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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대지진때 일본에 학살당한

구천을 떠돌고 있는 한국인 조상님들의

원혼엔 아무도 관심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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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지진피해 돕기 각계각층서 봇물 
"힘내세요"


사상최악의 지진피해를 입고 있는 일본을 돕기 위한 온정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대한적십자사 충북지사(회장 김영회)는 16일 일본 지진피해 이재민들을 위해 구호품을 지원했다.
이날 충북적십자사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일본 이재민들을 위해 창고에 보관중인 담요 100매, 일용품 100세트, 응급구호품 400세트 등 구호품을 전달했다.

양산시, 공무원 일본 지진피해 성금 전달

 

【양산=뉴시스】안지율 기자 =16일 경남 양산시는 대지진과 쓰나미로 국가위기상황에 처한 일본에 전 직원이 긴급구호모금운동을 전개한 가운데 나동연 시장이 성금하고 있다. (사진=양산시 제공) photo@newsis.com 2011-03-17

 

日언론, KBS 48억원 성금 모금 대대적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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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들 일본 돕기 모금 봇물..서울, 지방 예외없다
2011-03-16 11:42:52
지난 11일 일본 동북부 지방에서 발생한 대지진 피해자를 돕기 위해 전국 대학들이 모금운동 등에 적극 나서고 있다.
16일 대학가에 따르면 연세대는 지진피해를 입은 유학생과 일본 국민을 돕기 위해 일본 유학생회와 성금캠페인을 벌인다. 이날부터 이달 말까지 연세대 내 글로벌라운지와 한국어학당 사무실 등에 모금함을 설치한다.
모금액은 지진 피해 학생들 등록금과 생활비 등을 지원하는 데 쓰고 피해학생들에게는 일본행 항공료와 체제비를 지원한다.

 

[기획/일본 대재앙]기업 · 정부, 일본 돕기에 팔 걷어 부쳐

 

미증유의 대재앙을 겪고 있는 일본을 돕기 위한 정부와 국내기업들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경기도는 사상 최악의 지진 피해로 고통 받는 일본에 100만달러의 구호금을 지원하기로 했다고 16일 밝혔다. 도는 이와 함께 공무원을 대상으로 자발적인 구호성금을 모금하고 경기도의사회와 협의해 의료지원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일본에 대한 지원뿐 아니라 일본과 협력관계에 있는 도내 기업의 어려움이 예상됨에 따라 이들 기업에 대한 지원 방안도 빠른 시간 내에 마련할 계획이다. 이날 일본 지원 발표에 앞서 김문수 지사는 지난 14일 도와 자매결연한 일본의 가나가와현 마츠자와 시게후미 지사에 편지를 보내 “경기도가 필요한 모든 협력을 다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슬픔에 잠겨 있는 日 돕자" 정부와 국민들 전방위 동참 
  
등록 2011-03-16 
(아주경제 강정숙 기자) 일본이 대지진에 이어 쓰나미, 방사능 오염 등으로 피해가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 정부와 국민들이 피해복구 지원에 전방위로 동참하고 있다.
외교통상부는 16일 민동석 외교부 2차관 주재로 민·관 합동 해외긴급구호협의회를 개최했다.
이날 협의회에는 국무총리실과 외교통상부, 행정안전부, 국방부, 국토해양부 등 9개 관계부처와 한국국제협력단, 대한적십자사, 전국경제인연합회, 은행연합회 등이 참석해 일본의 피해 상황과 국제사회의 지원 동향, 민간의 지원방향에 대해 논의했다.
정부는 지난 아이티 강진때 1500만달러를, 중국 스촨성지진 때는 3000만달러를 지원했기 때문에 사상 초유의 강진과 쓰나미를 겪은 이번 일본 참사에는 얼마의 지원금이 책정될지 관심이 모아졌다. 
우리나라 각계 각층에서는 일본을 향한 구호의 손길이 모아지고 있다. “우리는 친구” “비탄에 빠진 일본을 도웁시다” 등의 구호문도 등장하고 있다. 

2011년 03월 16일 (수) 12:11  문화일보

<東日本 대지진>“다시 서라, 일본”… 기업도 한류스타도 ‘日돕기 릴레이’

"다시 서라, 일본."
규모 9의 '동일본 대지진'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일본을 돕기 위해 사회 각 계층에서 온정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주요 대기업과 금융기관, 한류스타 등 유명 인사들이 기부한 금액만 100억원 안팎에 달한다. 경제계는 물론, 문화계와 체육계, 시민사회단체까지 나서는 '고통 분담' 노력에 일본 국민들도 감사의 마음으로 화답하고 있다. 한류스타인 배우 배용준최지우씨, 야구선수 박찬호씨 등 사회 유명 인사들이 전면에 나서면서 '일본 돕기 운동'은 더욱 확산될 것으로 예상된다.

