쳄발로, 사방에 별이 촘촘히 박힌 까만 밤하늘
어릴 때 디즈니의 에니메이션을 보면 팅커벨이 사뿐 날아다니면서 살짝 스치는 모든 것에 마술봉을 톡!톡! 쳐서 눈부신 가루를 퐁퐁 솟아나게 하곤 했습니다. 그 장면이 왜 그리 머릿속에 깊게 남아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키가 성큼 자라버린 오늘까지 가끔 그렇게 반짝반짝 빛을 머금은 유리조각, 아니, 어쩌면 달콤한 설탕조각인지도 모릅니다. 아시죠? 설탕을 굳혀 반투명하게 된 조각, 전, 쳄발로를 들으면, 그 팅커벨의 마술봉에 머리를 한 대 톡! 맞은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제가 쳄발로라는 악기를 처음 만났을 때 느낌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팅커벨의 마술봉, 톡!톡!톡!
쳄발로의 매력은 크레센도와 데크레센도가 강렬한 바이올린의 다이내믹함에 있지 않습니다. 아마도 밤하늘에 비유한다면 바이올린은 혜성쯤 되는 것 같습니다. 서쪽 끝 지평선에서부터 솟아올라 보는 이의 경탄을 자아내며 긴 꼬리를 자랑하고 다시 이쪽 끝으로 사라지는 혜성말이죠. 어쩌면 밤하늘 긴 장막을 찢어내는 메스인지도 모릅니다. 가끔 바이올린을 들으면 제 마음에서 피가 나거든요.
또한 쳄발로는 올려다보는 사람의 심경에 따라 따뜻하게도 애틋하게도 들리는 기타와도 다릅니다. 기타는 밤하늘의 달님이라고 할까요? 그것은 둥글었다 뾰족해졌다 모습을 바꾸기도 하고 같은 둥근 달님이라고 해도, 그리운 이의 얼굴이 되었다 고향마을 지키는 어머니 가슴이 되었다 아무도 두드리지 않는 창문 아래를 지켜선 나 자신의 모습이 되기도 하지요. 기타는 그 무엇도 될 수 있고 그것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지만 완벽하지 않은 매력을 갖추었습니다.
쳄발로는 긴꼬리별도 아니고 달님도 아닙니다. 그것은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면 까만밤하늘에 빈 곳이 없이 가득찬 별조각들입니다. 반짝거리는 별조각들은 어깨동무를 하고 밤하늘을 꼭 채우고 있습니다. 하나하나의 음들이 혼자 외따로 있지 않고, 바로 다음, 바로 다음 연속하여 따라나오면서, 마치 화려하게 수놓아진 벨벳천을 가득가득 깔아놓는 듯, 음악의 가장 바깥쪽 공간을 에워싸는 대기로 변모합니다. 그것은 정성껏 커팅된 다이아몬드입니다. 빛은 다이아몬드의 24면, 64면, 128면에 순간적으로 스치면서 분절을 연속으로 만들고 서로를 서로에게 반사합니다. 쳄발로의 음들은 바로 다음 음에게 생명을 주고 사라집니다. 쳄발로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은 끝없이 펼쳐진 붉은 계단, 미인의 희고 고른 치열에 반사되는 햇빛, 언제까지고 계속 돌아갈 것만 같은 드럼통 안에서 계속계속 휘감겨나오는 솜사탕, 깊은 산속 고개를 들었을 때 빈곳없이 가득한 별조각 쏟아지던 그 밤 한자락이었습니다.
물론 쳄발로는 화려하게 반짝이기만 하는 악기인 것만은 아닙니다. 그것은 때로 가슴을 파고드는 유리조각의 연속일 수도 있습니다. 손가락을 내밀었다가는 온통 베일 수 있는 날카로움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혹, 당신의 팔과 다리를 눌러 꼼짝하게 할 수 없는, 목부터 가슴을 압박해 숨도 쉴 수 없게 만드는 슬픔이기도 합니다. 쳄발로의 슬픔은 바이올린처럼 흐느껴 울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기타처럼 아픔을 한가운데 삭여 다시금 둥근 음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가만가만 끊이지 않고 흘러내리는 눈물입니다. 방울방울 양볼을 따라 흘러내려 한줄기가 되는 눈물입니다.
바하의 FANTAISIE CHROMATIQUE & FLUGUE와 같은 곡에서 화려하게 펼쳐지는 쳄발로의 기운을 느낄 수 있구요- 그리고- 숨조차 쉴 수 없는, 닿을 수 없어 더욱 애틋한 열망은 앙타이의 골드베르크변주곡에서 느끼실 수 있습니다.
아참, 왜 팅커벨 이야기 하다가 마느냐구요? 어떻게하면 팅커벨의 마술봉에 한 대 맞을 수 있냐구요?
아직 당신에게는 팅커벨이 찾아오지 않았나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적혈구가 갑자기 금혈구/은혈구로 변하는 그 짜릿함을 느껴볼 수 없었나요?
발견하세요, 당신의 다이아몬드를, 커팅되지 않은 그것은 당신의 눈빛(!)에 아름답게 커팅되어 팅커벨의 금빛은빛 가루를 퐁퐁 터트려줄거예요. 그/그녀를 발견하는 그 순간, 그 순간, 당신은 피터팬이 되어 팅커벨을 알아볼 수 있을거예요. 잊지말아요, 이 세상 어딘가에 꼭, 그 사람이 숨쉬고 있다는 것을.
(병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금 "사랑"을 주제로 삼다,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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