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서거를 생각하며
이런 게 있습니다. 실제로 정치/법학을 전공하고 사법고시 따위를 준비해보면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만... 과거에 이쪽에 도전하는 학생들은 힘 없고 가난한 집안 출신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이런 쪽에 도전할 때는, 대개 처음에는 출세를 목적으로 하게 되는데, 공법과 법철학 등을 깊이 학습하다 보면 차츰 이상주의에 세뇌(?) 되는 유형이 생기게 되고, 반면에 그 후에도 변하지 않는 유형으로 나뉘게 됩디다. 전자인 경우에는 학자 쪽으로 방향을 트는 경우도 종종 생기지요.
노무현 대통령은 전자 쪽이었던 같습니다. 판사 몇 달 하고는 바로, 돈도 안 되는 인권 변호사가 된 점이라든지, 수많은 그의 언행과 글이 그걸 증명하지요. 그래서 그는 차라리 학자 풍이었다고 봅니다. 현실정치에 간여하지 말았더라면 좋았을 것 같네요. 풍토 기질 때문에 전사가 되고 말았지만, 그 정서는 학자인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이걸 좀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현실정치는 대통령 뜻대로 되지 않거든요. 외부에도 적이 많지만, 내부에는 더 많습니다. 번갈아가면서 괴롭히지요. 그러나 자고로 대국/대인은 외환보다는 내우로 망합니다. 스스로의 말처럼, 그는 구 시대의 막내요, 새 시대의 맏형이 되고 싶어 했습니다.
산업이 발전해서 국민들이 보다 잘 살게 되면 쓰레기도 많이 생깁니다. 그릇도 지저분해져서 누군가 설겆이를 해야 하지요. 그는 그 과정에서 너무 급진적인 정책을 쓰다 보니, 또한 공격적 성향을 여과 없이 나타내다 보니 그릇도 많이 깬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말하자면 설겆이에 실패한 것이지요. 하지만 설겆이는 각론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총론적으로는, 신 시대의 맏형으로서의 위치는 굳힌 것입니다. 그는 스스로의 희망대로 '가치의 상징'으로 남는데 성공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마터면 이것마저도 잃을 뻔했지요. (현 정권, 여당, 보수언론, 검찰 때문에) 그는 최후의 승부를 건 것입니다. 그러나 그 대상은, 이명박 정권 따위가 아니라, 보다 가치 있는, 진보라는 사상이 꽃을 피우게 하는 데에... 그래서 퇴비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국민들은 이 점을 잊지 않는 것이라고 봅니다.
만일 그게 이명박 정권에 대한 승부수라면, 그건 그 정치적 순교의 의미를 크게 훼손하는 것이 되고 맙니다. 그건 그 스스로 표현한 바와 같이 '가치의 상징'이 아니라 '복수극'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날더러 가치의 상징으로 남으라는 것은) 운명이다!'는 말을 유언에 포함시켰을 것입니다.
그는 진보를 개척한 위대한 대통령이라고 봅니다. 이 정권에 대한 책임은 별도로 물어야 하지만, 그 효과는 크지 않을 것임을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 궁극적 문책은 다음 선거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렇지만 필자가 걱정스러운 것은, 남아있는 진보좌파와 이를 지원하는 시민들이 상대편에 대한 이해와 설득을 게을리하지 않을 때, 그리고 점잖고 매력적인 행동을 보일 때만 가능할 것입니다. 그래야만 국민들이 그의 서거를 쉽게 잊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