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라오스 여행기-2 부

by k posted Nov 27,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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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앙통사원-유네스코






앞으로 귀국하려면 12일정도 남았다...그래서 느긋하게 또 다른 도시로 가야한다. 한 도시를 제대로 알려면 아무로 적은 도시라도 3일 잡는다. 이번에는 루앙프라방이라는 Unesco에서 지정한 라오스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두번째로 큰 도시로 가기로 한다. 방비양에서 6시간 걸린다고 한다. 이번에는 큰 버스가 아니고 작은 미니버스로 여행자들과 같이 가기로 앴다. 현지인들과 교류하려했지만 8시간은 너무 길다.  그래서 다른 여행자들하고 애기도 할 겸. 아침일찍 미니버스를 기다렸다. 한 20인승 차가 오더니 게스트하우스를 돌면서 여행자 하나 둘 픽업 30분정도 지체 됐다. 나중에 그 버스가 너무 낡아서 그런지 조그마한 미니밴 두개로 여행자를을 10사람씩 나누었다. 이상하게 서양사람들은 한 미니벤으로 동양사람들끼리는 내가 탄 미니벤으로 나누어졌다. 내 가 탄 미니밴 사람들은 싱가폴, 말레이지아, 태국사람들이다. 다른 미니벤은 독일, 미국, 스페인...그렇게 2시간을 꼬불꼬불 산길을 달린다. 길가에는 소들이 때를 지어 다녀 막힐때도 있고 멧돼지 몇 마리가 튀어 나올때도 있다. 그리고 중간중간 시골마을을 통과하는데 어린 초등학생들 학교에서 걸어서 귀가하는 모습이 참 정겹게 느껴진다. 우리 옛날 아버님 어머님이 걸어서 10리20리 학교 다니던 시절같이 평화롭고 여유스러운 모습이 떠오르고 또 이상하게도 부럽다고 느껴질 정도다. 우리 한국아이들은 스쿨버스 시간 마추어서 집에 왔다 영어학원 과외갔다와 숙제 엄청하고 제대로 놀지도 못하는데 라오스 아이들 마을에서 축구도  하면서 자유스럽게 잘 들 논다.



우리는 4시간을 더 루앙프라방을 가야한다. 중간에 두번 휴식이 있는것 같았다. 첫 번제 휴게소는 어느 식당 매점..여기에 루앙프라방가는 미니밴이 5대나 와서 손님들이 쉬고 있다. 그중 우리일행과 같이 여행했던 미국 할아버지 여행초보인것 같은데 이 휴계소에서 아는 여행칭구를 만나 기뻐하면서 라오맥주를 마신다. 나는 잠간 물을 마시고 화장실에 갔다. 휴식15분 후 다시 꼬불꼬불 산길을 달린다. 중간에 정말 멋진 산들이 보인다. 여행객들은 저부 카메라로 사진 직기 바쁘지만 차가 흔들려 사진이 잡히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 여행객중에 태국사람이 있어 운전사에게 잠간 내려 쉬자고 태국말로 하니까 한 10분정도 사진촬영휴식을 준다. 고마운 일이다. 그 후 다시 달린다. 아스팔트가 중간에 없는곳은 덜컹거리면서 머리가 차 지붕에 부딧치기도 하고 정말 고통스럽지만 96년도 도로도 아주 안 좋은 볼리비아에서의 여행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한 4시간정도 가니 멀미가 생기기 시작한다. 오바이트할것 같다. 끙~ 그럴줄 알았다면 비엔친엔으로 돌아가 비행기를 탈걸 하고 후회도 한다. 중간에 맥주 마신 할아버지 미니밴은 안 보인다. 아마 멀미해서 무신일이 낫을거라고 우리기리 애기하는중 두번째 휴개소로 다행히 도착..점심 시간이다. 여기선 부페식 점심식사를 1불50정도 싸게 잘 먹었다. 그리고 달린다. 멀미걱정했는데 다행이 적응이 되어서 잠만 잘 잤다.