↑ 佛子들의 모금 :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에서 신도들이 규모 9의 ‘동일본 대지진’으로 피해를 본 일본을 돕기 위해 모금함에 성금을 넣고 있다. 김동훈기자 dhk@munhwa.com

 

경제계, 대규모 자금·물량 지원

= 이미 삼성을 비롯한 국내 기업들이 다각도의 지원 방안을 발표했지만, 16일에도 경제계의 지원은 계속됐다. LG그룹은 피해 복구를 위해 1억엔(약 13억7000만원)을 성금으로 기부하는 한편 생활용품 등을 전달키로 했다. 구본무 회장도 히다찌와 도시바, 파나소닉 등 거래관계가 있는 일본 기업들에게 위로 서한을 전달하고 "임직원 및 가족의 안전과 빠른 피해 복구를 위해 적극 협력하고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삼성은 1억엔의 성금 지원 및 구조대와 의료봉사대, 구호품 전달과 함께 일본삼성에서 피난중인 한국인 200명이 5일간 먹을 수 있는 양식을 센다이(仙臺) 총영사관측에 전달했다. 임직원들은 1000만엔을 따로 모아 전달할 예정이다.

정준양 포스코 회장도 신일본제철, JFE스틸 등 경영진에게 친필 서한을 보내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정 회장은 "하루 빨리 안정을 되찾기를 기원하며 협력이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적극 노력하겠다"고 위로했다. 이종구 수협중앙회장도 핫토리 이쿠히로 일본 전국어업협동조합연합회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쓰나미로 피해를 본 일본 어업인들에게 위로의 뜻을 전달하고 신속한 복구를 위한 협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전했다.

금융기관들도 나서고 있다. 하나은행도 16일 일본정부에 5000만엔의 성금을 기탁했고, 우리금융그룹과 KB금융그룹도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각 10억원의 성금을 전달했다. 신한금융지주는 1억엔을 기탁했다. 산업은행과 대우증권도 각각 1억원씩을 맡겼다.

사회단체도 동참

= 시민사회단체들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대부분 온라인과 대학가, 소모임 등 개인 기부자들이 자발적으로 나서는 모습이어서 뜻이 더 깊다. 14일부터 모금활동을 전개중인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16일 오전 현재 2억4000여만원의 성금이 답지했다고 밝혔다. 한 통화당 2000원인 자동응답서비스로 4만여건이 접수돼 개인 소액기부자들이 나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터넷 포털 다음 아고라에서 진행중인 모금청원을 통해서도 7500만원가량이 모아졌다.


대학가에서도 모금활동이 활발하다. 한국외대에서는 일본어 전공 학생들이 모금활동을 펼치고 있다. 고려대와 이화여대에서도 모금함이 설치됐고, 한국에서 유학중인 재일동포 모임인 '재일한국인수학생회'에서는 연세대와 서울대에서 모금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곧 홍익대와 이화여대, 한양대 등 수도권내 대학으로 대상을 확대할 방침이다. 일본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서울 명동의 상인들도 모금활동에 동참하고 있다. 대한적십자사는 일본적십자사에 100만달러(약 11억3000만원)를 긴급 지원했다.

문화·체육계 인사 솔선수범

= 한류스타들과 스포츠 스타 등 문화계와 체육계 유명 인사들도 일본 돕기 운동에 나서고 있다. 특히 일본팬들의 사랑으로 우뚝 선 한류스타들의 솔선수범은 일본인들도 놀라게 하고 있다. 한류스타 원조인 배우 배용준씨가 이미 10억원을 기탁했고, 이병헌씨도 7억원을 기부했다. 배우 장근석씨도 일본 적십자사에 1000만엔(약 1억4000만원)을 기부하기로 했고, 최지우, 류시원씨도 각각 2억원을 기부했다.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하는 박지성 선수도 1억원의 성금과 함께 '박지성 재단(js-foundation.org)' 홈페이지에 '일본 국민 여러분 힘내십시오'라는 위로의 글을 올렸다. 일본 오릭스에서 뛰고 있는 박찬호 선수도 이재민 돕기에 써달라며 1000만엔을 기부했다. 스포츠단체도 팔을 걷어붙였다. 대한축구협회는 오는 25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온두라스와의 평가전 때 묵념 시간과 함께, 이날 수익금 일부를 지진 피해 돕기 성금으로 일본축구협회에 전달할 계획이다.

