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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itarMa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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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밟은 이라크 땅 - (1984 ∼ 1987)

중동지역의 공사현장 상황은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어느 정도의 긴장이 필요하다.

많은 건설현장이 산재하였고 사막의 열기처럼 현장분위기도 이글거렸으므로

크고 작은 사건이 그칠 날이 없었다.

이라크 행 비행기의 창 너머로 사막이 끝도 없이 내 뒤로 밀려갔다.

나는 좌석에 등을 기대고 앉아 생각에 잠긴다.

전쟁의 땅 이라크.

나는 1982년에 바그다드에 부임하여 83년에 잠시 떠났다가 2년 만에 무거운

마음으로 이라크 땅을 다시 밟게 된 것이다.

 

 

 

1. 근로자들의 시위 :

우여곡절 끝에 카타르 국립대학신축공사가 마무리 되어가고 있었다.

현장에 나와 있는데 급한 연락이 왔다.

내게 전해진 소식은 이라크에서 근로자들의 시위가 발생했으니 수습을 위해

교체소장으로 발령한다는 것이다.

 

이라크에서 진행 중인 북부철도공사는 현대건설과 정우건설이 컨소시엄으로

수주한 공사였다.

신설철도의 연장이 250km나 되므로 두 회사가 지분을 나누어 맡았다.

250km에 걸친 철도공사와 신호통신공사는 현대건설의 토목사업부와 전기사업부가

주관하였다.

티그리스강의 교량과 키르쿡(Kirkuk) 역사 및 부속주택은 정우건설이 맡았다.


내가 맡은 공사는 건축공사로, 베이지(Baiji) 시에 주역사와 화물 하차장, 각각

넓이가 10,000제곱미터나 되는 4개 동의 기관차, 객차, 화물차와 특장차 공작창이 있다.

베이지 역사 앞에는 역무원 주택 120채도 신축해야 되었다.

또 베이지로부터 서쪽 40km에 있는 와디, 그리고 170km에 위치한 하디다에도

역사와 역무원 주택을 신축하던 중이었다.

그리고 매 20km마다 간이역도 지어야 되는 방대한 규모였다.

이런 공사가 노사 간의 문제로 틀어지게 된다면 분명 우리 회사는 막대한

손실을 입게 될 것이었다.

 

 

베이지 본부에 도착해서 내가 먼저 한 일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파악하는 일이었다.

사태의 경위는 이러했다.

시위의 시작은 미장반이었다.

주역사의 부대공사인 120채의 주택 천장에는 회반죽 미장을 발랐다.

그런데 이것이 갈라지고 떨어지기 시작하자 전임 소장이 근로자들에게 약속했던

능률급을 주지 않겠다고 하였다.

이에 반발한 미장반이 시위를 일으키게 된 것이다.

이럴 때 현장책임자의 판단과 결심은 아주 중요하다.

아직 젖어있는 콘크리트 지붕바닥 아래 면에 회반죽을 바른 것은 시기상조였으므로

미장반의 잘못이 아니라는 판단이 섰다.

상황을 파악한 나는 능률급을 지불하기로 결심하였다.

소요는 즉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2. 감리단장의 전폭적인 비호 :

나는 컨설턴트의 단장에게 인사를 하러 갔다.

사무실에서 도면을 보고 있던 단장이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맞았다.

“반갑습니다. 이번에 새로 오셨군요.”

감리단장은 독일 철도기술회사 소속이었는데, 지적인 미모가 돋보이는 여성이었다.

그녀가 웃으며 내게 인사를 건넸다.

나는 교체 소장으로 부임하였기 때문에 그녀에게 어떻게든 일을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다는 인상을 주어야만 했다.

나는 믿음직스럽게 웃으며 인사를 마주 건넸다.

그녀는 의자를 내주고 커피를 잔에 가득 부어 주었다.

“이미 아시겠지만, 상황이 좀 난감해요.”

단장 미시즈 오일러는 시원스러운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녀는 내 눈치를 잠시 살피는 듯하더니 곧 주택의 갈라진 천장 문제를

끄집어냈다.

