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운터 테너와 카스트라토 그리고 소프라니스트(수정)

by 정천식 posted Jan 04,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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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명 : Lord Rendall(English Folksong)
연주 : Andreas Scholl(Counter-Tenor), Andreas Martin(Lute)

  지난 해 년말에 있었던 모 교회 원로목사님의 '기저귀 발언'을 놓고 기독교 여성계가 온통 술렁이고 있다. 구약성서에 월경 중인 여자를 부정한 것으로 보아 성전 출입을 금한다든지, 여자를 남자의 부속물 정도로 보는 표현이 많이 나타나 있다. 남성 중심의 사회하에서 기록된 성경은 이처럼 남녀간의 성차별을 내포하고 있으나 남성중심의 교회에서는 도리어 이를 여성에 대한 억압의 수단으로 이용해왔다. 그동안 한국기독교에서도 남녀간의 성차별이 있어 온 것이 사실이고, 여성이 교인의 70%를 차지함에도 교회결의기구인 총회 등에 여성이 참여하는 비율은 2%에도 못미친다고 한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14장 34절에서 이야기 한 "여성은 교회에서 잠잠하라 저희의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만일 무엇을 배우려 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어 볼 찌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임이라"는 말을 글자 그대로 해석한 카톨릭 교회에서는 교회음악에서 여성의 참여를 배제하였다. 이에 따라 여성의 성역에 해당하는 소프라노 파트는 변성기 전의 보이 소프라노나 카운터 테너가 대신하는 관행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카운터 테너라는 게 생겨난 데는 이런 이야기가 전해온다. 이 이야기는 기타의 역사와도 관련이 있으니 주목하기 바란다. 9세기 바그다드의 유명한 음악가였던 지르얍(Ziryab 789~857)은 스승을 능가하는 넘치는 재능 때문에 스승 이스하크의 모함에 쫓겨 바그다드에서 추방되는 일이 있었다. 바그다드의 압바스 왕조는 다마스커스의 우마이야 왕조의 왕족들을 연회에 초빙하여 몰살시키고 세운 왕조였는데 우마이야 왕조의 왕자 압둘 라흐만 1세는 구사일생으로 살아 남아 스페인의 꼬르도바에 있던 우마이야 왕조의 직할령을 흡수하여 스페인에서 후기 우마이야 왕조를 열게 된다.

  바그다드에 대한 적개심이 높았던 후기 우마이야 왕조는 꼬르도바를 바그다드에 뒤지지 않는 도시로 건설하는 데 박차를 가하게 되었고 바그다드에서 쫓겨난 대음악가 지르얍을 초빙하여 유럽 최초의 음악학교를 세워 체계적인 음악교육을 행했다고 한다. 지르얍은 류트의 선조가 되는 알우드(Alud)를 4줄에서 5줄로 개조하였고 줄을 퉁길 때 손 대신 독수리의 날개를 사용하여 우드의 연주법에 혁신을 가져온 인물이었다고 한다.

  기타의 전신인 비우엘라(Vihuela)는 원래 현악기를 총칭하는 말로서 손의 비우엘라(Vihuela de mano), 날개의 비우엘라(Vihuela de penola), 활의 비우엘라(Vihuela de arco)가 있다. 스페인에서는 손의 비우엘라가 발달하여 비우엘라라고 하면 의례껏 기타의 전신인 손의 비우엘라를 지칭하는 것으로 굳어졌지만, 날개의 비우엘라와 같이 지르얍이 독수리의 날개(penola)를 사용하여 새로운 연주법을 개발했던 흔적이 언어 속에 남아 있다. 설명이 좀 길어졌는데, 이 지르얍이 바로 가성(falsetto 팔세토)을 사용하는 카운터 테너의 발성법을 스페인에 전했다고 하며, 이 가성발성법은 트루바두르(Troubadour 음유시인)들에 의해 유럽 전역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고 한다.

