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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itarMania

C.C2009.06.14 11:22
위에서 진중권 얘기가 있길래 몇자 적습니다.
진중권의 '현대미학 강의' 중에서.

-아도르노가 지적했듯이 현대의 예술은 철학과 상보적인 관계를 이루고 있다. 오늘날의 전시회 카달로그에서 작품의 빈약성과 철학의 풍성함을 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오늘날 비평은 작품 이후에 오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성립 자체에 참여한다. 과거에는 어떤 대상이 작품인지 아닌지 판별하는 기준이 작품 밖에 미리 존재했지만, 오늘날 예술은 자신을 예술로 만들어주는 정의를 자기 안에 품고 나와야 한다.
뒤샹이 소변기로 만들어낸 것은 바로 이 새로운 예술의 정의이다. 오늘날 예술에 '주제'라는 게 남아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내가 왜 예술인가'하는 것이리라. 이 자기 지시성 때문에 오늘날 예술은 비평에 결정적으로 의존할 수 밖에 없으며, 이 때문에 원하든 원하지 않든 철학과 밀접한 공모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위 얘기는 쉽게 말해서, '꿈' 자체만으로는 부족하고 '해몽'이 절실하게 요구된다는 것이겠지요.
이런 견해에 따라 위 작품은,
.
-전기배선이 상징하는 현대문명과 마루바닥(나무)이 상징하는 자연과의 변증법적 대립이 균형을 잃고 무너질 때 엄습할 현존재의 혼란을 오른편의 카오스적 상황으로 적나라하게 비판하고 있다.

라고 꽤나 잘난 척, 뭔가 있는 척 해가며 해몽할 사람이 있을 겁니다. 어쩌면 작품을 해몽할 안목이 있는 자신들의 권위로 꽤나 우쭐거리며, 이해하지 못하는 다수의 대중을 경멸할지도.....아마도 위의 겸손한 표현('저의 미련함', '나 같이 무식한 사람' 등)은 이러한 권위에 따르는 일종의 주눅듦일지도 모릅니다.

위에서 쏠레아님께서 '벌거벗은 임금님'의 비유를 드셨는데
마찬가지의 얘기를 진중권은 다른 저서에서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진씨는 현대예술에서의 철학적 인용에 대해 필연성을 인정함과 동시에, '시각의 빈곤'과 '이념의 과잉'인 현대 예술에 대한 대중의 거부감 또한 능히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인정하는 것 같습니다. 인용합니다.

-난해한 작품을 바라보면서 뭔가 속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것. 이것이 어디 미술에 무지한 대중들만의 일일까? 비디오 아트의 백남준씨는 일찍이 "현대 예술은 사기다"라고 말한 바 있고, 프랑스의 사상사 쟝 보드리야르 역시 현대 예술은 "무가치"하다고 잘라 말한 바 있다. 시각의 빈곤과 이념의 과잉. 거의 볼 것 없는 캔버스에 덧칠여지는 어마어마한 철학적 해석. 여기에 대한 대중의 분노는 정당하다.....현대 예술은 동화속의 임금님이다. 모두가 그가 입은 새 옷의 아름다움을 찬양할 때, 한 소년은 용감하게 "임금님은 벌거벗었다"고 외쳤다....

쏠레아님의 의견과 상당히 일치하지요?

그리고 바로 위의 "이게 예술작품이면 저는 예술작품속에 살고 있는...."이라는 견해는 아주 중요합니다.
실제로 윗분의 이런 발상으로 생활품을 예술작품화 한 예술가들이 많았으니까요....전시회에 갇혀서 신성화가 된-그러나 실제로는 자본화가 된- 예술작품에 대한 반동이랄까.
그러나 이러한 반동(反예술)조차 제도권 미술에 포섭되어 전시관에 안치되는 아이러니.
상업적인 제도권 음악에 반발하여 소음을 마구 남발해도
결국 상업적인 제도권 음악 내에 포획되고 말았던 너바나의 커트코베인과 유사한 상황이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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