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2.26 18:16
국민이 아름답게 배신하고픈 지도자(드골. 덩샤오핑. 리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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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은 미리 유언장을 써놓았다.
그는 "국장(國葬)을 원치 않는다"며 가족장을 못박았다.
"대통령도, 장관도, 의원도 오지 말라.
프랑스 군대는 아주 소박하게 차려입고 참석할 수 있되, 음악 연주는 안 된다."
드골은 퇴임하고 나면 시골 마을 콜롱베에 있는 집에서 살 작정이었기에 죽으면 마을 공동묘지에
묻어달라고 했다.
묘비명엔 '이름과 생몰연도'만 새기라고 엄명했다.
1969년 드골은 국민투표에서 패하자 스스로 물러나 콜롱베에서 회고록을 쓰며 지내다가 1970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떴다.
그는 유언장에서 "나는 모든 특전, 격상, 위엄, 표창, 치장을 거절한다"며 동상과 훈장, 기념관을
미리 금지했다.
드골은 전직 대통령연금을 거절했기에 남긴 재산이 많지 않았다.
9년 뒤 유족이 집을 관리하기 힘들어서 드골재단이 맡았지만 엄한 유언 때문에 기념관 건립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세월이 흘러서야 프랑스인들은 드골의 유언을 조금씩 어길 수 있었다.
30주기를 맞은 2000년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 드골 동상이 처음 세워졌다.
드골이 살던 집은 2004년 역사 유적으로 공인돼 옛 모습 그대로 기념관이 됐다.
중국 지도자 덩샤오핑이 1997년 타계했을 때 유족은 "집안에 빈소를 차리지 말고, 각막은 기증하고,
유골은 바다에 뿌려라"는 유언장을 공개했다.
덩샤오핑은 집권 중에 사천성 고향 생가(生家)를 찾지 않았다.
"공연스레 폐만 끼친다"며 아예 발길을 끊었다.
한 줌의 재가 된 덩샤오핑은 자연으로 돌아갔고, 생가는 그의 뜻대로 방치됐다.
중국 정부는 덩샤오핑이 죽은 지 4년이 지나서야 생가를 복원해 기념관으로 만들었다.
죽은 덩샤오핑이 화를 낼 일이겠지만 관광 명소가 된 생가 덕분에 고향 사람들 살림살이에 보탬이
되는 것을 내심 싫어하지는 않을 듯하다.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가 최근 인터뷰에서 "내가 죽거든 지금 살고 있는 집을 국가적 성역으로
만들지 말고 헐어버리라고 가족과 내각에 말해놓았다"고 밝혔다.
집이 성지가 되면 주변 개발을 못하기에 부동산 가격이 떨어져 이웃 주민들이 피해를 본다는 것이다.
그는 "집이 낡아 (기념관으로) 보존하는 데 돈이 많이 든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리콴유가 미리 밝힌 유언엔 죽어서도 실용을 철저하게 따지려는 지도자의 초상이 담겨 있다.
그런데 그를 국부(國父)로 존경하는 국민이 과연 그의 유언을 제대로 지킬지 궁금하다.
죽은 드골과 덩샤오핑도 세월이 지나면 추모와 존경의 거센 물결을 막지 못했다.
앞뒤가 막힌 싱가포르인들이 곧이곧대로 유언을 따른다고 해도 "내 집을 허물라"는 리콴유의 말은
불멸의 명언으로 남을 것이다.
지도자는 사후에도 추앙받으리라는 망상과 집착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선사(禪師)의 일갈(一喝) 같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죽음까지 넘어서는 삶의 숭고함이다.
죽음 이후에도 고결함을 지킨 지도자들은 살아 있을 때 국력을 키우고 국민을 배불리 먹이려고
봉사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삶의 마침표까지 깔끔하게 찍은 지도자는 잊으라고 해도 잊히지 않는다.
"잊으라"는 지도자의 유언을 국민이 즐겁게 어기면서 오래도록 기억하는 것처럼 아름다운 배신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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