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민족주의 음악의 완성자, 파야(1)

by 정천식 posted Mar 23,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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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지금까지 솔레르 신부로부터 시작하여 알베니스를 거쳐 그라나도스에 이르기까지 스페인 민족주의 음악이 전개되는 과정을 살펴보았는데 파야에 관한 글은 이 주제에 의한 마지막 글이 될 것이다. 이 작곡가들은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평가될 수 있는 소지도 있으나 스페인은 다른 나라에 비해 음악에 있어서 민족적 자각이 늦게 발현되었고, 그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와 같이 잦은 외세의 침략과 동족상잔의 아픔을 겪었다는 점에서 닮은 점이 많다.

  파야는 스페인 작곡가 중 가장 완성도 높은 작품을 작곡했을 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요소가 과거로 묻힐 유물이 아니라 지극히 현대적인 미적 가치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아름다운 작품을 통하여 직접 실천해 보임으로써 스페인 음악이 나아가야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파야가 알베니스와 그라나도스가 가진 한계를 극복해나가는 일련의 과정은 우리에게 많은 걸 느끼게 해준다. 이런 의미에서 필자는 파야를 스페인 민족주의 음악의 완성자라는 평가를 내리고 싶다.

  기타로 편곡되어 널리 연주되고 있는 파야의 스페인 무곡 - 오페라 '허무한 인생' 중에 나온다 - 을 피아노 연탄으로 들어본다. 연주는 라베끄 자매(Katia & Marielle Labeq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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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나먼 민족음악의 길

  스페인 민족주의 음악은 바로크 시대 말기 솔레르(A. Soler 1729~1783) 신부로부터 시작하여 펠리페 페드렐(F. Pedrell 1841~1922)이라는 몽상가에 의해 꿈꾸어지다가 이삭 알베니스(I. Albeniz 1860~1909)와 엔리케 그라나도스(E. Granados 1867~1916)라는 작곡가에게로 이어져 찬란한 꽃을 피우게 된다. 그러나 이들은 49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했고 그들의 작품이 피아노라는 악기에 한정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음악이 스페인적인 색채로 채색되어 있다고는 하나 스페인 전통음악에 대한 인식에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즉, 알베니스의 작품은 '인상주의(Impressionism)'라는 옷을 입고 스페인적인 정서를 표현하고 있지만 개인적인 재능과 감각에 의존하고 있을 뿐 스페인 음악의 역사적 전통에 대한 본격적인 관심은 보이지 않고 있다. 그라나도스의 경우에도 이 같은 한계를 보이고 있는데 비교적 널리 알려진 《또나디야곡집 Tonadillas》과 같은 작품에서 스페인의 음악적 전통에 대한 무관심이 발견된다. 막간극에서 출발한 '또나디야 Tonadilla'라는 장르는 기지와 유머가 가득 담긴 것이지만 그라나도스는 이를 외면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기지와 유머는 고사하고 처연하고 애상적인 감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 곡들이 아름다운 작품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그냥 '가곡집'이라는 제목을 붙이지 않고 《또나디야곡집》이라는 제목을 붙인 대목에선 일종의 배신감마저 느껴지는 건 필자가 음악을 너무 관념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다시 말하자면 작곡가는 자신의 음악적 감성과 창작의 욕구에 의해 작품을 썼을 따름인데 관념적인 시각으로 작곡가를 재단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를 일이다.

  필자가 이렇듯 스페인의 민족주의 음악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건 기실 필자의 관심이 우리나라의 민족음악으로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족주의라는 것은 천의 얼굴을 가지고 있지만 음악에 있어 민족주의라는 개념은 19세기에 시작된 낭만파 시대의 음악에서 하나의 큰 흐름을 형성한다. 낭만파 음악은 바로 시민사회의 형성을 모태로 하여 태어났지만 이 시기의 스페인은 시민사회가 형성되지 못한 채 깊은 잠 속에 빠져 있었다.

  우리나라의 음악은 20세기 들어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서양 음악적인 시각에 의해 교육이 행해졌고 우리나라의 음악적 환경은 필자를 비롯한 우리 세대들에게 우리의 전통 음악에 대한 미감을 심어주지 못하였다. 국악이 우리의 음악이라고는 하지만 서양 음악적인 환경 속에서 자란 우리 세대들에게 서양음악은 남의 것이고 국악은 우리의 것이라는 게 설득력을 지닐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우리 세대들은 서양음악의 음계와 화음에 바탕을 둔 유행가를 들으며 자라왔고, 국악을 듣기보다는 서양의 고전음악을 더 가까이 하며 자라왔기 때문에 우리의 전통음악보다는 서양음악이 더 친숙한 것이 사실이다.

  내 자신을 비롯한 우리들이 TV에서 우리의 전통음악이 방영되면 채널을 딴 데로 돌려버리는 기막힌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채널을 딴 데로 돌려버리는 것은 우리의 전통음악에서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으로 생각한다. 음악에 대한 미감은 반복적인 훈련을 통하여 음악의 큰 틀이 마음 속에서 자리잡았을 때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우리 세대들에게 이러한 음악적인 환경을 제공하지 못하였다.

  우리나라의 많은 작곡가들은 지금도 민족음악의 실현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필자는 작고하신 나운영 선생으로부터 우리나라 민족음악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많은 감화를 받았다. 어려운 여건 하에서 외로운 길을 걸어오신 선생의 족적에서 필자는 성자와도 같은 숭고함을 느꼈었다. 스페인은 유난히 외세에 의한 침탈을 많이 당했고 20세기 들어서는 우리와 같은 사상적 대립과 동족상잔의 아픔도 겪었다. 유럽의 다른 나라에 비해 늦게 시작된 스페인의 민족주의 음악이 전개되는 과정과 스페인의 작곡가 파야의 민족주의 음악을 향한 성자와도 같은 발자취를 조명해보면서 아직도 머나먼 우리나라의 민족 음악을 향한 타산지석으로 삼고자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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