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음악듣기.... 반성...

by 지얼 posted Sep 22,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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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일보에서 퍼왔습니다...

[칼럼] 누드 클래식 -2-

2001.9.21.금요일
딴지 미주 종군기자 겸 종군DJ  깐따멘

  

'딴따라딴지에서 클래식이라니, 이기 무신 자다 봉창뚜디리는 소리고?' 하고 생각하신 독자도 계셨을지 모른다.

하긴 서태지와 HOT와 테크노와 힙합 사이에서 클래식을 운운하는 것은, 검은색 아르마니 정장을 아래위로 잘 차려입고 캘빈클라인 향수와 돗수없는 마쯔다 안경으로 후까시를 잡은 넘이 마지막에 하얀 고무신을 꾸겨신은 것 마냥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혹은 요즘 날리는 송모 아나운서의 확깨는 비유처럼 "빨간 넥타이 매고 상갓집가는 문상객" 마냥 뭔가 매치가 잘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신 분도 계실지 모르겄다.


클래식은 근엄하고 고리타분하기만 하다고?
그르으나! 결코 클래식 음악은 우리의 일상 딴따라생활에서 멀리에 있지 않을뿐더러 다양함을 통해 우리의 딴따라 생활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수 있으니... 지난번 말씀드린 본 칼럼의 취지를 되새겨 본다면,

클래식 음악은 우리에게 알게 모르게 익숙하고, 우리 주위에 가깝게 널려있다는 것 (가까운 예를 또 들자면 요즘 절라 뜨고있는 '엽기적 가시내이'의 배경음악으로 쓰인 조지 윈스턴 연주의 캐넌 변주곡. 원곡은 바로크 시대의 작곡가 Pachelbel의 Canon in D 되게따)

고리타분한 죽은 음악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동시대의 음악인들에 의해 여전히 살아서 생명력을 가지고 연주되고 발전되고 있다는 것


잘난척하는 몇몇 넘덜이 고상한척 어려운 소리만 씨부리고 문턱을 높게 만들어 놓음으로써 벽을 쌓아 놓았지만, 그런 벽을  무너뜨리고 다양한 좋은 음악을 골고루 맘 편하고 즐겁게 즐겨야 한다는 것

이러한 당연한 사실들을 다시한번 되씹어보며 두번째 악장을 시작하고자 한다. 중간중간에 음악도 낑궈져 있으니, 들으면서 천천히 읽어주시면 감사하게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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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 Vs. 저급 ?

클래식 음악판... 겉으로는 점잖고 고상하고 근사해보일지 모르지만, 실상 알고보면 우리 딴따라판보다 더 문제투성이면 문제투성이지 나을건 없다고 감히 단언하는 바 되겠다. 잊혀질 만하면 끊임없이 튀어나오는 음대 입시부정이 가요순위조작과 다를바 무어있으며, 초고액 과외가 PD 뇌물수수보다 나을거이 무어있단 말이냐.

이건 "교육계"의 문제라고 변명할 자 있을지 모르나, 극소수의 연주자를 제외하고는 자기복제의 시스템안에서 "교육"에 몰두하는 것이 현재 클래식 음악판의 어두운 실상이니, 음악교육비리의 문제를 음악판 자체와 연결시키는데 무리가 없는 바 되겠다. (본지 옛기사 참조 하시길. 이러한 문제는 이제부터 두고두고 까발겨 나갈테니 기둘리주시랏!)

클래식 음악계의 그 씨스템 자체가 구조적 문제를 발생시키는 현 상황에서, 그 안에 종사하는 모든 음악가를 비난하고 싶은 마음, 본 기자 추호도 읍따.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에 몰두하는 클래식 음악가 개인개인에게 딴지걸 마음또한 전혀 읍따. 또한 클래식 음악 자체를 비판하고 싶은 생각은 더더욱 읍따.

그르으나, 늘 그렇듯이 멀쩡한 판을 개판으로 만드는 것은 소수의 몰상식한 띱때덜이니... 이 띱때덜한테는 모다구리를 줘도 마땅하다 믿는바이다.

