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나눈다는 것

by 으니 posted Jul 19,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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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우연히 정말 좋은 밴드의 공연을 보게 되었습니다. 뭔가 알아볼게 있어 동대문 근처를 지나다가 대형 의류 상가 앞 가설무대에서 락공연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걸음을 멈췄던거예요. 오래전 아주 오래전 생각이 났습니다. 가죽재킷에 기타케이스를 자랑스럽게 매고 교대앞 연습실을 다녔던 기억이요. 제프벡, 로이부캐넌 정말 좋아했는데.

정말 가슴이 떨리더군요..  

깔끔하고 따뜻한 소리였습니다. 과장되지 않은 가사와 느낌이 있는 멜로디. 보컬 맡으신 분은 시종일관 밝게 웃으시면서 노래하시고 특히 가사를 정확하게 전달해주셔서 너무 좋았습니다. 기타 맡으신 분도, 베이스 맡으신 분도, 드럼 맡으신 분도 정말 군더더기 하나 없는 음악을 들려주셨어요.

저는 계속 서서 바라보면서 저도 모르게 흥겨워졌습니다. 둘레둘레 보니 서 있던 분들 모두들 가볍게 어깨를 움직이고 계시더라구요. 또 어떤 여성분들은 가사를 따라부르시는 것으로 보아 잘은 모르지만 지금 공연하고 있는 밴드가 나름대로 "팬"을 보유한, 역사가 있는 밴드인가보다 싶었습니다.

가끔 그럴 때 있습니다. 밴드가 공연하러 나와서.. 음악을 듣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려하기보단 그저 자신들의 공연에 취해있다는 점을 느낄 때가 많아요. 음악을 한다는 것이 그리 큰 벼슬도 아니고 다만 좋아서 하는 것일뿐인데, 괜히 일부러 관객모독에 가까운 언사를 한다든가, 혹은 신나고 즐거운 곡을 부르는 것까지는 좋은데, 멤버들끼리만 너무 신나서 오히려 그걸 보는 관객은 구경꾼이 되어버린다든가, 심지어는 무슨 사운드체킹을 그렇게 오래도록하는지 물론 이유야 있겠지만 음악을 하고 공연을 한다는 것의 무게중심을 함께 나누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본인들의 즐거움을 위해 한다는 느낌을 줄 때가 적잖이 있습니다.. 그러러면 그냥 연습실에서만 하면 되죠.. 공터에서 여러 사람들과 함께 음악을 누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밴드가 공연을 한다는 것은, 연습실에서 연주한다는 것과는 정말 다른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그 음악이 뻗어나가 들릴 수 있는 공간에 함께 있는 모두와 음악을 나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더밴드이지만, 우린 우리 자작곡만 연주해요!! 라고 하지 않고 모두가 익숙한 곡들도 한 두곡 연주할 수도 있는 것이고, 밴드 멤버들이 아무리 흥에겨워도 관객들이 따라갈 수 없는 수준의 빠르기로 연주하지 않는 것입니다..

특히나 저 같은 사람에게 밴드 공연의 또다른 역할은  "위무" 입니다.. 음악을 너무나 사랑하지만, 나 스스로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 여건이 안되는 사람, 그저 서서 바라보고 있는 나의 마음을 밴드가 알아준다는 느낌이 날 때 정말 행복하거든요.

클래식기타 공연도 그 본질적인 부분은 이와 다르지 않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연주는 연주자와 한 음 한 음 사이의 고독한 싸움일 수 있겠지만, 공연이란 것은 연주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피아니스트 짐메르만 선생님은 비록 농담 비슷하게 말씀하셨지만 표정이 없는 연주자는 공연을 하지 말고 녹음실에서 녹음이나 하라고 하셨었어요. 관객에게 베푸는 맘도 아닌, 뽐내는 맘도 아닌, 정말 내가 해온 고독한 싸움을, 그 싸움의 결과인 나의 음악을 온전히 공간의 모든 사람들과 나누는 그런 콘서트.

정말, 그런 콘서트에 가서 말그대로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느껴보고 싶어요.
누군가의 음악을 통해, 그 음악에 깃든 그의 삶을 우리 모두가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 아닌가요.

올해엔 좋은 기타 콘서트가 계속 열립니다.. 한동안 기타 콘서트에 가보기를 게을러했는데.. 지금부터 부지런히 계획을 잡아서 놓치지 않고 쫓아다녀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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