드디어 루앙프라방 도착.게스트하우스 삐끼들이 보인다. 난 이미 예약해서 다른데로 갈려고 했으나 삐끼중 믿을만한 학생이 열심히 자기 게스트하우스 사진을 보여주면 맘에 안들면 다른데로 가도 좋다고 한다. 그래서 속는샘치고 가 보았다. 1달도 돼지 않은 새 건물이다. 운이 좋았다. 하루 6불정도 내기로 하고 체크인했다. 같아 온 말래시아 여행객 칭구들도 나를 따라왔다. 그 담날 난 더 좋은 숙소를 발견했다. 7불인데 완전 4성급이다. 메콩강으로 흐르는 남칸강을 발코니에 든 아주 개끗한 게스트하우스다. 그리고 이 게스트하우스에 방이 18개 인데 과반수 손님이 일본인들이다. 처음엔 자기네기릴 일본말로 떠들어서 이질감 거부감을 느꼈지만 알고 보니 괜찬은 배냥족들이다. 일본배냥객중 일본만화메니아도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한국인 3세고 아직도 한국여권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생긴건 아무리봐도 일본인인데 한국인이라는 신기했다. 그리고 일본에서 태어나서 한국말도 못하고 만일 여권을 분실하면 여행중 아주 큰일이라고 한다. 왜냐면 한국말도 못하고 한국영사관을 먼저 찾아가고 그 다음 일본여사관에도 도움을 청해야하니 아주 골치아프다고 하면서 여행상 어려움을 털어 놓았다.또 다른 일본 배냥족  마사루라는 30대 중반 일본청년은 영어도 꽤 잘하고 자전거로만 동남아를 4개월이상 여행한 칭구도 만나 방가웠다. 우리 매일 여행정보를 교환하고 저녁식사도 하면서 어울렸다.



루앙프라방을 걸어서 1시간이면 다 볼수 있는 도시인데 라오스에서는 2번째 큰 도시라고 한다. 이도시에는 Henrie Mahout란 불란서 개척자의 무덤이 있다. 바로 이사람이 앙코라왓과 루앙프라방을 가장 먼저 발견한 서구인이라고 하는데 루앙프라방에와서 35세때 말라리아병을 앓다고 이곳에서 죽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불란서 식민지시대 건축양식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 근데 여행자 시설외에는 아주 허름하고 가난한 건물들이다. 현금인출기도 2개뿐이고 영화보여주는 극장하나도 없다니 완전 시골 수준이다. 그래도 여기 저기 호텔 및 게스트하우스와 식당은 많이 볼수 있다. 이 나라의 경제는 관광으로만 살아남을수 있을것 같은 느낌이 팍 오는 도시다. 유네스코에서 지정됀 도시답게 아름다운 절들이 여기 저기 많다. 한 20정도 되는것 같다 그 중 왓 씨앙통은 가장 오래됀 절이고 화려하다.입장료는 작년에 1불이였는데 2불 로 올라서 조금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안보고 갈순 없었다. 벽화 절지붕의장식등 다른 절에 비해 그리 다른게 없지만 가장 오래됀것 처럼 건물이 보엿다.




나는 여기서 다른 소도시로 가볼까 고민도 하다가 비자가 2주일 받았고 귀국날짜는 다가오고 또 이도시가 왠지 마음에 들어 밤에는 가까운 산으로 야간산책하면서 6일정도 보냈다. 더 깊숙히 시골로 들어갈까 했지만 다음기회로 미루고 이도시와 현지인들과 교류하기 위해 매일 이곳 저곳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여기로 여행온 독인인도 만나고 남미인 여러배냥족을 만나지만 대부분 2틀이상 머물지 않고 다른도시로 간다. 나랑 몇몇 일본인들은 여기서 일주일정도 보냈다. 그러다 필랜드에서 온 나이 50후반 배냥족을 만났다. 태국말도 잘 하고 과거 여행메니아였는데 10년만에 시간을 내어 다시 장기 여행한다고 했다. 당연히 나랑 일본인 마사루와 같이 매일 어울린다. 하루는 라오스를 대표하는 캉시산을 하이킹갔다. 많은 배냥족들이 와서 폭포아래 여러 층으로 됀 풀에서 수영을 한다. 나와 몇몇 여행자들은 폭포의 끝으로 올라가보았다. 근데 올라가는길에 왠 개 한 마리가 따라다니면서 우릴 폭포위로 안내한다. 신기한고 기특한 개다. 96년도 아르헨티나 북부의 la cumprecita 라는 작은 스위스에서 온 이민자들의 마을 폭포에 갔을때도 왠 개 한마리가 산을 타면서 우리의 가이드한적이 있었는데...




내가 6일 동안 루앙프라방에 있을때 매일 축제분위기였다. 장마철이 끝나면 라오스인들은 보트시합을 한다. 각 마을마다 단체 심지어 아줌마팀까지 모여 메콩강에서 보트시합을 한다. 그리고 보트 시합이 끝나면 그 다음날 밤에 사원이나 동네에서 그동안 만든 모형 보트를 들고 거리를 활보한다. 일종에 카니발이다. 이중 누가 가장 멋있는 보트를 만들었는지 축제때 심사도 한다고..... 많은 여행자들도 라오스인과 더불어 저녁 8시부터 11시까지 루앙프라방 구도시를 뱅뱅돈다.




