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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itarMania

(*.214.172.225) 조회 수 8627 댓글 1

대략 10년 전, 안동에서 [시간여행]을 운영할 때였다.

안상학 시인(2집 5번째 곡 수록)이 CD 100장 가량을 들고 [시간여행]으로 찾아왔다.

유종화 시인이 우리나라의 여러 시에 곡을 붙인 음반인데 가게에 두고 팔아 달라는 것이었다.

평소 좋아하던 시인들의 시가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1집 타이틀은 [바람 부는 날]

2집 타이틀은 [세월이 가면]

틈틈이 음반을 듣다보니 어느새 좋아져 자주 듣게 되었다.

유종화 시인의 곡은 어렵지 않아 친근하며 담백하다.

하지만 곳곳에 예사롭지 않은 화성 진행도 사용되고 있어 상당한 수준의 실력자임을 엿볼 수 있다.

아래에 전곡을 링크한다. 

 

 1집 [바람 부는 날] 

 

한 곡의 재생이 끝나면 다시 Play 버튼을 누르세요. 다음 곡이 재생됩니다.

 

 

01. 반도의 별

 

오봉옥 시 / 박문옥, 박양희 노래 / 유종화 곡

 

울 엄니 별 밭에는요
글씨, 지는 꽃만 피었당게요
밤낮으로 가르쳐 농게요
지 맘대로 져 부른 꽃들



 


02. 그만큼 행복한 날이

 

심호택 시 / 유종화 곡 / 허설 노래

 

그만큼 행복한 날이
다시는 없으리

이제는 지나가 버린

내 어린 그 시절

싸리 빗자루 둘러 메고
살금살금 잠자리 쫓다가
얼굴이 발갛게 익어 들어오던 날

여기저기 찾아보아도
먹을 것 없던 날 그만큼 행복한 날이
다시는 없으리

 

 

03. 바람 부는 날

 

유종화 시 / 유종화 작곡 / 김원중 노래

 

바람 부는 날 내 마음 속엔 작은 바람이 일어
비가 오는 날 내 가슴 속엔 슬픈 이슬이 맺혀
바람 부는 날 거리에 나가 자꾸 서성거리고
비가 오는 날 전화벨 소리 자꾸 기다려지네
그건 어쩌면 사랑인지도 몰라
그대 이미 내 맘 속에 있는 걸
바람 부는 날 비가 오는 날 그대 향해 떠나네
바람 따라서 구름 따라서 포두 향해 떠나네

 

 

04. 먼 산

 

안도현 시 / 유종화 곡 / 이미랑 노래

 

저물녘
그대가 나를 부르면
나는 부를수록 멀어지는 서쪽 산이 되지요
그대가 나를 감싸는 노을로 오리라 믿으면서요
하고 싶은 말을 가슴에 숨기고
그대의 먼 산 되지요

 

 

05. 오살댁 일기

 

유종화 시 /  유종화 작곡 / 유종화 낭송

 

닷새 동안 품앗이하다 몸살 져 누운
오살댁
공판장에서 허리 다쳐 들어온
오살양반에게 아랫목 내주고
몸빼 줏어 입으며 일어납니다.
보일러 놓을 돈 보내준 것으로
올 한 해 효도를 끝냈던 터라
어김없이 전화통은 울리지 않고
민수 서울 가던 날
-- 오살댁 인자 고생 다 혔구만
-- 오살양반은 고생 끝났당께
동네 사람들 부러워서 던지던 말
귓가에서 쟁쟁거립니다.
오살댁,
서울 쪽 한번 흘끔 쳐다 보더니
오살양반 들릴락말락하게
한마디 합니다.
... 오살헐 놈

 

 

06. 사랑의 풀씨가 되어

 

서홍관 시 / 유종화 작곡 / 박문옥 노래

 

