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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itarMania

(*.255.173.173) 조회 수 2616 댓글 1

기타 얘기도 아닐뿐더러 공사에 관한 전문적인 내용이라서 지루한 감은 있으나

혹시라도 중동지역에 처음 부임하는 분들에게는 참고가 될듯하여 올립니다.

 

 

알코바, 사우디아라비아 - (1978 - 1982)

 

1. 나 아니면 누가하랴? :

1978년 8월, 바레인에서 귀국한지 4개월 만에 나는 사우디아라비아로 나가게 된다.

나는 입사할 때부터 목표가 해외근무였다.

해외에 처음 부임한 직원들은 영어와 공사 사양의 차이 때문에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게 사실이다.

그들은 어느 기간만큼 자리가 잡힐 때까지는 죽을 쑤기 마련이다.

신규공사에는 최소한 해외 유경험자가 10%라도 있어야 감당할 수 있었다.

게다가 마이카 시대 이전인 당시에는 자동차 운전면허조차 가진 직원이 드물었다.

해외공사의 수주규모가 급격히 늘어날수록 신참이 나가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워낙 많은 공사를 수주한 탓에 무리가 발생하였다.

따라서 본사에서는 해외 유경험자를 선호하였고 나 같은 경우 “나 아니면 누가하랴?”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또 다시 해외에 나가서 회사와 나라를 위해 일을 한다는 것은 내 가슴을 뛰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애국심이란 해외에 나가면 저절로 생긴다.

 

 

2. 알코바 주택현장 :

이번 공사는 사우디 주택성에서 발주한 공공주택 신축공사였다.

알코바(Al-Kohbar)에는 8층 건물에 74평형 아파트가 4,106세대(216동),

제다(Jeddah)에는 3,600(189동)세대를 동시에 발주한 초대형 공사였다.

프리캐스트 콘크리트 패널(Precast concrete panel)로 짓는 조립식 구조인데,

입주자를 위한 지하주차장시설과 놀이터 시설까지 하면 소도시를 방불케 하였다.

관개시설을 완비하여 도로 주변과 아파트 주위에 잔디와 나무를 심어야 했다.

기가 막히는 일은 묘목장(Nursery)을 만들어서 일찌감치 잔디와 관목을 길러야

되었다는 것이다.

엘리베이터 만해도 216대가 소요되었다.

사막의 상징인 버섯모양의 고가수조가 4개소나 있었는데 아름답지만 난공사

중의 하나였다.


현장 팀이 처음 도착해서 임시로 자리 잡은 곳은 아파트현장에서 1.5km 떨어진

석산의 숙소였다.

이 석산은 주베일 산업항 공사를 할 때 개발하여 사용하다가 거리가 너무

멀어서 폐기된 곳이다.

다행히 여러 동의 숙소가 남아있었다.

이 숙소를 개비하여 임시숙소로 사용하게 되었다.

우리는 기존의 석산을 재개발하고 그 일대에 콘크리트 패널 생산 공장을 세웠다.

 

아파트 신축공사 현장은 페르시아 만(Persian gulf)을 따라 나 있는 해안도로변에 위치하였다.

단, 도로에서 멀리 자갈밭이 뻗어있어 바닷가로 나가기는 어려운 곳이었다.

알코바 현장에만 동원된 타워크레인(Tower crane)이 100대, 100톤급 이상의 대형크레인이 50대,

대소 중장비가 모두 5,000여 대에 달하였다.

피크 때는 근로자가 한국인 7,000명에 인도인 1,500명이었고, 주방요원만 해도

한국인만 240명이나 되고, 직원이 300여명에 달하였다.

근로자숙소만 해도 10m×30m 크기의 건물(80인 수용)이 100동이 넘었고 이를

지원하는 많은 부대시설이 있었다.

근로자식당, 직원식당과 간부식당 외에 회장님이나 VIP 방문에 대비한 영빈관도

있었다.


현장에는 중기공장과 보도블록 생산 공장까지 함께 있었다.

그 외에 별도로 1.5km 떨어져 있는 지역에 석산개발공장, 콘크리트 패널 생산

공장과 샌드위치 벽 패널에 들어가는 스티로폼 압출공장까지 있었으니 참말로

거대한 규모였다.

아래 석산 및 콘크리트 패널 생산 공장 지역에 있는 300명의 한국인 근로자와

인도인 근로자 1,500명의 수용시설은 제외한 규모이다.

 

해외공사를 안해본 분들을 위해서 여기서는 아파트공사현장의 가설공사규모에 대해

좀 더 설명하고 싶다.

설명의 편의상 건물의 단위크기는 근로자숙소(80인 수용)를 기준 삼았다.

근로자숙소 만한 건물 4개를 H형으로 배치한 식당이 10개동, 세면위생시설이

40동, 새마을회관이 40동, 식품과 잡품용 대형 창고가 2동, 냉동 창고 2동 외에

의무실이 있었다.

물론 공사용 자재창고도 여러 동이 있었다.

에어컨이 몇 대였는지는 상상에 맡긴다.

직원 중에는 여권전담 뿐 아니라 차량사고 등 안전사고처리 담당도 따로 있어야

했다.


재미있는 것은 부식도 엄청나게 소모되기에, 사람 키만 한 김칫독이 200개나

준비 되어야 했다.

또한 독일과 영국계 공사감독만 해도 150명이 넘어 이들을 위한 대형 양식당도

따로 있었다.

실제로 근로자들에게 양계탕 한 끼니를 배식하려면 한 마리를 4인분으로 쳐서

2천 마리가 필요하였다.

이는 냉동 컨테이너 한 대분이다.

오후 간식으로 빵 한 개와 주스 한통을 내주려면 카고 트럭 한 대가 들어와야

되었다.


