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평화의 염원이 담긴 새의 노래

by 정천식 posted Mar 15,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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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의 글은 2003년 4월, 이라크에 전운이 감돌 무렵 한 잡지에 기고했던 저의 졸문입니다. 한 위대한 음악가가 야만의 세력에 의해 조국과 인류의 평화가 위협받았을 때 어떻게 고민하고 어떻게 저항했는가를 말해주는 소중한 이야기입니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우리 앞에 벌어진 초유의 상황에 대해 다 같이 생각해 보면서 우리들이 꿈꾸는 이상과 소망을 담아봅니다.

  이 글은 기타 매니아에 올리지는 않았지만 음반자료실(363번)에서 음악을 소개하면서 링크를 한 적이 있기 때문에 읽어 보신 분도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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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즈음 미국과 이라크 사이에 일촉즉발의 전운이 감돌고 있고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반전 시위가 확산되고 있다. 전쟁의 발발하면 최대의 피해자는 여성들과 아이들이라고 세계의 여성계에서도 반전 분위기가 드높다. 최근 북한 핵문제가 국제적인 이슈로 되어있고 북미 관계가 악화되면 한반도 역시 전쟁의 안전지대가 아니다. 이러한 때에 까딸루냐의 민요인 <새의 노래>를 들으며 인류평화에 대한 소박한 소망을 기원해본다.

◆ 까딸루냐는 플라멩꼬 음악을 발의 때처럼 우습게 아는 문화적 전통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지방이다

  스페인은 다양한 민족과 언어 그리고 역사적으로 동양과 서양이 각각 지배했던 관계로 동서양의 문화가 뒤섞인 복잡한 문화적 전통을 가진 나라다. 고대에는 그리스와 로마가 지배했고, 5세기 초에는 서코트족이, 8세기부터는 아랍민족이 15세기말까지 지배를 했다. 1492년 기독교 세력이 아랍세력을 완전히 몰아냄으로서 비로소 이베리아 반도가 통일을 이루었다. 까딸루냐는 이베리아 반도의 동북부에 위치한 작은 지방으로 북으로 피레네 산맥을 경계로 프랑스를 접하고 있고 동으로는 지중해를 접하고 있다. 1992년 올림픽이 열렸던 바르셀로나가 바로 이 지방의 수도이다.

  13~4세기에 지중해 무역을 독점할 정도로 번성했던 까딸루냐 왕국(백작령)의 후예로서 독자적인 언어와 문화적 전통을 갖고 있는 지방이다. 정치적으로는 까스띠야 지방에 흡수되어 스페인의 공식 언어는 까스띠야어를 사용하지만 예로부터 까딸루냐어를 사용해왔다. 이 지방 사람들 앞에서 플라멩꼬 음악이 스페인을 대표하는 음악이라고 이야기한다면 큰 실례를 범하는 것이 된다. 이들은 플라멩꼬 음악을 발의 때처럼 우습게 아는, 문화적 전통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지방이다. 그도 그럴 것이 스페인 국토면적의 6%에 불과한 조그만 이 지방에서 스페인의 나머지 지역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세계적인 예술가를 배출했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첼로의 거장 카잘스(1876~1973)와 그 제자 카사도(1897~1966), 성악가 카레라스(1946~ )와 로스 앙헬레스(1923~ ), 그리고 수페르비아(1895~1936)와 카바예(1933~ ), 피아니스트 라로차(1923~ )여사와 드뷔시와 라벨의 피아노 작품들을 초연한 비녜스(1875~1943),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의 작곡자로 널리 알려진 기타의 대가 타레가(1852~1902)와 그 선배 격인 소르(1778~1839), 작곡가 알베니스(1860~1909)와 그라나도스(1867~1916) 그리고 몸뽀우(1893-1987), 건축가 가우디(1852~1926), 화가 달리(1904~1989)와 미로(1893~1983) 등이 이 지방 출신이다. 예술에 관한 한 스페인의 지류가 아니라 본류를 형성하고 있는 지방이 바로 까딸루냐다.