떠나야지 우리 사랑의 풀씨가 되어
흩어져야지 우리 이 땅의 어디로엔지
안개처럼 피어나는 묻어 둔 이야기며
구름처럼 많기도 했던 못다한 일들이며
묵묵히 남겨둔 채로
빈 가슴 부벼댈 언덕을 찾아
떠나야지 우리 사랑의 풀씨가 되어
흩어져야지 기다림의 땅 한반도에

황량한 벌판에 흙먼지 날리어도
대지의 속 살 깊이 뿌리 내리고
찬연한 풀꽃 한 송이 찬연한 꽃 한 송이 피워내야지
떠나야지 우리 사랑의 풀씨가 되어
흩어져야지 기다림의 땅 한반도에

 

 

07. 땅

 

안도현 시 / 유종화 작곡 / 김원중 노래

 

내게 땅이 있다면 거기 나팔꽃을 심으리
때가 오면 보랏빛 소리 나팔소리 들리리
날마다 눈물젖은 눈으로 바라보리
덩굴이 애쓰며 손 내미는 것을
내게 땅이 있다면 한 평도
물려주지 않으리  아들에게
다만 나팔꽃 진 자리마다
동그랗게 맺힌 꽃씨를 모아
아직 터지지 않은 세계를 주리

 

 

08. 개망초

 

유강희 시 / 유종화 작곡 / 박양희 노래

 

이 고개 저 고개 개망초꽃 피었대
밥풀같이 방울방울 피었대
낮이나 밤이나 무섭지도 않은지
지지배들 얼굴마냥 아무렇게나 
아무렇게나 살드래
누가 데려가주지 않아도
왜정때 큰고모 밥풀 주워 먹다
들키었다는 그 눈망울
얼크러지듯 얼크러지듯
그냥 그렇게 피었대


 

 



09. 언제나 내 마음속에 푸른 하늘이 열릴까

 

백창우 시 / 유종화 작곡 / 최현태 노래

 

언제나 내 마음 속에 푸른 하늘이 열릴까
먹장구름 다 걷히고 고운 햇살이 내릴까
힘겨운 삶의 저 편엔 어떤 세상이 있을까
그리운 사람 더욱 그리워
나 오늘도 빈 하늘만 보네

언제나 내 마음 속에 푸른 하늘이 열릴까
굿은 비 다 그치고 맑은 바람이 불까
어둠 저 너머엔 어떤 세상이 있을까
잊혀진 얼굴 다시 살아나
내 쓸슬한 노래가 되네

 

 

10. 사평역에서

 

곽재구 시 / 유종화 작곡 / 박종화 낭송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잎의 차창을 달고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11. 감꽃

 

김준태 시 / 유종화 작곡 / 유종화 노래

 

어릴 땐 떨어지는 감꽃을 셌지
전쟁통엔 죽은 병사 머리를 세고
지금은 침 발라 돈을 세지
먼 훗날엔 무얼 셀까

 

 

 

 

 

12. 바람 부는 날

 

유종화 글, 곡 / 이미랑 노래

 

바람 부는 날 내 마음 속엔 작은 바람이 일어
비가 오는 날 내 가슴 속엔 슬픈 이슬이 맺혀
바람 부는 날 거리에 나가 자꾸 서성거리고
비가 오는 날 전화벨 소리 자꾸 기다려지네
그건 어쩌면 사랑인지도 몰라
그대 이미 내 맘속에 있는 걸
바람 부는 날 비가 오는 날 그대 향해 떠나네
바람 따라서 구름 따라서 포두 향해 떠나네

 

 

 

 

 

 

 2집 [세월이 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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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세월이 가면

 

오철수  시 / 유종화 작곡 / 김원중 노래

 

세월이 가면 잊혀진다네요
사람사는 일이 그러노라고

살구꽃 치렁대는 노루목 고개
한 톳 바람 지나듯

세월가면 잊혀진다네요
있던 일도 없던 것처럼

하루 종일 퍼 붓던 햇살
숨어버리듯 그렇게

하루 종일 퍼붓던 햇살
숨어버리듯 그렇게

 


