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기타의 장력이 센 이유는?

by 하진 posted Aug 22,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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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기타매니아에 놀러왔다가 재밌는 논의가 있어서 죽 읽어봤습니다. 저도 대학 때부터 어떤 기타는 장력이 세다는 둥 약하다는 둥 동아리 사람들이 말하고 나름대로 이유를 설명하려는 걸 들으면서 (어떤 이는 줄 감는 방법에 따라 장력이 달라진다고도), 물리를 전공하는 입장에서 '무슨 말도 안 되는... 다 줄 상태가 다른 게지...'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줄 이외의 요인이 생각보다 많이 작용할지도 모르겠다는 의구심을 가져 왔습니다. 앞선 논의에서 왼손의 운지시, 오른손의 탄현시 느끼는 '체감장력'이라는 것은 당연히 다른 요인들에 의해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데에 누구도 이의가 없을 거구요. 즉, 탄현하는 방향으로의 장력은 기타 제작하기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지만 막상 줄 자체의 '장력'을 잰다면 줄의 밀도가 같고 음정도 같다면 똑같을 것이다라고 잠정결론을 내리고선 더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훈'님의 '앞판이 두꺼워지거나 단단해지면 줄을 더 감아야 같은 음정이 난다는 제작자들 공통의 의견이 있다'는 말씀을 보고 이번 기회에 조금 더 생각해 봤습니다.

'훈' 님이 말씀하신 것이 경험적으로 관찰된 사실이라고 가정하고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면 뭘까 생각해 봤고, 다른 분들의 의견은 어떤지 궁금하여 여기다 답글로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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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쏠레아 님의 '장력은 줄의 선밀도와 내고자 하는 음정, 현장에 의해서만 결정된다'는 말씀이 옳습니다. 단 한 가지 가정이 필요한데, 줄이 매여진 대상, 즉 기타 몸체가 강체이고 (단단하여 변형이 없는 것) 질량이 무한대여야 (혹은 줄의 무게를 무시할 만큼 무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그건 줄 혼자만의 진동이 아니고, 줄과 기타 몸체 혹은 기타 몸체의 일부가 서로에 대해서 진동하는 시스템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매우 간단한 모델로 환원시켜 보지요. 두 물체가 스프링으로 연결돼 있다고 봅시다. 한쪽이 기타줄, 다른 한쪽이 기타몸체입니다. 물론 기타줄은 물체이면서 동시에 그 스프링의 역할을 하고 있는 복잡한 놈이지만, effective한 근사로서 위의 모델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기타몸체의 질량은 기타줄보다 훨씬 큽니다. 수백배 이상. 이걸 그냥 무한대로 근사한다면, 큰 벽에 스프링으로 매달린 한 개의 물체로 볼 수 있고 그 물체의 질량과 (기타의 선밀도) 스프링의 세기가 (장력) 진동수를 결정합니다.

하지만 기타 앞판은 매우 얇으면서 그 자체가 잘 진동하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극단적인 경우로 앞판 대신, 북처럼 질긴 천조각을 끼워넣었다고 가정해 보세요. 줄이 울릴 때 하현주에 매달린 브릿지와 기타몸체 사이에도 상당한 진동이 만들어집니다. 이 경우 하현주 쪽의 줄이 느끼기에는 기타몸체가 매우 가벼워진 것처럼 (브릿지 무게 + 알파) 느껴질 것입니다. 기타 앞판은 강체도 아니고, 그렇다고 천처럼 물렁한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어느 쪽에 더 가까운지는 앞판의 두께, 부채살의 디자인이 크게 좌우할 수 있습니다.

앞판이 매우 얇고 무르며, 부채살 역시 별로 붙지 않은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하현주 쪽의 줄과 짝을 이루어 진동하는 물체의 무게는 더이상 줄 무게의 수백배가 아닌 수십배 이하일 수도 있습니다. (브릿지 무게 + 알파) 가령 질량비가 1:10인 두 물체가 용수철을 사이에 두고 진동할 때 고유진동수는 다음과 같이 구합니다. 두 물체 사이를 10:1로 내분하는 지점이 (무거운 물체 쪽에 훨씬 가까운 지점)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는 벽이라고 가정하고 좌우 각각의 진동수를 구하면 서로 일치하고 그것이 곧 전체 시스템의 진동수입니다. 즉, 줄 입장에서는 용수철이 조금 짧아진 것처럼 보입니다. 1/11만큼요.

위의 경우에 비해서 앞판이 두껍고 단단하며, 부채살 역시 견고하게 앞판을 지지해 주는 경우에는 두 물체 사이의 질량비가 훨씬 커지게 됩니다. 가령 1:100 정도라고 합시다. 이 경우에는 용수철이 1/101만큼만 짧아진 효과를 주지요. 위의 경우보다는 깁니다. 즉, 시스템의 고유진동수가 내려가게 되고, 우리가 조율할 때 같은 음정을 내게 하려면 조금 더 감아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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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의 얘기는 '훈'님이 말씀하신 그 경험적 관찰이 사실임을 가정하고 가능한 이유를 (제 생각으로는 유일하게 가능한) 생각해 본 것입니다. 기타 앞판의 경도가 생각보다 워낙 단단해서 좀 더 두꺼워지거나 얇아져 봤자 위와 같은 효과가 무시할 만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역으로 그 관찰이 착각이거나 또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겠지요.

멀쩡한 기타를 부시지 않고도 위의 제 설명이 사실이고 실제 효과를 줄 수 있는지 알아볼 수 있습니다. 작업대에서 작업할 때 물건 고정하는 기구 있죠? 디자인하는 사람들이 스탠드를 책상에 고정할 때처럼 두 개의 턱 사이에 물건을 끼워넣고 나사로 고정할 수 있는 기구요. 그걸로 하현주의 위아래 평평하게 다듬어진 부분을 (힘 받을 곳이 꽤 좁으니 그 기구도 작은 걸 써야 합니다) 꽉 뭅니다. 그 기구는 단단한 금속재질이니 이걸로 하현주의 무게가 수십배 증가하는 효과가 나지요. 이렇게 해놓고 조율된 기타의 줄을 울렸을 때 음정이 변하는지 조율이 맞는 다른 기타와 비교해서 재보면 되지요.

차이가 있다면 제 설명이 바로 그 이유인 것이고, 차이가 전혀 없다면 '앞판을 두껍게 하면 줄을 더 감아야 같은 음정이 된다'는 말도 착각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제로 어느 분께서 테스트해 주시면 감사하겠구요, 제 설명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으시면 글 남겨주세요. 모두들 좋은 하루 되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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