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미덕 "기다림의 습관" 회복하기 - 다산포럼에서 펌글

by 마스티븐 posted Apr 03,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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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의 습관 회복하기 

김 영 죽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 책임연구원)

며칠 사이 봄기운이 제대로 감돈다.

이렇게 3월이면, 필자는 운 좋게 풋풋한 학생들과 고전을 읽을 수 있기에 항상 감사하다. 

함께 읽는 텍스트를 새롭고 발랄한 안목으로 접근하려는 그들의 거친 시도 또한 매력적이다.

때문에, ‘가르친다’라기보다는 ‘함께 공부한다’라는 말이 가장 적실할 것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이 행복한 관계 사이로 엄청난 라이벌이 등장했다. 

이름 하여 ‘스마트폰’이라는 존재다. 

강의 시간 동안 계속 만지고 있거나 수시로 확인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특별한 일이 있어 그러는가 하면 딱히 그것도 아니다.

한 학생만을 지적할 수는 없는 일이다. 모두가 그런 환경에 노출되어 있으니 말이다.

요컨대, 스마트 폰이 가져다 준 ‘정보통신의 신속함과 편익’ 이면에는 

 사용자의 조급함과 불안함이 수반되는 것이 아닐까 걱정되기도 하다.

기다리면 꽃 피는 소리도 들린다


이런 상황에서 생겨난 노모포비아(nomophobia)라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휴대폰[mobile]이 없으면[no] 공포[phobia]에 휩싸이게 된다는 뜻의 신조어이다.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Bernard Werber)의 글 가운데

정보통신의 고속화가 초래하는 부작용을 묘사한 부분이 있다.


“인터넷을 통해 언제 어디서든 즉각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게 됨으로써 

 특히 젊은이들의 집중력과 사고력이 저하되고 있다.

 필요한 정보는 언제든지 기계를 통해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 더 이상 기억하려 하지 않는다.” 


소설의 한 부분인지, 뉴스 기사의 한 대목인지 모호하리만큼 핍진하다.

내 손에 어떤 기기도 들려 있지 않고, 그저 언제 어디서 만나자라는 말 한마디로 약속 했던 시절이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우리는 너무 짧은 기간 동안 ‘기다림’의 습관을 잊어버렸다.

그리고 사람이든, 사물이든 그것의 본질을 알아내려 ‘숙시(熟視)’하는 방법에 점점 서툴러지고 있다.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한 ‘기다림’은 번거롭고 답답하다.

또한 오랜 시간을 두고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본질은 파악되지 않는다.

“청개화성(聽開花聲)”, 즉 “꽃 피는 소리를 듣는다”는 말이 있다.

흔히, 옛 선비들의 ‘풍류’로 알려져 있지만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이는 단순한 ‘유희’로만 치부될 것이 아니다.

“꽃 피는 소리”를 어떻게 듣는가. 다산 선생은 ‘서지상하(西池賞荷)’라 하여 

 서련지(西蓮池)에 핀 연꽃을 보는 것만으로도 더위를 잊을 수 있다고 했다. 

 이른 새벽, 지금의 서대문 터 연못에 선비들이 발걸음 한다.

 연꽃봉오리들이 즐비한 가운데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어느 순간 형용키 어려운 맑은 음이 들리는데

 바로 봉오리가 터지며 연꽃이 피는 소리이다.

 다산 역시 이를 즐겼을 것이다. 


 오늘날엔 상상할 수 없는 ‘기다림’의 향연이다.

 신 새벽 연꽃봉우리와의 만남에도 이렇듯 정성과 시간을 쏟았으니, 

 사람과의 만남에서는 어떠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가끔, 내 손 안에 있는 그 빠른 녀석이 

 시간과 공을 들여야만 도달할 수 있는 길을 방해하고 있지 않은가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정성과 시간이 필요한 것도 있기에

 이 천변만화(千變萬化)하는 세상에 나 혼자 고립되어 살 수는 없다. 

 스스로를 유배하는 삶이 아닌 이상,

 물론 여기에는 원만하고, 긍정적인 관계의 지향이라는 모두의 기대치가 있다.

 본래 ‘통신’이라는 것도 사람과 사람사이를 연결시켜 주려는 시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스마트 폰을 위시로 한 통신기기들의 역기능만을 공격하자는 의미는 아니다. 

 필자 역시 SNS를 이용한다. 순기능 혹은 역기능은 모두 사용자가 만들어내는 부차적 결과이다. 

 그 효율성이 극대화된 지금, 기기를 통한 연계는 자연스럽고,

 직접 누군가를 마주하는 것은 더욱 낯설어졌다. 

 자신에게 주어야 할 것은 ‘최신기기’가 아니라 기다리고 숙시(熟視)하는 끈기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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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시..... 
요즘 봄꽃들이 정신없이 피고 있더군요.
개나리와 산수유, 벚꽃, 진달래 등등이 한꺼번이 피고 있습니다.
원래는 최소한 10여일 차이를 두고 피었었지요.
자연도 기다림이 사라진건지 아니면 기후가 그것을 혼란스럽게 한 것인지...
후자가 맞겠지요.
사람사는 사회도 그런가봅니다.

빠른 시일내에 휴대폰 놓고 하루 종일 나무아래서 지내봐야 겠습니다.
혹시 나무가 물 먹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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