천장을 미장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갈라져서 곤란하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우선 현장을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사실은 이미 다 둘러보았다.

그녀는 나를 현장으로 안내했다.

단장의 말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현장에서 둘러본 천장은 대부분 갈라져 있거나 때로는 바나나처럼 쩍 벌어진

곳도 있는 지경이었다.

단장의 찌푸려진 미간이 그녀가 지금 겪고 있는 곤란함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듯 했다.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천장 미장을 모두 털어내고 재시공 할게요.”

그 말을 들은 단장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나를 바라본다.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싱긋 웃으며 덧붙였다.

“그 대신, 이번에는 회반죽이 아닌 시멘트 모르타르(Mortar)로 미장 하겠어요.”

단장 입장에서는 회반죽이냐 시멘트냐는 큰 문제가 아니었으리라.

그녀는 얼떨떨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환한 웃음을 지으며 내 손을 잡았다.

부드럽고 매끈한 감촉이 느껴졌다.

계속해서 골치를 썩이던 천장과 시위 건이 이렇게 간단히 해결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는 태도였다.

단장과 나는 그날부터 급속히 가까워졌다.

리는 매일 아침 단장 사무실에서 커피를 마시며 회의를 거듭했다.

공사에 관한 중요 사항은 우리 두 사람이 대부분 처리했다.

신뢰감이 쌓이는 속도는 빨랐다. 대화에 미소가 섞이는 만큼 공사의 진척도

빨라졌다.

 

하루는 단장이 화물 하차장에 같이 가지 않겠냐고 묻기에 따라나섰다.

현장에 도착하자 단장은 나를 10cm 두께로 세워진 시멘트 블록 벽 앞으로

안내했다.

하차장의 벽체는 높이가 4.5m였다.

단장이 난감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사실 이건 저희 측의 설계 착오예요. 어떻게 좀 할 수 없을까요?”

나는 변경된 설계도를 주면 재시공하겠다고 말했다.

이 말에 단장이 내 팔을 잡았다.

새로운 설계도를 달라는 나의 말에 단장이 몸을 낮추고 속삭였다

“설계 변경 없이 도와줄 수는 없나요?”

사실 벽체 길이도 20m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재시공의 범위가 그리

대단치는 않았다.

설계 변경은 훗날 공사기간과 공사비 보상 클레임의 빌미가 된다.

또한 이라크 철도청 측의 신용을 잃게 되어 난처하므로 이걸 꺼리고 있음을

알아챘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벽을 철거하고 보강하여 재시공하겠다고 흔쾌히 대답했다.

단장은 매우 기뻐하며 내 손을 덥석 잡았다.


호의는 빠르게 큰 보답이 되어 되돌아왔다.

다음 날 단장 사무실에 커피를 마시러 가자 단장이 나를 반기며 말했다.

“혹시 제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말해줘요.

그동안 소장님이 도와주신 게 얼마인데 그냥 넘어갈 수는 없지요.”

듣던 중 반가운 말이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갈라졌던 회반죽에 대해 단숨에 설명했다.

“콘크리트에는 경화 작용에 필요한 결합수(水) 외에도 잉여수가 있다.

15cm 두께의 지붕 바닥 콘크리트 속의 잉여수분이 완전히 마르려면 75일 정도는 걸린다.

덥고 건조한 이라크의 기후를 감안해도 2개월은 걸릴 거다.

알다시피 사택 공사는 철도청의 요구로 공사 기간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다.

독일철도기술회사가 설계한 회반죽은 분명 독일 기후에는 적합하겠지만 열대성

건조기후인 이라크에서는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천장 콘크리트가 젖어있는 상태에서 회반죽을 바르면 미장 면이 뜨겁고 건조한

외기에 의해 급속히 말라버린다.

속은 젖었는데 밖은 마르니 회반죽 미장은 굳기도 전에 갈라져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단장은 입을 작게 벌리고 내 말에 귀를 기울였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숨을 몰아쉬고 이어서 말했다.

“나는 전에도 이런 경험이 있어서 알고 있었지만, 처음에 얘기 하지 않은 이유는

단장과 협력하고 싶어서였다.

