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4.05 00:20
지기스발트 쿠이겐 VS 라인하르트 괴벨
(*.206.17.90) 조회 수 6576 댓글 2
지기스발트 쿠이켄 VS 라인하르트 괴벨(Sigiswald Kuijken vs Reinhard Goebel)
클래식 애호가라면 지난 해 바흐 서거 250주년 축제의 메카였던 라이프치히에서 열린 '바흐 페스티벌 라이프치히2000'을 기억할 것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서거일인 28일에 라이프치히의 각기 다른 장소에서 있었던 우리시대 '최고'들의 연주회. 바로 올드타운 홀에서 쿠이켄 삼형제가 연주한 '음악의 헌정'과, 성 니콜라스 교회에서 있었던 라인하르트 괴벨의 무지카 안티쿠아 쾰른이 연주한 '푸가의 기법'이다. 그리고 해를 넘겨 2001년 2월 같은 달에 우리나라의 같은 연주장소에서 이들이 연주회를 갖게 된다고 하니, 이러한 우연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자타가 공인하는 원정연주계의 거장들
이번 달의 명연주가 비교는 이러한 시사적 필연성을 바탕으로, 감히 이 두 연주자(단체)를 일별하여 비교해 보고자 한다. 먼저 이들에게는 수많은 공통점이 보인다. 모두가 바로크 레퍼토리를 강점으로 하는 원전연주 계의 거장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위상의 소유자들이며, 고집스럽게 이 길을 고수하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쿠이켄이 개발한 턱받침을 사용하지 않는 연주법이라든지, 괴벨이 그의 신체적 장애이후에 언어장애까지도 겪어내며 왼손에 활을 쥐는 등의 모습은 이들의 고집스러움의 정도를 엿볼 수 있게 한다. 또한 리더격인 지기스발트 쿠이켄과 라인하르트 괴벨이 섭렵하고 있는 영역이 독주자, 실내악 주자로서의 활동을 비롯하여 지휘, 그리고 가르치는 영역까지도 포괄하고 있는 전천후 음악가라는 점 또한 동일하다. 물론 이들이 모두 제도권 내에서의 진화된 교육을 거부하고 독학으로 음악사의 한 조류를 개척하고자 한 '야인'들임은 두 말할 나위 없다.
우선 결합면에서, 쿠이켄은 동료, 제자들과 함께 주로 혈연에 기초한 프로젝트성 작업을 하고 있다. 각자 독주자로서 활동하면서 상황에 따라 비정형적 단체로서 삼중주-쿠이켄 사중주-오중주-그리고 라쁘띠뜨 방드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확장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한편 무지카 안티쿠아 쾰른은 잘 알려진 대로 쾰른 대학 동기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학연 중심적 결합에서 시작되었으며, 구성원에 변화는 있으나 대체로 항시적이고 정형적인 단체이다. 또한 괴벨의 경우 여타 구성원들에 비해 그 카리스마가 독보적으로 드러나는 반면, 쿠이켄의 경우 개인의 개성은 단체의 그것에 순화되어-또는 다른 주자들과 평등한 관계로-자연스런 느낌을 창출해 내고 있다.
출신 지역을 살펴보면 괴벨은 바흐를 비롯하여 그가 주무기로 하는 바로크 레퍼토리의 진원지를 직접 연결하는 독일 지역에 근거하고 있으면서 '프랑스인이나 이탈리아인이 바흐에 매달려봐야 얼마나 이해할 수 있느냐'고 말한다. 한편 고음악 르네상스의 거점이 되었던 네덜란드-벨기에 지방을 근거지로 하는 '플랑드르' 패밀리에 속하는 쿠이켄은 슈포어, 바요, 베리오 등 벨기에 선배들의 계통을 이으면서도 프랑스와 독일의 접점에 위치한 바젤의 스콜라칸토룸에서 그의 고음악에 대한 소명을 되새김질 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특히 그는 레온하르트, 브뤼헨, 코넨, 빌스마 등 고음악 대가들과의 교감에 의한 작업을 해 왔다.
라인하르트 괴벨이 들려주는 원전음색이 전아하면서도 고풍스런 느낌을 주는 고급스런 대리석 같은 느낌이라면 악기 등에서 보다 철저하게 원래를 찾아가는 쿠이켄은 오래된 목재에서 풍기는 것과 같은 투박하면서도 보다 자연을 느끼게 하는 울림을 지니고 있다. 적절한 비유일지는 모르겠으나 도자기로 예를 들어 이야기한다면 괴벨은 귀족적인 고려청자, 쿠이켄은 소박한 이조백자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나아가 독일 앙상블이 지적 냉철함에 바탕을 둔 신선하고 대담한 감수성을 선보인다면 플랑드르 앙상블은 이성에 바탕을 둔 조화로움이 자연스런 유려함에 묻어나는 이상적인 연주를 들려주고 있다.
