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니다 vs 읍니다 에 관한 단상 - 한글날에

by 오리베 posted Oct 09,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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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읍니다” 세대입니다.  물론 지금은 “습니다”에 익숙해 있으므로 언어생활에 불편은 없습니다.  그런데 질문은 있지요.  왜 수십년간 써오고 그렇게 써야 맞다고 학교에서 교육까지 받아왔던 “읍니다”가 하루아침에 틀린게 되어 이렇게 쓰면 조롱 내지 비난까지 받고 이제부터는 오로지 “습니다”가 맞고 그게 국어 사랑하는 것이 되는 걸까요?  제 말은 왜 습니다가 "본질적으로" 맞느냐는 말입니다.

그 맞고 그름은 누가 정하는 것입니까?  우리 맞춤법의 준거는 한글 맞춤법 통일안이고 이를 정하는 것은 결국 정부와 학자들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 국민들이 널리 쓰는 말이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선언하는 원칙에 따라 갑자기 어느날부터 맞고 틀리고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웃기지 않습니까?  그럼 그 전까지는 틀린 언어를 국민에게 강요해 왔단 말인가요?  

언어는 사용자들 간의 묵시적 약속입니다.  우리 국민의 언어의 실제 사용에서 문법이나 맞춤법이 도출되는 것이지 문법이나 맞춤법을 학자들이 일방적으로, 그것도 수시로 정해놓고 국민이 거기에 맞추라는 것이 무슨 경우인가요?  당시에 대중들의 사용에 있어 읍니다에서 습니다로 대세가 바뀌었다면 그렇게 바꾸는 것이 옳다 하겠지만 대체 누가 예전에 "습니다"라고 쓰기나 했답니까?  

외국은 어떨까요?  영어 문법과 스펠링은 통일안이 없으며 영어 학습 과정에서 배우는 문법 체계라는 것도 그게 유일한 정답이 아니라 너무 어색할 정도로 어긋나지 않은 범위에서 다수견해에 따른 것 뿐입니다.  (그나마 지금 당장 일반 문법 상식과 현재 쓰고 있는 관행 간의 차이가 있는 점을 지적하라면 수십 가지가 될 것이지만 그런 것들에 문제의식을 느껴 통일성을 추구하는 풍토도 없습니다. 스펠링만 해도 두 개씩 허용되는 단어들 많지요.) 모든 다른 나라 사정을 알 수는 없지만 통일안을 정부가 정해 놓고 강요하는 곳은 한국 외에 별로 없는 것으로 압니다.  

이것은 사고 방식의 차이일 것입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옳고 그름의 어떤 기준을 외부의 권위가 설정해 줄 것을 기대하고 설정된 권위의 일사불란한 수용을 생활원리로 받아들입니다.  반면 서양, 특히 영미 쪽에서는 일방적으로 선언되어 대중을 인도하는 그런 절대적 기준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개별의 사용에서 어느 정도 원리를 끌어내면 족할 뿐이고 완전 통일된 추상적 체계를 필요로 하지도 않습니다. 이는 양쪽 문화의 모든 면에서 두드러지는 특색입니다.  

역할을 “역활”, 잔디를 “잔듸”로 쓰시던 저의 부친은 어느날 아침 국민학교 다니던 어린 아들놈에게 냉엄히 지적받고 변명하기 바쁘셨고 또 동네 시장마다 푸른 칠 바탕에 빨간 글씨로 “어름” 이라고 쓴 얼음집 간판들이 기억납니다. 다음 세대에는 또 뭐라고 바뀔까요?  우리가 지금 맞다고 생각하고 이를 굳게 지켜야 우리말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는 맞춤법들, 이게 고작해야 학자들 작심 한번에 폐어가 될 시한부 언어에 불과할지 아무도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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