임대환·이경택·이용권기자 hwan91@munhwa.com

지진 참사 일본 돕기, '모금운동'에 '위로서신' 등 다양

 

다문화가정연대-경남도교육청, 모금운동 벌여

 

경남이주민센터와 다문화가정연대는 일본 지진해일 피해를 돕기 위해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시민 모금운동을 벌인다. 다문화가정연대는 16일 대표자회의를 열고, 모금 은행계좌를 개설하고 지역 시민단체에 연대·협력을 요청했다. 이들은 조만간 창원·김해에서 거리모금운동을 벌인다.

창원 성지여자고등학교는 지진 참사가 난 일본을 돕기 위해 16일 모금 활동을 벌였다.

모금 행사장에는 "일본의 눈물 우리가 함께 하겠습니다"는 구호가 적혀 있었다. ⓒ 경남도교육청

 

부산성시화운동본부, 16일 하루 동안 1억원 모아

 

 

창원 성지여자고등학교는 지진 참사가 난 일본을 돕기 위해 16일 모금 활동을 벌였다.

모금 행사장에는 "일본의 눈물 우리가 함께 하겠습니다"는 구호가 적혀 있었다.

ⓒ 경남도교육청 부산지역 교계도 일본 돕기에 나섰다. 부산성시화운동본부  

 

 

'착한기업' 홈플러스, 일본 돕기에 나섰다

 

기후변화센터, 일본 지진 피해 주민 위로 행사

 

 

[호남대] 서강석 총장, 일본 유학생 초청 위로 간담회

 

 

배재대 김영호 총장, 일본 유학생 초청 격려 

 

일본 지진피해 돕기 성금모금 행렬

 

15일 오후 부산 사상구 경남정보대학 민석광장에서 이 대학 총학생회가 마련한 '일본 돕기 모금운동'에 참가한

학생들과 교직원 등이 줄을 서면서 모금함에 돈을 넣고 있다.  


 

 15일 청주 성안길 철당간 광장에서 열린 '일본 지진·쓰나미 피해 이재민 돕기 성금 모금'에

참여한 시민들이 길게 줄지어 모금함에 성금을 넣고 있다.<사진/임동빈>

 

무토 주한 일본 대사,

KBS에 감사 표해 "한국인의 온정 잊을 수 없다"

 

사진출처=KBS

 

http://biz.heraldm.com/common/Detail.jsp?newsMLId=20110314000349

<日대지진>"한국인이 성폭행을"...이성잃은 누리꾼들

2011-03-14 10:33

일본 대지진에 온정과 격려가 잇따르는 한켠에서는 1923년 발생한 일본 관동 대지진에 빗댄 과격한 의견들이 한일 누리꾼들에 의해 전파되고 있어 한일 양국민 사이에 뿌리깊은 감정의 골이 깊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일고 있다.

2ch 등 일부 일본내 사이트 등에서는 “지진을 틈타 한국인이 약탈을 하고 있다”, “부녀자들을 폭행한다”, “한국 게시판은 환희의 축제 분위기” 등의 루머가 확산되고 있다.

관동대지진 발생 당시 일본내각이 한국인의 약탈과 범죄를 기정사실화하면서 일본인들이 대대적인 조선인 학살에 나섰고 최소 2500명에서 1만여명이 목숨을 잃은 바 있다.

일부 네티즌은 관동대지진 당시를 다룬 기사를 스크랩해 링크를 걸어 두고 있다. 아이디 ‘c0J*****’는 “조선인에 의한 방화, 약탈을 경계하라. 지난 관동대지진 당시 요코하마 시나가와 일대에서 조선인 집단이 칼이나 폭탄을 갖고 날뛰며 부녀자를 강간했다. 후카가와의 식량창고에 시간을 두고 불이 난 것도 조선인의 동시 다발 테러였다”는 기사를 올리면서 한국인들에 대한 경계심을 자극했다. 아이디 ‘voF******’도 “한국 게시판은 환희의 축제 상태”라며 한국인들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냈다.

한국 네티즌들의 과격한 의견도 온라인을 타고 실시간으로 전파되고 있다. 아이디 ‘wol****’는 “인류애라도 있는듯이 포장하고 있는데 헛소리 하지마라. 백번을 양보해도 일본과 친일파 잔존들은 이번에 함께 바다에 수장 돼야 한다“며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피해를 주면서 99엔으로 보상하려는 일본에게 우리도 구호성금으로 99원씩 보내는건 어떨까?”라는 글을 올렸다.

관동 대지진 당시 친인척이 살해당했다고 밝힌 아이디 ‘lgn****’은 “죄를 짓고도 반성할 줄을 모르는 일본놈들은 맛을 봐야한다. 그것은 일본이 오늘보다 더한 대지진이 일어나서 일본이 바다속으로 침몰하게 하는 것이다”며 “이제야 서서히 그 일본침몰이 눈앞에 다가오는 것 같다. 일본이 침몰해야 아시아의 진정한 평화가 올 것이다”고 ‘일본수장론’을 퍼뜨리고 있다.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아이디 ‘k761****’은 “분노를 가라앉히고 마음으로 바라본다면 지금 그들의 고통이 훗날 내가 될 수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일본이 저지른 과거를 용서할 수 없더라도 고통받고 있는 이들에게 더 큰 고통을 주는 우리가 되지 말자”고 호소했다.