02. 꽃잎

 

이용범 시 / 유종화 곡 / 허설 노래

 

바람 불면 꽃잎 하나
그대에게 꽃잎 하나
날리고 싶어 그대에게 날리고 싶어
바람 불면 그대 곁에
달려가리
기다림으로 서있을 그대
그대 가슴에 힘껏 안기리

 

   

03. 내가 사랑하는 사람

 

정호승 시 / 유종화 작곡 / 김원중 노래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아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아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볕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한방울 눈물이 된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사랑도 눈물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04. 세상의 길가에 나무가 되어

 

박남준 시 / 유종화 곡 / 허 설 노래

 

먼 길을 걸어서도 당신을 볼 수가 없어요
새들은 돌아갈 집을 찾아 갈숲 새로 떠나는데
가고오는 그 모두에 눈시울 적셔가며
어둔 밤까지 비어가는 길이란 길을 서성거렸습니다
이 길도 아닙니까 당신께로 가는 걸음걸음
차라리 세상의 온 길가에 나무 되어 섰습니다  

 


05. 보리밭

 

안상학 시 / 유종화 곡 / 꼬두메 노래

 

꽃이 피기도 전에 봄이 왔나봐
꽃이 피기도 전에 봄이 왔나봐

엄마 생각나 엄마 생각나
너무 일찍 잠 깬 호랑나비 한 마리

청보리밭에 잠시 앉았다
날아가는데 엄마 생각나

고생만 하고 간 엄마 생각나
우우우우 엄마 생각나


 



06. 오살댁 일기

 

유종화 시 / 유종화 작곡 / 유종화 낭송

 

오산리에서 시집와

오살댁이라 불리는

민수네 엄니가

오늘은

입 다물었다.


서울서 은행다니는

아들자랑에

해 가는 줄 모르고

콩밭매며 한 이야기 피사리할 때 또 하고


어쩌다 일 없는

날에도

또 그 자랑하고 싶어

옆집 뒷집 기웃거리던 오살댁

오늘은 웃지 않는다.


아들네 집에 살러간다고

벙그러진 입만 동동 떠가더니


한달만에 밤차 타고 살며시 내려와

정지에 솥단지 다시 걸고

거미줄 걷어내고


마당에

눈치없이 자란 잡초들 뽑아내는데

 

오늘따라 해는 오사게 길고

오살댁

오늘은 입 다물었다.

 


07. 전라도 길 #1
  
한하운 시 / 유종화 곡 / 오영묵 노래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 삼거리를 지나도
수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 속으로 쩔룸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어졌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가지
가도 가도 천리, 먼 전라도 길.

 


08. 옛날의 금잔디

 

고운기 시 / 유종화 작곡 / 배경희 노래

 

해 따러 간 성은 어찌됐나
달 따러 간 누인 어찌됐나
설 쇠고 떠난 서울 편지도 없고
봄 여름 푸르른 감자밭만 남아
황토흙을 제쳐 성아 너처럼
영글어가던 알알이 캘 사람 없네

해 따러 산 성은 어찌됐나 달 따러 간 누인 어찌됐나
서울가서 하는일이 무엇일랴고 돈맛만 들이고
사람 버린다더라
쥐불 놓는 언덕 하늘 붉고
짧은 소매에 눈물만 물들이는데
해 따러 간 성은 어찌됐나 달 따러 간 누인 어찌됐나
서울 가서 하는 일이 무엇일랴고 돈맛만 들이고
사람 버린다더라

 


09. 강물에 띄운 검정 고무신

 

오봉옥 시 / 유종화 작곡 / 최현태 노래

 

어디로 갔을까 어디로 갔을까
강물에 띄운 내 작은 배 검정 고무신
멈칫멈칫 떠난 아비 찾아 갔을까
질레질레 떠난 누이 따라 갔을까
어디로 갈거나 어디로 갈거나
울 엄니처럼 홀로 남은 고무신 한 짝
울 엄니처럼 홀로 남은 고무신 한 짝
앞서거니 뒤서거니 아비 찾아 갈거나
노 저어라 둥둥 누이 찾아 갈거나