그래서 나는 재시공을 하겠다고 말한 것이다.

시멘트 모르타르(Mortar)로 하겠다고 한 것은 시멘트가 수경성이기 때문이다.

천장이 젖어도 경화에는 문제가 없다.”

미소 띤 얼굴을 본 단장이 내게 와서 뺨에 입을 맞추었다.

미시즈 오일러를 내 편으로 만든 순간이었다.


그 뒤로 대부분의 공사는 단장의 전폭적인 비호 아래 진행되었다.

단장은 나의 일이라면 두 팔을 걷어붙이고 도왔고, 결국에는 지나치게 도우려다가

현장에서 쫓겨나 귀국 조치를 당하고 만다.

 

자랑할 만한 일은 아니지만, 당시 나는 승용차 2대를 사용하고 있었다. 한 대는

네 바퀴 굴림인 Nissan patrol(산타페와 비슷)로 비포장상태인 현장에서 주로

사용 했다.

일반 승용차는 모래사막에 빠지면 못 나오기 때문이다.

다른 한 대는 시보레 카프리스 대형 세단으로 230km나 떨어져 있는 바그다드

철도청의 월례회의에 나갈 때 타는 차다.

대규모 공사를 맡은 무디르(소장)의 품위 유지용이기도 하지만, 아랍인들은 그런

무디르를 존경한다.

당일에 왕복하려면 시속 180km 이상으로 달려야 하루를 벌 수 있었다.

물론 운전기사의 솜씨이지만 그만큼 안전한 차였다.

여자단장은 어찌해서든지 당일에 돌아와야 하므로 내차에 동승하곤 하였다.

우리 생각으로는 오해받기 딱 알맞으나 서구인들은 그런 건 신경 쓰지 않는다.

 

많은 일들이 인간관계를 어떻게 쌓느냐에 따라 쉽사리 풀리고는 한다.

중동에서의 오랜 생활은 내게 이런 교훈을 안겨주었다.

 

 

3. 비정한 현장책임자 :

현장에서 2건의 안전사고를 수습한 얘기이다.

오후 낮잠시간에 안전담당 직원이 숙소의 내 방문을 두드렸다.

근로자 몇이 휴식시간에 현장 바로 옆에 있는 티그리스 강으로 수영하러 나갔는데

한 근로자가 뛰어들더니 떠오르지 않더라는 것이었다.

익사자를 못 찾으면 유가족에 대한 면목이 없어지므로 나는 모터보드를 수배시키고

황급히 티그리스 강으로 달려 나갔다.

근로자가 뛰어든 곳에서 물살을 어림잡아 여기서부터 아래쪽 50m까지 수색하자고 말하였다.

그런데 함께 달려온 근로자들이 머뭇거리면서 아무도 옷을 벗지 않는 것이었다.

할 수 없이 내가 먼저 옷을 벗고 강으로 들어갔다.

그제야 근로자들도 따라 들어왔다.

“으악! 여기 있다.”

다행히 익사체는 떠내려가지 않고 뛰어들었던 장소 바닥근처에 파인 웅덩이의

수초에 걸려있었다.

 

 

바그다드에서 우리 현장이 있는 베이지 시까지 연결된 도로는 고속도로가 아닌데도

평소에 시속 180km로 달리는 위험천만한 도로이다.

현지인들의 마구 달리는 습성은 못 말린다.

갑자기 관리부장이 달려와 차량추돌사고 보고를 했다.

앞서 가는 트레일러를 우리 근로자가 포니픽업을 몰고 따라가다가 트레일러가

멈추는 바람에 트레일러의 적재판 아래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그는 본대로 운전석 바닥에 떨어진 머리를 설명하다가 ‘욱’하고 토하는 것이었다.

 

현장책임자는 어떤 일을 당하여도 눈물이나 흘리고 넋이 나간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되겠다.

장례를 앞두고 이런 냉정한 조치를 한 나는 참으로 비정한 사람이다.

- 사망진단서와 여권은 언제까지 받을 수 있느냐?

