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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itarMania

M.D.2008.06.30 20:54
셀러브리티님께서 좋은 지적을 하셨네요.
순수란 정말 불순물이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보통 예술계에서 순수를 말하면 예술이 다른 것(가치)에의 도구로 전락하지 않는 것-종속적 지위로 떨어지지 않는 경향을 말합니다.

'아퀴나스의 톱'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톱이 톱의 기능을 하지 못하고 단순히 모양만 톱인 작품일 경우 토마스 아퀴나스는 그것은 전혀 쓰임새가 없으므로 불필요하다는 판정을 내립니다. 즉 중세의 견해에서는 예술작품은 기술제품(공예품,Craft)과 분리되어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당연히 톱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작품은 무가지하다고 판단했던 거지요. 순수한 의미에서의 예술은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기능'이 존중 되어야 했고 당연히 작품 자체의 '순수한'가치는 온전히 배제 될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이 시대의 회화도 사실은 종교라는 가치를 위한 기술제품이었던 겁니다.

18세기를 지나 예술과 기술은 점진적으로 분리되기 시작하고 18세기 중엽 이후 칸트와 실러에 의해 미의식이 규정되고 바움가르텐에 의해 미학이 탄생합니다. 예술가의 사회적 지위는 높아지고 예술가는 신격화 되기 시작합니다. 낭만주의 시대의 예술가상은 탈근대인 오늘날에까지 그 영향을 발휘합니다. 신의 계시(직관)에 의한 작곡, 천재는 요절한다는 분위기.....낭만주의 시대의 예술은 모든 가치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탈목적적인 성격을 띄기 시작합니다. 예술은 도덕,정치,종교 그 어디에도 종속되는 것이 아닌 독자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지요. 이렇게 신성함을 등에 업은 Art for art는 오늘날에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19세기를 넘어 예술가들이 하늘에 오른 예술의 지위를 땅에 내리려는 반-예술에의 시도를 해도(변기를 예술품으로 출품하는 등) 반 예술 작품은 곧 예술의 제도권으로 편입되어 버려 그 자체가 예술이 되어 버립니다.
20세기 넘어 조성을 해체하려는 시도를 쇤베르크가 행해도 여전히 현대는 대중음악의 형식으로 조성음악이 선택되는 것처럼 예술 (작품)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여전히 낭만주의 시대의 유미주의에 머물러 있는 것 같습니다. 즉 예술은 예술 자체로 존재해야 한다는.....이것이 '예술'에서의 순수입니다.

그러나 np님의 '순수'는 이러한 유미주의의 관점에서 논해지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보다는 단순한 인간적 성향에 관한 것이랄까.....



문학이나 미술에 비해 정치적 성향에서 가장 자유스러운(좋게 말하면) 분야는 아마도 음악일 겁니다.
아마도 표상, 또는 재현(representation)에서 가장 거리가 먼 분야이기 때문이 아닐까합니다.
우리가 사물을 '본다'는 것은 단순히 상이 눈에 맺히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바라 본 대상의 의미를 머리속에서 재현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겠죠.
빨간색을 예로 들면......국대 축구선수라면 빨간색을 보면 먼저 유니폼이 생각날 것입니다. 여기 저기의 몇몇 찌질이들은 빨갱이 생각이 먼저 날 것이구요. 즉 빨간색이 빨간색으로 지각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의 사유를 통해 빨간색이 가진 의미를 머리속에서 '재현'한다는 의미입니다.

빨갱이 얘기가 나와서 생각나는 말인데....이청준은 '소문의 벽'이라는 소설에서 '전짓불(후레쉬)'의 공포에 대해 언급합니다. 6.25전쟁 시절, 주인공의 집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괴한들이 들어 닥칩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유는 이들이 밤에 들이 닥치고서는 불현듯 방문을 확 여는데, 전짓불을 강하게 비춘 탓에 주인공과 가족들의 시각에서는 이들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민군인지, 국군인지 정체를 도저히 알 수 없었기에 그들이 주인공의 성향(국군편인지 인민군 편인지)을 물을 때 아주 난감하고 공포스러운 상황에 처해질 수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여기서 젓진불이 상징하는 바는...구태여 설명드리지 않아도 짐작 하실거라 생각합니다.

문학이나 미술은 이처럼 사물을 그 자체로 드러냄과 동시에 사물에 내포되어 있는 '상징/의미'를 표상(representation)할 수 있으므로 구상이든 추상이든 나름대로 현실 세계와 밀접한 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에 음악은.......드뷔시가 아무리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을 표현해도 그 음악 자체에 목신(Pan)이나 오후를 표상하기 어렵습니다. 만일 정말 그 음악에서 오후가 느껴진다면, 그건 제목에서 오는 선입관이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또는 이후의 영화 음악에서의 유사한 분위기를 접하면서 무의식 중에 표상하게 된 것일 수도 있구요.

음악이 현실화,정치화 되는 것은 무엇보다 가사의 영향이 크겠지요. 그러나 위에서 어떤분께서 언급하셨듯 가사 자체는 음악예술의 순수함과는 거리가 있을 겁니다. 아무리 성악이 기악보다 먼저 등장했다해도 그레고리안 성가를 들으면 알 수 있듯이 성가 자체가 종교에 예속된 비순수한 것이므로.

예술의 탈목적적 성향(유미주의적 성향)에 무엇보다 잘 들어 맞는 것은 순수 음악이라는 생각입니다. 가사 없이는 그 어떤 현실을 재현하기에 힘드므로.....민중의 핍박, 전쟁의 공포 등을 재현하는 데에 태생적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제 아무리 4분33초동안 피아노를 연주하지 않고 연주하는 퍼포먼스를 벌여도......어쩌면 이러한 성향 때문에 현실 외면/도피의 수단으로 가장 먼저 의혹의 눈초리를 받는 것도 사실인 것 같습니다. 여기서도 종종 그러지 않습니까. 정치 얘기 하지말라,라고.



사족)철학의 문제를 '해소'한 비트겐슈타인의 식구 중에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있다고 합니다. 1차 세계대전에 참가해서 그만 한쪽 팔을 잃어버리죠. 그를 위해 씌여진 음악이 라벨의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 라장조'라 합니다.
음악가는.....순수 음악을 위한 음악가가 작품을 통해 현실세계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은 과연 있을까요?
소르, 타레가,망고레의 음악을 연주하는 기타리스트가 작품을 통해 현실 세계에 참여할 방법은?

역시 촛불 하나 달랑 들고 비음악적으로 행동하는 수밖에.
그러다가 손가락이 날라가면.....그 누가 왼손을 위한 기타곡을 써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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