이넘덜은 음악을 '생산'하는 쪽보다는 '소비'하는 쪽에 속해있는 경우가 많은데, 설익은 교양을 과시라도 하는 듯 "차이코프스키가 어쩌구 저쩌구...", "토스카니니의 베토벤은 어쩌구 저쩌구.... " 하면서 떠들다가, 우리의 우상인 들국화는 마치 상것들이나 듣는 음악인것처럼 무시하던, 뺀질뺀질한 얼굴로 잘난척 하던 바로 그 띱때덜 되겠다. 지네는 안가에서 호박씨 다 까면서, 순진한 우리 국민들이 보며 웃는 코메디는 저질이라고 근엄한 표정짓던 그넘덜 말이다...

고급과 저급이라는 지조때로 기준으로 문화를 판단하는 것이 이 띱때덜의 전형적 수법인데, 그런 잣대로 우리 대중문화를 저급으로 분류하고 지네들의 합리적이지도 못한 잣대로 음악을 맘대로 평가하고 낙인찍는 짓을 일삼고 있다. 이거야말로 터진 바지사이로 J지 삐져나오는 짓거리 아닌가 말이다.

문화에 있어 고급 저급에 관한 논쟁이야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데다 결론도 내리기 어려운 것이니, 아까운 정력 허비하지 않기 위해 무림계에 수천년간 전해 내려온 금쪽같은 가르침을 통해 필자의 견해를 대신할까 한다.


무술에는 높고 낮음이 없다. 다만 공부의 깊고 얕음이 있을 뿐이다.


닫힌 마음의 편견이 결국은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다양성을 억누르고, 편하고 즐겁게 음악을 즐길수 있는 우리의 권리를 방해하여 왔고, 평등한 열린마음을 움추려들게 만들어왔으니, 이 어찌 안타깝다 하지 않을 쑤 있는가...

이밤, 아름다운 밤, 열좀 사쿠기 위해 한잔의 인삼차와 함께 열분덜과 나누고 싶은 음악, 드뷔시의 달빛 잠깐 듣고 담으로 넘어가지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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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쪽지시험이냐?

어려서부터 범생이었던 넘덜이야, 핵교에서 음악시간에 가르쳐주는대로 따라갔다면 그래도 클래식에 대해서 기본적인 것은 몇개 줏어들은것도 있겠지만, 좀 삐딱하게 놀았다 하는 본기자 같은 넘덜로서는 클래식을 처음 들어볼라치면 넘어야 하는 장벽들이 몇가지 있다.

그중에 하나가 "초보자가 반드시 들어야하는 곡 목록" 같은 류의 쪽지시험적 발상이다. 물론 쉽게 좋아할 수 있는 곡을 모아 지름길을 제시해 놓은 갸륵한 마음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나, 이런식의 '듣는 법'을 규정해 놓는 것은 '국가고시'나 '과거시험'과 짜잘히 다를바 없는 권력독점의 방법일 수도 있는거다.

 

초보자가 반드시 들어야 할 곡
(1) 완전초급 : 어쩌구 저쩌구

(2) 초급 (중) : 군시렁 군시렁

(3) 초급 (상) : 중얼중얼


이딴거 말이다... 띠바... 무슨 셤치냐?


그니까, 한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선 힘있는 넘덜이 지덜 조때로 만들어 놓은 '과정'을 거쳐 '시험'에 통과해야 하듯, 그런 류의 획일적인 통과과정이 음악에도 있다는 거다. 초보자는 뭐를 들어야 하고, 좀 지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하고, 나는 좋은지 잘 모르겠지만 남덜이 다 좋다고 하니까 나도 좋은척 해야하고, 저넘이 어떤곡을 좋아하는거 보니 대강 수준이 어느정도 되는거 같고, 좀 아는체 하기위해선 남덜이 잘 모르는 어려운거 좋아한다고 해야하겠고... 뭐 이따우의 과정 말이다.

음악을 듣는 입장에서 이거야 말로 정말 입장 난처한 일 되겠다. 왜냐! 음악에서 중요한 것은 '느낌'이기 때문이다. 지식이야 정리되고 전달될 수는 있지만, 느낌과 감상까지 전문가의 해석이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여져야 하고, 배경지식이 없으면 느낌까지 옳지 못한 걸로 무시당한다면, 이거야 말로 주객이 전도된 일 아니겠는가 이거다.