<이태형기자 @vmfhapxpdntm>
thlee@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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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www.advkorea.com/sub/sub1_read.asp?accountid=19969

日 네티즌 악성 루머..재일 외국인들 약탈 ? 

 

관동대지진 닮은꼴
▲1923년 관동대지진 희생자들.ⓒ자료사진

“동북부 지진에 한국인들이 기뻐하고 있다.”


“재일 조선인과 지나인(중국인)이 우물 물에 독을 타고 혼잡한 틈을 타서 부녀자를 강간하기 쉽습니다. 조심하세요.”


“조선 바퀴벌레가 약탈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구출해주세요!”


11일 일본 동북부를 강타한 강진과 쓰나미의 와중에서 일부 일본 네티즌들이 재일 한국인과 중국인이 우물에 독을 타고 여성을 성폭행한다는 악성 루머를 뿌리고 있다고 한국 네티즌들이 12일 소개했다.

일본 네티즌들은 포털이나 2ch 등을 통해 실시간으로 지진 피해 상황에 대해 정보를 주고 받고 있지만 일부 네티즌들은 지난 1923년 관동대지진을 연상케 하는 루머를 퍼트려 충격을 주고 있다.

관동대지진은 1923년 9월 1일 도쿄와 요코하마를 중심으로 한 일본 간토(關東)지방을 덥친 매그니튜드 7.9, 최대 진도 7의 대지진을 말한다. 이 지진으로 도쿄의 60%, 요코하마의 80%가 파괴됐다. 사망 9만 9331명, 행방불명 4만 3476명의 인명피해를 입었다.

지진 다음날인 2일 당시 야마모토 곤노효에(山本權兵衛) 내각은 흉흉해진 민심을 잡기 위해 내각은 '조선인이 방화를 하고, 폭동을 일으키려 한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약을 집어넣었다!' '조선인의 배후에는 사회주의자가 있다'는 등의 유언비어를 조직적으로 유포시키고 이를 구실로 계엄령을 선포했다.
유언비어가 기정사실화됨으로써 일본인들이 대대적인 조선인 학살에 나섰고 최소 2500명에서 1만여명 목숨을 잃었다.

일부 일본 네티즌들은 광동대지진 당시를 다룬 기사를 스크랩해 링크를 걸어 인터넷 상으로 퍼뜨리고 있기도 하다.
다음은 일본 네티즌들의 관련 댓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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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베 아와지 대지진(神戸淡路大震災 ; 고베 대지진)때 영어 학교에서 위성방송을 보고 있던 야근 선생님에게 전화가 왔다. 큰일이다, 고베가 불타고 있어 대지진을 당한 불행한 이웃에게 동정을 나타내는 서양인 교사. 한국인 학생에게서는 일본인은 당해도 싸다 천벌이다 등이라는 발언이 공공연하게 돌았다.
일본인의 피가 섞인 여성 교사는 너무나 분노해 그 자리에서 자신의 출신을 처음으로 이야기 했다고. 또한 일본인 아내를 갖고 있는 미국인 교사는 격노하면서 남의 불행을 기뻐하는 한국인은 인간이 아니다
이날 서울 지하철 신문팔이가 좋은 뉴스라고 외치며 고베 지진을 고하는 신문을 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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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인과 조선인의 짓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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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뻐하고 있는 것은 재일 조선인들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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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 조선인과 지나인이 우물 물에 독을 타고 혼잡한 틈을 타서 부녀자를 강간하기 쉽습니다.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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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바퀴벌레가 약탈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구출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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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재일동포를 말함. 자이니치)들이 일을 시작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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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이 우물에 독을 타고 부녀자를 폭행하고 있다는 정보가 흐르고 있는데 그거 정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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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게시판은 환희의 축제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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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에 의한 방화, 약탈을 경계하라!
정말로 있었던 관동 대지진때 조선인에 의한 폭동, 파괴, 방화, 강간.
잡지 SAPIO에서 정말로 있던 관동 대지진 당시 조선인에 의한 폭동 파괴 방화에 관해 작년부터 연재중입니다만, 양이 방대하고 다 정리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인터넷상으로부터 모은 당시의 신문 기사를 모아 보았습니다.

SAPIO의 자료, 증언을 읽고 일단 말할 수 있는 것은, 적어도 요코하마~시나가와 일대엔 조선인에 의한 폭동 파괴 활동은 있었다.