한번은 우리 셋이 중국인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서 바가지도 당한다. 중국식당에서는 차는 무료로 주는데 이곳으 차 한 사람당 700원 정도 내라고 한다. 이건 완전 체코 프라하에 있는 어느한국식당에서 김치값을 따로 내는것과 같다. 1999년 루마니아 여행중 난 어느중국식당에서 젓가락 사용료 1불 낸적있다고 했더니 모두 쓴 웃음 ㅎㅎㅎ일본 식당에서 와사비랑 간장을 따로 돈을 내는것과 같다고 우리는 웃으면서 다신 거기는 안가고 인터넷에 올리기로^^



오늘은 마사루는 베트남으로 여행가고 나는 치앙마이로 가는 날이다. 아쉬운 작별을 했다. 그리고 루앙프라방공항을 가고 있는데 우르바가 치앙마이 같이 가고 싶다고 한다. 그래서 따라오라고 했다. 그러다 공항에서 같은 게스트하우스에 일주일 동안 보았던 40대 대머리 일본여행객을 만나 방가웠다 알고보니 그도 치앙마이로 간다했다. 그래서 우리 셋이서 태국에서 2번쩨 큰 도시를 라오스에서 2번쩨 큰 도시은 루앙프라방공항에서 같이 여행한다.



치앙마이까지는 한 시간정도 걸렸다. 여기 내리니 무슨 뉴욕에 온 기분이다. 라오스는 완전 멕시코 수준이고 이곳은 미국이라고 해야할까? 그동안 너무 문명이 없는곳에서 여행한것을 깨닫은것 같았다. 우리 셋은 같이 택시를 타면서 택시비 120밧으로 내가 예약한 게스트하우스로 도착 짐을 풀고 우린 6시에 한 일본식당에서 맛잇는 식사를 하고 야시장을 간다. 작년에 갔던 야시장보다 규모가 커졌다. 많은 인파 그리고 끊임없는 시장 우린 한 2시간을 꼼작없이 야시장에서 보냈다. 엄청 많은 인구다. 그리고 경찰들도 많다. 푸켓은 한국경찰도 있는데 여기 또한 미국 영국 경찰까지 있다.



오늘은 왠지 슬프다. 아침에 같이 여행온 일본인 배냥족은 싼방을 찾아(200밧) 옮긴다고 아침 11시에 체크아웃 하면서 그동안 고마웟다고 인사하러 왔다. 내가 잇는 게스트하우스는 400밧이고 비싸다고 한다. 그래도 무제한 인터넷에 깨끗한 방과 개인화장실이 있는것 400밧에 찾지 못한다는것을 알아도 나랑 필랜드칭구 요르바랑 항상 일본음식 중국음식점가는게 마음에 안드는것 같다. 허기사 원래 혼자 여행하다가 잠시 어울려 즐거웠다. 그리고 요르바도 오후에 갑자기 자기는 파타야로 가고 싶다고 했다. 이친구는 알고 보니 여행하면서 한 도시에 하루 이상 있어본적이 없었다. 그냥 칭구들에게 자기는 어디 가본적있다는것을 과시?하는 그런 여행자인것 같았다. 파타야는 여러날을 보낸 유일한 태국의 도시라고 하는데 이유는 거기 자기 핀란드칭구가 경영하는 호텔이 있어서 그러는것 같았다. 3일 동안 라오스에서 치잉마이까지 어울리다 간다고 하니 웬지 쓸쓸함이 오는 이유가 뭘까?!?난 그동안  원래 혼자 여행잘도 다녔었는데 이런 기분은 처음이다. 아마 나도 나이가 먹으면서 여행지에서 만나사람들게 교류가 13년전 젋어서 했던것과 달라진것 같다. 여행지에서 만나 졸졸 쫒아다니는 여행자들 가끔 귀찬았을때도 있었는데 갑자기 혼자가 되니 기분이 꿀꿀하다. ㅠㅠ



하지만 돌이켜 보면 라오스가 좋았던것 같다. 너무 평화롭고 문명은 없었지만 차들이나 오토바이 속도 사람들 걷는 속도는 태국에 비해 너무 여유롭다는것을 느꼈다. 어쩐지 많은 서양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라오스에서 게스트하우스나 식당을 하면서 여생을 보내는것을 이해할것 같았다. 나도 언젠가 그들처럼 라오스로 노후를 보낼지 생각해 보아야겠지만 아직 난 젋으니 빨리 노후대책준비나 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재미없는 후기 읽어주신분들께 감사드리며 라오스여행 후기는 이걸로 .....



