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GuitarMania

2001.12.23 22:42

경희궁의 아침.

(*.74.234.68) 조회 수 2725 댓글 5
잠을 설쳤다. 한잠도 자지 못하고 겸사겸사 새벽에 광화문에 있는 교회에 나가시는 어머님의 기사를 자청했다. 교회엔 들어가지 않고 뒷문쪽 오래전 우리가 살던 골목앞에 우연하게도 차를 댔다. 이제 겨우 어슴푸레 햇빛이 나오기 시작한 시간이었다.

광화문에는 내수동이라는 동네가 있다....아니 있었다고 해야겠다.
세종문화회관이 첨 생겼을 무렵. 뒷쪽 동네는 대성학원 등의 학원가 사이에
작은 골목이 하나 있었다. 골목어귀에는 조그만 약국이 하나 왼쪽에는 채소등을
파는 가게가 하나. 골목을 들어서면 오래된 한옥들이 줄줄이 늘어선,
그러나 그다지 고급스럽지 않은 집들이 이어지는 평범한 골목 오른쪽에는
"광주아줌마"라고 불리시던 어머님 친구분이 사시는 한옥이 있었고
한참을 올라가면 좁아지던 골목길에 내가 좋아하던 누나가 사는 작은
단칸방이 있었고 상당히 긴 골목 중간쯤에 그 골목에 유일한 구멍가게가 하나
있었다. 구멍가게 아저씨는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그가게 주인이었고
이아저씨가 나중에 낸 쌀가게도 그 골목안에 몇 개 안되는 상점중 하나였다.
가게 건너편 작은 골목으로는 이영하(영화배우 또는 탤런트..아무려나..)와
그의 홀어머니가 사는 주홍색 나무대문이 달린 작은 집이 있었고
골목은 기역자로 꺾어 오른쪽으로 아주 귀엽게 생긴 성가대 후배가 살던
집을 지나면 동생친구던 효진이네 집, 다시한번 꺾이면 우리는 그냥
"범표신발 사장네 집"이라 알던 높다란 담을 지나 그냥 할아버지 할머니..라고
부르던 인정많은(또 울집과 싸우기도 많이한..) 분들이 사시던 회색 나무대문을 지나
동생보다도 한살 적지만 거의 맞먹고 살았던 정애네 집옆이 우리집.
오래전 절이었던 빨간 커다란 나무대문의 집이 나온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니은자로 꺾인 아랫채와 라일락이 두그루 심겨진
작은 화단, 결코 물이 차지않았던 작은 연못이 있는 마당, 축대위로 네계단을
올라가 있는 윗채. 축대밑, 윗채 마루 밑에 있던 작은 창고. 윗채에 붙어있던
부엌위 작은 다락. 분명 불상을 놓았었을 자리의 네발달린 TV, 엄마의
화장대.
윗채와 아랫채 사이 조그만 통로를 따라 가면 뒷뜰이라고 불렸던 작은 텃밭들이
나오고 거기서 기르던 닭들이랑 저녁때 몇개씩 나오던 달걀.
뒷뜰 위쪽의 앵두나무. 그리고 돌담. 그 담이 경희궁의 담이라는건 내가
중학교를 들어가서야 알 수 있었다.