  남자는 여자의 높은 성역을 커버할 수 없으나 가성을 사용하면 가능하다. 카운터 테너는 가성발성법을 두성발성법과 결합하는 고도의 훈련을 통하여 태어난다. 한동안 교회음악의 소프라노 파트를 담당했던 카운터 테너는 카스트라토(Castrato 거세한 남자가수)의 출현으로 그 자리를 내어주게 된다. 그러나 교회음악과 오페라에서 활약을 하던 카스트라토도 거세라는 반인륜적인 행위를 금지하는 교회의 결정에 따라 1922년 마지막 카스트라토였던 아레싼드로 모레쉬 (Alessandro Moreschi)를 끝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바로크 시대의 오페라에는 카스트라토가 자주 등장한다. 남자의 역할을 카스트라토가 맡을 것을 염두에 두고 작곡했으나 카스트라토가 사라진 이후에는 남자가 이 역을 노래할 수 없기 때문에 여자가 남성의 역할을 대신하는 이른바 '바지 역할(Trouser role 바로크 시대에 여성이 남성의 역할을 한 것을 지칭함)'이란 것이 생겨나게 되었다. 물론 이 반대인 '치마 역할'도 존재한다. 이처럼 남녀의 성의 역할이 뒤바뀐 것을 '트라베스티(travesti)'라고 한다. 트라베스티는 오페라에 있어 이미 하나의 전통으로 굳어졌기 때문에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모짜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벨리니의 '카풀렛가와 몬테규가', 요한 쉬트라우스의 '박쥐', 오펜바흐의 '호프만의 이야기', 리하르트 쉬트라우스의 '장미의 기사' 등 남녀의 역할이 뒤바뀌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그리고 카운터 테너와 카스트라토를 혼동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카운터 테너는 가성을 사용하지만 카스트라토는 가성을 사용하지 않는다. 카스트라토는 변성기 이전에 거세하기 때문에 보이 소프라노처럼 높은 음역을 구사할 수 있고, 폐가 여성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발달하여 폐활량이 크므로 고음에다 힘까지 갖추고 있어 무척 매력적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소프라니스트(Sopranist 남성소프라노)라는 게 있는데 이는 20세기에 들어 만들어진 신조어이다. 이들은 카운터 테너나 카스트라토와도 다른 특이한 경우인데, 변성기가 지나서도 가성을 쓰지 않고 소프라노의 음역을 구사하는 남자가수를 말한다. 패트릭 위송, 바신스키, 임마누엘 첸칙, 아리스 크리스토펠리스와 같은 가수들이 그들이다. 아리스 크리스토펠리스는 성호르몬 분비 이상으로 변성기에 이르지 않고 소프라노의 음역을 노래하는 특이한 케이스다.

  잊혀져 가던 카운터 테너의 아름다움을 부활시킨 사람이 바로 영국의 성악가 알프레드 델러(A. Deller 1912~1979)로 알려져 있는데, 아름다운 목소리로 영국의 작곡가 벤자민 브리튼을 반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의 오페라 '한여름 밤의 꿈'은 알프레드 델러를 염두에 두고 작곡을 하였으며, 그가 초연에 참여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약간 과장되게 전달된 측면이 있다. 영국 교회에서는 카운터 테너의 전통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져 왔기 때문에 알프레드 델러를 잊혀진 카운터 테너의 전통을 부활시킨 사람으로 소개하고 있는 것은 명백한 오류이다. 아마도 잊혀져 가던 카운터 테너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널리 알린 것이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

  요즈음은 안드레아스 숄과 같은 인기있는 카운터 테너도 탄생하였지만 알프레드 델러가 활동하던 시기는 아직 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시기였다. 카운터 테너의 목소리를 두고 여성도 남성도 아닌 중성적인 목소리라고 거부감을 갖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안드레아스 숄의 음반을 듣다보면 섬세하고도 편안한 소리에 반하게 된다. 처연한 느낌을 주는 소녀적인 감성은 카운터 테너만이 갖는 독특한 매력이며 빌로드처럼 부드러운 숄의 음성은 독특한 매력을 발산한다. 안드레아스 숄은 "카운터 테너는 극히 자연스런 남성의 소리"라고 강조한다.

  카운터 테너, 카스트라토, 소프라니스트에 관한 수많은 이야기가 있으나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속설이 난무하여 정리해본다는 생각으로 글을 써보았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카운터 테너로 활동하는 성악가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 활동이 활발하지는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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