 


10. 아버지 아버지

 

김형수 시 / 유종화 작곡 / 유종화 노래

 

머슴였던 울 아버지
바지게에 꼴짐지고 두렁길을 건널때
등에 와서 얹히던 햇살은 얼마나 무거운 짐이었을까
울 아버지 혼자 남아 밤 늦도록 일하실때
둠벙 속에 살고 있는 색시 같은 달덩인
얼마나 얼마나 처량한 친구였을까
그마저 구름이 가렸던 밤엔 어떻게 지냈을까
울 아버지

 


11. 강

 

안도현 시 / 유종화 곡 / 허설 노래

 

그대와 나 사이에 강이 흐른들 무엇하리

내가 그대가 되고
그대가 내가 되어
우리가 강물이 되어 흐를 수 없다면
이 못된 세상을 후려치고 가는
회초리가 되지 못한다면
그리하여 먼 훗날
다 함께 바다에 닿는 일이 아니라면

그대와 나 사이에 강이 흐른들 무엇하리 

 


12. 전라도 길 #2

 

한하운 시 / 유종화 곡 / 국소남 노래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 삼거리를 지나도
수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 속으로 쩔룸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어졌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가지
가도 가도 천리, 먼 전라도 길.

 

 

Comment '1'
  • 정천식 2012.12.12 14:12 (*.214.172.225)

    아래는 유종화 시인의 [어허, 만사 풍년이로다]라는 글입니다.


    안상학 작시. 유종화 작곡. 꼬두메 노래.

    보리밭

    꽃이 피기도 전에 봄이 왔나봐
    꽃이 피기도 전에 봄이 왔나봐
    엄마 생각나 엄마 생각나
    너무 일찍 잠 깬 호랑나비 한 마리
    청보리밭에 잠시 앉았다
    날아가는데 엄마 생각나
    고생만 하고간 엄마 생각나
    우우우우 엄마 생각나



    4월이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땅들은 어린애들 발자국에도 다져질 것이고, 새싹과 함께 보리도 그 잎을 피울 것이다.

    어려서 시골에서 자란 탓인지 남달리 새싹 중에서도 보리싹을 좋아한다. 가서 힘껏 밟아 주어야 튼실한 보릿대가 자라고 어린 싹은 솜털처럼 보드랍기도 하다. 또 이제 갓나온 싹은 어머니나 누나의 나물 바구니 속에 담겨와 구수한 봄내음을 풍기는 맛있는 된장국도 되어 주었다.

    그런데 또 하나, ‘보리밭’하면 떠오르는 것이 있다. 바로 물레방앗간이다. 언뜻 보아서는 전혀 상관없는 것 같지마는 찬찬히 생각해보면 우리네 조상들의 낭만이 서려있다는 점에서 같다. 벌써 이 말을 눈치채고 속으로 웃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어쨌든 보리밭과 물레방아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남녀가 은근히 만나는 일종의 러브호텔(?)의 역할을 해주었었다.

    이제 무슨 말인지 짐작이 가리라고 본다. 그럼 그런 얘기를 담고 있는 시 두어 편 보고 가기로 하자.

    바람난 처녀총각
    단오 무렵 보리밭에서 껴안고 뒹군다
    지나던 밭임자 먼 산 보며 하는 말
    풍년이로다 어허, 만사 풍년이로다

    정동주의 「전설」이라는 시이다. 지나던 밭임자의 넉넉한 마음과 함께 우리 조상네들의 생활의 한 단면을 볼 수 있게 해준다. 이처럼 옛날에는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 물레방앗간과 함께 보리밭이 은근한 정을 나누는 최고의 장소였다.

    말이 나온 김에 송기원의 「숫처녀」도 마저 감상하고 가자.