내가 여태껏 본 해외 현장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많은 인력이 동원된 현장이다.

 리비아의 대수로 건설공사가 공사규모와 공사비는 더 컸으나, 공사기간이 길고

장비를 주로 사용하는 토목공사였으므로 이 공사의 규모가 더 컸다고 생각된다.

근로자의 수요가 너무 많은 우리 현장은 매일 아침 7시면 공구별로 조회와 체조를 하고나서

작업을 시작하였다.

작업 전에 외치는 구호는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였다.

알코바 현장의 규모가 실제로 얼마나 컸는지는 아래 글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


1) 콘크리트를 혼합하는 주요 골재는 자갈이다.

앞서 말한 임시숙소 지역에 있는 석산을 재개발하게 되었다.

먼저 각종 실험을 거처 암석의 경도와 화학적 인 분석을 하여 골재로 사용가능성 여부를

확인한다.

다행히 국내 암반보다 품질이 우수하였다.

국내에서 석산개발 장비를 들여와서 암반을 채굴하고, 크러셔(Crusher, 쇄석기)로 분쇄한 다음

각종 규격의 채로 걸러 골재를 쇄석으로 만든다.

크고 작은 쇄석을 일정한 비율로 혼합하면 콘크리트용 자갈이 되는 것이다.

이를 그늘 막으로 가리고 상시 냉수를 살포하여 골재의 온도를 유지시킨다.

 

2) 모래의 경우, 사막에 있는 모래의 입도와 성분을 검토하여

마땅한 장소의 모래를 선정한다.

이걸 그냥 쓰는 게 아니다.

너무 고운 모래는 망사로 걸러내고 적당한 규격의 모래만 남긴다.

다음에는 세척장치(Washing plant)로 유황성분이나 염분을 씻어낸 다음 현장에

반입하여 그늘 막에 쌓아 두고 냉수를 살포하여 모래 온도를 유지시킨다.

때로는 얼음물을 뿌리기도 한다.

 

3) 150m 깊이의 심정을 개발하여 담수를 끌어올린 다음

침전시켜서 대형 저장 탱크에 올린다.

대형 정수공장을 설치하여 식수를 만드는 동시에 일부를 심정수와 혼합하여 공사에 적합한

물로 만든다.

그 뿐 아니라 제빙공장과 냉수공장을 가동하여 공사용수는 상시 섭씨 18도 이하로 유지해야 된다.

 

4) 시멘트는 포 단위로 사용하지 않는다.

국내에서 1톤 들이 대형 백에 벌크(Bulk)로 선적시킨다.

알코바에 도착하여 하역된 시멘트는 냉동배관이 설치된 사일로(Silo)에 저장 한다.


5) 콘크리트 혼합공장을 설치하여 생산된 콘크리트는

타설 장소까지 보온 믹서 트럭으로 운반한다.

중동지역에서는 콘크리트의 온도가 30도를 넘으면 사용하지 못한다.

전에 바레인에서 공사시방서에 33도로 고쳐 썼다가 망신을 당한 적이 있다.

참고로 사막의 기온은 한낮에 직사광선 아래에서는 80도가 넘었고, 그늘에서도

40도를 웃돌았다.

 

6) 아파트 골조의 구체(벽과 바닥판)가 되는

콘크리트 패널 생산 공장의 크기는 축구장만하다.

전 바닥을 콘크리트로 마감하고 정밀하게 설계 및 제작된 철제 형틀(Mold)을

설치하고,

자동 진동기도 부착한다.

콘크리트가 굳은 다음, 탈형도 유압식 잭(Jack)으로 한다.

너무 오래 전의 일이라 기억이 흐릿하지만 총 생산 된 콘크리트 패널은 평균

3m☓5m 크기로 35만장이 넘었다.

현대건설에 알아봤더니 당시 콘크리트 패널 생산에 투입된 재료는 콘크리트가

45만 입방미터, 철근이 2만6천 톤, 그리고 와이어 매시(Wire mash)가 70만

제곱미터나 되었다고 한다.

레일 이동식 타워크레인만도 20대를 설치하였다.

시내에서 대형유리를 운반할 때 쓰이는 선반걸이(Rack) 수백세트를 제작하여

야적장과 수십 대의 트레일러에 설치한다.

패널 운반만 담당하는 직원도 4명이나 있어야 되었다.

여기 딱한 얘기도 나온다.

한 신입사원이 패널 운반검수만 2년을 근무하다가 대리로 승진하고 귀국하여

국내현장에 배치되었는데, 아무 일도 할 줄 모르더라는 것이다.

 

7) 벽체 패널은 가운데에 7cm 두께의 스티로폼 판재를 넣어

샌드위치 패널로 제작해야 된다.

선적하기에는 너무 부피가 크므로 스티로폼 공장을 세워서 덩어리로 생산하여

열선으로 잘라서 썼다.

 

8) 당시 현대건설은 K-Line이라는 회사의 자체선편을 활용하였다.

중동에 투입되는 모든 공사용 자재를 현대건설 전용선으로 운반한 것이다.

중동건설 붐 때문에 사우디의 어느 항구든 몹시 혼잡(Congestion)하여, 선박이

항구에 도착해도 부두까지 예인되려면 한 달은 기다려야했다.

현대 측에서는 항만청과 협의하여 K-Line전용 간이부두(Jetty)를 대형현장 근처

걸프연안에 만들고 세관원이 특별 파견되어 세관검사를 하고 하역시켰다.

울산을 떠난 배가 15일이면 사우디에 도착하였으니 현대만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이것이 현대건설의 저력이다.

 

 

3. 공사안전과 후생복지 :

앞서 현장지원시설에 대해서 얘기하였으니, 이번에는 공사안전과 후생복지에

대하여 설명하고 싶다.