◆ 어머니와 조국에 대한 그리움과 인류평화에 대한 염원이 담긴 카잘스의 <새의 노래>

  <새의 노래>는 까딸루냐 지방에서 수 백년 전부터 전해져 오는 크리스마스 캐럴로서 망명 중의 카잘스가 첼로로 즐겨 연주하여 널리 알려진 곡이다. 이 곡은 새들이 예수의 탄생을  세상에 알리고 기쁨의 노래를 부른다는 가사 내용이다. 까딸루냐의 새는 "Peace, Peace"라고 운다는 말이 있다. 이 말 속에는 평화를 갈구하는 이 지방 사람들의 염원과 프랑꼬 정권의 압제에 대한 저항정신이 숨어 있다.

  까딸루냐의 큰 교회의 광장에서는 토요일과 일요일 저녁에 사르다나(Sardana)라는 민속무용이 시작되는데 어린애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남녀가 교대로 손을 잡고 원을 이루어 춤을 춘다. 3박자로 느리게 시작하여 점점 빨라져서 몇 번 반복하다가 갑자기 끝난다. 까딸루냐 사람들은 이 춤을 통하여 침략과 억압을 견뎌 낸 민족의 연대감을 확인하는 것이다.

  카잘스의 이름인 파블로(Pablo)는 까스띠야어로 부르는 것이고 까딸루냐어로는 파우(Pau)로서 "평화"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하는데 카잘스는 자신을 "파블로"보다 "파우"로 불러주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카잘스가 연주하는 <새의 노래>를 들으면 그리움이 물밀듯이 밀려와 코끝이 시큰해진다. 과연 카잘스의 이 연주를 듣고 무덤덤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 곡은 어머니와 고향 까딸루냐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과 인류평화에 대한 간절한 염원과 메시지를 담고있다. 카잘스는 항상 연주회의 마지막에 <새의 노래>를 연주하였는데 이 곡은 카잘스에 있어 아주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생애와 스페인의 역사적 상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카잘스는 1876년 까딸루냐 지방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는데 이 무렵은 스페인의 식민지들이 하나 둘 독립을 하여 사실상 스페인 제국이 무너지던 시기로서 스페인 내에서 허무주의가 팽배해 있었고 공화정과 왕정이 번갈아 뒤바뀌는 격동의 시기였다. 까딸루냐에서는 까스띠야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 내지는 자치권을 획득하고자 하는 정치적 기운이 고조되던 때였고 카잘스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까딸루냐의 자치권에 대한 철저한 옹호자였다.

  알버트 E. 칸이 지은 <나의 기쁨과 슬픔, 파블로 카잘스(도서출판 예음 출간)>이란 책을 보면 스페인 정부로부터 카잘스의 막내 동생이 징집명령을 받았을 때 카잘스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고 소개하고 있다. "얘야, 너는 아무도 죽여서는 안되며 누가 너를 죽여서도 안된다. 너는 사람을 죽이거나 죽임을 당하려고 태어나지 않았다. 아들아! 이 나라를 떠나거라." 이리하여 막내 동생은 징집을 피해 11년 동안이나 아르헨티나에서 지냈다. 이 이야기는 카잘스의 가족이 국가관이 희박하다는 의미로 이해되어서는 안되며 스페인의 정치적 상황 하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과거의 우리와 역사적 상황은 다르지만(까딸루냐는 식민지가 아니다) 일제시대에 징집을 피하려고 발버둥치던 사실을 상기해 보라.

  사상적 대립과 피의 회오리가 몰아치던 스페인 내전의 와중에서 뭇솔리니와 히틀러의 지원을 받고 정권을 잡은 프랑꼬 총통은 까스띠야어를 스페인의 공식언어로 선포하고 까딸루냐의 자치권을 박탈함과 동시에 공식석상에서 까딸루냐어의 사용을 금하였다. 스페인은 UN에서 축출당하는 수모를 당했으며 경제적 제재 조치로 국제적인 고립을 당하기도 하였다. 프랑꼬는 국가원수, 총리, 군총사령관, 유일한 합법 정당인 팔랑헤당의 당수직까지 겸임함으로서 철권으로 통치하였으며 절대권력을 행사하였다. 분노한 카잘스는 프랑꼬 정부를 인정하는 국가에서는 일체 연주를 하지 않기로 선언하고 스스로 망명길에 올라 고향에서 가까운 프랑스의 작은 산골마을 프라데에 은거하였다.

