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외출
금모래
어머니 품 같은 포근한 어둠이 거리에 내리면
새색시 같은 단장을 하고 밤 외출을 서둔다.
오늘도 호프집에 불이 켜지고
면도 거품 같은 하루 일과를 털고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
그들의 노곤한 발길 아래로
녹슨 양철조각 같은 플라타너스 잎들이 바람에 구르고
내일의 희망처럼 네온불빛이 스민다.
횡단보도 앞에 서있는 보행자와 운전자처럼
서로 다른 신호등을 보고 있는 사람들
그렇게 낯선 거리에 서서 우리는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다.
건너편에 서 있는 여자, 어디서 본 듯하다.
전화를 해볼까.
하지만 이제 내겐 보여줄 더 이상의 히든카드가 없다.
히든카드가 없는 사람은 패를 접어야 한다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이다.
어설픈 변명으로 전화를 끊고
나는 거리에 섰다.
새벽이 오기 전에 그곳에 닿아야 한다
어머니의 젖가슴 같은 평화가 있는 곳
더 이상의 변명도 더 이상의 염원도 없는 곳
그곳은 저쪽 불빛 앞에 있다.
“군밤이요, 군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