만은 아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애니메이션들을 보라. 마징가, 짱가, 요술공주 세리, 개구리 소년 왕눈이, 미래소년 코난.....공통점이 있다. 하나 같이 전부 ‘단조’로 작곡되었다는 거다. 그런데 이 애니메이션들이 슬픈가? 오히려 슬프기 그지없는 ‘프란다스의 개’는 장조 아니었나?

애니메이션들에서 단조음악을 선호하는 이유는 아마도 단조가 가진 ‘비장감’ 때문일 것이다. 마징가든 짱가든 코난이든, 악의 무리에서 지구를 지켜야하는 비장한 운명이 있지 않은가(물론 예외도 있다. 개구리 소년 왕눈이는 지구를 안 지켜도 된다. 그래서인지 이 음악은 좀 어울려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세련된 감각을 가진 히사이시 조는, 이런 단조가 갖는 슬픈 정서나 비장감 같은 것은 나우시카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했을 거다. 그럼 어떤 방법이 있을까? 뭔가 신비롭고, 진부하지 않은 음계는 없을까? 히사이시 조는 저 중세의 ‘도리안 모드’를 빌려 쓰기로 한다.

도리안 모드 : (‘라’음을 으뜸음으로 했을 때)라-시-도-레-미-‘파#’-솔-라.

(혹시 영화 ‘반지의 제왕’의 3편, ‘왕의 귀환’을 보신 분이라면 기억하실지도 모르겠다. 거기서 ‘곤도르’의 섭정 앞에서 ‘피핀’이 불렀던 노래를 기억하시는가? 어떤 느낌인가? 반지의 제왕이 비현실적인 판타지이긴 하지만 웬지 중세의 느낌이 나지 않는가? 거기서 피핀이 불렀던 노래가 바로 ‘도리안 모드’로 만든 노래다.
http://www.youtube.com/watch?v=WskRAEggqkQ

'베오울프'의 왕비가 불렀던 노래도 역시 도리안 모드로 만든 곡이다.
http://www.youtube.com/watch?v=JWzGKoccXTE&feature=related
멋지지 않은가?)


자, 이제 선율을 다소 신비롭게 만드는 재료는 결정했다. 이 신비로운 선율에 걸 맞는 화음을 정하는 문제가 남았다.  단조니까 그냥 Am로 하면 되지 않을까?(원곡은 C-minor 조성이다. 여기서는 편의상 가단조라고 가정하고 논의한다.) 그러나 이 경우 다소 투박해질 우려가 있다. 무엇보다 Am(라도미)코드에서 오는 ‘슬픈 정서’가 히사이시 조의 맘에 들지 않는다. 히사이시 조는 이 슬픈 정서를 상당부분 감소시키고 싶어진다. 어떤 방법을 썼을까? 다음과 같은 방법이 있다.

Am에 단7도음을 하나 더 쌓는다. 그래서 Am7코드를 만든다.

Am=라도미
Am7=라도미솔

Am7코드를 보라. 두 가지 경우로 나누어진다.

라도미->‘Am코드’
도미솔->‘C코드’

즉, '우울한’ Am코드(단화음)에 C코드(장화음)를 섞음으로써, Am코드가 지닌 슬픈 정서를 상당부분 상쇄하는 거다.

그런데, 히사이시 조는 이에 만족하지 않는다. Am코드에 ‘솔’음 이외에 9th인 ‘시’음을 섞은 거다.

Am=라도미
Am7=라도미솔
Am7(9)=라도미솔시

이 Am7(9)코드를 분석해보자. 이 코드는 다음과 같은 트라이어드로 나누어진다.

1. 라도미->Am코드
2. 도미솔->C코드
3. 미솔시->Em코드

2와 3의 화음을 합쳐보자. 그러면 <도미솔시>가 되므로 곧, CM7코드가 된다.
히사이시 조는 이 Am7(9)코드를 다음과 같이 자리바꿈하여 사용했다. 기타 운지로 설명한다(운지가 아주 조금은 어렵다).

5번선-라, 4번선-미, 3번선-시, 2번선-도, 1번선-솔
(물론, 원곡은 C-minor다. 여기서는 편의상 가단조로 정했다.)

화음의 느낌이 어떤가? 구태여 규정하자면 ‘단화음’이지만 솔직히 Am(라도미)같은 단화음의 느낌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단화음도 아닌 장화음도 아닌 애매한 그 무엇....(단화음과 장화음을 섞었으니 그럴 수밖에). 이 애매모호한 신비로움이 바로 히사이시조가 의도한 화음 아니었을까?
(물론, 이 정도 화음은 히사이시 조의 전유물도 아니고 흔해빠진 종류의 하나일 뿐이다. 따라서 히사이시 조가 실제로 이 화음을 도출하기 위해 수식을 쓰듯 고민했다고는 보이지 않는다. 단지 그의 음악적 역량으로 보았을 때 이 화음의 그러한 ‘논리적 성격’을 절대 모를 리가 없다는 말은 강조하고 싶다.)

여기서 예전에 내가 했던 말을 다시 언급해보자.

“인상주의 화가 중에 '모네'라는 분의 그림을 봅시다. 그림의 외곽선이 어떤가요? 대단히 모호해요. 샤프 펜이나 볼펜으로 선을 긋는 것처럼 명료하지 않고 사물의 경계가 불분명하죠.  마치 안개가 진하게 낀 날의 풍경을 보는 것처럼...음악에서도 이런 혼돈을 이용함으로써 투박함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많아요. 투박함은 무엇입니까? 현실적인 명료함이죠. 사물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모호하게 하면 어떻게 되죠? 무언가 비현실적, 몽환적인 감각을 얻게 되죠....”

화음의 구성음을 아는 게 중요할까? 물론 그 정도 암기는 하는 게 좋다. 그러나 거기서 끝난다면 얻고자 하는 걸 얻을 수 없다(최악의 경우 '생각씨'처럼 된다). 중요한 건, ‘왜?’를 파악하는 거다. 그러니까 ‘기능’을 파악하는 거다. 남들이 이러저러한 멋진 화음을 쓰니까 나도 따라서 쓴다는 개념이 아니라 그 화음을 써야하는 음악적 필연성의 논리를 파악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 수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1-03-27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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