같은 사우디아라비아라도 남쪽의 예멘산맥에는 눈이 내린 적도 있다고 들었다.

알코바는 상하의 계절 즉 여름과 가을 밖에 없는 지역이다.

해변에서 바로 광대한 사막벌판이 전개된다.

기후의 변화는 완만해서 크게 문제되지는 않는다. 문제는 일교차이다.

대기가 청명하고 수목이 없는 사막은 특히 일교차가 심하다.

40도가 넘는 뜨거운 여름은 차라리 그렇다 하더라도 겨울철에는 주야간의 기온

차이가 30도를 오르내린다.

겨울에도 한낮의 땡볕에서는 30도나 되었다가 새벽에는 살얼음이 어는 날도 있다.

한국인의 체질에는 잘 맞지 않으므로 처음에는 풍토병, 다음에 열사병 그리고

냉동병을 조심해야 되었다.

이걸 모두 견뎌내었으니 우리 근로자들은 참 대단하고 건강하였다.

 

젊디젊은 나이에 가족을 고향에 두고 혈혈단신으로 열사의 땅에 나와 꼬박

1년을 독신으로 견뎌내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따라서 해외현장에서는 후생복지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현장에는 간이 입원실을 구비한 의무실은 기본이고 의사 외에 위생병 출신

근로자도 간호사로 배치하였다.

일사병 환자도 더러 생겼지만 다른 현장에서 에어컨을 킨 채로 자다가 사망한

사례도 있었다.

죄송스럽지만 우리현장에서도 부상자가 100명쯤 발생했고 사망자도 5분이 계셨다.

뒤늦게나마 고인의 명복을 빈다.


식당에도 TV를 설치하여 수시로 안전교육을 실시하고 안전관련 비디오를

상영하였다. 일사병에 대비하여 알 소금을 비치하였다.

대부분의 작업들은 능률제로 추가 임금을 지급 하였으므로 근로자들은 기상조건이 나빠도

무리하게 작업을 강행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타워 크레인을 가동하는 작업은 강풍 속에서는 위험하므로, 풍속 30km

즉 초속 8m 이상이 되면 사이렌을 울려서 작업을 쉬게 하였다.

또한 사우디 사막에는 황사가 심하여 앞이 안보일 때가 많다.

콘크리트 패널을 적재한 트레일러 수십 대가 공장과 공사 현장 구간을 쉴 새

없이 왕복해야하므로 매우 위험하였다.

따라서 황사가 떠서 40m의 전방이 보이지 않을 경우 아예 양쪽 경비실에서

출입을 막았다.


그 뿐 아니라 근로자들도 작업을 중단하고 숙소에서 쉬도록 들여보냈다.

그런 날에는 안전교육이 제격이었다.

안전교육 시간에는 그 유명한 중동 수박을 제공하였다.

중동 수박은 당도도 높지만 한 개의 크기가 우리나라 수박 3개와 맞먹는다.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작업도 기온이 섭씨 33도를 넘으면 옥외작업은 피하고

건물 내에서만 작업하도록 하였다.


근로자들의 의욕과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특정작업을 가장 정교하게 많이

시공한 사람을 선발하여 포상을 실시하였다.

각 생활반의 정리정돈 상태를 점검하여 포상조로 현금 또는 차량을 제공하여

하루거리의 근교 관광도 시켜주었다.

다행이 현장에서 가까운 거리에 선셋 비치(Sunset beach)라는 해변이 있어서

수영은 하기는 쉬웠다.

식당의 요리사들을 위해서도 가끔씩 요리 경진대회를 열었다.

상담실을 두어 근로자들 개개인의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해결방안을 세워주기도

했다.


새마을회관에는 간이 운동기구와 비디오세트를 비치하였다.

비디오테이프를 매일 5편씩 빌려와서 새마을회관마다 순환시킨다.

사우디에 1년만 근무하면 전 세계의 유명드라마는 거의 다 보게 된다.

새마을회관의 벽은 도서로 꽉 찼다.

공사현장의 필수도서가 백과사전이고 고전과 현대 소설의 장서가 꽤나 된다.

월간지와 신문도 다음 날은 받아볼 수 있다.

그중 제일 인기 있는 책은 무협소설이다.

신간 소설은 거의 다 비치했다고 기억된다.

본사에서 지나치다고 할까봐 전문(TELEX) 한구석에 MHSS라고 치면 총무부

실무자가 알아듣는다.

책들은 매일같이 쏟아지듯 도착하는 근로자편에 몇 권씩 맡기면 되었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각종 전기와 전자제품은 정부와 생산업체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 파격적인 가격으로 살 수 있는 할인 쿠폰제를 시행하였다.

근로자들의 생일날에는 파커 만년필을 선물하고 해당 생활 반에 생일 케이크를

챙겨주었다.

저녁 시간에는 원하는 직원들을 위한 영국인 교사의 회화강좌도 있었다.

 

현장에서는 날씨가 시원한 우리네 구정쯤에 체육대회와 장기자랑대회도 하였다.

체육대회는 2개의 건축공구, 토목, 전기, 기계, 패널 공구와 본부팀 이렇게 7개

팀으로 나누어 대항하였다.

근로자들은 2달 전부터 행사준비를 하였는데 입장 퍼레이드는 브라질의 카니발이 연상될 정도였다.

트레일러를 장식하였는데, 거북선, 용, 호랑이와 꽃차 등 초청한 외국인들이

놀라 자빠지는 구경꺼리였다.

여자로 분장한 근로자들이 어찌나 섹시하던지……. 경기내용에는 국내의 체육대회 종목은

거의 다 있었으며, 민속풍인 씨름과 줄다리기도 하였다.

물론 경기마다 상품이 걸려있었고, 각 공구별 퍼레이드 시상이 제일 푸짐하였다.

