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지나던 연구실 앞 내정, 달콤한 향내에 이끌려 등나무가 줄기줄기 타고 올라간 그 그늘에 앉았다. 탐스럽게 늘어진 포도송이처럼 하나하나 붙어있는 등나무꽃이 머리 위로 치렁치렁했다. 왜 이걸 예전에 학교 다닐 땐 몰랐을까. 내가 1, 2학년 때 그 때도 있었나, 하는 생각을 했다.
게다가 그 등나무는 심지어 영동랜드를 떠올리게 했다. 단층건물인 매점의 옥상에 화단을 꾸민 영동랜드, 2층에서 바로 연결되었기 때문에 틈만나면 거기 올라가서 뛰어다니곤 했다. 점심먹고 나서도, 청소시간에도, 야자하기 싫을 때도. 교복치마를 입은 나는 그 때 몸이 가벼웠었는지 의자들 위로 가볍게 건너건너 뛰어다녔다. 고등학교 3년간의 추억이 깃든 장소지만, 영동여고는 없어졌기 때문에 이젠 가볼 수도 없다.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 말로는 그 때 내가 그 꽃들의 아름다움을 전혀 못 느꼈던 것은 우리가 꽃이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 열아홉, 자체발광할 나이였던 것 같다. 지금은, 지금은 어떠하냐면, 글쎄. 올해가 엘비스 프레슬리 서거 30주년이라고 하는 기사를 보았다. 내가 고3 때 서거 20주년이라고 해서 BMG에서 베스트음반을 대대적으로 팔고, NHK에서는 일주일에 한 편씩 엘비스 나온 영화를 틀어주는 바람에, 그래서 그 때 내가 엘비스를 좋아하게 되어버린건데, 올해는 30주년, 벌써 십년이 된 것이다.
꽃이었기 때문에 꽃의 아름다움을 모르다가 이제서야 느끼게 된거라면 이제 나는 우리는 꽃이 아닌건가, 더이상 꽃답지 않은 건가 하는 생각이 잠깐 스쳤지만, 나는 등나무꽃 향기를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코를 한껏 위로 치켜들고 킁킁대며 생각했다.
나중에 아주아주 늙더라도, 할미꽃 하면 되지 뭐.