이러한 경험을 본 기자 극명하게 겪은적 있었으니... 한 씸포니 공연에서 함께 있던 정통 클래식 음악 이론가에게 본 기자, 짧은 지식이지만 받은 '느낌'들을 솔직하게 이야기했던 적이 있었다. 본기자가 구라를 푸는 동안 줄곧 '그건 아니다'라는 표정을 짓고 있던 그 아자씨, 대화가 끝날무렵 이렇게 결론 내리고 끝내는 거였다. '그 느낌은 잘못 느낀거고, 이곡에서 들어야 할 것은 무엇무엇이었으며, 제일 잘된 연주는 클렘페러 지휘의 몇년 녹음이다. 이상.'

허걱! 느낌이 잘못된거다? 음악을 듣는 느낌이 잘못된거다? 열분덜은 음악을 들으며 받는 '느낌'이 잘못되었다는 말을 어떻게 생각하시나?

음악은 다른 사람들이 해석해 놓은 같은 방법으로 획일적으로 감상하고, 획일적으로 결론 내리고, 획일적인 감정을 가져야 하는 그런 류가 아니란 말이다. 좋은 음악을 들으면 누구든 나름대로의 느낌을 가질 수 있다 이거다. 기존의 클래식 음악의 헤게모니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정해놓은 코스와 느낌까지도 똑같이 답습할 필요는 없는거다.

만약 남들이 느끼는 대로, 정해진 대로 느껴야만 '옳게' 느낀거라면.... 대체 우리 삶에서 음악의 존재의미는 뭐란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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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Enjoy!

음악은 즐겁게 들어야 한다.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주입식 제도교육을 통해 클래식 음악을 교육받은 우리덜은 좀 묘한 음악감상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클래식 음악 = 지루한 핵교 수업' 이라는 공식이 본 기자같은 삐디한 딴따라 출신들한테 남아있다는 이 비극적인 현실 말이다. 안그래도 핵교 다니기 싫은데 강제로 가르치고 시험치면 그거 좋아할 딴따라가 어디있겠냐...

게다가 그 음악시간에 했던 일은 음악을 들으며 즐기며 듣는 법을 배운것이 아니라 '틀리지 않고 맞추는데' 있었으니, 실기를 배우더라도 '저넘 저거 실수하는데 없나'를 감시하며 평가하는 식의 감상법이 몸에 배게 된것이 아닌가 싶다. 이거야말로 즐거운 음악듣기와는 거리가 있어도 한참 있는 거다.

몇해 전 뉴에이지 피아니스트인 David Lanz의 공연에 간 일이 있다. 함께 갔던 동료들 중 한명이 유달리 심사위원이나 재판관처럼 공연 내내 연주자를 째려보더니 어느순간 엄청난 발견이라도 한 듯'미스 터치!!'하고 외치는 것이었다. 그 부분은 전체 연주중에 정말 건반에 스치면서 생긴 작은 실수였을 뿐이었다.

그런 자세로 음악을 듣는 그로부터 완전무결을 추구하는 뛰어난 음악적 조예를 느낄 수는 없었다.


한두번의 삑싸리를 잡아내는 것이 그의 연주를 느끼는데 무슨 도움이 됐을까...
비슷한 경험을 80년대 중후반 들국화 공연에서도 겪은적이 있다. 지금은 작고한 허성욱씨가 Stairway to heaven을 피아노로 반주하는 중 딱 한 키를 잘못 누른때가 있었는데, 그때도 언넘인가가 "미스 터치!"하고 똑같은 소리를 외쳤던 적이 있었다.

글마는 그 실수를 잡아내기 위해 그 좋은 시간을 맘껏 즐기진 못했으리라... 지금은 또 누구의 연주를 들으며, 아니 감시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이런 식으로 조금이라도 틀린부분이 있나 감시하고 비판적으로만 평가하는 감상법은 음악의 즐거움을 느끼는데 도움은 커녕 오히려 방해만 된다.

이건 아무래도 조국의 음악교육의 폐혜가 아닌가 싶다. 음악시간에 피리불기 시험을 치면 암만 재미있게 잘 불어도 실수해서 한번 틀려 버리면 점수를 조지는, 그니까 실수하지 않기 위해 쫄며 긴장속에서 연주를 해야만 하는 것이 우리의 음악교육이다. 좋아하면서 즐길 수 있는 음악을 배운것이 아니라, 시험치기 위해 '맞추는' 음악을 배워 온거다.

이제부터라도, 음악은 즐겨야 한다. 틀리지 않을까 걱정하며 연주하거나 저넘저거 언제 틀리나 함 지켜보자하고 듣는것이 아니라, 좋은 부분을 그냥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음악은 때로는 분석을 요하기도 하지만, 분석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Enj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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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을 위하여!