근교의 선셋 비치에서는 물속에서 숨을 참고 오래 견디기 같은 시합도 종종

하였다.

이게 다 상품을 내주기 위한 배려였다.


장기자랑 대회는 말도 못한다.

근로자 중에는 가수, 탤런트와 댄서 출신 뿐 아니라 무대장치나 PD출신도 있어서

박수갈채의 연속이었다.

만담대회는 물론 심지어 시인도 끼어 있어 시낭송은 고향생각에 눈물짓게

만들었다.

일기쓰기도 장려하는 의미에서 포상제를 실시하였다.

이런 게 대형현장의 한 모습이다.

 

아파트 기초를 시작할 때는 착공식, 마지막 지붕 패널을 덮을 때는 상량식을 했다.

고사 지내고나서 먹자는 행사였다.

고기는 양고기가 먹을 만 하였으나 근로자의 여망에 따라 국내에서 냉동시킨

돼지머리 400여두를 3년 동안이나 몰래 실어왔다.

사우디에서 돼지고기는 종교적으로 금지된 육류이다.

현대의 전용선과 전용부두가 있기에 가능하였다.

 

 

4. 입이 근질근질 해서 :

무려 6억불짜리 알코바 현장 얘기를 하자면 입이 근질근질해서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화도 있다.


1) 아파트를 지을 현장은 사막벌판이었다.

숙소에 있는 식당에서는 때가 되면 주먹밥을 날라다 주었는데 먹을 장소가 없었다.

사실 알코바 시내에는 없는 것이 없었다.

천막, 철제, 하우징과 컨테이너도 있고 야전식탁도 얼마든지 살 수 있었으나 소장이

고집불통이었다.

뭐든지 사자고 말하면 돌아오는 것은 “실행 예산에 들어 있어요?” 하는 그의

반문이었다.

결국 햇볕을 가리는 텐트를 치고 서서 밥을 먹는 중에 “휙”하고 황사가 불어

닥쳤다.

눈을 씻고 보니 주먹밥이 누런 모래 밥이 되어 있었다.

 

2) 가설숙소의 신축을 서두르느라 주야로 작업하게 되었다.

축구나 야구 경기장에 가보면 야간에도 대낮같이 환하여 경기를 할 수 있다..

넓디넓은 공항의 활주로도 환하기는 마찬가지다.

투광기(Floodlight) 덕분이다.

이걸 우선 한 대만이라도 사자고 했더니 “본사에 앉아있는 개☓☓들 이런 것도

예산에 안 넣고 뭘 했어?”가 대답이었다.

그는 우리나라 아파트 건설계의 대부였다.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는 다 그가 지은 거다.

다만 예산에 지나치게 구애받고, 해외공사에 대한 감을 못 잡았을 뿐이다.

그도 나중에는 변하였다.

아파트가 준공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국내에서 2백50만원도 넘는 스위스제

힐티 해머드릴 100대를 사자고 했더니 “그거면 되겠어요?”하고 한마디만 물으면서 결재하였다.

100대면 2억5천만 원이나 된다.

그 많던 공구들은 다 어디 갔을까?

귀국하는 근로자들의 트렁크에 한 대씩은 너끈히 들어간다.

 

3) 나는 주베일에 있는 해군기지 신축공사장을 찾아갔다.

소장이 투광기 한 대만 이체 받아 오라고 해서 간 것이다.

그쪽 소장은 나와 절친 동창이었다.

“글쎄, 나는 주고 싶지만 공구장에게 가서 물어봐.” 공구장을 만났다.

“누구 망하는 꼴 보구 싶냐? 우리보다 더 큰 현장인데 그냥 사라구!”

결국 횃불을 켜고 공사하였다.

사우디에는 한국 건설업체의 횃불신화가 더러 있다.

듣기에는 근사하지만 따지고 보면 공사책임자가 감을 못 잡아서 그랬던 거다.

 

4) 그 공구장이 공사를 마친 후 우리현장 근처로 왔다.

우리 현장 앞 도로 끝에 있는 섬에 국방장관인 파하드 왕자의 별장공사를 맡게

된 것이다.

현장에 와서 징징거렸다.

우선 지붕모양이 문제인데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처럼 생겼다.

경험 많은 목수 10명만 지원해 달란다.

나는 목수뿐만 아니라, 숫제 프리캐스트 콘크리트 지붕 패널을 제작해서 보내주었다.

그는 매일같이 왕도미를 배달해주어서 먹다가 체할 뻔하였다.

 

이즈음 아파트건설현장을 바라보면 우후죽순처럼 우뚝 선 타워크레인이 돌아가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

일반인들도 타워크레인은 잘 안다.

타워 크레인의 조작은 힘을 쓰는 일이 아니므로 요새는 여기사도 있다.

우리 공사에 소요되는 타워크레인은 알코바에 100대, 제다에 85대로 합해서

185대였다.

회장님의 지시로 타워크레인을 현대중공업에 발주하였다.

현대중공업에서는 프랑스의 포테인(Potain)사와 기술제휴를 한다.

먼저 완성품 10대를 조건부로 계약하였다.

나머지 175대는 기계와 전장품만 구입하고 타워, 붐과 차대 등의 철 구조물은

현대중공업에서 제작하기로 된 것이다.

당시 국내에는 타워크레인이 얼마 없어 운전기사가 드물었으므로, 일반 크레인

운전기사를 선발하여 30명씩 조를 짜서 프랑스의 리옹에 위치한 포테인 사에

파견하여 운전교육을 시켰다.

오늘날은 국내에 타워크레인이 흔하지만 바로 이게 시작이었다.

지금쯤은 기계와 전기부속도 국내에서 모두 생산하리라 믿는다.