요코하마에서 시나가와 방면에 조선인 집단이 칼이나 폭탄을 갖고 날뛰며 부녀자를 강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추구하는 것이 소동의 실태를 파악할 수 있는 정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세하게 추구 중입니다. 일련의 조사로 나라시노와 강동 지구에서 틀림없이 불온한 움직임이 있던 것은 사실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기사도 그 증거의 하나입니다.

지진재해로 울부짖는 것을 들으며 혁명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라는 것이 그야말로 빨갱이 극좌파의 행동이 정확하게 파악되고 있었습니다. 이는 사법 당국은 조선인의 범죄 보도를 규제해 압력을 가한 결정적인 증거. 10월 20일, 간신히 자유 보도가 해금되어 진실을 기재하기 시작했습니다. 무수한 보도되어온 사실 중에 가장 무서운 것은 조선인이 소녀를 윤간한 이후 살해해 아라카와에 던지고 도주했다는 무서운 기사가 쓰여 있습니다. 후카가와의 식량창고에 시간을 두고 불이 난 것도 조선인의 동시 다발 테러였다는 것을 증명하는 또 하나의 사실입니다.
조선인 주의!

9kxZRgwEO
조선반도는 지금 축제일 듯

tjDSDijh0
과연 짱깨들과 조선, 일본의 재해를 좋아하고 있군. 일본 정부는 반드시 지나와 조선으로부터 재해 원조금이나 위로금을 받아 기부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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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대학살  [關東大虐殺]

 

계엄령이 선포된 도쿄[東京]·가나가와 현[神奈川縣]·사이타마 현[埼玉縣]·지바 현[千葉縣] 등지에서 한국인이 폭동을 일으켰다는 유언비어를 고의로 퍼뜨려 민족배외주의를 자극, 수천 명의 무고한 인명을 앗아갔다. 당시 일본은 노동자계급의 성장, 쌀소동, 일본공산당의 성립에 따른 계급투쟁의 격화와 활발해지는 한국·중국의 민족해방운동에 직면하여 한국인과 사회주의자를 탄압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이때 일어난 대지진으로 인한 사회혼란은 탄압의 좋은 기회가 되었다. 일본 경시청은 정부에 출병을 요청했고, 내무대신 미즈노[水野鍊太郞:전조선총독부 정무총감], 경시총감 아카이케[赤池濃:전조선총독부 경무국장] 등은 2일 도쿄·가나가와 현의 각 경찰서와 경비대로 하여금 한국인 폭동의 유언비어를 퍼뜨리도록 했다.

 

한편 2~3일 사이에 지방장관에게 "한국인이 각지에 방화하고 불령(不逞)의 목적을 수행하려 한다. 한국인의 행동을 엄밀하게 단속할 것"을 지시하는 전문을 보냈다. 도쿄·가나가와 현·사이타마 현·지바 현에 계엄령이 선포되고, 5일에는 '조선문제에 관한 협정'이라는 것을 극비리에 결정하여 한국인 폭동을 사실로 조작하기 위해 광분했다. 7일에는 치안유지령을 긴급칙령으로 공포했다. 계엄령 아래에서 군대·경찰과 각지에 조직된 자경단에 의해 한국인과 사회주의자가 수없이 학살되었는데, 당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신문〉 특파원이 조사·보고한 바에 따르면 6,661명이 피살된 것으로 되어 있다. 일본정부는 10월 20일 학살사건의 보도금지를 해제했지만, 군대·관헌의 학살을 숨기고 자경단에게 그 책임을 전가시켜 재판에 회부했다. 그러나 자경단원은 증거 불충분으로 모두 석방되었다.

 

 

1923년 도쿄 일원의 간토 지방은 지진으로 인하여 궤멸적인 피해를 입었고, 민심과 사회질서가 대단히 혼란스런 상황이었다. 일반인들 사이에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불신이 싹트는 가운데, 내무성은 계엄령을 선포하였고, 각 지역의 경찰서에 지역의 치안유지에 최선을 다할 것을 지시하였다. 그런데 이때 내무성이 각 경찰서에 하달한 내용 중에 “재난을 틈타 이득을 취하려는 무리들이 있다. 조선인들이 방화와 폭탄에 의한 테러, 강도 등을 획책하고 있으니 주의하라.”라는 내용이 있었다. 이 내용은 일부 신문에 사실확인도 없이 보도되었고, 보도 내용에 의해 더욱 더 내용이 과격해진 유언비어들이 아사히 신문, 요미우리 신문 등 여러 신문에 다시 실림으로써 “조선인(또한 중국인)들이 폭도로 돌변해 우물에 독을 풀고 방화·약탈을 하며 일본인을 습격하고 있다.”라는 거짓소문이 각지에 나돌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지진으로 인하여 물 공급이 끊긴 상태였고, 목조 건물이 대부분인 일본인은 화재를 굉장히 두려워 하였으므로, 이러한 소문은 진위 여부를 떠나 일본 민간인에게 조선인이나 중국인에 대한 강렬한 적개심을 유발하였다.