- 냉동관을 즉시 수배할 것.

- 제일 빠른 항공편을 예약할 것.

- 유족에게 알리기 위한 본사보고는 6하의 원칙에 의해 아주 간단히 할 것.

- 관리부장은 새마을 회관에 빈소를 차리고 음식을 충분이 제공할 것.

- 애도기간 동안 담당 공구장은 근로자들이 동요하지 않도록 안정시킬 것.

 

 

어느 몹시 덥고 건조하던 날 설비창고에 화재가 발생하여 창고건물과 그 안에 있던

보온재 등의 잡자재가 전소되었다.

선적서류와 재고 현황 중심으로 피해액을 산정하여 현지 화재보험에 제출하였다.

한편 공사에 필수적인 자재의 리스트를 만들고 타 현장에 있는 재고를 조사하였다.

보험청구액은 30만 불이나 되었지만, 타 현장에서 감가 상각하여 이체 받는 자재가액은

10만 불 정도였다.

나는 전화국까지(이란과 전쟁 중이라 일반전화는 불통) 달려가서 본사의 본부장에게

보고한다.

- 현장의 설비 창고에 화재사고가 났는데 좋은 일도 약간 있다.

- 필수자재는 마침 타 현장에 있는 재고를 이체 받아 사용하면 공사수행에 지장은 없다.

- 타 현장에서도 필요한 자재는 우리현장에서 먼저 빌려 쓴 다음 수입하여 갚아주면

공기에 지장이 없다.

- 발주처와 컨설턴트도 이해하고 있으므로 대외적인 문제는 없다.

- 약 30만 불을 보험회사로부터 보상 받을 예정이나, 실제로 공사에 필요한 예산은 10만 불

정도이므로 약 20만 불이 절감된다.

본부장은 이에 약식으로 간단히 보고할 것에 동의 하였다.

 

 

당시 중국에서는 철도사업의 경험을 쌓기 위하여 철도부장(장관)급의 인솔 하에 150명이 넘는

중국기술자들을 이라크에 파견하였다.

이들은 독일 컨설턴트의 상위기관인 철도청에 소된 현장 검사원(Inspector)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이런 체험을 활용하여 오늘 날 중국의 철도공사가 성장일로에 오르게 되었다.

철도청에서 파견된 감독(Resident Engineer)은 여자인데 중국인 검사원을 지휘하는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중국인 검사원의 실력이 부족하여 중요한 검사는 그녀가 일일이 간섭 하였으므로

공사수행이 무척 까다로웠다.

매일 아침 7시부터 콘크리트 생산 공장(Batch plant)에서 콘크리트를 비비기 시작하여 45분이

경과되면 콘크리트의 경화작용 때문에 못쓰게 되어버린다.

R.E.가 현장에서 철근배근 상태를 지적하는 동안 시간이 지연되어 콘크리트를 내다버린

일이 생겼다.

나는 R.E.를 단단히 혼내주기로 작정한다.

먼저 현장의 담당기사에게 양해를 구했다.

아침에 현장에 나가봐서 R.E.가 버릇처럼 작업을 지연시키는 게 눈에 띄면 내가 담당기사를

야단치면서 떠밀기로 각본을 짰다.


예상대로 R.E.가 잔소리를 시작한다.

나는 다가가서 사정을 듣고나서 이건 우리 잘못이라고 호통치면서 담당기사를 떠밀어버렸다.

아뿔싸! 마침 철근 위에 서있던 담당기사가 철근에 발이 걸려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당황한 R.E.가 사무실로 찾아와 자기가 시간 개념이 부족하였음을 사과하였다.

담당기사는 3일간을 숙소에 틀어박혀 출근을 안했다.

 

 

 

4. 티그리트 수비대에 연행되다 :

휴가에서 복귀하고 보니 내 사무실 책상 위에 있던 고정식 무전기가 없어졌다.

직원들은 내가 돌아올 때까지 마냥 기다렸단다.

참말로 딱한 직원들이다.

현장간의 거리가 250km나 되므로 철도청의 특별 허가를 받아 설치한 무전기였다.