그 돌담뒤에 무엇이 있는지 정말 궁금했었다. 상당히 높이 올라가 있는 우리집
지붕보다도 더 높이 솟아있는 담만으로 모자라 그위에 더 높이 철조망까지
붙어있는 그 담뒤엔 정말 멋진 고궁이라도 있겠지 싶을 뿐이었다.
우연히 차를 댄 곳. 바로 그 골목의 허리가 잘린, 그래서 그 골목을 똑바로
쳐다볼 수 있게 한 곳이었다. 그런데...그 담이 보였다. 보일리가 없는
그 담의 밑부분까지 일직선으로...문득 생각해 보니...그 어느 곳에도
내 기억속의 동네는 이제 없었다. 그냥 고층아파트를 일요일에도 열심히 짓고있는
현장만 있을 뿐.
경희궁 담밑에는 포크레인이 이리저리 움직이고 구멍가게 자리에는 현장사무소
가건물이 있고 우리집, 내방이 있던 자리엔 변압기가 하나.
"범표사장네집"도 담이 없어진 채 임시로 얼기설기 짠 판대기들이 대어져 있어
처음으로 그집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있었다.
현장사무소 건물은 거의 자기네가 짓는 아파트만큼이나 크게 만들어져 있었다.
높은 곳에 3층이나 되어 그 옥상에 올라가면 그 경희궁의 담 너머에 뭐가
있을지 보일 듯 했다.......결국 올라가지 못했다. 기억이 아름다운 것은
무언가 풀리지 않는 신비로움이 있기 때문이다...
해가 완전히 뜨자, 참 환한 햇살이라고 내뱉던 라디오처럼.."경희궁의 아침"이라 크게 적힌 회색빛 공사장의 간이벽만 눈에 차고...
나는 19살을 한꺼번에...... 먹어버렸다.
Comment '5'
  • pepe 2001.12.23 22:51 (*.205.35.184)
    와... 한번 가보고 싶네요...^^ ... 저도 옛날에 살았던 집이 생각이 나요... 궁녀들이 제 시중을 받아주었던 아련한 기억이...ㅋㅋㅋ
  • 신동훈 2001.12.23 23:27 (*.106.172.167)
    뻬뻬야...너 내시였자나 ㅋㅋㅋ
  • bell 2001.12.23 23:54 (*.187.10.110)
    글로 그림을 이렇게 잘 그리시다니.....
  • 병서기 2001.12.24 15:11 (*.254.32.85)
    엉아, 젖죠...
  • 호빵 2001.12.24 15:18 (*.74.101.140)
    --+...굶주렸군..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800 "잠적"이 아니라...."휴식"중임. 5 뽀짱 2002.02.08 2801
799 신작 겜!!! 기타크래프트 오리지날 "아그레망 기타 전투단" 소개 좀... ㅋㅋ 10 file 신동훈 2001.11.22 2797
798 모두들 수고하셨어요... 5 대현아빠 2002.10.12 2795
797 ☞ 제 작업실은 음악과는 전혀 상관없는 인형들만...... 이재화 2000.11.12 2794
796 환장하겄네~~~~ --+ 7 신동훈 2001.10.20 2782
795 집을 지은거 무지하게 축하드립니다. 이재화 2000.11.10 2779
794 아그레망 여러분들 모두 잘 지내고 계신지... 2 pepe 2003.05.16 2775
793 ... ^^ 4 김은경 2002.02.20 2771
792 연주회 사진(1)...다 함께 1 file 작은곰 2002.10.14 2764
791 형서기님.... 2000.11.12 2761
790 울집 집들이 4 빨간추리닝 2002.10.29 2759
789 연주회 잘봤어여 곰팽이 2000.11.11 2759
788 글라주노프 "봄" 악보 발송완료!!! 2 신동훈 2002.08.03 2756
787 김현주... 지대포... 6 김영범 2003.08.04 2755
786 몬스터 주식회사 봐써여~~~ 5 bell 2001.12.30 2755
785 형석님...흐흐.. 아그레망 여러분도..^^ 김경원 2000.11.12 2754
784 아래 엽기적인 사진을 되새기며... ㅡㅡ;; 1 file 신동훈 2002.03.22 2753
783 질문! 2 땡초 2002.07.21 2752
782 앗!죄송...^^ 1 지윤맘 2002.10.07 2750
781 ☞ 천안에서 원정가면... 광범 2000.11.21 2748
780 이제 막... 5 엽끼 2002.10.31 2744
779 회원들의 불만이 하늘을 찌르는군여!!! ㅡㅡ+ 신동훈 2002.06.24 2742
778 Be Happy!!! 4 신동훈 2002.08.16 2741
777 어느 달걀의 처절한 죽음...ㅡㅡ;; .... 퍼왔슴돠...^^ 7 file pepe 2002.04.19 2741
776 박철의 두시탈출에서... (펌)***히딩크의 운명****웃겨서 쓰러짐 2 신동훈 2002.05.30 2736
775 아 ~ 그래~? 망! 3 오모씨 2003.12.15 2735
774 일정이 바껴서.. 형서기 2000.11.12 2728
» 경희궁의 아침. 5 형서기 2001.12.23 2725
772 아그레망 광주지역 팬클럽 창단.. 지우압바 2000.11.21 2724
771 나두 갖구 싶은 기타... --+ 1 뽀짱 2002.10.15 2722
Board Pagination ‹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 33 Next ›
/ 33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Powered by Xpress Engine / Designed by hikaru100

abcXYZ, 세종대왕,1234

abcXYZ, 세종대왕,1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