    열 아홉, 스무 살짜리 떠꺼머리 손님이
    아짐씨 함시롱 달려들면은
    오매, 벌받을 소리제만
    나가 꼭 그만한 나이의 숫처녀 같어라우
    뭣이냐, 보리밭 속에서 하늘이 빙빙 돌고
    종달새가 지지배배 지지배배 울어쌓고
    보리까시라기는 가심이며 귓볼을 찔러대고……
    나이가 먹응께 이런 것까장 헛보인단 말이오.

    어느 늙은 창녀의 말을 옮겨 놓은 시이다. 그 창녀에게도 귀한 낭만의 시절이 있었을 것이고, 그것이 바로 보리밭을 통해서 지금도 가슴속에 남아 있는 장면이다. 참 눈물겹기도 하고, 처지와 상관없이 가슴에 살짝 간직한 사람들의 순수한 마음을 읽게 해준다.


    --<<봄날이 오면 까닭도 없이 그리워진다>>--


    이제 빗나간 보리밭 얘기는 잠시 제쳐두고 오늘 얘기하려는 보리밭으로 넘어가 보자.

    꽃이 피기도 전에 봄이 왔는가 보다
    너무 일찍 잠 깬 호랑나비 한 마리
    청보리밭에 잠시 앉았다 날아간다
    고생만 하고간 엄마 생각이 난다

    내가 이 시를 처음 읽은 것은 어느 문학지에서였는데, 적어도 5년은 넘었을 것이다. 그런데 봄이 되면 새싹이 돋아나는 것을 보며 가끔 이 시를 떠올리곤 한다. 참 단아하면서도, 그냥 한 폭의 그림 같기도 하고, 정갈한 노래 같기도 한 시이다. 안상학의 「보리밭」이라는 시의 전문인데 시인은 보리밭을 보면서, 일만 하다가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한다.

    앞의 시들과는 그 정서가 사뭇 다르다. 보리밭을 보고 봄을 느끼고, 보리밭에 잠시 앉았다 떠나는 호랑나비 한 마리를 보면서 이제는 내 곁에 안 계신 어머니를 떠올리는 것이다. 내가 시골에서 자라서 잘 아는데, 일 중에서 보리밭일이 제일 어려운 축에 든다. 보리타작을 할 때 목이며 겨드랑이에 찔러오는 까시라기의 느낌은 뭐라 표현하기 힘들게 견디기 어렵다. 거기다 땀까지 범벅이 되면 더욱 더하다. 시인의 어머니도 그랬을 것이다. 보리밭 고르는 일에서부터 이런저런 잔손이 많이 가는 밭일에 시달리고, 또 타작할 때의 어려움을 다 겪었을 것이다. 시인은 또 그런 모습을 다 보고 자랐을 것이고, 보리밭을 보면서 그런 모습의 어머니와 중첩된 모습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래서 “고생만 하고간 엄마 생각이 난다”고 했을 것이다.

    내가 어렸을 적에 우리 어머니도 보리밭에서 이런저런 고생을 다 겪으셨다. 지금도 시골에서 살고 계신데, 나는 이 시를 보면서 우리 어머니를 떠올렸고, 그래서 나직이 노래로 불러 보았다.

    꽃이 피기도 전에 봄이 왔나봐
    꽃이 피기도 전에 봄이 왔나봐
    엄마 생각나 엄마 생각나
    너무 일찍 잠 깬 호랑나비 한 마리
    청보리밭에 잠시 앉았다
    날아가는데 엄마 생각나
    고생만 하고간 엄마 생각나
    우우우우 엄마 생각나

    시골에서 고생을 하신 어머니를 둔 모든 자식들이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불렀으면 좋겠다. 새봄을 맞이해서 너무 예쁜 꽃에만 취해있지 말고 가슴에 녹아 있는 추억을 다시 한 번 꺼내어 쓰다듬어 보았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어쨌든 이 시를 보면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안상학 시인이 그리워진다. 이런 봄날 그와 만나서 보리밭에 앉아 소주 한 잔 기울이면 한세상 그렇게 흘러가는 것도 느끼지 못하고 서로에게 흠뻑 취해버릴 것만 같다. 아무튼 내가 생각하는 안상학은 바로 그런 사람일 것 같다. 그래서 이런 봄날이 오면 까닭도 없이 그의 시가 생각나고, 또 그가 그리워지는 것이다.