오일달러로 기술 이전을 받아 산업발전에 일조한 사례 중의 하나이다.

 

 

5. 잠재적 위험 :

아파트 동수(棟數)가 많다보니 어린이 놀이터가 40군데나 되었다.

원래 컨설턴트는 기술적인 승인만 하고 시각적인 승인은 주택성에서 하게 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 페인트의 품질은 감리단이 결정하지만 색상은 발주처의 소관임과 같다.

우여곡절 끝에 여러 종류의 놀이터 시설이 승인 났으나 유독 ‘그네’만큼은 주택성이 반려하였다.

나중에 감리단은 손을 떼고 직접 승인을 받도록 종용하였다.

나는 350km나 떨어져있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로 주택성 장관을 만나러 갔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장관면회절차는 의외로 간단하였다.

일단 신분이 확인된 다음 장관실 복도 앞에 있는 장의자에 앉아서 기다리면 차례가 온다.

장관실에 들어서자 홍차를 연거푸 따라주면서 찾아온 사유를 묻기에, ‘그네’ 때문에 왔다고 말했더니

“위험해(Dangerous).” 딱 한마디뿐이었다.

나는 대번에 알아챘다.

아이들이 그네를 타다가 잡은 손을 놓으면 떨어진다는 얘기였다.

현장으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바로 공문을 썼다.

     

“존경하는 왕자 겸 장관전하,

전하께서 이 나라 아이들을 염려하시는데 감동을 받았습니다.

전하께서 지적하신 바와 같이 아이들이 그네 잡은 손을 놓으면 떨어져 다친다는 건 사실입니다.

지금 전 세계의 놀이터에서는 아이들이 그런 잠재적인 위험을 무릅쓰고 도전하며 성장하고 있습니다.

전하께서는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서 가까운 장래에 세계 각국 사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경쟁에 이기기를 바라실 겁니다.

그렇다면 전하께서 아끼는 아이들은 ‘그네’에 도전하여 ‘잠재적인 위험(potential risk)’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드디어 승인이 났다.

제출한 서류 겉장에는 서명 대신 펜으로 쓰인 “EXCELLENT"라는 단어가 표지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6. 능률급이 문제다 :

대형 공사는 매 공정 마다 합격되어야 다음 단계 작업을 할 수 있다.

우리 근로자의 기능실력은 놀랍기 짝이 없다.

작업반장급은 그 분야에서 완전히 도를 튼 사람임은 물론이다.

생각 나름으로 세계에서 제일가는 솜씨라고 단언할 수 있다.

국내 공사판에서 공사현장 구경도 안 해보고 호텔에서 빵이나 썰다가 취업한

소위 나일론 근로자도 현장에 들어와서 두어 달만 지나면 선수가 된다.

문제는 그래서 더 골치가 아프다는 얘기다.

이하는 현장에서 겪거나 교육을 시킨 사례들이다.

 

1) 건물기초의 형틀을 조립하기:

국내에서는 콘크리트를 타설하기 위한 형틀을 세우려면 먼저 합판으로 패널을

짠다.

다음에 굵직한 상목으로 버텨주고 대못질을 하는 방법으로 망치와 톱을 사용하여 조립하는 게

 상식이었다.

이 방식은 더디기도 하거니와 5회 정도 사용하고 나면 패널이 못쓰게 되어 버리게 된다.

나는 패널을 20회나 재사용할 수 있는 선진적인 방식을 도입하여 재료도 아낄

겸 보다 능률을 내고자 EURO 패널을 공급하였다.

이는 요즘 우리나라의 건설현장에서 거의 다 사용하는 방식으로 60cm☓120cm

크기의 작은 패널의 주변을 작은 철제 앵글로 보강하여 혼자 다루기가 쉽다,

조립할 때는 패널의 조인트에 한 뼘 되는 납작 쐐기를 꽂고 나서, 쇠파이프를

건너지르고 폼 타이로 고정하면 간단히 끝난다.

이는 망치밖에 필요 없다.

현장에서 난리가 났다.

너무 어려워서 못하겠다는 것이다. 근로자들은 자기들이 익숙하여 능률을 낼 수

있는 공법보다 새로운 공법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나타내기도 한다.


나는 EURO 패널 전문 기술자를 데려다가 시범을 보였다.

한국인 근로자는 우리네 식으로 합판패널을 조립하고, 그 옆 동의 기초는

전문가들이 EURO 패널로 조립하는 경쟁을 시켰다.

곧 판가름이 났다.

EURO 패널의 조립이 완료되었을 때 한국근로자는 절반도 끝내지 못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네 공법은 모두 중동현장에서 실험 해본 방식이다.

 

2) 바이브레이터 사용방법 :

콘크리트를 타설할 때는 밀실하게 다지기 위해 바이브레이터를 사용한다.

나는 영국시멘트 협회에서 기술자를 출장시켰다.

근로자들에게 길이 2.4m되는 위가 열린 관만 한 형틀 2세트를 짜고 콘크리트를

부어넣었다.

하나는 우리 콘크리트공에게 바이브레이터를 사용하여 마음껏 다져보라고 하였다.

그들은 콘크리트 속에 행여 기포라도 생길세라 바이브레이터를 이리저리 쓸며

몇 분 동안 다졌다.

다음은 전문가 차례다.

그는 바이브레이터를 들더니 한쪽구석에서 수직으로 담근 채 5초정도 지나서

뽑아내고, 한 발짝을 옮겨서 또 5초, 이렇게 4번을 담그더니 20초 만에 끝냈다.

콘크리트가 굳은 후에 절단기로 단면이 드러나게 잘랐다.

전문가가 다진 콘크리트는 완벽하였다.