 


1923년 9월 10일자 매일신보. 신문에는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들이 폭동을

조장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글로 전면을 다루고 있다.

 

일본인들의 조선인 학살

이에 곳곳에서 일본인들이 자경단을 조직해 불심검문을 하면서 조선인이나 중국인으로 확인되면 가차없이 살해하는 만행을 저지르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죽창이나 몽둥이, 일본도 등으로 무장하였고, 일부는 총기로 무장하기도 하였다. 우선 조선식이나 중국식 복장을 한 이는 바로 살해당하였으며, 학살 사실을 알고 신분을 숨기기 위해 일본식 복장을 한 조선인이나 중국인, 타지역 출신을 식별해 내기 위해서 외국인에게 어려운 일본어 발음(한국어에 없는 어두유성음 및 종종 정확하게 발음되지 않는 장음 발음(撥音) 등으로 이루어진) “十五円五十銭”(じゅうごえんごじっせん)을 시켜보아 발음이 이상하면 바로 살해하였다. 이때, 조선인뿐만 아니라, 중국인, 류큐인, 외자 성을 강제당해 조선인으로 오인받은 아마미 제도 출신, 지방에서 도쿄로 와 살고 있던 지방의 일본인(특히 도호쿠, 고신에쓰, 홋카이도 출신), 미국, 영국 등 서양 출신으로 도쿄에 온 기자들도 발음상의 차이로 조선인으로 오인받고 살해당하는 등, 자경단의 광기는 상상을 초월하였다. 일부 조선인들은 학살을 피해 경찰서 유치장으로까지 피신하였으나, 일부 지역에서는 자경단이 경찰서 안까지 쳐들어와 끄집어 내어 학살하였다. 외국인이나 타 지역 사람들이 도쿄에 가는 것은 곧 죽음을 뜻했다. 경찰은 살인을 보고서도 방관하거나, 소극적으로 대응하였으며, 오히려 조선인을 조직원으로 받아들이고 있던 야쿠자등 비공권력 범죄 집단의 일부가 조선인을 숨겨주는 일이 있었다. 조선인 학살과 더불어 사회주의자, 아나키스트, 인권운동가, 반정부 행위자 등으로 경찰에 요주의 인물로 등록되어 있던, 주로 좌파 계열의 운동가에 대한 학살사건도 동시에 진행되었다. 

 


이 천재 지변 속에서 식민지 조선에서 건너온 힘없는 국민들은 인재지변까지의 이중의 수렁에 빠져 목숨을 부지하는데 이리 뛰고 저리 뛰어야 했다. 지진이 일어나고 난 후 공황 상태에서 유언비어가 퍼지기 시작해 6천~1만여명의 조선인을 학살하였기 때문이다.(학살된 조선인의 숫자는 최소 6천명에서 2만명까지로 추정되고 있다.)

 


재일 사학자 강덕상 교수는 ‘유언비어’라는 말 자체도 왜곡이라고 주장한다. 유언비어란 근원지가 불분명한 채 입에서 입으로 퍼지는 일명 ‘카더라 통신’을 말하는데 당시 유언비어는 일본 경시청이 의도적으로 퍼뜨렸다는 증거가 있으므로 유언비어가 아니다는 것이다.

 

지진발생 직후 방송과 신문마저 중단되자 근거없는 소문들이 사실인 양 떠돌아다녔다. “후지산이 폭발했다.” “오가사와라 제도가 바다 속에 잠겼다.”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사람들의 불안감을 자극했다.


거기에 더해 공포와 혼란에 휩싸인 그들을 더욱 흥분시켰던 것은 유언비어였다.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약을 푼다’, '방화 강도 강간을 벌인다.‘, ’조선인들이 폭동을 일으킬 것이다.‘ 등, 이런 말들은 일본인의 민심을 크게 동요시켜, 진재의 공황 속에서 조선인은 일본 민중의 공동의 적이 되었다. 민중들은 자경단이란 조직을 구성해 조선인을 만나면 학살을 했으며, 그를 위해 조선인 색출에 혈안이 되었다.

‘15엔(円) 15전(錢)’과 ‘ぱぴぷぺぽ(빠삐뿌뻬뽀)’를 발음하게 하거나 ‘교육칙어’를 암송하도록 해 조선인으로 보이면 칼과 죽창을 마구 휘둘렀다. 내무성에서 지방에 내려보낸 ‘불령조선인(不逞朝鮮人) 단속’ 공문으로 군대와 경찰까지 동원돼 학살을 부추겼다.  

