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기에서의 묵념

by 금모래 posted Jan 05, 2015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 - Up Down Comment Print

어항 속의 물고기가 또 한 마리 죽었습니다.

3년이 넘은 거 같으니까 수명이 다 되었나 물갈이가 시원찮았나 잘 모르겠습니다. 

지난 여름에 죽은 물고기는 아파트 정원에 묻어 주었는데

겨울에 죽은 물고기는 땅이 얼어서 정원에 묻을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하얀 화장지에 싸서

변기에 넣고는 그 앞에서 묵념을 했습니다.


'살아 생전 아름다운 모습으로 헤엄치며 내게 기쁨을 줘서 고맙다.

저 세상이 있다면 넓은 강에서 태어나 마음대로 헤엄치며 살렴

고맙고 미안하다'


땅속에 파묻어도 흙이 될 거고 변기 속에 넣어도 *속에 빠져서 오랜 세월이 지나면 결국 흙이 될 거고...

보기는 안 좋다만 결국 흙이 되는 것이니 나의 마음이 네게 있으면 되는 거지 땅속에 묻히나 *속에 묻히나

무슨 상관이겠느냐


물내리개를 당기자 물고기는 변기 속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나는 순간 약간 모순되고 슬픈  감정에 빠졌습니다.


다음 날 그 변기에서 볼일을 보면서 태연히 신문을 봤습니다.

신문에 세월호 안에 갇힌 학생이 창밖을 찍은 사진이 실려 있었습니다.

마음이 답답했습니다.


나는 죽은 물고기를 벌써 잊었습니다.


Articles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