반면에 우리 콘크리트공이 다진 것은 시멘트 죽은 죽대로, 모래는 모래대로, 자갈은 자갈대로

분리되었고, 기포 투성이에 파도무늬까지 있었다.


아무리 숙련공이라 해도 일을 어깨 넘어 본대로 배워서는 안 된다.

교육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영국에서 전문가를 초빙하는 것을 달갑지 않게 승인했던 우리 소장도 그들에게

한 수 배웠다.

 

3) 콘크리트 패널 조립 :

74평짜리 8층 아파트 216동은 벽판과 바닥판 뿐 아니라 발코니와 외부 장식까지 통

털어서 콘크리트 패널을 조립하게 되어있었다.

무려 35만 장이 넘는 콘크리트 패널을 짧은 공사기간 내에 조립하기 위해서는

근로자들에게 능률급으로 추가 임금을 주는 방식이 최선이었다.

패널 조립을 시작한 초기에는 숙련된 조립공 한 팀이 하루에 18장을 세우는 게

고작이었다.

하는 수 없이 18장을 기본으로 하고 그 이상을 조립하면 능률급을 가산해주기로 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하루에 무려 48장을 조립하는 팀이 발생한다.

능률급을 가산하면 3달 봉급에 해당되었다.

콘크리트 패널을 조립하노라면 먼저 벽판을 세워야만 그 위에 바닥판을 얹을 수

있다.

아무리 각종 패널의 생산비율을 조절해도 그중에 희귀한 패널은 생기기 마련이다.

어떤 팀은 밤에 크레인을 몰고 가서 다른 팀이 세워둔 희귀 패널을 빼내어다가

자기네 건물에 짝을 맞추어 세우는 해프닝까지 발생하였다.

능률급이 문제였다.


타워 크레인이 100대나 동원되다보니 전복사고도 피할 길은 없었다.

패널을 들어 올리려면 와이어를 U자형 고리(Shackle)로 묶어야 된다.

지상에서 조립공이 작업을 서두르다가 고리의 고정나사를 덜 조여서, 올리는

도중에 나사가 빠져 패널이 떨어져버렸다.

이 반동으로 인해 타워크레인이 평형을 잃고 중량추(Ballast) 쪽으로 전복되고

말았다.

다행이 운전사는 무사하였으나, 중량추가 지붕바닥판을 뚫고 아래층 바닥판까지

파괴하였다.

조립식 건물은 부엌에서 사용하는 가스의 폭발 등에 대비하여 매 층의 테두리보를 보강한다.

바닥판이 2개 층이나 파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벽체는 끄떡없었다.

전복사고 덕분에 Live-test를 성공한 것이다.

감리회사에서는 거꾸로 축하 메시지를 보내왔다.

 

4) 벽에 타일 붙이기 :

우리나라에서는 벽에 타일을 붙일 때 시멘트 모르타르(Mortar)를 빵떡처럼 타일의 뒷면에

얹은 다음 벽에 대고 톡톡 두드려서 붙인다.

우리 타일공은 그런 방식이 몸에 배어있다.

그러나 외국, 특히 B.S 사양은 그와 달리 시멘트 대신 접착제를 사용한다.

우리 방식은 타일을 붙이는 두께가 생길 뿐 아니라 뒤에 남은 공간에 물기가

흐르므로 위생상 불결하다는 것이다.

타일 뒷면에 타일 접착제를 바른 다음 빗살모양으로 쓸어서 얇게 만든 다음에 살짝 밀어서

붙이는 게 서구방식이다.

우리 근로자에게 타일접착제를 내주었더니, 접착제에 물에 반죽한 시멘트를 섞어서 전에 하던

방식으로 두드려 붙였다.

B.S. 방식은 최소 85%이상의 면이 닿아야 되는데 우리식으로 붙이면 50%이상이 들떠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콘크리트 패널을 제작하려면 철제 형틀에서 콘크리트가 굳은

다음 탈형하기 쉽도록 박리제를 칠하는데 그게 더 문제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철제 형틀에 특수한 박리제를 바르고 탈형 후 일주일이 지나면 공기 중에서

희석되어 날아가 버린다는 것이다.

이는 바로 시정되었지만 처음 만든 패널은 이미 늦었다.

근로자들이 패널 면에 솔질을 하여 벽판에 발라진 박리제를 닦아내야 되지만 능률급을 더 받아야

되는 상황에서 누가 벽면을 닦겠는가?

타일을 부착하고 며칠이 지나면 타일 벽 전체가 안고 넘어져버렸다.

참말로 못 말리는 우리 근로자 들이다.

그걸 보고도 잠자코 있는 기술직원들이야말로 딱하기 그지없었다.

그래서 해외현장에는 필수적으로 유경험자가 섞여있어야 된다.

 

5) 바닥에 테라조 타일 깔기 :

아파트 전세대의 내부바닥에 들어가는 테라조(Terrazzo) 타일은 엄청난

물량이었다.

우리나라처럼 마루나 장판지를 까는 대신 중동지역에서는 시원한 테라조 타일을

붙이고 그 위에 카펫을 깔고 생활한다.

마찬가지로 능률급이 공사를 버려 놨다.

바닥이 평평하지 않고 턱이지는 곳이 발생하였다.

이것도 전체 불합격(Total Reject)을 당했다.

일일시공 물량을 늘리려고 근로자들이 기준 물량의 2배 이상을 깔았으니 말 다

한 거다,


결국 테라조 가는 기계 200대를 동원하여 그 중에 불량한 방만 골라서 그라인딩을 하게 되었다.

중기공장에서 그라인딩 기계를 만들고, 빈 드럼통 2개씩을 맞붙여서 똥통(바닥을 갈고 나면 생기는

허연 죽을 담는) 100개를 제작해서 세대 발코니에 매달았다.

