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모가 다가오니 저도 약간 감상에 젖어드네요.
커피 이야기를 올렸으니, 다방 이야기도 마저 해야 되겠지요.
다방 이야기
13세기 무렵 아라비아의 메카에서 이슬람 순례자들을 대상으로 천막을 치고 커피를 팔았다고 한다.
정식 찻집은 1551년경 오스만제국의 이스탄불에서 [카페]라는 명칭으로 문을 연 것이 시초로 추측된다.
오스만제국에서 각국으로 커피가 수출되자 16세기말에는 이집트 카이로에 3000여개에 달하는 찻집이 생겼다.
커피가 유럽으로 전파되면서, 한 사제가 기독교인도 커피를 마시게 함으로서 급속하게 퍼지게 되었다고 전해온다.
17세기 중반에는 영국, 프랑스와 미국 등에도 보급되었다.
1647년 이태리의 베네치아에 처음으로 카페가 문을 연 것을 계기로, 18세기에는 파리에 600여개, 런던에는 2000여 곳이 넘었다고 한다.
카페는 처음에는 커피점이었으나 얼마 지나서는 음식과 술도 겸하게 된다.
영국의 [커피하우스]는 정보문화의 중심적 역할을 하였으며 정치, 사회, 문화의 산실이 된다.
프랑스의 [카페]는 예술가나 지식인들이 모이는 시민의 살롱 역할로 새로운 예술, 사상, 문화를 만들어 내는 장소가 되었다.
지금도 오래된 카페에 가면 명사들의 방문을 기념하여 좌석에 표시를 해둔 곳이 있다.
그 중에는 로이드 보험기구의 모태인 런던의 [로이드카페], 보드레르가 자주 찾던 파리의 [랑블랑카페]이며 빅토르 유고의 단골카페 등 유서 깊은 카페가 적지 않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지에는 담배와 사탕과자나 그림엽서를 팔기도 하고 아침 일찍 일 나가는 사람들에게 아침식사를 제공하는 카페도 있다.
일조시간이 짧은 북유럽에서는 길가에 테이블과 의자를 놓아 일광욕을 겸한 카페도 있어 노인들이 오순도순하며 앉아 있는 모습이 주로 젊은이들이 모이는 프랑스 등지의 카페와는 대조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외국에는 이와 같은 카페나 호텔 로비라면 몰라도 우리네와 같이 주로 커피나 차를 위주로 하는 다방은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나라에서 [카페]를 [다방]이라고 하게 된 유래도 있지 싶다.
통일신라시대에 전문적으로 차를 마시는 [다연원茶淵院]이 있었으며, 고려시대에는 [다방茶房]이라는 [관사官司]를 두어 차와 술, 과일과 약에 관한 일을 맡아보게 하였다.
이것이 조선시대에는 [이조吏曹]에 속하여 [다례茶禮]라는 명목으로 외국사신들의 접대를 맡았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 커피와 홍차 등이 보급되면서 근대적인 카페가 등장할 때 역사적 의미를 살려 [다방]이라고 이름 한 듯하다.
인천에 외국 선박이 들어오게 되자 세워진 대불호텔과 슈트워드호텔에 최초의 커피숍이 열렸고, 서울에서는 1902년 고종황제와 가깝던 러시아 여자 손탁이 지은 정동의 손탁호텔이 처음이라고 한다.
1923년경 명동의 [후타미二見], 충무로의 [금강산] 등의 다방이 생겼다.
1930년대에 [낙랑파라]가 들어설 즈음, 문예동호인들의 모임과 같은 규모에서 벗어나 영리도 모색하는 본격 다방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1933년 시인 이상李箱이 차린 [제비]를 전후하여 영화연극인, 화가, 음악가, 문인 등이 많은 다방을 개업하였는데, 이들은 각각 특색 있는 다방문화를 꽃피웠다.
그 시절에는 고등교육을 받은 대학생과 지식인층들이 정보를 공유하며 차를 즐기는 곳이었다.
8.15 광복과 6.25 한국전쟁을 거치는 동안 다방은 상업적으로 변모한다.
휴전 후에는 문화시설의 부족으로 다방이 차와 담소를 나누는 사랑방에서 나아가 그림전시회, 문학의 밤, 출판기념회 등이 열리는 종합예술의 무대가 되기도 하였다.