    --<<심심해지면 동네청상과 보리밭으로 들어가……>>--


    소주 얘기가 나왔으니 그 얘기를 좀 더 해보려고 한다. 어젯밤 이 글을 쓰기 위해서 그의 시집을 다시 꺼내 읽었다. 공교롭게도 제목이 『안동소주』이다. 내가 전라도 땅에서 소주를 기울이는 동안 그도 경상도 어느 땅에서 소주와 함께 한세월을 껴안고 그렇게 보내는가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의 시집 제목으로 쓰인 「안동소주」라는 시를 읽다가 나는 또 눈이 동그랗게 커지는 부분을 발견했다. 한참동안 눈을 붙박아 놓고 그 구절을 읽다가, 속으로 빙그레 웃음지으며 이 글을 쓴다. 아뿔사! 그의 가슴에도 또 다른 보리밭의 추억이 있다니……그것도 나보다 한술 더 떠 ‘청상’과의 낭만을 꿈꾸고 있다니. 오늘은 내가 졌다.

    이제 많은 추억을 다시 불러 일으켜주는 좋은 시를 쓴 경상도의 어느 시인, 안상학의 시 「안동소주」를 읽으면서 마치도록 하자. “동네 청상과 보리밭으로 들어가”던 옛날 우리 조상네들의 낭만을 다시금 떠올리면서 말이다.