전화도 안되던 그 시절에 고성능 워키토키(Walkie-Talkie)는 철도공사 수행에는

필수품이었다.


탁상고정식 무전기는 장거리 교신이 가능하다는데 문제가 있었다..

티그리트 수비대에 도난 신고를 하자 나는 연행되어 구속되고 말았다.

티그리트 시는 당시 대통령이던 사담 후세인의 고향이므로 수비대는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군경업무를 통합관리하고 있었다.

죄목이 '이적행위'가 된다는 것이다.

당시 이란과 전쟁 중이었으므로 간첩의 교신 장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내가 북부철도공사 소장이라는 점을 감안하여 최선의 예우로 유치장 대신

수비대 건물 내로 활동을 제한하였다.

불편하지는 않았으나 한심하였다.

도난 당한지 2주일도 넘었는데 즉시 처리하지 않고 있다가 나를 붙잡혀가게

하다니?


사무실 주위를 둘러보니 수비대 사무실 내부가 너무 헐었다.

전등도 꺼진 게 많았다. 나는 수비대장에게 말했다.

“건물 내부에 칠 한번 해줄까?”

“정말? 얼마나 걸리는데?”

“오늘 밤에 다 끝낼게. 그리고 전등도 갈아 줄게.”

밤새 칠이 다 끝났다, 아침에는 전등도 바꿔주었다.

수비대장은 너무나 좋아서 사무실로 나를 안내 하였다.

“그냥 이 방에서 차나 마시면서 나와 함께 지내자.”

조사는 계속되었지만 철도청에서 보증을 서주어 다음날 나는 석방되었다.

“하여튼 빨리 나오게 해줘서 수고 많았다.”

직원들은 나를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하였다.

 

 

5. 나를 살린 에스트렐리타 :

천신만고 끝에 드디어 어렵고도 복잡한 공사를 준공시키기에 이르렀다.

전쟁 속에서의 위험, 철도청의 자국민 우선주의, 독일 감리회사의 신랄함,

250km에 걸쳐 산재한 현장통솔상의 어려움, 근로자의 집단소요, 열대지역의

작업조건과 자금난 등 완전히 기진맥진한 끝에 거둔 성과였다.

이제는 그리운 가족들에게 돌아갈 수 있으리라, 마음 설레고 있던 87년 9월

어느 날이었다.

 

그러나 뜻밖의 전문이 들어왔다.

그 현장은 준공되었으니 아랫사람에게 인계하고 그곳을 떠나, 공사는 끝났지만

장기간 완공을 보지 못하고 있는 2개의 문제 현장으로 가서 어떻게 하든지

완공시켜 하자보증금을 찾아 갖고 귀국하라는 본사의 지시를 받게 되었다.

철도공사를 준공시키면 귀국할 줄 알았던 내게는 뜻밖의 전문이었다.

 

멀리 사방에 둘러쳐진 지평선을 배경 삼아 내 차는 아까부터 북녘을 향해

달리고 있다.

왼편에는 광야를 가로지르는 수로를 따라 무성히 자란 갈대숲이 있고,

오른편에는 대추야자 나무들이 듬성듬성 펼쳐져 있는 끝없는 벌판이다.

차는 바람에 파도처럼 일렁이는 갈대숲을 스치듯이, 뒤로는 붉은 흙먼지를

휘날리며 지평선 저 멀리 작은 섬처럼 보이는 언덕을 향해 달려간다.

얼마를 달려서 수로를 벗어나 산등성이 길로 들어섰다.


“내가 늘 어려운 일도 마다 않고 순순히 처리하였더니 이 마당에 또 어려운

일을 골라서 맡기시는 겁니까?”

티그리스 강을 끼고 니느웨 성터가 내려다보이는 동편 언덕에 서서 이렇게 마음

속으로 불평을 하고 있을 때 성경 요나서의 말씀이 떠올랐다.

“이르시되 너의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요나서 2:4).” 나는 지친 마음으로 문제의

현장으로 가는 도중에 니느웨 성터에 들러 하소연을 한 것이다.

