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도착한 알렌 가라기치

by 콩쥐 posted Nov 17,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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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니아에서 태어나  
내전당시 상당히 힘든상황에서 어린시절을 보내고
스페인 바로쎌로나에서 활동하는   알렌 가라기치.

마드리드에서 대한항공직항으로  11시간30분밖에 안걸렷데요.
대한항공 넘 좋다고 칭찬을 엄청했어요,..아시아나도 무지 좋은데...

일산 닭칼국수로  저녁먹엇는데 엄청 맛잇다고 하네요.
김치도 무지 좋아하고.
된장찌게, 김치찌게, 청국장, 해물파전, 떡복기,오뎅,홍어삼합 이딴걸루  우리나라맛 좀 뵈 줘야죠...

보스니아에 대해 깊이 공부하지 못하고 나가서
보스니아의 역사에 대해 많이 못 물어봤네요....
유고연방으로 통일되었다가 우리나라처럼 크로아티아, 세르비아,보스니아로 나뉘었나봐요.
언어도 같은데 서로 싸우면서  나뉘다니...바보....
그래서 일단 퍼왔습니다...
연주회가기전에  연주곡은 물론 보스나아에 대해서도 공부 많이 해야죠.
보스나아곡도 한곡 연주하겟다고  햇거든요.....






.....................................퍼온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동쪽으로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와 경계를 이루며, 북쪽·서쪽·남쪽 등 3면을 크로아티아가 둘러싸고 있다. 헤르체고비나는 좁은 회랑을 통해 아드리아 해의 네레트바 해협에 있는 네웅에서 바다와 맞닿아 있으며, 이 회랑이 크로아티아 달마치야 해안 가운데 두브로브니크 북서쪽 약 40km 가량의 지역을 크로아티아 본토로부터 갈라놓았다. 수도는 사라예보이다. 면적 51,209㎢, 인구 3,860,000(2006 추계).


자연환경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대부분 산악지대로 고도가 보통 해발 1,800m 이상에 이르지만 아드리아 해에 닿은 남쪽으로 향할수록 고도가 급격히 떨어진다. 사바 강과 드리나 강, 네레트바 강을 비롯해서 그 지류들이 흐른다. 디나르알프스 산맥을 비롯해 남서부 지방은 카르스트 지형(틈·돌리네·동굴 등이 있는 석회암 지대)이 특징이다. 보스니아 지방과 헤르체고비나 지방의 기후는 상당히 다르다. 헤르체고비나는 남서쪽에서 올라오는 시로코의 영향을 받는 반면 보스니아는 디나르알프스 산맥의 측면 골짜기로 불어내리는 북동풍인 보라의 영향을 받는다. 강설량은 매우 적은 편이다. 보스니아는 대체로 온화한 편이지만 겨울에는 몹시 춥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헤르체고비나는 10∼1월에 많은 비가 내리며 여름이 숨막히게 더운 것이 특징이다. 겨울에 카르스트 지역에 비가 내려 이 지역이 아열대 기후대에 속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민

이슬람교 사원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동부 드리냐차 강가의 ...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는 많은 민족이 거주하지만 주요 집단으로는 인구의 2/5 가량의 이슬람교도, 1/3 가량의 세르비아인, 1/5 가량의 크로아티아인 등이 있다. 이 3개 민족들은 세르보크로아티아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며 인종적으로 뚜렷한 구별이 없지만 세르비아인들은 대부분 정교회 교도로 키릴 문자를, 크로아티아인들은 로마 가톨릭교도로 라틴 문자를 사용한다. 이슬람교도들의 선조는 오랜 투르크(오스만 제국)의 지배 기간동안 이슬람교로 개종한 슬라브인이다. 역사상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민족들은 혼재된 양식 속에서 서로 뒤섞여 살아 왔는데, 이러한 혼재된 양식은 평화시에는 세계시민주의적 분위기를 부여했지만 또한 수많은 전쟁이라는 해악을 불러오기도 했다. 사라예보에는 이슬람교 대표들이 있으며 세르비아 정교회 수도 대주교관과 로마 가톨릭교 대주교관이 있다. 이밖의 주요도시로 세르비아 정교회의 주교관구이자 로마 가톨릭교 주교관구인 모스타르와 바냐루카, 세르비아 정교회의 주교관구가 있는 투즐라, 로마 가톨릭 주교관구인 트라브니크 등을 들 수 있다.


경제
전체 면적의 약 15% 정도가 경작이 가능하며, 주로 북부지방의 토양이 비옥한 편이다. 곡물, 특히 옥수수와 밀 재배에 적당한 토양이다. 콩·평지씨·올리브·포도·오디·무화과·석류·멜론·오렌지·레몬·쌀·담배 등이 헤르체고비나와 혹한이 없는 보스니아 지방에서 재배된다. 농작물 재배는 대개 가축 사육과 함께 이루어지는데, 이 나라는 주요 양사육 지역이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철·보크사이트·석탄 등을 비롯해 다양한 광물자원이 있으며, 또한 이 나라 강들은 수력발전의 잠재력이 크다. 현대 광업과 산업은 오스트리아 지배하에서 시작되었다. 유고슬라비아 공화국 시절에는 산업, 특히 야금 부문이 장려되었지만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유고슬라비아에서 가장 빈곤한 지역이었다.