계약준공일자를 넘기면 지체보상금을 물게 되므로 대량작업이 불가피 하였다.


독일 감리단의 건축담당 선임 감리는 내 형제나 다름없었고, 감리단장은 아내를

수양딸로 삼고 싶다며 선물을 주기도 했다.

그중 심술 사나운 아일랜드인 감리관의 대부가 바로 나였다.

먼저 독일 감리단 소관의 122동을 합격시켰다. 이제 남은 건 아니꼬운 영국 감리단 소관의 94동이다.

이런 일은 나 혼자만의 성과는 절대로 아니었다.

우리 회사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돋보이는 응집력의 발로이다.

영국 감리단에서는 단장을 포함하여 네 사람을 우리 회사에 스카우트하였다.

 

6) 바닥에 대리석 깔기 :

이태리 대리석은 산지의 규모가 크고 무늬가 균일하여 아무 대리석이나 보기에

다 비슷하다.

이번 공사는 발주청의 요구로 사우디 대리석을 쓰게 되어있었다.

사우디 대리석은 경도나 무늬는 이태리 대리석보다 우수하고 아름답다.

다만 색상이 균일하지 않다는 게 문제였다.

분홍색, 흰색, 회색까지 무늬와 색상이 다양하였다.

우리 대리석공이 견본 시공을 하였을 때는 감리관이 놀라 자빠질 정도였다.

그러나 대리석시공을 끝낸 결과 전체적으로 불합격되었다.

‘Mis-matching Marble’이라는 전례 없는 신조어가 대두된 것이다.

대리석 한 박스를 뜯으면 한 덩어리를 잘랐으므로 무늬가 거의 같다.

그러나 다음 박스를 열어보면 무늬가 다르다.

무늬가 다를 경우 박스를 더 열어서 비슷한 무늬끼리 선별하여서 까는 게

상식이다.


문제는 능률급에 있었다.

기준량을 정한 다음에 시공량이 늘어난 만큼 추가급여를 계상하는 방식이

능률급이다.

근로자들은 능률제가 없는 일은 잘 안하려고 한다.

더 큰 문제는 우리 기술직원, 공구장, 나아가 소장의 책임이 컸다.

소장은 양쪽 공구장을 경쟁 시키고 공구장은 각동별로 직원을 경쟁 시켰다.

직원들은 자기가 성취한 당일 물량이 다른 직원보다 적으면 눈이 벌게진다.

소장은 일 수 찍듯 매직원의 시공량을 점검하였다.

품질보다 일일 시공량이 우선이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 것이다.

게다가 만기가 되자 시공에 참여한 근로자, 직원과 공구장도 귀국하여 버렸다.

이걸 내가 떠맡아서 준공시켰다.

나는 사무실에서 나와 새 직책을 맡는다.

Final Handover 통합 공구장이었다.


감리관은 내가 B.S.에 입각하여 스스로 냉철한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때로는 감리관이 묵인 해줘도 내가 싫으면 뜯어내었다.

대리석은 계단과 엘리베이터 로비에 붙였는데 216동☓8개 층이면 무려 1,728개

로비였다.

나는 그중 가장 상태가 불량한 2개 로비를 과감히 뜯어내었다.

소장이 아파트를 다 허물려고 그러느냐고 역정을 냈지만 나도 생각이 있었다.

그 다음에는 B.S.에 입각하여 완강하게 버텼다.

영국의 어느 궁전바닥에 있는 ‘Mis-matching’사례의 사진을 감리관들에게 뿌렸다.

궁전과 비슷하면 합격, 아니면 뜯어내기로 하였다.

결과적으로 뜯어 낸 대리석은 몇 장 안 되었다.

나중에는 감리관들이 검사하다 말고 “미스터 최가 뭐라고 코멘트 하느냐?” 가

일반화 되었다.

 

 

7. 아내와 아이들 :

현장에 아이들이 드물다 보니 현장 근로자들은 우리 아이들을 무척 귀여워하였다.

가족이 도착하던 해에 설날을 맞이하게 되자, 가족숙소에서 가까운 직원식당

주방요원들의 숙소에 세배를 갔다가 엄청난 세배 돈을 받아온 것이다.

아이들이 몇 안 되는 현장이라 근로자들에게 귀여움은 받아왔지만, 만약 아이들이 근로자 숙소를

모두 돌아다니며 세배 돈을 받았다가는 큰일 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산 해보면, ‘6,000명☓1사우디 리알/인☓3백원(1리알=3백원)’이라고 쳐도 180만 원이나 되는

거금이 된다.

아차, 싶어서 아이들에게 대충 설명을 하고 못 나가게 하였다.

그 대신 며칠 있다가 현장에서 근로자 아저씨들을 만나면 깍듯이 새해 인사를 드리고 세배 돈이라도

주려고 하면 도망치라고 하였다.

인원이 많은 현장에서는 공사에 관련된 일이 아니라도 바짝 신경을 써야 하는 법이다.

나중에 이런 얘기가 퍼지고 나니까 근로자들이 나를 더욱 따르게 되었다.


현장엔 수많은 근로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하얀 수건으로 눈만 내놓고 얼굴 전체를 가린 채 모래바람과 싸우며 일하는

근로자들이 있었다.

그걸 보고 자라면서 아이들은 한국의 위상과 노동의 실상을 체험하며 경제관념이 투철해진 것 같다.

그 때의 경험이 주효했는지 두 아들은 남다르게 검약하고 인내심이 강하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도 도중에 포기하는 법이 없다.


 

아내는 가끔 다른 직원 부인들과 함께 수크(상점가)에 쇼핑을 다녔다.

때로는 한 상점에서 몇 사람이 같은 물건을 살 때 물건 값을 사람마다 다르게

받기도 했다.

왜 나에게만 30%나 덜 받느냐고 물었더니 할인해 달라는 말을 안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다.