 

일본 치안당국의 학살묵인

치안 당국은 루머상의 “조선인 폭동”이 없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혼란 수습과 질서 회복의 명분하에 자경단의 만행을 수수방관하였고, 일부는 가담하거나 조장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점차 자경단의 만행이 도를 넘어서 공권력을 위협할 정도가 되자, 그제야 개입하였으나, 이미 수많은 조선인이 학살당한 후였다. 자경단의 살상 대상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으며, 상당수는 암매장되었다. 학살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에는 도쿄에 흐르는 스미다가와와 아라카와의 두 강이 흘러 다니는 시체로 인해 피바다로 물들었다고 한다. 일본 정부는 최종적으로 유언비어를 공식 확인하였으나, 피해자의 수를 줄여서 발표하고, 자경단 일부를 연행·조사하였으나, 형식상의 조치에 불과하였으며, 기소된 사람들도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무죄 방면되었다. 학살 사건으로 인한 사법적인 책임또는 도의적인 책임을 진 사람이나 기구는 전혀 없었다. 이로서 악성 루머가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잘 드러나게 되었다.  
 

 
  

관련 사실
당시의 일본 당국은 지진 발생 얼마 전에 조선의 3.1운동과 식민지였던 대만에서 수천 명의 사상자를 낳은 대규모 봉기를 유혈 진압하면서 민중의 저항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다. 지진 당시, 치안을 맡은 최고 책임자들은 주로 대만 총독부에서 일하던 관료 및 군인 출신이었다. 또한 일본 본국에서는 다이쇼 데모크라시로 인하여 노동운동, 민권운동, 여성운동 등 지배 권력에 대한 민중의 저항과 권리찾기 운동이 활발하던 시기였다. 이러한 분위기를 사회적 혼란 또는 일본제국의 위기으로 판단한 이들은 예상치 못한 자연재해인 지진을 기화로 조선인을 희생양 삼아, 질서를 유지할 목적으로 “조선인 폭동설”을 날조하였다.[3] 사건 이후, 일본 당국은 이 사실이 알려질 경우, 조선에서 다시 대규모 반발이 일어날 것을 우려하여, 한동안 일본 내 조선인의 입국을 금지시켰다. 또한 초기 발표를 하면서 조선인 사상자의 수는 불과 2~3명에 불과하다고 주장할 정도로 일본 정부는 사건을 숨기는데 급급하였다.


 조선인 학살사건과 관련된 일본의 저명인
저명한 아나키스트 오스기 사카에와 그의 6살짜리 조카 다치바나 소이치, 페미니스트 사회주의자이자 오스기의 아내인 이토 노에가 아마카스 마사히코 중위가 이끄는 군경에 체포되어 죽을 때까지 구타당한뒤, 우물에 유기된 아마카스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은 간토 대지진후의 사회적 패닉상태를 일본 전국에 널리 알리게 된 계기가 되었으며, 조선인 학살사건도 이 사건을 통해 알려졌다.

일본 영화계의 거장으로 평가받는 구로사와 아키라(黒澤明)는 대지진 후의 혼란기를 소년기에 직접체험하여, 당시 억울하게 희생된 조선인과 자경단의 광기, 유언비어 등에 대하여 상세히 증언하는 유명인의 한 사람이다.

한편, 일본의 소설가이며, 가장 권위있는 문학상 중 하나인 아쿠타가와 상으로 유명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자경단으로 활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인대학살의 일본인들의 증언


다음은 대지진 당시에 조선인 학살을 목격한 일본인 田邊貞之助(후에 불문학자)의 목격담과 구로자와 아끼라 감독, 당시 소학교 2학년이었던 이시바시등 직접 체험한 유언비어와 학살에 얽힌 증언이다.

 
<일본인 田邊貞之助>


"4,5백 평에 가까운 공지에 반나체의 시체가 3백여 구 뒹굴고 있었다. 목이 잘려 기관지와 식도 두 경동맥이 꺼멓게 드러났고 뒤에 서 목덜미가 베어져 벌겋게 살점이 드러난 것, 억지로 찢어 끊은 흔적이 역력한 잘린 머리는 눈을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중에서도 더한 광경은 젊은 여자가 배가 잘린 채 죽어 넘어진 가운데 6,7개월 된 태아가 죽어 뒹굴고 있는 것이었다. 여자의 음부에는 쇠사슬과 죽창이 꽂혀 있었다. 내가 일본인이란 사실이 부끄러워 견딜 수 없었다"

 

   

 

구로자와 아끼라 감독이 체험한 유언비어와 학살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은 그의 자서전 『구로자와 아키라』에서 유언비어의 허구성과 진재 당시의 조선인 학살의 무모함을 잘 그려내고 있다. 지난 94년 한국 민음사에서 번역된 자서전에 쓰여진 관동대지진 관련 구절을 옮겨본다.