정치·사회
다민족 국가적 성격은 오랫동안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정치를 특징지었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이루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연방(이슬람계-크로아티아계 연방)과 스르프스카 공화국(세르비아계 공화국)은 각각 입법부와 대통령을 가지고 있다. 중앙정부 의회는 양원제로서 하원 의석의 2/3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연방이, 1/3은 스르프스카 공화국이 구성하며, 상원은 3개 민족이 각각 5석씩 배분하고 있다. 이슬람계·세르비아계·크로아티아계 각각 1명씩으로 채워지는 3인 공동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다.


역사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초기 거주자들은 발칸 반도 북서부를 침략한 인도유럽어족의 일리리아인들이었다. 그러나 구석기시대의 자취가 우소라 강 어귀에서 발견되었고 상당량의 신석기시대 유물이 부트미르·도냐마할라·클라카르도니이·카카니·노비셰헤르에서 발굴되었다. 헤르체고비나의 주요 신석기시대 유적지는 코니츠 근처의 리시치치이다. 청동기·철기 시대의 자취도 볼 수 있는데 가장 중요한 철기시대 유적지는 도냐돌리나·글라시나츠·리파치이다.

로마에 정복당한 후 이 지역 대부분이 로마 제국의 달마치야 속주에 포함되었고 6세기 후반에는 슬라브인이 정착하기 시작했다. 10세기에 보스니아는 차슬라브 공이 다스리는 세르비아 왕국의 일부가 되었다. 960년경 그가 죽은 후 크로아티아 왕국으로 넘어갔고 1018년 이후 비잔틴의 지배하에 놓였다. 12세기 헝가리 왕국은 일련의 도독(都督) 또는 총독을 통해 이 지역을 지배하기 시작했으나 이 시기동안 보스니아는 국력이 커지고 독립국의 지위를 누렸다. 1322년 보스니아인 스테판 코트로마니치가 도독으로 선출되었고 14세기 나머지 기간 동안 코트로마니치 왕조, 특히 스테판의 조카인 트브르트코 1세의 지배하에서 세르비아 왕국의 훔 속주와 아드리아 해안의 많은 지역까지 보스니아의 영토를 넓혔다.

1386년 오스만 제국인(투르크)이 보스니아를 침략했으며 수차례의 전투 후 1463년 투르크령으로 만들었다. 보스니아는 투르크의 지배하에서 경제적으로 쇠퇴해갔다. 훔 속주는 세인트 사바의 '헤르체그'(공작)라고 스스로 명명한 지배자들하에서 속주를 오랫동안 유지하였는데, 헤르체고비나라는 명칭은 여기서 유래되었다. 16∼17세기 투르크와 합스부르크왕가·베네치아의 끊임없는 전쟁에서 보스니아는 투르크의 중요 전초기지였다. 이 시기에 주민 대부분이 이슬람교로 개종했다. 오스만 제국이 유럽에서 밀려남에 따라 보스니아에 대한 이들의 지배는 점차 부담스러워 졌고, 이슬람교도와 그리스도교도 모두 콘스탄티노플(오스만 제국의 수도, 지금의 이스탄불)로부터의 간섭을 반기지 않게 되었다.

1877∼78년 러시아-투르크 전쟁 후 베를린 회의에서 보스니아와 헤르체고비나는 명목상으로는 여전히 투르크령이었지만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정복지로 인정되었고 1908년 10월 7일 오스트리아-헝가리에 합병되었다. 새로운 헌법에 따라 유권자를 3개의 선거인단으로 나누고 각 선거인단 내에 일정한 비율로 정교회, 로마 가톨릭교, 이슬람교의 의석을 할당했다. 이러한 결정은 증폭되고 있는 세르비아 민족주의를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었고 1914년 6월 28일 보스니아 출신의 세르비아계 학생 가브릴로 프린치프가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을 암살함으로써 절정에 달했다. 이 사건으로 제1차 세계대전이 야기되었다. 보스니아와 헤르체고비나는 1918년 10월 26일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왕국의 일부로서 세르비아에 합병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보스니아의 세르비아인들은 크로아티아계 공산정권의 인종학살정책으로 극도의 고통을 겪었고 보스니아와 헤르체고비나 두 지역은 1946년 유고슬라비아공화국의 일부가 되었다.

1989∼90년 공산주의의 몰락과 더불어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도 유고슬라비아를 휩쓴 민족주의 물결에 휘말렸다. 1991년 크로아티아가 연방을 탈퇴한 후 보스니아의 크로아티아계와 이슬람계는 다민족 공화국 수립을 요구하는 국민투표 실시에 찬성했으나 보스니아의 세르비아계는 실직적으로 세르비아가 주도해온 유고슬라비아로부터의 독립을 반대했다. 1992년 이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내전으로 인해 황폐화되었고, 이 기간동안 각 민족들이 자신들이 차지한 지역에서 타인종을 일소하는 '인종청소'가 자행되었다. 세르비아계는 북쪽과 동쪽의 대부분을, 크로아티아계는 서부를, 이슬람계는 중부 및 북서부의 도시를 차지했다. 1995년 12월 평화협정 조인으로 내전이 끝나고 이 협정에 따라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이슬람계-크로아티아계 연방과 세르비아계 공화국으로 분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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