레퍼토리 면에서도 두 대가는 다소 상이한 입장을 취한다. 잘 알려진 대로 쿠이켄이 바흐를 정점으로 하여 하이든, 모차르트를 벗어나지 않는 반면 괴벨은 바로크 레퍼토리를 주로 하지만 그 안에서도 늘 신선하고 알려지지 않는 레퍼토리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본지 1월호에 소개된 대로 올 가을, 장기간의 준비 끝에 우리나라에서도 바로크 창작 오페라를 지휘하는 괴벨의 모습을 만날 수 있게 된다). 편성 면에서도 쿠이켄이 주로 소편성 실내악 레퍼토리를 선호-심지어 그는 '바흐의 성악곡에 있어서 합창곡도 성부 당 한 명의 가수에 의해 불려졌을 것' 이라는 소위 리프킨설의 지지자다- 하는 반면, 괴벨은 대개 그의 앙상블을 대동하고 좀 더 스케일이 큰 관현악이나 칸타타 쪽에 치중하는 편이다.
▶음반작업에 있어서 각기 다른 횡보
음반작업을 하는 모습도 가히 대조적인데, 무지카 안티쿠아 쾰른이 굴지의 메이저 음반사인 도이치 그라모폰의 관리를 받으며 동 회사 산하의 원전연주 전문 레이블 아르히브를 통해 주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면, 쿠이켄은 꼼꼼히 챙겨봐야 그의 작품들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음반사에 노출되어 왔다. BMG 산하의 도이치 아르모니아 문디, 벨기에의 고음악 레이블인 악상, 일본 레이블인 데논, 소니 비바르테의 전신인 세온, EMI의 버진 클래식 등을 통해 독주자로서, 실내악 주자로서, 지휘자로서의 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치악 과연 체계적 관리를 중시하는 독일인들의 사고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지 아니면 치밀하게 계산된 상업주의적의도로 보아야 할지는 각자의 판단에 달린 것이겠지만 말이다.
여담이 되겠지만 사실 개인적으로 가장 큰 차이라면 괴벨은 음악을 위해 독신을 선택할 정도로 몰입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반면 쿠이켄은 대 가족을 이루어 그들과 함께 음악과 생활을 분리함 없이 편안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선택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에 앞서, 삶을 달리 바라보는 각자의 방식이 그들의 음악에 어떤 식으로 용해되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그들의 음악을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리라 여겨진다.
클래식 애호가라면 지난 해 바흐 서거 250주년 축제의 메카였던 라이프치히에서 열린 '바흐 페스티벌 라이프치히2000'을 기억할 것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서거일인 28일에 라이프치히의 각기 다른 장소에서 있었던 우리시대 '최고'들의 연주회. 바로 올드타운 홀에서 쿠이켄 삼형제가 연주한 '음악의 헌정'과, 성 니콜라스 교회에서 있었던 라인하르트 괴벨의 무지카 안티쿠아 쾰른이 연주한 '푸가의 기법'이다. 그리고 해를 넘겨 2001년 2월 같은 달에 우리나라의 같은 연주장소에서 이들이 연주회를 갖게 된다고 하니, 이러한 우연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자타가 공인하는 원정연주계의 거장들
이번 달의 명연주가 비교는 이러한 시사적 필연성을 바탕으로, 감히 이 두 연주자(단체)를 일별하여 비교해 보고자 한다. 먼저 이들에게는 수많은 공통점이 보인다. 모두가 바로크 레퍼토리를 강점으로 하는 원전연주 계의 거장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위상의 소유자들이며, 고집스럽게 이 길을 고수하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쿠이켄이 개발한 턱받침을 사용하지 않는 연주법이라든지, 괴벨이 그의 신체적 장애이후에 언어장애까지도 겪어내며 왼손에 활을 쥐는 등의 모습은 이들의 고집스러움의 정도를 엿볼 수 있게 한다. 또한 리더격인 지기스발트 쿠이켄과 라인하르트 괴벨이 섭렵하고 있는 영역이 독주자, 실내악 주자로서의 활동을 비롯하여 지휘, 그리고 가르치는 영역까지도 포괄하고 있는 전천후 음악가라는 점 또한 동일하다. 물론 이들이 모두 제도권 내에서의 진화된 교육을 거부하고 독학으로 음악사의 한 조류를 개척하고자 한 '야인'들임은 두 말할 나위 없다.
