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이념 - 알베니스의 피아노 협주곡을 중심으로

by 1000식 posted Feb 06,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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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andante.com/naive/catalog.cfm?action=displayProduct&iProductID=784작곡 : I. Albeniz(1860-1909)
곡명 : Concierto Fantastico - Primero Concierto Para Piano en La Menor Op. 78(1887)
연주 : Enrique Perez De Guzman(Pf.), Manuel Galduf(Director), Orquesta de Valencia
음반 : Naive V4661








알베니스가 청년기에 작곡한 피아노 협주곡, Concierto Fantastico.

아마도 이 곡을 처음 들어보신 분들이 많으리라 생각된다.

그도 그럴 것이 필자가 아는 내노라 하는 음악 애호가치고 이 곡의 존재를 아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더구나 피아노에 관한 음반을 집중적으로 컬렉션하고 있는 조 모형 조차도 이 곡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동안 음반 목록에서도 이 곡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았다.

왜일까?

그건 아마도 당시의 알베니스의 개인사적인 고찰과 시대적 흐름 속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 같다.







알베니스는 오랜 침묵(스페인은 알베니스 이전 거의 200년간 이렇다 할 작곡가를 배출하지 못했다)을 깨고 혜성처럼 등장한 피아노의 신동이었다.

천성적인 보헤미언이자 자유로운 영혼을 가졌던 그에게 페드렐과 드뷔시와의 만남은 인생의 큰 전환점이었다.

페드렐은 그에게 스페인 민족주의 음악에 대한 강한 역사적 사명을 느끼게 해주었고, 드뷔시와의 만남은 그의 음악을 어떠한 그릇에 담아야 하는가에 대한 사고의 틀을 제공했다.

알베니스가 이들을 만나지 못했다면 아마도 손가락 기술자(?)로서 생을 마감하고 말았을 것이다.





알베니스에게 큰 영향을 끼친 Felip Pedrell(1841-1922)



협주곡이란 장르는 바로크 시대로부터 낭만파 시대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작곡되었다.

알베니스가 활동하던 시기는 낭만주의 시대가 막바지에 이른 시기로서 구시대의 유물인 소나타 형식이 빛을 잃어가던 시기였다.

이른 바 소나타의 범주에 든다고 할 수 있는 독주악기를 위한 소나타, 실내악 편성을 위한 소나타(Trio, Quartet, Quintet 등), 관현악을 위한 소나타라고 할 수 있는 교향곡, 독주악기와 관현악을 위한 소나타라고 할 수 있는 협주곡 등과 같은 형식의 작품을 그의 작품목록에서 찾기란 쉽지 않다.

새로운 음악을 지향하던 그에게 구시대의 유물인 소나타는 자신에게 맞지 않는 형식이었기 때문이다.

알베니스는 드뷔시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는데 드뷔시의 작품 목록에서도 교향곡, 소나타, 협주곡과 같은 것들은 보이지 않는다.



알베니스의 후배인 그라나도스나 파야의 음반목록에서도 소나타, 교향곡, 협주곡 등과 같은 제목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들은 주로 표제를 가진 소품 위주의 작품이 주종을 이루며 파야를 제외하면 거의 피아노 작품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그라나도스는 "피아노5중주"를 작곡했지만 오늘날 거의 연주되지 않으며, 파야가 작곡한 "쳄발로 협주곡" 정도가 알려져 있을 뿐이다.

후기 낭만파라고 할 수 있는 이들 3총사에게 있어 소나타는 낡은 형식으로서 관심 밖이었던 것 같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듯이 이들 3총사에게 있어 소나타는 자신의 악상을 담는 그릇이 아니었던 것이다.

알베니스도 피아노 소나타를 몇 곡 남기고 있지만 다른 작품에 비해 비중이 낮고 오늘 날 거의 연주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이고 보면 알베니스의 피아노 협주곡이 오늘 날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리라.



나는 알베니스의 피아노 협주곡을 듣고 충격에 빠져 들었다.

지금까지 알고 있던 알베니스의 모습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에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음반이 아니라 FM 방송에서 흘러나온 음악을 들었다면 그의 작품이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작품은 쇼팽이나 그리그의 미발견 작품이라고 해도 그대로 믿을 정도로 이들의 음악세계와 같은 맥락을 가지고 있다.

그의 작품에서 매양 느껴지던 토속적인 스페인 음악의 체취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져버린 것일까?



알베니스의 피아노 협주곡은 그가 27세 때인 1887년에 작곡되었다.

이 작품은 그의 스승 호세 트라고(Jose Trago) 교수에게 헌정되었다.

전체 연주시간은 30분 정도이나 1악장이 14분 정도로 전체의 1/2이 될 정도로 확대되어 있다.

1악장 Allegro ma non troppo.

이 협주곡의 중심이 되는 악장이다.

감정이 다소 과다하게 녹아있는 낭만파의 전형적인 모습이 첫 부분부터 나타난다.



이 작품으로 미루어 짐작해보면 젊은 시절의 알베니스는 낭만파 음악의 철저한 신봉자였던 것이 틀림이 없다.

이 작품에서는 쇼팽이나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에서 느껴지는 전형적인 우울한 감정의 편린들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철저한 낭만주의의 신봉자였던 그가 페드렐과 드뷔시를 만난 이후 스페인적인 토속적인 세계를 인상주의라는 옷을 입혀 표현해낸 것은 참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음악은 감정의 산물”이라는 보편적인 생각보다 “음악은 이념의 산물”이란 것을 이 협주곡을 들으며 느끼게 된 계기가 되었다.

적어도 알베니스에게 있어서는 그렇다.



매냐 칭구들은 알베니스의 작품에 대해 대부분 친숙하기 때문에 그의 작품세계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매냐 칭구들에게 친숙한 작품은 대부분 초기나 중기의 작품이기 때문에 이들 작품으로 알베니스를 논한다는 것은 심히 위험천만한 일이다.

알베니스의 후기 작품은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후기의 대표작인 “이베리아 모음곡”에 대한 이해 없이 알베니스를 논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베리아 모음곡”에는 알베니스가 궁극적으로 지향했던 음악에 대한 그의 이상적인 세계가 펼쳐지고 있다.

그는 인상주의 음악을 모방하는 데 그친 것이 아니라 스페인적인 물감으로 채색을 함으로써 인상주의의 이념을 충실히 구현하고 있으며 인상주의 음악을 더욱 다채롭게 하고 있다.



알베니스의 후기작품과는 전혀 다른 초기의 피아노 협주곡을 들으면서 새삼 느끼는 것은 “음악은 감정의 산물”이 아니라 “음악은 이념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민족주의”와 “인상주의”라는 이념이 없었다면 오늘 날의 알베니스는 그저 스페인이라는 변방의 이름없는 작곡가로 머물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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