 

문제의 현장에 도착했을 때 나를 반긴 것은 까마귀 떼였다. 

넓은 사막이 펼쳐진 가운데, 아직 입주하지 않아 텅 빈 아파트 건물들이 우뚝

서있었다.

벌건 하늘을 배경으로 듬성듬성 서있는 콘크리트 건물들은 을씨년스러웠다.

무언가 먹을 것이 있나 하고 인적 없는 공사 현장을 까마귀 떼가 기웃거리며

몰려다니는 모습은 그 휑한 분위기에 한 몫을 단단히 했다.


사마라(Samara)와 팔루자(Fallujah)에 있는 2개의 아파트 공사 현장은 작은 도시와

맞먹는 대규모 공사였지만, 이제 남은 인원은 모두 합해서 직원 2명과 근로자

10여 명이 전부였다.

나를 맞이하러 나온 그들의 얼굴에는 머쓱함과 피로함이 가득했다.

나는 팔루자 숙소에 짐을 풀고 피곤한 몸을 뉘였다.

하루씩 사마라와 팔루자를 오가는 고달픈 생활의 시작이었다.

나는 오랜 타국 생활로 잔뜩 지쳐있었다.

 

엊그제 따온 모과가 말라서 한쪽이 거무스레해질 무렵, 전혀 해결의 기미조차

찾을 길 없었던 문제들이 뜻밖의 방법으로 풀리기 시작하여 11월 중순에는

완결을 짓게 되었다.

76년에 해외근무를 처음 시작하여 2년, 그 다음에는 3년 반, 이번이 세 번째로 어언

5년이 되어간다.

한시 바삐 집으로 날아가고 싶었다.

가장 빨리 탈 수 있는 비행기가 11월 29일에 있어 예약했으나, 나는 마음을

바꿔먹었다.

11월 말보다는 한주 후인 12월초 쯤이면 확실히 귀국 승인이 날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지금부터의 일은 다시 생각해도 머리가 어찔하고 하나님께 감사드리게 되는

사건이다.

나는 고향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매일 밤 숙소에 누워서 가족들의 사진을 어루만지다 잠이 드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이 일이 내 목숨을 구하게 될 줄은 당시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날짜가 정해지지 않았다면 모를까, 정해졌던 날짜가 미뤄지자 외로움이 텅 빈

가슴 속을 사정없이 파고들기 시작했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홀로 앉아 하루 종일 성경을 읽고, 밤이면 숙소에서

기타를 안고 외로움을 달랬다.

아내와 성경 통독을 약속했던 일이 떠오른 까닭이다.

나는 밤마다 최근에 연습한 ‘에스뜨렐리타(Estrellita)’를 치고 또 쳤다.

이번에 집에 가면 아내 앞에서 이 곡을 멋있게 들려줘야지.

하루에 수십 번도 더 되뇌었다.


그런데, 11월 29일, 내가 타기로 예정되어 있었던 바로 그 항공기가 미얀마

상공에서 실종되었다.

그 유명한 ‘김현희 KAL기 폭파 사건’이었다.

내가 만약 마음을 바꾸어 비행기 예약을 일주일 미루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최동수는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다.

나는 그 날도 평소처럼 텅 빈 사무실에 홀로 앉아 성경을 읽고 있었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식은땀 한 방울이 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순간 손에 들려있던 성경이 눈에 들어왔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도 모르게 입에서 튀어나왔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소식이 늦어져 내가 11월 29일, 그 비행기를 타고

귀국하는 줄로만 알고 있었던 아내는 한국에서 그 소식을 처음 듣고 소스라쳐

혼절할 뻔했다고 하였다.

"서울로 향하던 KAL 858기가 미얀마 상공에서 실종 되었습니다"로 시작하는

뉴스를 들었을 때 아내의 심정이 어떠했을지는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필경 심장이 철렁하고 내려앉았으리라.


지금 생각해도 내가 그 비행기를 피했던 것은 정말 천운이었다고 생각된다.

아내와 그 때 이야기만 나오면 지금도 가슴을 쓸어내리고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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