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마치고

by 느끼 posted Feb 11,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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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님의 글을 읽다 불현듯 저도 무언가를 쓰기로 결심합니다.
머릿속엔 온갖 관념들이 얽혀
내가 지각하기 시작한 어느때부터의
수천의 에피소드들이 서로 꼬리를 물고 나타나지만
그것을 정돈된 단어로 끌어내는 것은
변비환자의 쾌변, 그것만큼이나 어렵습니다.

예술과 시대

한 가지 분명한 생각은 예술과 시대의 부조화입니다.
예술이라는 명제가 그 향유자에게 좀 더 분명하게 어떤 이미지를 제시하려면
그것은 작가의 개인사 혹은 작가의 가족을 포함한 인적 네트워크 안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조금 범위를 넓혀서 작가의 사회 혹은 민족/국가의 환경적인 요소도
배제할 수 없다고 생각되지만, 그것은 밑그림에 불과할 뿐입니다.
예술작품에서 시대상을 읽는다는 것은 자칫
멍한 눈으로 숲만 보는 오류를 범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산수를 담아낸 많은 그림이 있겠지만
화자 개인의 인식과 대상에 다름 아닙니다.
우리나라 근대 문학작품(정확한 분류는 아닙니다)을 예로 들면
김동리와 염상섭을 그저 “근대문학”이라고 분류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우리 80년대의 걸개그림이 지극히 거대담론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것에 비하면
디에고 리베라의 대형 벽화들은 오히려 솔직합니다.
단순히 보면 프리다와 디에고가 전혀 다른 소재를 그렸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모두 자신과 끊이 닿아있는 가까운 소재들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예술과 돈

이 부분에서는 수님과 전적으로 생각이 일치하는 것 같습니다.
예술하고 돈은 전혀 상관이 없죠.
왜자꾸 두 가지가 연관되어서 비교되는지 모르겠네요.
예술가가 가난한 것은
부모님이 돈이 없어서 이거나, 자신이 돈 관리를 잘 못하거나
아니면 현재 가지고 있는 돈으로 스스로 만족하지 못할 뿐이죠.
심지어는
-        예술가는 가난한다
-        나는 가난한다
-        고로 나는 예술가이다

식의 말도 안되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더군요.
제가 보기에 직업적으로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버는 돈과 쓰는 돈이 상위 10% 안에 들겁니다.
예술, 예술적인 삶, 예술행위는 돈과 전혀 상관 없습니다.
연주라는 행위 자체는 “노동”이지 예술은 아닐겁니다.

예술과 윤리

이것에 대해서 말을 하자면, 예술의 범위에 대해서 구체화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예술을 “개인의 삶에 대한 함축된 표현” 정도로 정의하는데
그렇다면 이 두가지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요.
삶 자체가 옳고 그른 가치를 분별하며 절대의 어느곳으로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엔 주파수가 전혀 맞지 않습니다.
예술이 밀접하게 관계하고 있는 것은 “정신”이지 “윤리”는 아니라고 봅니다.
윤리는 수우미양가 같은 것이라서 보편적인 편의성에 기초한 것입니다.
사실, 보편적이라기 보다 인간을 사육하는 가장 초보적인 개념이지요.
곰에게 ‘한 바퀴 구르면 먹이 하나” 던져주는 것처럼 Trade-off 아닐까요.
“국민윤리”에 따르면 아나키즘은 가장 비윤리적인 것이 되지요.
수십년을 묵언한 수도자에게 아버지가 환갑이니 뽕짝하나 걸죽하게 불러야 한다고
윤리적으로 강요한다면 그것은 “정신”을 “윤리”의 따까리 정도로 생각하는
천박한 발상이겠지요.
바흐가 루터파(청교도)적인 생활습관을 가지고
애 새끼들 잘 낳고 출퇴근할 때 엄한데 새지 않았다고
그의 음악에 “정신”이 있다고 하는 것을 아닐겁니다.
비록 그것을 윤리적이 었다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요.
바그너의 윤리가 아닌 정신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그것은
사명대사의 “해골음료” 처럼 난해한 것이라서 쉽게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것 또한, 시간이라는 정화(淨火)를 거쳐서 이제 그 본질만을
남겨두는 것이 자연의 이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

오모씨의 깊은 오른손, 배모씨의 탄탄한 왼손의 힘, 김모씨의 내세움없는 단백한 연주…
십수년이 지나서도 아직까지 떠오릅니다.
그 때 청년들은 지금 세월의 먼지가 뿌옇게 내려앉아 저도 모르게 강팍해져 있겠지만,
지금 무엇을 하든 그 예술적인 흥취는 많이 깊어졌을 겁니다.

수님 결혼식날 가을 도봉산 자락에서 울리던
“즐거운 나의 집” 브라스를 아직 기억합니다.
그 날, 그 곳, 그 사람들, 단풍, 저고리와 한복까지가 예술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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