지난 수십년간 우리는 부당한 획일성을 강요당하며 살아왔다. 실제로는 수많은 민족의 혈통이 섞여있음에도 '단일민족'이라는 불가침의 신앙을 강요받아 왔으며 - 이건 분명한 사실이다. 현재의 '우리 민족'은 지난 5천년간 한민족, 여진족, 거란족, 말갈족, 한족, 몽고족, 일본계, 인도 및 동남아계의 피가 고루 섞여온 결과이며, 이는 치욕도 무엇도 아닌 세계의 보편적 역사의 흐름 속에서 너무나 당연한 현상일 뿐이다 -  뻔히 지역으로 계급으로 학연으로 혈연으로 나눠져 있고 그로 인해 차별받으면서도 '우리는 하나'라고 믿도록 요구받았다.

'단일집단'으로 유지되기 위해서, 지식도 한가지로, 생각도 한가지로, 심지어는 느낌까지도 한가지로 가지도록 교육받았고, 너와 내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의문을 제기하면 즉시 '위험한 넘'이 되어 버렸었다.

그러나, 언제 끝날지 막막하기만 하던 그 암울했던 억압의 시대는, 믿기지 않는 속도로 정반대의 방향으로 드라마틱하게 변해 버렸으니... 요즘은 오히려 그 반대의 극단이 우리를 지배하는 것은 아닌가 염려될 때도 없지 않다. 우리를 억누르던 억압으로부터의 반발 때문인지, 반대편의 극단적인 '다양성'의 유행으로 치달아 버린것 말이다. '나는 나'니까 나한테는 모든 것이 허용되지만, 니가 어쩌든지 나와는 상관없다는 폐쇄적 다양성이나, '다양한 나' 이외에 다른 다양성은 인정하지 않는 또다른 획일성은 오히려 마음을 더 답답하게 할 때도 있다.

진정한 다양함은, 나와 다름을 이해하고 존중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는 바탕위에 가능한 것이다.

이야기가 너무 거창하게 된 감이 있는데, 음악에 있어서도 이것은 마찬가지다. 내게 덜 익숙한 다른 음악에 대해서도 마음이 열려있고, 좋은 음악이라면 편견없이 듣고 인정할 수 있으면 훨씬 더 즐겁게 음악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클래식이라 접어두고, 땐스 음악이라 치워두고, 국악이라 미뤄두고, 올드팝이라 제쳐두고,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라이벌이라 싫어하는 식으로는 너무나 많은 것을 잃어 버리고 마는 것 아닐까.

모든걸 다 좋아할수는 읍따. 그럴 필요도 없고, 아무도 그걸 강요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다른 것을 좋아할수 있다는 것은 인정해 주자는 것, 나도 그것을 좋아할수 있다는 가능성은 열어두자는 것.

이것이 바로 오늘 본 깐따멘이 주장하고 시픈 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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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시간에는 열분덜 대부분도 어렸을쩍부터 끌려다녔던 피아노 학원, 바이올린 학원. 바로 그 '음악교육'의 뒷모습에 대해 이바구 나누고자 한다. 그때까지 즐거운 음악감상 하시길 바라며, enjoy!

잠깐! 끝마치기 전에 본 종군 DJ 노래한곡 열분께 띄워보낸다, 이밤, 아름다운 이밤.

모짜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중 '저녁바람은 부드럽게'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주인공 앤디가 교도소 전체를 울려퍼지게 했던 그 곡을 기억하시는가? 결국 앤디는 그 댓가로 독방에 처박혀 버리지만, 모짜르트가 확성기를 통해 교도소에 울려 퍼질때 '음악이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다'라는 감동의 얼굴로 음악에 빠져들던 죄수들. 그들이 모짜르트를 잘 알아서, 클래식에 대한 소양이 깊어서 그 순간 감동을 느꼈던 것이 아님은 당연한 일이다.

음악엔,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그 무언가가 있다. 그것을 함께 느꼈음 한다. 다양한 음악에 마음과 귀를 열기만 한다면, 굳이 머리로 이해하지 않아도 아름답게 가슴에 와닿는 음악이 세상엔 가득하니깐!





다양성을 위해 목숨을 건 전장에서
딴지 종군기자 겸 종군DJ 깐따멘
(cantame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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