......

우리 동네에서는 각 집마다 한 사람씩 보초를 내도록 했다. 하지만 형은 이 모든 생각에 비웃음을 보낼 뿐 아예 순번을 맡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내가 죽검을 들고 나갔더니, 고양이 한 마리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하수관에 나를 배치해 주었다. 그들은 거기에 나를 배치하며 "한국인들이 그 안으로 들어가 숨을 지도 몰라" 하는 것이었다.
이보다 더욱 우스운 일도 있었다. 그들은 우리들에게 동네 우물들 중 한 곳의 물을 퍼 먹지 못하도록 지시했다. 이유인즉슨 그 우물 둘레에 쳐진 벽 위에 하얀 분필로 이상한 부호가 적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물에 독을 탔음을 표시하는 한국인 암호일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의 추론이었다. 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사실은 그 부호라는 것이 바로 내가(구로자와 아끼라) 휘갈겨 놓은 낙서였기 때문이다. 어른들의 행동이 이러하거늘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도대체 인간이란 어떻게 된 존재인지 의아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8살 소학교 2학년 이던 소년 이시바시
일본의 가나가와 시의 구보산 중턱에는 작은 비(碑) 하나가 서 있다. 지진과 조선인 학살 당시 8살로 소학교 2학년이던 소년 이시바시(石橋大可). 아버지를 따라 지진 피난을 가던 길에 구보산 중턱에서 조선인 학살 현장을 목격했다. 제 나이 또래의 조선 소년이 전신주에 두 손을 묶인 채 죽창으로 난자 당해 죽어 있는 것을 본 것이다.

그 후 소년은 그 구보산의 사건 현장 땅을 사고 사비를 들여 작은 위령비 하나를 세웠다. 비의 뒷면에는 “조선 소년의 죽음을 목격한 한 시민이 세우노라“는 비문이 새겨져 있다. 처절한 조선인 소년의 죽음을 목격한 그는 현재 80세를 훌쩍 넘겼다. 그는 항상 생각해 왔다.

 

'많은 일본인들이 무고한 조선사람을 제 손으로 학살하고

그 현장을 자신들의 눈으로 직접 목격하였음에도 입을 다물고 있다.

그러나 입을 다문다고 양심이 다물어지는 것은 아니다 …'

Comment '4'
  • 오브제 2011.03.15 16:36 (*.228.192.98)


    이런... 정신 못차리는 인간들 하고는...쯧쯧...

    에라이....참...나....

    제발 좀 ... 생각 좀 하고 삽시다.... 지금 이게 뭐하는 짓거리들 입니까...

    지금 이시국에... 이런 글 올려서...뭐하자는 거야...주디 닥치라...고마...

    실망스러운.... 미치도록 실망스러운.... 나부랭이들....

  • 친구 2011.03.15 23:38 (*.161.14.86)
    제발 이런글은 올리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어느 곳에나 정신 병자는 있으며

    스스로 사회적 적응을 잘 하지 못해서

    무안가 자극적인 일이 벌어져서 세상의 고통을 통해

    삶의 쾌감을 찾는 부류들은 있습니다,

    그 극한의 어려움에서도 질서를 잘 지키는 일본사람들의

    시민 의식을 높이 존경합니다,

    전 세계가 지구가족 의식으로 도움의 손길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 괴로움속에서도 인생의 깨달음도 배우고

    사랑의 위대함도 배우는 요즈음입니다,
  • 참나 2011.03.16 11:13 (*.195.173.113)
    문제는 저런 태도가 일본 네티즌들의 다수 찬성을 몰고 다닌다는 점인데,
    사례를 보면 1700명 정도 중에 찬성 1600 이상, 반대가 고작 20여명 정도라는
    충격적인 보고도 있습니다.

    이건 전적으로 과거 역사에 대한 반성을 모르는 그들의 전통이 빚어낸
    태도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무지와 억지가 어떻게 전개되는 지의 극단적인 예이죠.
  • 붕가 2011.03.17 23:40 (*.196.39.70)
    지금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일본을 도와주는게 최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국민적으로 이웃국가에게 신세를 진다면...
    그리고 수습이 된 후에도 똑같이 영토분쟁등의 문제를 일으킨다면...
    정치적인 힘을 얻기위해 우익세력을 자극하는 정치인들은 힘을 잃겠죠.
    북한같이 여론수렴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독재국가에게는 햇볕정책은 실패했지만...
    지금 일본에게 필요한건 그 햇볕이 아닐까... 하고 짧은 식견으로 넘겨짚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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