이것이 한층 발전해 종로와 무교동 그리고 충무로와 명동일대는 지식인과 예술인의 문화마당으로 자리 잡게 된다.
그 때, 어느 문인을 만나려면 어딜 가면 된다시피 나름대로의 단골 다방이 유행하기도 하였다.
한편 고등실업자의 휴게실 구실도 하여 커피 한잔 시키고 하루 종일 자리를 차지하는 일이 예사였다.
60년대에는 얼굴마담, 레지, 카운터, 주방장을 거느리고 운영하는 다방기업으로 성장한다.
대학생들에게 다방은 요즘의 젊은 세대가 선호하는 [테이크 아웃] 문화처럼 비켜갈 수 없는 장소였다.
당시 다방은 사무실을 갖지 못한 소기업 사장족의 연락사무실 역할도 톡톡히 하였다.
흑백 TV의 보급 초기라서 저녁나절이면 손님들이 모여들어 TV를 시청하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70년대에 들어서자 다방은 고급스런 실내장식을 갖추고 규모도 대형화 한다.
젊은이들은 달리 갈만한 곳도 마땅치 않은데다 교제의 편의상 거기서 살다시피 했다.
다방은 대학생들의 다양한 에너지와 욕구의 분화구로, 민주화 투쟁의 보금자리이자, 억눌린 표현의 자유를 토로하고자 드나드는 곳이기도 했다.
번화가에 다방이 즐비하게 된 것도 우리나라에 정착된 특이한 문화로 봐야겠다. 발전을 거듭하는 동안 음악다방이라는 새로운 형태로 화려한 전성기를 누리기도 한다.
그러나 다방은 80년대에 국제화 바람을 타고 들어 닥친 외식업계의 시대적인 변화와 흐름에 적응하지 못하고 젊은 세대로부터 외면당하게 된다.
88 올림픽 전후하여 나타난 원두커피전문점인 [자뎅]류의 체인점과 함께 온갖 음료와 심지어 라면까지 제공하는 카페에게 그 역할을 고스란히 빼앗긴 다방은 도시에서 지방으로, 번화가에서 변두리로 밀려나고 만다.
급변하는 산업문명과 더불어 대기업화 시대에는 다른 업종이 그 영역을 서로 넘나드는 포괄적인 상황이 벌어질 뿐 아니라 다방업계에도 대기업이 참여하게 된 까닭이다.
2005년인가 국내에 [스타벅스] 100호점이 개설되었다고 들었는데, 2006년에는 청계천 입구에 136호점을 열었다는 사실이 변화의 속도를 실감나게 한다. 얼마 전에150호점이 열렸다는 얘길 들은 후에는 더 이상 헤아려볼 의미가 없어졌다.
오늘날 커피 마실 곳은 지천이다.
내가 사는 일산에는 40여개의 카페가 줄지어 들어서있는데, 다방은 아니라고 우긴다.
전에는 다방에나 가야 커피를 들 수 있었다면, 지금은 패스트푸드점이나 편의점이며 여기저기 자판기도 있고 어떤 식당에서는 식후 서비스로 그냥 내놓기도 한다.
추락은 날개를 달고 끝없는 나락으로 이어져 이제는 그 의미조차 퇴색되어 버리고 말았다.
다방이란 명칭은 가끔 뉴스시간이나 고발 프로그램을 통하여 퇴폐의 온상으로까지 왜곡되고 있어 그 이름을 입에 담기조차 민망스러워진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산업화시대의 물결 속에 다방문화가 스러져가는 것을 보면서 우리가 지나친 희생을 치루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서양의 카페문화는 수백 년의 전통을 이어오며 우리에게까지 알려지고 있는 터에 어쩌다가 다방은 안방을 빼앗기고 변두리를 전전하는 신세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겠지만 이처럼 하나씩 우리가 지녔던 문화가 사라진다면 언젠가 우리의 뿌리마저 잊혀지지 않을까 염려된다.
하여간 다방은 우리 세대에게만큼은 추억으로 간직할 만한 향수가 깃들고 아늑한 사랑방이었음에는 틀림없다.
2006년에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