우선 결합면에서, 쿠이켄은 동료, 제자들과 함께 주로 혈연에 기초한 프로젝트성 작업을 하고 있다. 각자 독주자로서 활동하면서 상황에 따라 비정형적 단체로서 삼중주-쿠이켄 사중주-오중주-그리고 라쁘띠뜨 방드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확장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한편 무지카 안티쿠아 쾰른은 잘 알려진 대로 쾰른 대학 동기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학연 중심적 결합에서 시작되었으며, 구성원에 변화는 있으나 대체로 항시적이고 정형적인 단체이다. 또한 괴벨의 경우 여타 구성원들에 비해 그 카리스마가 독보적으로 드러나는 반면, 쿠이켄의 경우 개인의 개성은 단체의 그것에 순화되어-또는 다른 주자들과 평등한 관계로-자연스런 느낌을 창출해 내고 있다.
출신 지역을 살펴보면 괴벨은 바흐를 비롯하여 그가 주무기로 하는 바로크 레퍼토리의 진원지를 직접 연결하는 독일 지역에 근거하고 있으면서 '프랑스인이나 이탈리아인이 바흐에 매달려봐야 얼마나 이해할 수 있느냐'고 말한다. 한편 고음악 르네상스의 거점이 되었던 네덜란드-벨기에 지방을 근거지로 하는 '플랑드르' 패밀리에 속하는 쿠이켄은 슈포어, 바요, 베리오 등 벨기에 선배들의 계통을 이으면서도 프랑스와 독일의 접점에 위치한 바젤의 스콜라칸토룸에서 그의 고음악에 대한 소명을 되새김질 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특히 그는 레온하르트, 브뤼헨, 코넨, 빌스마 등 고음악 대가들과의 교감에 의한 작업을 해 왔다.
라인하르트 괴벨이 들려주는 원전음색이 전아하면서도 고풍스런 느낌을 주는 고급스런 대리석 같은 느낌이라면 악기 등에서 보다 철저하게 원래를 찾아가는 쿠이켄은 오래된 목재에서 풍기는 것과 같은 투박하면서도 보다 자연을 느끼게 하는 울림을 지니고 있다. 적절한 비유일지는 모르겠으나 도자기로 예를 들어 이야기한다면 괴벨은 귀족적인 고려청자, 쿠이켄은 소박한 이조백자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나아가 독일 앙상블이 지적 냉철함에 바탕을 둔 신선하고 대담한 감수성을 선보인다면 플랑드르 앙상블은 이성에 바탕을 둔 조화로움이 자연스런 유려함에 묻어나는 이상적인 연주를 들려주고 있다.
레퍼토리 면에서도 두 대가는 다소 상이한 입장을 취한다. 잘 알려진 대로 쿠이켄이 바흐를 정점으로 하여 하이든, 모차르트를 벗어나지 않는 반면 괴벨은 바로크 레퍼토리를 주로 하지만 그 안에서도 늘 신선하고 알려지지 않는 레퍼토리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본지 1월호에 소개된 대로 올 가을, 장기간의 준비 끝에 우리나라에서도 바로크 창작 오페라를 지휘하는 괴벨의 모습을 만날 수 있게 된다). 편성 면에서도 쿠이켄이 주로 소편성 실내악 레퍼토리를 선호-심지어 그는 '바흐의 성악곡에 있어서 합창곡도 성부 당 한 명의 가수에 의해 불려졌을 것' 이라는 소위 리프킨설의 지지자다- 하는 반면, 괴벨은 대개 그의 앙상블을 대동하고 좀 더 스케일이 큰 관현악이나 칸타타 쪽에 치중하는 편이다.
▶음반작업에 있어서 각기 다른 횡보
음반작업을 하는 모습도 가히 대조적인데, 무지카 안티쿠아 쾰른이 굴지의 메이저 음반사인 도이치 그라모폰의 관리를 받으며 동 회사 산하의 원전연주 전문 레이블 아르히브를 통해 주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면, 쿠이켄은 꼼꼼히 챙겨봐야 그의 작품들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음반사에 노출되어 왔다. BMG 산하의 도이치 아르모니아 문디, 벨기에의 고음악 레이블인 악상, 일본 레이블인 데논, 소니 비바르테의 전신인 세온, EMI의 버진 클래식 등을 통해 독주자로서, 실내악 주자로서, 지휘자로서의 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치악 과연 체계적 관리를 중시하는 독일인들의 사고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지 아니면 치밀하게 계산된 상업주의적의도로 보아야 할지는 각자의 판단에 달린 것이겠지만 말이다.
여담이 되겠지만 사실 개인적으로 가장 큰 차이라면 괴벨은 음악을 위해 독신을 선택할 정도로 몰입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반면 쿠이켄은 대 가족을 이루어 그들과 함께 음악과 생활을 분리함 없이 편안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선택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에 앞서, 삶을 달리 바라보는 각자의 방식이 그들의 음악에 어떤 식으로 용해되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그들의 음악을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리라 여겨진다.
Comment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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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농쿠르와 레온하르트의 경우가 이와 유사한 입장인거 같군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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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구... 개인적으로 괴벨이 만들어내는 음색은... 좀 느끼하다구 생각함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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