    나는 요즘 주막이 그립다
    첫머리재, 한티재, 솔티재 혹은 보나루
    그 어딘가에 있었던 주막이 그립다
    뒤란 구석진 곳에 소주고리 엎어놓고
    장작불로 짜낸 홧홧한 안동소주
    미추룸한 호리병에 묵 한 사발
    소반 받쳐들고 나오는 주모가 그립다
    팔도 장돌뱅이와 어울려 투전판도 기웃거리다가
    심심해지면 동네 청상과 보리밭으로 들어가
    기약도 없는 긴 이별을 나누고 싶다
    까무룩 안동소주에 취한 두어 시간 잠에서 깨어나
    머리 한 번 흔들고 짚세기 고쳐매고
    길 떠나는 등짐장수를 따라 나서고 싶다
    컹컹 짖어 개목다리 건너
    말 몰았다 마뜰 지나 한 되 두 되 선어대
    어덕어덕 대추벼리 해 돋았다 불거리
    들락날락 내 앞을 돌아 침 뱉었다 가리재……
    등짐장수의 노래가 멎는 주막에 들러
    안동소주 한 두루미에 한 사흘쯤 취해
    돌아갈 길 까마득히 잊고 마는
    나는 요즘 그런 주막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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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Des Müllers Blumen / F.Schubert 물방앗간에핀꽃Müller, Wilhelm 의 시/(1794-1827) Tener(guitar) Masteven Jeon file 마스티븐 2016.06.07 17097
112 소월 헌정 8곡 이어듣기 / 진달래꽃,개여울, 못잊어,먼후일, (Dedicado a Kim, Soweol) 마스티븐 2015.12.20 6308
111 Regalo de Amor(Present of love)소월의 시 /사랑의 선물 by Masteven Jeon(voice&guitar) 스페인어와 영어가사 마스티븐 2015.12.09 5024
110 AZALEAS 진달래꽃(소월의 시, poem of Kim,Soweol)by Masteven Jeon 마스티븐 2015.11.01 3839
109 사랑의 선물(소월의 노래 8곡중에서)/Regalo de Amor김소월 시 스페인어가사 마스티븐 2015.10.18 3939
108 소월의 시 개여울"Junto al Arroyo" 스페인어 가사 by Masteven Jeon(Voice) 마스티븐 2015.10.05 4863
107 소월의시-"못잊어"Inolvidable(Unforgettable)스페인어 가사,우리말가사 노래/마스티븐 전 마스티븐 2015.09.22 4513
106 김소월시 /먼 후일(한국어와 스페인어가사)Algun Dia, -poem of Kim,soweol) 마스티븐 2015.09.08 4556
105 시인과 작곡가의 만남 - Song For You by Masteven Jeon - Lagrimas Interminables소월의 시/눈물이 쉬르르 흘러납니다 마스티븐 2015.08.27 4239
104 시대를 앞서간 예술혼 5 최동수 2013.08.27 7691
103 Joan Manuel Serrat(존 마누엘 세르랏) 마스티븐 2013.06.05 5278
» 노래하는 시인 유종화 - [세월이 가면], [바람 부는 날] 1 정천식 2012.12.10 8627
101 아도로 기타 코드진행 에드립 2012.11.27 5596
100 허병훈 개인전 종로 5월.2~8일 1 file 신인근 2012.05.02 9099
99 시인 정호승 3 file 2012.04.18 6947
98 이성복.........그날 file 콩쥐 2012.04.14 6372
97 시인 기형도 5 file 콩쥐 2012.04.11 5869
96 시인......신동엽 file 콩쥐 2012.04.11 5313
95 프로......단원 김홍도 4 file 콩쥐 2012.03.24 8085
94 아마츄어... 겸재 정선 6 file 콩쥐 2012.03.24 6974
93 수선화에게 2 file 금모래 2012.02.16 5871
92 여류기타제작자 2 file 콩쥐 2012.02.04 9284
91 레오나르도 다 빈치(펌) file 최동수 2012.01.19 8362
90 클래식 음악/연주에 관한 TED 강연 한편 5 TERIAPARK 2012.01.09 10158
89 밤 외출 - 금모래 3 금모래 2011.12.03 5671
88 음악 무명 2011.10.25 5284
87 나나 무스쿠리/ 당신과 함께하니 죽음도 두렵지 않으리(N0 Me da Miedo Morir Junto A Ti) 1 에스떼반 2011.09.03 8539
86 [re] 살곶이 다리 file 금모래 2011.08.11 6119
85 추억의 청계천 - 3 2 최동수 2011.08.11 6943
84 추억의 청계천 - 2 1 최동수 2011.08.11 5956
83 추억의 청계천 - 1 4 file 최동수 2011.08.11 6184
82 선인장 - 금모래 3 file 금모래 2011.07.24 5713
81 비밀의 방 - 금모래 file 금모래 2011.07.24 5323
80 사금파리조약돌 - 금모래 2 file 금모래 2011.07.24 5763
79 16세기 이태리의 마드리갈? AMALILLI MIA BELLA(나의 아름다운 아마릴리) 1 에스떼반 2011.07.23 8122
78 나나무스쿠리/안드레아보첼리/아마폴라(양귀비꽃)에 관한 이야기와 노래&악보 1 file 에스떼반 2011.07.12 12136
77 토마스 무어-THE MEETING OF THE WATERS 1 에스떼반 2011.06.20 5770
76 플라시도 도밍고(QUE TE QUIERO) "당신을 너무나 사랑해" 에스떼반 2011.06.10 6451
75 어린 추상화가 4 2011.06.06 7624
74 아일랜드 민요-THE TOWN I LOVED SO WELL(내가 사랑한 고향) 2 에스떼반 2011.05.21 7031
73 아일랜드민요/Orla Fallon(셀틱우먼)노래-"Carrick Fergus" 1 file 에스떼반 2011.05.06 12835
72 영감의샘물 로르카(Garc&#237;a Lorca) 2 file 조국건 2011.04.29 6208
71 가곡 '선구자'-펌 3 최동수 2011.04.21 7151
70 아일랜드민요-RED IS THE ROSE 에스떼반 2011.04.07 66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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