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얼마가 들어도 소송 걸어서 끝까지 갈 터이니 두고 보세요!”
모 대학에 강의 나간다는 시츄 견(犬)네 집 큰딸이 우리 집을 뛰처나가면서 뱉은 말이다.
이 말을 듣자 그 동안 반드시 해야 할 말도 꾹 참아왔고,
이제는 그나마 잊어버리려고 마음먹었던 내 의지가 어이 없이 무너져버렸다.
삼국유사의 신라 48대 경문왕편에 있는<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이야기처럼 나도 어딘가에 후련하게 외쳐보고 싶어졌다.
7월 어느 토요일 밤 10시 반쯤, 일산의 우리 집 근처 공원길에서 일어난 사건의 정황이다.
아내와 모처럼 찾아온 며느리가 말티즈 견과 진돗개의 목끈을 각각 나눠 잡고 배변을 시키고자 밖으로 나섰다.
마침 30여 미터 떨어진 공원벤치에 60대와 40대의 모녀가 나와 앉아 시츄의 목끈을 풀어주면서 사건이 터진다.
끈에서 해방된 시츄가 슬슬 진돗개 앞까지 다가왔다가 그만 물리고 만 것이다.
어두운 밤이었고 배변을 서두르느라 우리식구가 시츄가 오는 기미를 미처 알아채지 못한 상황에서 순간적으로 발생한 것이다.
이건 나의 추측이지만, 평소에 우리 진돗개가 말티즈를 자기 새끼처럼 여겨온 것과 관련이 있지 싶다.
변을 보려고 머뭇거리는 중에 어둠 속에서 갑자기 시츄가 눈앞에 나타나자
새끼에 대한 보호본능에서 싸움이 났으나 상대적으로 덩치가 작은 시츄가 중상을 입게 된 듯하다.
뒤이어 난리가 났다.
시츄 집 모녀는 두 아들과 그의 처까지 불러내어 아우성이다.
진돗개를 죽이겠다는 등 험한 말에다, 내 며느리를 칠 듯하며 개를 살려내라고 야단법석을 쳤단다.
나를 부르러 들어온 며느리 대신 내가 밖으로 나갔다.
그네들은 진돗개를 데리고 있던 우리 며느리를 때려주게 내어놓으라느니,
아기를 못 갖도록 저주한다느니,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말들을 마구 쏟아낸다.
시츄의 가족들이 너무나 슬퍼하여 가슴 아프기도 하였으나 상식을 벗어난 넋두리와 겁박에 주눅마저 들었다.
언로가 완전히 막힌 처지라 사태의 원인이나 책임소재를 규명할만한 대화의 여지가 전혀 없었다.
나는 그저 치료에 대해서는 성의껏 하겠다는 위로의 말만 거듭할 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인근 동물병원에서 마악 수술을 시작하려는데 가족 중 하나가 중상 입은 개는 대학병원으로 가야한다고 고집하였다.
하는 수 없이 응급조치만 한 다음 건국대학 동물병원까지 두 대의 차로 동행하였다.
응급실에 입원시킨 후 시츄의 가족대표로 나선 큰 아들의 일방적 요구대로 초기진단비를 선불하고
향후 치료비 전액을 부담하겠다는 각서를 써준 후 집으로 돌아오니 새벽 2시가 넘었다.
월요일에 병원 교수가 나오면 진단 결과를 보고 시술여부를 결정한다고 들었기에
다음날 아내는 시츄의 상태도 알아볼 겸 과자를 사들고 그 집을 방문하여 가족들을 위로하였다.
그네들은 사고 당일보다는 다소 진정되었으나 아직도 감정이 격한 상태라 하고 싶은 말은 꺼내지도 못하고 그냥 돌아왔다.
그네들이 죽이겠다는 진돗개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기가 민망하여 집에서 배변시키려 하였으나 이틀째가 되어도 참고 버틴다.
착잡한 마음에 시달린 나머지 나는 우리 개를 진돗개 연구소에 거저 넘겨주고 돌아왔다.
넷째날 오전에 시츄 집 큰 아들로부터 개가 기어이 죽고 말았으니 만나자고 하였다.
35세의 장년임에도 불구하고 눈물을 쏟는 딱한 모습에 하고 싶은 말은 도저히 꺼낼 수가 없었다.
그는 치료비 잔금 외에 장례비와 납골당 설치비까지 추가로 요구하였다.
나는 사죄하는 마음에서 순순히 모두 지불하였다.
퇴직자에게 백만 원이 넘는 금액은 부담이 크고 억울한 심정도 있었으나,
어려울 때일수록 이웃에 덕을 베풀어야 한다는 소신에서 나는 담담함을 유지하였다.
단 민형사상의 책임이 종결된다고 확인한 영수 각서를 받은 것은 지금 생각해도 천만다행인 듯 하다.
그 날 저녁에 시츄 집 큰 딸이 느닷없이 찾아온 것이다.
장례를 치르고 오는 길이라며 막말을 퍼붓기 시작한다.
납골당 해 주면 다 끝나는 줄 아는 모양인데 시츄는 자신의 개이므로 가족 누구와 합의해도 무효라는 것이다.
전후과정을 이해시키려 해도 말꼬리를 잡으며 막무가내로 떼를 쓰다가 요구사항을 말하기까지는 거의 한 시간이 걸렸다.
10년이나 정들었던 시츄의 죽음에 대한 정신적인 보상과,
우리 진돗개를 자기네들이 보는 앞에서 죽여야 된다는 것이었다.
이 모든 일이 전적으로 우리만의 책임이란 말인가?
귀에 거슬리는 그녀의 말투를 참아내며 나는 이번만은 정중하게 거절하였다.
그러나, 시츄를 풀어놓은 책임에 대해서는 그녀에게 끝내 묻지 못하였다.
법은 멀고 우격다짐은 가깝다는 말이 바로 이웃에서 활개치고 있기에...
이 나이에도 수양이 부족한 탓인지 가슴속에서 울화가 치밀더니 무언가 뭉클하고 목구멍으로 올라왔다.
2005년에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