손님마다 할인하자는 말이 어지간히도 듣기 싫었던 모양이었다.


하루는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과일과 생선을 사러 갔을 때였다.

큰아들은 포도를, 작은 아들은 수박을 먹고 싶어 했다.

중학생인 큰아들이 외국인 학교에 다니고 있어서 봉급의 절반 이상이 학비로

지출되고 있을 때였다.

포도가 수박보다 훨씬 비싸기도 해서 포도는 한국에 가서 맘껏 먹게 해주겠다고

아이들을 달랬다.

그걸 눈치 챘는지 상점 주인은 수박과 함께 포도 한 송이를 넣어주면서 포도 값은 안 받겠다고 했다.

자존심이 상하고 무안하기도 하여 굳이 포도 값을 내려고 하자, 포도는 자기가

주는 선물이라며 자기네는 선물 값은 받지 않는다면서 웃었다.


전자제품 상점에서의 일이다.

그곳에서 보던 TV는 우리나라와 송출 시스템이 달라서 귀국하면 쓸 수 없다.

TV를 산지 이미 1년이 넘어 교환은 안 되겠기에 TV 한 대를 새로 사면 쓰던

TV를 중고품값으로 계산해 줄 수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주인은 기꺼이 무상으로 교환해 주겠단다.

나는 염치가 없어 왜 손해 보는 일을 하느냐고 물어 보았다.

그는 빙긋이 웃으면서 ‘친구’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은 ‘인샬라(Inch’allah)’였다.

수선할 물건을 맡기고 언제쯤 되겠느냐고 물으면 ‘인샬라’가 그들의 대답이었다.

모든 것이 ‘신의 뜻대로’인 것이다.

사막에서 그들이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인샬라’ 신앙의 힘일 것이다.

그들은 무신론자들은 짐승으로 여긴다.

이슬람을 믿는 사람은 형제라 부르고, 기독교인은 친구라고 한다.

그러나 이슬람이 아닌 신앙 집회는 어떤 형태로든지 허용되지 않았다.

공항에서 귀국하는 근로자들을 위해 기도하던 목사가 구금 될 뻔한 적도 있었다. 독선적이고

본능적인 신앙은 무신론 보다 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념이나 이해관계로 인한 전쟁은 끝이 있을 수 있겠으나 종교의 대립으로 인한 전쟁은 끝없이

반복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신은 모든 종교와 시대가 주창하는 어떤 것도 초월하여 변함없이 똑 같은 신으로 존재한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위트와 유머가 넘치던 아랍 상인들의 독특한 상술, 특심한

신앙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그들이 그립다.

 

 

8.슈퍼 마켓에서 :

가족이 귀국하고 나서 혼자 오래된 슈퍼마켓에 갔다.

안면 있는 매니저가 슬쩍 다가오더니, 위스키를 사겠냐고 물었다.

내가 가족들과 가끔 왔으므로 내 신분을 믿은 모양이다.

내가 두병만 사겠다고 말했더니, 두병은 안 된다며 박스로 사라고 하였다.

나는 얼떨결에 두 박스라고 했고, 그는 자동차 키를 달라고 했다.

조금 있다 키를 돌려주며 차에 실어놨다고 하였다.

현장으로 돌아오는 길에 교차로 앞에 정차했다가 신호를 받고 출발하려는 순간

경찰차가 좌측에서 손짓을 하며 정지신호를 보냈다.

나는 ‘어이쿠 이제 죽는 구나’하며 차를 세웠으나, 경찰차는 내 앞에서 우회전 하더니

우측 공항 길로 빠져나갔다.

양주박스를 직원에게 내어주니 너무 많으니 토목, 전기, 기계부에도 좀 팔아 보자는 제안을 했다.

“얼마나 받을까요?”하는 그의 물음에 나는 “십년감수 했으니 5배만 받아”라고 말해버렸다.

 

SAFE WAY라는 넓고 시원한 슈퍼마켓에서 생긴 일이다.

그곳은 휴일(금요일)이면 현지인 가족들이 잘 오는 곳이다.

우리 식구들도 그 곳을 좋아해서 가족이 귀국한 후에도 가끔 들렸다.

하루는 부티 나는 현지인이 왔는데 부인을 4명이나 데리고 왔다.

얼핏 보니 첫째부인은 30대 후반쯤 되어보였고 막내 부인은 20대 초반쯤

되어보였다.

막내는 호기심이 많고 장난기 있는 우리네 여학생 같았다.

문뜩 손바닥을 보니 아름다운 보라색 문신이 꽉 차게 새겨져 있었다.

내 눈길을 의식한 그녀는 연신 손바닥을 보여주곤 하였다.

다음 휴일 날 슈퍼마켓에 갔다가 그녀 일행을 또 만났다.

그녀는 나를 알아보고 계속해서 손을 펴서 문신을 자랑 하였다.

들은 얘기로는 여자는 결혼한 표시로 손바닥에 문신을 새기는데 아무에게나 보여주는 게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손바닥을 더 자세히 보여주려고 내 옆을 슬쩍 지나치기도 하였다.

히잡을 썼는데, 나이 든 여자는 얼굴이 전혀 안보일 정도의 검고 짙은 망사를

얼굴에 걸치지만 젊은 여자일수록 속이 환히 들여다보이는 망사를 걸친다.

그녀의 망사는 투명하였으며 안에서 보이는 눈동자는 사람을 빨아들이는 무엇이

있었다.

날이 가며 자주 만나다보니 그녀는 진열대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척하면서

나와 비비듯이 스치고 지나가기도 하였다.

 


Comment '1'
  • 콩쥐 2015.01.05 10:15 (*.172.96.193)
    와.,.... 엄청난 규모였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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