아래는 네이버 백과사전출처



***라오스의 역사는 13세기에 중국 남부에서 살던 타이계 민족의 하나인 라오족이 지금의 라오스 영토로 이주해 온 것에서 시작한다. 이들은 메콩 강 유역에서 살았으며, 특히 비엔티안, 루앙프라방, 참파싹 지역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1353년에 크메르왕국의 지원을 받고 메콩 강 유역에 란상 왕국이 등장하였다. 란상 왕국의 지도자였던 파눔 왕은 크메르 왕국이 약해지자 독립을 선언하였고, 불교 국가가 되었다. 그리고 17세기 중반 술리나봉사 왕 때 크게 번영했지만 후계자를 남기자 못했다. 18세기초에 급격히 몰락하여 란상 왕국은 3개로 분열되고 친 타이 세력과 친 베트남 세력의 대립으로 나라가 어지러워졌다. 이때 비엔티안왕국의 차오아누 왕은 영국이 타이를 공격한다는 소문을 듣고 타이정벌에 나셨다. 하지만 1828년에 타이가 비엔티안 왕국을 공격하여 멸망시키고 심지어 국왕도 타이에 끌려가 감옥에서 살았다. 비엔티안왕국의 왕 차오아누는 1829년 감옥에서 죽었다. 결국 분열된 라오스는 타이와 베트남의 지배를 받게된다.



1860년대부터 프랑스의 인도차이나 침략이 시작되어 프랑스는 베트남과 캄보디아를 식민지로 만들었다. 당시에 라오스 영토의 대부분이 타이의 지배를 받았는데, 프랑스는 무력을 사용하여 타이 정부로 부터 메콩강 동쪽의 영토 지배권을 인정받았는데 이 영토가 현재의 라오스가 된다. 프랑스는 라오스의 3개 지방을 합쳐서 루앙프라방왕국을 만들어 보호령으로 선포했다. 그 후 일본이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키자 프랑스는 미얀마로 가는 길을 개방하였다.



그러나 1945년 일본이 패망하자 라오스는 급격히 혼란해졌다. 라오스의 독립파는 라오이싸라, 즉 공산정당을 만들어 라오스 임시정부를 수립하였다. 라오이싸라는 베트남 공산정권인 베트남민주공화국과 긴밀하게 유대했다. 프랑스와 라오스 독립파의 전쟁은 갈수록 심해졌다. 결국 1949년 프랑스는 라오스를 독립시켰지만 형식적인 독립이었다.(국방, 외교, 재정권을 프랑스가 가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우익과 좌익의 대립이 시작되었다. 우익의 지도자는 라오스 왕국의 총리가 된 수바나 푸마였고 좌익의 지도자는 수파누봉이었다. 1950년 라오스의 공산세력이 뭉쳐서 파테트라오가 탄생했다. 내전은 계속 심해졌고 결국 1954년에 스위스의 제네바에서 라오스의 왕실 유지, 파테트라오가 참여하는 정부 수립을 골자로 하여 평화조약이 맺어졌다. 그러나 결국 중립은 실패하였고 다시 내전이 시작되었다. 게다가 이웃나라 베트남에서 베트남전쟁이 일어나 라오스도 전쟁상황이 되었다. 베트남 공산세력이 라오스를 통해서 남베트남의 공산세력인 베트콩에게 무기를 전달했기 때문에 미군은 라오스를 폭격하였다.



내전은 시간이 갈수록 계속 격화되었다. 1970년대 들어서 파테트라오의 공격이 계속 심해져서 라오스 정부는 계속 밀렸다. 다시 평화조약이 맺어졌으나 1975년 남베트남이 패망하자 라오스의 왕과, 수바나 푸마가 물러나 좌익정부가 수립되었고, 곧바로 라오스 왕국을 폐지하고 "라오 인민 민주공화국"이 선포되었다. 그리고 30년 내전은 완전히 종식되었고 라오스는 공산주의 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라오스의 공산주의 체제는 실패하여 경제는 악화되었다. 게다가 타이와 미국의 경제 봉쇄로 라오스 경제는 파탄되었다. 1990년대에 소련의 해체와 공산주의 몰락으로 인해서 라오스도 부분적으로 경제의 자유화를 허용하였다. 21세기들어 라오스 정부는 계속 개방정책을 추구하였으나 아직까지 공산주의는 유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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