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개 한 마리.

by 으니 posted Jul 31,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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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들도 착하게 생긴 개는 따로 있다. 촉촉한 까만눈동자가 가득한 눈에, 살짝낀 눈꼽이랑, 주인을 똑바로 쳐다보거나 하지도 않고 약간 고개를 기울이며 설설기어와서 꼬리를 치는. 그런 착한 개가 따로 있다. 어릴 때부터 집안식구들이 개를 너무너무 좋아해서 개와 더불어 생각나는 이야기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지만, 복날이 되니 갑자기 "난식이" 생각이 난다.

난식이는 우리집 개가 아니고, 아빠가 원목으로 계시던 시골 수련원에 있는 개였다. 그곳엔 난식이 뿐만 아니라 두마리의 개가 더 있었는데, 엄마개가 흔하지 않았던 이유로 여왕 대비마마 행세가 유난했던 "난난이" 그리구 진도개의 피를 멀리멀리 이어받아서 어쨌든간 그동네짱으로 군림하고 있던 "진돌이" 였다. "난식이"는 이러한 구도 속에서 밀려나 눈치밥이 늘어버린 개였다. 그리 못난 개도 아니었건만 웬지 껑충한 다리와 홀쭉한 볼이 늘 당당한 진돌이나 코에 잔뜩 힘을 준 난난이랑은 달랐다. 이러한 난식이의 비애는 이름에 이미 배태되어 있었다. "난난이"의 이름은 새끼를 두번 낳아서 난난이인데, 나름대로는 의미가 담긴 이름이었다. 난식이.. 난난이의 "난" 자 돌림으루 그냥 붙여진 이름이다. --;; 난난이는 진돌이가 애인이면서도 늘 궂은 일은 난식이를 시켰는데, 난식이는 별 불만 없이 왔다갔다 하는 게 참 순한건지 바보인건지.

우린 짧게는 한두달에 한번, 방학 때는 길게 그 수련원에 내려가길 좋아했구, 이러한 구도를 파악하는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당시 나는 국민학교 5학년이라서 6학년이 되어 "자유연구과제"로 출품할 나비 채집에 열을 올리고 있었는데, 큰 방충망을 둘러매고 나서면 늘 세 마리의 개들이 따라왔다. 난난이와 진돌이는 저 멀리 앞서 달려가면서 자기네들끼리 "나 잡아봐라" 모드인데, 난식이는 꼭 내 곁에서 떨어지질 않고 왔다갔다 왔다갔다 했다. 나를 뱅뱅 돌면서 쫓아왔기 때문에 아마 내가 이동거리가 4-5km 정도였다면 난식이는 그 두배는 뛰었을 것이다. 웃긴 것은 나비를 잡으려고 내가 긴장을 하면, 난식이도 몸을 낮추고 긴장을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딱 내가 나비채를 휘두를만하면, 난식이가 컹 하고 짖으면서 나비쪽으로 몸을 날리는 것이다. 나는 난식이 때문에 기생나비라든가 제비꼬리나비 등 잡기 힘든 나비들을 몇번 놓쳤는데 떼어놓고 나오려 해도 기를 쓰고 쫓아와서 할 수 없이 같이 다니곤 했다.

그래도 내가 이층 숙소로 올라오면 계단 위에까지 쫓아와서 문 밖에서 이슬내릴 때까지 자구 가는 건 난식이었다. 난식이가 바로 그런 착한 개였다. 난식이 이리와, 이러면 일단 앞발을 구부리고 살살 기어온다. 그리고 고개를 똑바로 들이밀지 않고 약간 기울이면서 옆으로 누울 듯 하고, 주먹만한 개념없는 강아지들이 가끔 내 손을 꽉 물어 아프게 한 것과 달리 손가락으로 입을 간질여주면 힘을 주지 않고 살살살살 물어본다. 정말 정말 바보스럽게 착한 개였다. 절대 나한텐 짖지 않고, -아마도 나의 적이라 생각되는- 나비에게 짖는 개. 바보같아 구박받으면서도 꼭 문밖을 지켜주는 착한 개였다.

다음 해 여름방학 때 내려가보니, 난식이가 없었다. 나는 동네에 놀러갔는 줄 알았는데 저녁이 되어서도 안 보여서 물어보니 복날 잡아버렸다고 했다. 지금이야, 날이 하두 더우면 내 입에서도 "어휴 정말 삼계탕이라도 먹어야게따" 이런 소리가 나온다. 언제 이게 "멍멍탕"으로 바뀔지.. 그것은 시간문제가 아닐까 하는 불안한 생각도 든다. 그러나 당시에 복날 개를 잡는다는 건 정말 원시인들이나 할 짓이며 차마 사람으로 할 짓은 아니었기에 나의 충격은 대단했다. 여전히 러브러브 모드인 난난이와 진돌이를 보면서 새끼를 낳아 여기저기 팔거나 할 수 있는 암컷도 아니고, 좋은 혈통의 피가 섞인 것도 아니고 쉽게 말해 별볼일 없는 개라서 먼저 잡혀버린가 하는 생각에 더욱 마음이 아팠다. 나는 난식아.. 를 목놓아 부르면서 울었다. 수련원 아저씨가 와서 "그런 개는 흔하니까 그만 울어라"고 하는 말엔 더욱 대성통곡했다.

난식이 같은 개.. 흔하지 않다. 개란 원래 고양이에 비해 주인에게 충성스럽기 마련이지만, 그렇게 속에서부터 주인을 다 믿어버리고 정말 진심으로 따르는 개.. 흔하지 않다. 그렇게 멍청하면서 하나만 아는 개 흔하지 않다. 나한텐 과제를 더욱 멋지게 해주었을 나비를 잡는데 늘 걸리적거리던 난식이였지만 그건 난식이가 나를 좋아해서 딴에는 자기두 같이 한다는게 그렇게 되었을 뿐인 것이었다.

난식이.. 내가 너 때문에 아마 아줌마가 되어서도 멍멍탕을 못 먹을 거 같다. 넌 서울누나를 기억하는지?






아참.. 그렇게 착한 개 또 하나 있다.
웅수형네 아지..  
아지는 아마 이름을 난난이 식으로 짓는다면
"난난난난난난난난이" 정도가 될 것이다.
나만 보면 눈물이 그렁그렁해지는 웅수형네 아지..
웅수형네 집 개이면서도 꼭 내가 주인인거같은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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