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7.26 10:01
고갱, 포장지, 달과 육펜스 ,몸
(*.161.14.21) 조회 수 5832 댓글 1
타히티 방문에서 몸이 거둔 성과는 소설뿐만이 아니었다.
단돈 400프랑을 주고 산 고갱의 문짝 그림이
반세기 뒤인 1962년에는 1만 7천 달러로 가격이 껑충 치솟았기 때문이다.
말년의 고갱은 돈이 없어서 자신이 그린 그림을 먹을 것과 맞바꾸곤 했는데,
마을의 중국인 식품점 주인은 그렇게 해서 얻은 고갱의 데생을 주로 ‘포장지’로 사용했다.
타히티의 백인들 중에는 고갱이 그려준 초상화를 못마땅해 해서 다락에 처박아놓았다가
훗날 화상에게 처분하거나, 또는 고갱의 그림 선물을 아예 거절한 사람도 있었다.
이들로선 고갱의 사후에 그 그림의 가치가 얼마나 막대하게 치솟을지는 전혀 몰랐던 것이다.
그건 아마 고갱 자신도 몰랐으리라.
[출처] 135, 폴고갱/ 프랑스의 후기 인상파 화가 (미술 투자 클럽) |작성자 펄디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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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 앙리 폴 고갱(Eugène Henri Paul Gauguin,
1848년 6월 7일 ~ 1903년 5월 8일)은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이다.
파리에서 태어났다.
[편집] 생애
고갱의 생애는 파란만장하다.
아버지는 자유주의자로서 망명하여 남미 리마로 가던 도중에 죽고,
그후 고갱은 7세 때에 고국에 돌아온다.
바다를 동경하여 선원이 되어 남미도 항해하지만, 결국 포기하고
증권 거래소에서 일했다.
거기서 돈을 모아 결혼하여 평화로운 생활이 계속되었으나 여가가 있을 때마다
회화에 전력하여 살롱 전에 입선하였다.
피사로를 알게 되어 인상파의 영향을 받은 후, 인상파 작품을 사들이고,
그 화가들과도 교제하여 1880년 제5회 전시회부터 인상전(印象展)에 그의 회화를 출품한다.
이어 회화에 대한 정열은 더욱더 왕성해져서 1883년에는 증권거래소를 그만두고 화가로서
새출발을 한다.
그러나 회화는 생활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고 돈은 다 떨어져서 아내의 고향인
덴마크로 가는데 덴마크에서 발표한 일도 실패, 고갱은 처자를 남겨두고 단 하나의
어린아이를 데리고 파리에 나타났다.
그러나 생활은 궁핍하여 포스터를 붙이는 노동도 했다.
그리고 1886년부터 브르타뉴의 퐁 타뱅으로 가서 젊은 화가들과 만나,
인상파의 그림에 만족하지 않고, 독자적인 화풍을 창시,
평면적인 채색으로 장식적인 그림을 그리면서,
그의 화풍을 따르는 젊은 화가들과 '퐁 타벵(Pont-Aven) 파'를 창립하였다.
파리로 돌아가서는 고흐를 만났다.
그러나 고갱에게는 미개국에 대한 정열이 있었다.
문명의 허위도 좋아하지 않았다.
원시 속에는 꿈이 있다.
거기에는 시(詩)가 살아 있다.
고갱은 1887년 봄에 남미로 건너가고, 다시 마르티니크 섬으로 가지만 병으로 인한
고뇌로 귀국한다.
그리하여 이듬해 퐁 타뱅으로 다시 가 거기에서 젊은 화가들과 만나 새로운 회화의
이론을 주장한다.
이어 고흐의 초대로 아를르에도 가지만 그 우정은 깨져 버려,
재차 미개척의 땅을 그리워한다.
그 염원을 달성한 것은 1891년으로,
고갱은 태평양의 타히티 섬으로 여행을 떠난다.
그 남방의 색채와 미개한 생활은 그리던 땅에 잘 맞고, 그는 그 감동에서 수많은
작품을 그려 낸다.
고갱은 한번 파리에 돌아오지만, 1895년에는 최종적으로 타히티에 돌아간다.
그러나 그림 제작하는 것 외에는 궁핍과 병과 싸우는 생활이고,
1901년에는 도미니카 섬으로 옮겨 가서 고독한 생애를 마친다.
그는 세잔·고흐 등과 함께 후기 인상파의 한 사람인데,
세잔은 객관적 또는 공간적인 것을,
고흐는 주관적인 것을 제재로 하였으나,
고갱은 장식적인 것의 부활을 주로 하였다.
그의 강렬하고도 새로운 장식풍의 그림은 후세 그림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편집] 대표작품
《황색의 그리스도》
《황색 그리스도가 있는 자화상》
《네버모어》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타히티의 여인들》
《언제 결혼할까?》
《눈 속의 브르타뉴 풍경》
《모자를 쓴 자화상》
《모성》
《과부습작》
《야회복을 입은 메트 고갱》
《캔버스 앞의 자화상》
《야생화와 만돌린이 있는 정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