  오랫동안 까딸루냐인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몬트세라트 수도원의 수도승들은 프랑꼬 정부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까딸루냐 말로 미사를 거행했으며 카잘스가 이 수도원을 위해서 작곡한 종교합창곡을 자랑스럽게 불렀다고 한다. 몬트세라트 수도원에 가면 카잘스의 동상이 있는데 카잘스 사후에 이들의 우정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것이다. 카잘스가 작곡한 종교합창곡은 Koch International사에서 몬트세라트 수도원 소년합창단(Escolania de Montserrat)의 연주로 음반이 발매되었으니 참고 바란다. 이 소년합창단은 13세기부터 이어져 온 유서 깊은 전통을 자랑하는데 기타의 베토벤으로 불려지는 소르(1778~1839)도 이 소년합창단 출신이다.

  흔히 카잘스를 첼리스트로만 알고 있는데 그는 오라토리오 <엘 페세브레(말구유)>, < UN찬가>, <사르다나> 등 70여 곡을 작곡한 재능 있는 작곡가이며 또한 22세부터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이래 오케스트라를 창설하고 지휘한 사람이기도 하다. 카잘스는 1971년(95세) UN총회에서 세계평화에 대한 연설을 한 후 <새의 노래>를 연주하였으며, 1973년, 꿈에도 그리던 고향 땅을 밟지 못하고 어머니의 고향인 푸에르토 리코에서 97세를 일기로 타계하였다. 1975년 프랑꼬 총통의 죽은 후 1979년 고향 까딸루냐에 안장되었다.

◆ 새의 노래를 연주한 음반

  카잘스의 <새의 노래>는 1950년(74세) 프라데 페스티벌에서 연주한 음반(오케스트라 반주), 1954년(78세) 프라데 페스티벌에서 연주한 음반(오케스트라 반주), 1961년(85세)의 백악관 연주실황 음반(피아노 반주)이 있다. 일반적으로 백악관 연주실황이 많이 알려져 있는데 녹음은 오래됐지만 1950년도의 관현악 반주에 의한 프라데 페스티벌의 연주가 감동적이다. 첼로라는 악기가 갖는 유려함을 충분히 느낄 수 있어 좋고 이 곡이 갖는 애타는 그리움을 더 잘 표현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참고로 관현악 반주는 카잘스 자신에 편곡에 의한 것이다.

☞ 카잘스의 1950년 프라데 페스티벌 연주, CBS SONY CCK 7062(CD)

















  백악관 연주실황은 당시의 미국 대통령이었던 존 F.케네디의 초청에 의해 이루어진 것인데 프랑꼬 정부를 인정한 국가에서는 일체의 연주를 하지 않겠다는 자신의 약속을 깬 것이라서 세계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카잘스의 오랜 친구인 호르초프스키(1892-1992)가 피아노 반주로 참여하고 있으며 곡의 중간 중간에 카잘스의 신음소리가 녹음되어 있어 듣는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이 음반은 스테레오 시대인 1961년도에 녹음되었지만 모노녹음이다. 하지만 실황녹음의 현장감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생생한 녹음으로 음질도 비교적 좋다.

☞ 카잘스의 1961년 백악관 연주(피아노 반주 : 호르초프스키), CBS CCK 7751(CD)

















  로스 앙헬레스의 <새의 노래>는 1970년(47세)에 EMI에서 발매한 로스-마르바가 관현악 반주로 편곡한 음반과 1991년(68세)에 녹음한 음반이 있다. 로스 앙헬레스의 노래는 둘 다 카잘스 못지 않은 절절한 그리움이 베인 훌륭한 연주다. 로스-마르바는 바르셀로나 출신의 지휘자인데 그가 편곡한 이 곡은 소슬한 가을바람이 느껴지는 쓸쓸한 분위기다. 그래서 필자는 이 곡에 <짝 잃은 새의 노래>라는 이름을 붙였다.

