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과 현실적 입지 구축의 문제

by JS posted Jan 10,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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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기타 전공자도 아니고 (그냥 애호가지만) ... 기타와는 다른 분야에서 해외 유학을 했었고, 실상 대부분의 전문 분야에서 유학파/국내파 문제는 상당한 공통점이 있는 관계로 ... 그냥 몇 가지 (주관적인) 생각을 나열해 보겠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 유학은 갈 수만 있다면 가시라는 겁니다. 단, 가능하다면 조기 유학보다는 국내 유수 대학을 먼저 졸업하시고, 20 대 중반 이후에 유학을 가시라는 쪽입니다.

우선, 유학을 가시라는 이유. 사실 유학 가서 "새롭고 대단한 그 무엇"을 배우지 못 합니다. 해외의 아무리 좋은 학교, 좋은 스승도 국내에서 안 가르치는 대단한 무언가를 가르쳐 주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해외에 나가면 많은 경우 "자신의 놀라운 잠재력"을 확인할 "기회"를 얻게 됩니다.

스스로를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실은 놀라운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종의 "당첨된 로또 복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는 말입니다. 이 잠재력을 해외에서 공부를 하면서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주위의 기대만큼만 능력을 발휘합니다. 스승이 70 정도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제자는 70 이하로만 발휘를 하게 되고, 동료들이 50 정도의 능력을 발휘하는 것을 보면 자신도 그 정도만 맞추게 됩니다.

해외 유학 생활을 통해 받는 가장 큰 충격은 거의 신적 능력을 소유한 스승이나 동료들과 함께 지냄으로써 자신의 기대 수준을 확(!) 끌어올릴 전기를 마련한다는 것입니다. 가령 국내에서 바하 샤콘느 정도 수준과 길이의 전혀 새로운 악보를 1 달 정도에 "좀 치게" 만들면서 스스로 흡족했던 친구들이 ... 해외의 대가 밑에 들어가 그런 수준의 악보를 2-3 일 만에 소화하는 스승이나 동료들을 보면 ... 그리고 그런 정도의 요구를 받게 되면 ... 처음에는 엄청난 스트레스 속에서 살겠지만, 또 그러다 낙오하는 사람도 많이 있지만, 거기서 살아 남았을 때 자신이 전혀 몰랐던 자신의 잠재력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농구를 하면서 "나는 키가 작아서 덩크슛 못 해"라고 생각했던 사람도 미국 프로 농구에 들어가 개나 소나 덩크슛을 하는 것을 보면 자기도 살아남기 위해 피터지게 덩크슛을 연습하게 되고, 그러다 성공을 하면서 "어~ 키 작아도 덩크슛 할 수 있네!"라고 말하게 되는 이치입니다.

물론, 국내에서도 충분히 피나는 훈련과 연습을 통해 해외파 못지 않은 기량과 실력을 연마할 수 있지만, "동기부여"라는 측면에서는 분명 해외 유학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제가 해외 유학에 찬성하면서도 조기 유학에는 부정적인 것이 바로 현실적 입지 구축의 문제 때문입니다. 현실은 우울합니다. 현실은 이상과 다릅니다. 음악을 하는 사람도 먹고 살 수 있는 토대와 정치적 운신의 폭이 넓어야 자신이 하는 일에 더욱 정진할 수 있습니다. 기타 연주자를 포함해서 모든 사람들의 현실은 ... 먹고 살아야 한다는 것과 그 분야를 (할 수만 있다면)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일 겁니다.

지금 현재 우리나라 대학에 기타 전공은 있지만 기타 담당 "전임 교수"는 없습니다. 서울대만 하더라도 기악과에 기타 전임 교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대학의 변화가 조금씩 일어나기 시작했고, 아마도 가까운 장래에 기타 전공이 더 많은 대학에 개설되고, 기타 전임 교수의 수요도 서서히 생겨나리라 봅니다. 기타 전임 교수는 누가 뽑을까요? 음대 내의 다른 전공 교수들과 그 대학 총장이 뽑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자신들과 비슷한 사람을 뽑겠지요. 자신들이 나온 대학을 나오고 ... 가능하면 박사 학위가 있고 ... .

저는 이 자리에서 아주 현실적인 문제를 얘기하는 것입니다. 학벌 사회의 부조리, 학연/지연의 문제점 ... 이런 씁쓸한 문제를 비판하자는 것이 아니라 ... 그냥 "현실"을 얘기하자는 겁니다. 가령 서울대 기악과에서 기타 전공 전임 교수를 뽑는다고 했을 때 ... 조기 유학 가서 학위는 불분명하지만 온갖 콩쿨을 휩쓸고 국제적으로 활약하는 연주자와 비록 온갖 콩쿨을 못 휩쓸었어도 연주 실력은 상당한데 국내 명문대학 졸업장을 가지고 있고 박사 학위까지 있다면 누가 뽑히겠습니까? 이것은 "현실"입니다. 부조리하건 합리적이건 ... 이것은 그냥 "현실"입니다.

적어도 현실적 입지 구축을 위해서는 ... 어려서부터 그 분야의 핵심 써클 속에서 성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외국에서만 살 것이 아니라면 ... 국내에서 자기 밥그릇을 확실하게 챙기면서 국내 기타 음악계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하고 싶다면 ... 우선 국내 명문 대학의 음대에 진학해 (기타 이외에도) 음악계의 다른 원로들과 공부를 하면서 그 써클에서 해외 유학을 가서 가능하면 정통 학위 코스를 밟으면서 자신의 입지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제가 오늘 쓴 글은 상당히 비판의 여지가 많은 글입니다. 하지만 이런 문제를 너무 무시하고 어려서부터 하고 싶은 일에만 매달리다 후일 자신의 밥그릇을 챙기는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는 분들을 주위에서 많이 보았기 때문에 ... 특히 나이 어린 칭구들을 위해 한 말씀 올린 것입니다.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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