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은 국민소득이 마구 올라서 정말로 좋은 기타 현을 사용한다 (과학 발전도 한 몫 했을 터이다).
그래서 줄을 아껴 사용한다는 개념은 이제 촌스런 중년의 넋두리로만 들린다. 개발도상국의
끝자락에서 배고픈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으로서 기타줄에 대한 소감과 아쉬움은 요새
젊은이들의 그것과 사뭇 다르지 않을까... 그냥 떠 오르는 줄-이야기를 풀어 보고 싶다.
1. 새로 갈아서 다 쓰고 뺄 때까지 단 한번도 조율이 맞은 적이 없던 <세곱이야> 기타줄.
벌크로 샀더니 3번선 50%는 죄다 불량인 <다多리5>,
종소리처럼 카랑카랑했던 La Bella,
근사한 포장과 달리 별다른 개성이 없는 Luthier
음량은 컸던 어거스틴 블루,
모질게도 오래 간 어거스틴 레드,
갈자마자 사망한 아랑훼즈....
밥값 줄이고 줄여 구입한 (언젠가부터 등장한) 블랙 레이블.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은 포스의 <하나바흐>(HANNABACH)를 처음 걸었을 때 충격은 이루 표현할 수 없다.
2. 예페스를 좋아했던지라 그를 숭배하며 따라 샀던 연두색 아랑후에즈, 소리는 환상적인데 수명이 짧았다.
작은 키에 비해 유난히 손가락이 길었던 예페스(세종문화회관 뒤에서 악수 했던 22년 전의 기억이
또렷하다. 유창한 독일어로 인사도 받아주었던 불세출의 거인 ...)
3. 첨단 수준의 카본 티타늄 줄이 나오기 전 표면이 거칠었던 사바레즈, 이건 중후한 음과 수명이 정말
반비례했다. 내 앞의 연주 순서 후배에게 빌려 주었다가 그 기타로 무대에 올라 완전 죽을 쑨 적이 있었다.
탄력을 잃은 데다가 손톱까지 갉아먹는 사마귀 같았다.
4.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자 재활용의 비법을 터득하기 시작했다. 점잖은 방법과 처절한 방법이 있다.
(a) 줄의 수명이 다 되었다 싶으면 줄을 빼서 180도 돌려 앞뒤를 바꾸어 끼면 그래도 2-3주는 가더군.
(b) 이 방법은 줄을 낄 때 재활용을 염두에 두어 처음부터 꼬이지 않게 최대한 바투 빙둘러 매야 한다.
(c) 그 다음 순전히 줄을 악기의 현이 아니라 밧줄로 보는 방법이다. 그렇지 ~! 끊어진 (특히) 4번선 두 개
를 이어 묶어 거는 방법이다. 소리는 간신히 나는데 신세가 무한정 비참해진다.
5. 독일에 간 김에 악기사에 가서 6천 유로 짜리 기타 주물럭 거리다가 그냥 나오면 주인한테 얻어맞을 것 같아
하나바흐를 왕창 샀다. 웬걸 국내 모 수입하는 곳(山骨)이 더 저렴하더군(요샌 환율 때문에 어렵겠지만)
6. 낙원상가를 헤매다가 악기상 앞에서 어거스틴 두 벌 부탁한다고 했더니 알바 총각 어디서 번개같이
대령한다: "다음 주 부터 가격이 오르는데 오늘만 특별히 만 2천원에 드릴게요". 덥석 살 수 밖에 없었다.
(얼마 전 인터넷을 보니 만원에 팔더군. 담에 그 놈 잡으면 그냥 확~!)
제주에는 사바레즈 하이텐션(진작부터 2만원씩 받았다... 지금은 더 올랐겠군 ㅠㅠ) 밖에 없으니.
7. 얼마 전 산골에서 구입한 하나바흐 8현 세트, 아까워서 도저히 쓸 수가 없다. 수님 왈, <한번 걸면 그래도
6개월은 갈텐데요....> 손가락이 짧으니 세게라도 쳐야겠다는 보상심리 때문에 기껏해야 석달 간다.
8. 수님이 모처럼 확보한 <하우저 스트링>, 어떤 소리가 날까? 아까워서 쓸 수 있을지....
(오늘 토요일인지라 월요일에나 받아볼 수 잇을 것 같다)
9. 진철호 님에게 거트현을 하나 부탁해 볼 작정이다. 연주회 때 쓰고 빨아서 잘 말려 놔야지(ㅎㅎ).
카본줄이 피자-스파케티 맛이라면 나일론 현은 된장찌개다. 그렇다면 거트현은 혹시 청국장 *.*
10. 기타 현도 결국 미국, 독일, 프랑스가 여전히 종주국이군요. 섬세한 일본의 장인정신 거침없는 한국의
도전정신, 전무후무한 가격경쟁력의 중국이 힘을 합치면 뭔가 명품이 나올 듯도 한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