☞ 로스 앙헬레스의 1970년 연주(지휘 : 로스-마르바), EMI ASD 2517(LP)

















  1991년의 녹음은 피아노 반주로 노래하는데 68세라는 나이가 느껴지지 않는 싱싱한 연주다. 로스 앙헬레스 나에게 있어 나이를 먹지 않고 언제나 꿈을 간직하고 있는 청순한 소녀이며, 언제나 기품을 잃지 않고 은은한 향기를 뿜어내는 목련꽃 같은 여인이며, 누님처럼 친근하고 어머님처럼 포근한 가수이다. 그리고 그녀는 생래적으로 노래하는 즐거움이 뭔지를 아는 가수다. 할머니의 나이임에도 싱싱한 목소리를 간직하고 있는 것은 목소리를 혹사하지 않는 그녀의 노래 스타일 때문이다. 로스 앙헬레스는 스페인 민요에 관한 깊은 애정과 이해를 가지고 수많은 녹음을 남기고 있는데 로스 앙헬레스도 카잘스와 마찬가지로 까딸루냐 출신이므로 이 곡이 갖는 민족적인 정서를 잘 표출하고 있다. 로스 앙헬레스는 이 곡을 까딸루냐어로 부르고 있는데 가사의 내용을 소개하면 이렇다.

목동들이 성스러운 밤의 커다란 불빛을 보았을 때
새들은 천사와 같은 목소리로 아기 예수에게 인사하며 노래하고 있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려고, 우리에게 복을 주시려고 예수가 태어났다고
독수리가 기쁨의 노래를 부르며 바람을 가르며 날아갑니다.

☞ 로스 앙헬레스의 1991년 연주(피아노 반주 : 제프리 파슨즈), Collins 13182(CD)

















  페데리꼬 몸뽀우(1893~1987)는 <새의 노래>를 기타 독주곡으로 편곡하였는데 그는 파야(1876~1946) 이후 스페인을 대표하는 까딸루냐 출신의 작곡가이다. 몸뽀우는 이 곡을 원곡이 가지는 정서를 조금도 해치지 않고 아름다운 기타 독주곡으로 편곡하였는데 원래 기타를 위해 작곡된 것처럼 매우 기타적인 울림을 가지고 있다. 아마도 그가 까딸루냐 출신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정서적으로는 로스 앙헬레스가 부른 <짝 잃은 새의 노래>처럼 쓸쓸하기 그지없는데 기타의 울림에서 이 같은 쓸쓸함을 담아낸다는 것은 예사로운 솜씨가 아니다.

  그론도나는 이 곡을 명장(名匠) 안토니오 토레스(1819~1892)가 제작한 1887년산 기타로 연주하고 있는데 그론도나의 연주도 훌륭하지만 명기 토레스의 아름다운 음색이 각별하다. 이 악기의 깊고 그윽한 저음과 윤기 있는 중고역의 울림을 최신 녹음으로 듣는다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 토레스가 제작한 기타는 울림통을 키우고 현의 장력에 견딜 수 있도록 울림통 내부에 보강목을 붙여 음량의 증대를 가져오게 한 현대 기타의 표준을 만든 명장이다. 기타는 음색이 매우 아름답지만 음량이 작아 주로 독주나 중주의 형태로 소규모 연주회장에서 연주해 왔는데 명장 토레스 이후 기타는 비로소 대규모 연주회장으로 진출할 수 있게 되었다. 토레스의 아름다운 음색은 너무도 황홀하며 몸뽀우의 명편곡과 어우러진 <새의 노래>는 이 곡의 카탈로그에 반드시 들어가야 할 빛나는 보석이다.

☞ 그론도나의 기타 연주(편곡 : 페데리꼬 몸뽀우), Stradivarius STR 33589(2C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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